그래미의 느릿한 변화

2024년 2월 6일, explained

시대가 달린다. 그래미의 시계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66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 부분을 수상한 테일러 스위프트가 여성 록 밴드 보이지니어스, 프로듀서 잭 안토노프와 함께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 Michael Buckner/Billboard via Getty Images
NOW THIS

제66회 그래미 어워즈가 개최되었다. 현지 시각으로는 지난 4일, 우리 시간으로는 어제(5일)였다. 작년이나 재작년에 비해 한국의 관심은 덜했다. BTS를 비롯한 K-POP 그룹들이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올해의 그래미 어워즈는 여전히 화려했다. 그러나 그래미는, 방황 중이다.

WHY NOW

그래미 어워즈는 명실공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음악 시상식이다. 그러나 보수적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붙었으며, 때로는 수상자 선정 기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비난에도 직면해 왔다. 그럼에도 전 세계는 그래미를 주목한다. 이 시상식에 녹아들어 있는 우리 시대의 갈등과 질문 때문이다. 음악만이 표현할 수 있는 시대상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다.

1959

1950년대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위원회에 음반 업계 임원진들이 참여하게 된다. 영화나 TV의 스타들과는 달리, 음악계의 거장들이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덜 알려졌다고 생각한 이들은, 영화계의 오스카상, TV의 에미상과 같이 유명하고 권위 있는 시상식을 만들 필요성을 느낀다. 이에 따라 1957년, 미국 레코딩 예술 과학 아카데미(NARAS)가 설립되고, 1959년 5월 4일 제1회 그래미 어워즈가 개최되었다. 초기에는 축음기를 뜻하는 그라모폰(gramophone) 어워즈였다. 지금까지도 그래미상 트로피의 모습은 초기 축음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권위, NARAS

대중음악 관련 시상식으로 그래미와 함께 꼽아볼 만한 것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s)와 빌보드 뮤직 어워드(BBMAs)가 있다. 수상 기준은 각각 대중의 투표와 빌보드 차트라는 데이터다. 반면, 그래미는 음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NARAS 회원들이 투표한다. 상업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논할 수 있는 권위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논란

그러나 그래미의 선택에는 언제나 의심이 따라붙었다.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동시에 압도적으로 받았던 뮤지션들이 꽤 여러 번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마이클 잭슨의 〈Off the Wall〉 앨범, 라디오 헤드의 〈OK computer〉 앨범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2020년 발매한 위켄드의 〈After Hours〉 앨범에서 논란은 정점을 찍는다. 역대 최초로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 1년간 머무르는 대기록을 세웠고, 평단의 극찬도 받았다. 그러나 위켄드는 그래미에 거절당했다. 후보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이다. 본상에 해당하는 제너럴 필드(앨범상, 레코드상, 노래상, 신인상)는 물론이고 장르 필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사위원

매스 미디어에서 여론이 만들어지는 시대였다면 곧 사그라들 논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론이 여론을 만드는 시대다. 2021년도 그래미 어워즈에 대한 위켄드의 분노는 음악 팬의 분노로 확산했고 그래미 무용론까지 대두되었다. 대체 누가 어떻게 심사하길래 이런 결과를 초래했을까. 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프로듀서, 작곡가 등이 1차로 후보를 선정한다. 하지만 최종 후보 명단을 결정하는 것은 익명의 15~30명 규모 업계 전문가, 지명 위원회였다.

폭로

아직 진상이 완벽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자신과 친분이 있는 아티스트를 밀어줬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아카데미 자체가 일종의 ‘보이 클럽’처럼 운영된다는 폭로도 함께였다. NARAS의 첫 여성 CEO였던 데보라 듀건이 지난 2020년 해임되면서 밝힌 내용이다. 2019년 12월 기준으로 NARAS 이사회의 65퍼센트가 남성이며 63퍼센트가 백인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지명 위원회를 임명한다. 그래미 시상식이 유색 인종에게, 여성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비난 앞에 떳떳하기 어려운 이유다. 특히, 그래미를 오랫동안 대표해 온 NARAS의 전 CEO, 닐 포트나우가 2018년 시상식에서 했던 발언은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여성 뮤지션들은 더욱 분발해야 한다.” 여성 뮤지션의 활약이 시상식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변화

결국 그래미는 변화를 택했다. 2022년부터 익명으로 운영해 오던 지명 위원회를 중단하고, 만 명 이상의 투표 회원 전원이 후보를 선정한다. 그 결과는 어떨까. 어제 열린 제66회 그래미 어워즈는 그야말로 디바들이 점령했다. 제너럴 필드에 후보로 오른 대부분의 아티스트가 여성이었다. 특히, 테일러 스위프트는 ‘올해의 앨범’ 부분을 4번째 수상하며 역사를 새로 썼다. 물론 힙합에 대한 장르적 소외와 글로벌 뮤지션에 대한 홀대는 여전하다. 그럼에도, 변화는 시작되었다.

글로벌 뮤직

그 변화는 그래미가 시대적 흐름에도 여전히 건재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할 시험대다. 정확히는 ‘틀어주는’ 음악에서 벗어난 이 시대의 흐름에도 그래미가 유의미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다. 그래미는 2021년 시상식부터 ‘월드 뮤직’이라는 용어를 버렸다. 1987년 비서구권 아티스트의 음악을 마케팅하기 위해 영국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다. 당시의 시대상이, 그래서 이 용어에 반영되어 있다. ‘민속적인’, ‘비미국(서구)적인’이라는 뉘앙스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월드 뮤직 대신 ‘글로벌 뮤직 앨범’에 상을 주기 시작했다고 해서 영미권 바깥의 음악을 보는 시선이 단번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 부분에 수상자를 배출한 국가는 전 세계의 5.8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나마 유니버설이나 워너 등의 대형 음반사 레이블에 속해 있는 아티스트가 유리하다.

IT MATTERS

2024년부터 그래미는 ‘아프리카 음악 퍼포먼스’ 부문을 신설했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Afrobeat(아프로비트) 열풍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굳이 음악 FM에서 틀어주지 않아도, 틱톡을 통해 전 세계의 음악을 만날 수 있게 된 결과다.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도 K-POP 위기론을 제기하며, 지금 시장 점유율이 급성장하고 있는 장르로 라틴 음악과 아프로비트를 꼽았을 정도다.

다만, 후보를 배출한 국가는 나이지리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뿐이다. 가사가 영어로 되어 있거나, 가사의 많은 부분이 영어로 되어 있는 곡들이 선정되었다. 이래서는 취지에 부합하는지 의문이 제기될 법하다. 국경은 흐릿해지고 자본의 마케팅 파워는 예전 같지 않다. 음악 시장은 알고리즘 창조자에 해당하는 ‘新대중’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래미의 변화는 콘텐츠 산업 섹터의 권력 이동을 의미한다. 2030년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래미에 열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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