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이 안되는 진짜 이유

2024년 2월 27일, explained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명확히 해야 해결책도 보인다.

가치 투자의 교과서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1984년경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Bonnie Schiffman, Getty Images
NOW THIS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한국 주식 시장 저평가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기업이 스스로 현재 주식 시장에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중장기 목표와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에는 강제성이 없다. 열심히 참여하면 인센티브를 주고, 그렇지 않으면 공개해 망신을 주겠다는 정도다.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페널티는 없는 수준이고, 인센티브는 크지 않은 세제 혜택과 모범 기업의 밸류업 지수 편입 정도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자고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겠냐는 것이다.

WHY NOW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패는 주식 투자자들에게만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기업이 현금을 쌓아 두지 말고 주주들에게 이윤을 나눠 주도록, 투자에 나서도록 독려하는 것이 이번 정책의 골자이기 때문이다. 잘 된다면 사상 최고의 호황을 맞이한 일본처럼, 한국 경제에 극적인 모멘텀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벌써부터 한국은 실패할 것이라는 해외 기관발 보고서가 날아든다. 정말 그럴까. 한국 주식 시장이 ‘밸류 다운’ 되어 있는 원인에 그 답이 있다.

바겐 세일

한국 기업은 저렴하다. 정확히는, 한국 기업의 주식 가격이 저렴하다. 기업의 현재 가치, 경쟁력, 미래 성장 가능성 등을 종합해 볼 때, ‘미국산’이거나 ‘일본산’이면 100만 원에 거래되었을 주식이, ‘한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70만 원, 60만 원에 주저앉아 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한국 주식 시장은 상시 바겐 세일 중이다. 이 현상을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이야기한다. 대체 얼마나 평가 절하당했나. 분석 기관마다, 전문가마다 내놓는 수치는 다르다. 많게는 40퍼센트 가까이 된다는 조사도 있다.

PBR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 있을까. 몇 가지 지표를 보면 된다. 대표적으로 PBR, 주가순자산비율(Price to Book-value Ratio)이 있다. 주식 시장에서 평가하는 회사의 가치가 장부상의 가치 대비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낸 값이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의 전 세계 PBR을 조사해 봤더니 우리나라는 1.2, 신흥국 시장은 2.9, 선진국은 2.2였다. 자산 가치와 수익성이 비슷한 회사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나라에서 12만 원짜리 주식이 신흥국에서는 20만 원, 선진국에서는 22만 원이 된다는 얘기다.

전쟁보다 무서운 그것

물론 개별 종목의 잠재력을 평가할 땐 상황에 따라 여러 지표를 다양하게 봐야 한다. 다만, ‘한국 주식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저평가받고 있다. 대체 이유가 뭘까. 전통적인 원인으로는 지정학적 요인이 꼽힌다. 우리는 종종 잊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분단국가다. 전쟁이 나면 그 양상이 어떻든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필연적으로 곤두박질친다. 그 위험성이 주가에 반영되어 실제 기업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2024년, 정전 협정 71주년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연달아 쏘아 올려도 무심한 우리만큼은 아니어도,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극도로 낮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21세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따로 있다. 한국 기업의 특이한 지배 구조가 그것이다.

대범한 이유

주식회사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 모든 주주가 적든 많든 회사에 투자한 셈이다. 따라서 회사가 이윤을 창출했다면 아무리 소액주주라 하더라도 그 결실을 나누어 받을 권리가 있다. ‘주주환원’이다. 대표적인 방법은 두 가지다. ‘배당금’의 명목으로 직접 현금으로 돌려주거나, 회사가 ‘자사주 소각’이라는 방법을 통해 주주들이 갖고 있는 주식의 가치를 끌어올려 준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은 이걸 잘 안 한다. 우리나라 주주 환원율은 28퍼센트로, 미국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중국에도 밀린다. 한국 기업들이 이렇게 배짱을 부릴 수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팀 쿡이 삼성에 온다면?

애플을 만든 혁신가는 스티브 잡스지만, 애플 최고의 경영인은 팀 쿡이다. 팀 쿡은 애플의 시가 총액을 10배로 끌어올렸다. 주주들의 자산을 10배로 불려준 셈이다. 역대급으로 일 잘하는 CEO다. 하지만 팀 쿡이 우리나라에 온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큰 회사들은 다르다. 많은 경우, 소유와 경영이 얽혀 있다. 창업했으면, 물려받았으면 ‘내 회사’라는 인식이다. 이들은 ‘최대 주주’라는 이름으로 기업을 지배한다. 쉽게 말해 30퍼센트의 주식을 들고 100퍼센트의 지배력을 행사한다. 어차피 내 회사고, 주가를 띄워봤자 상속세 등 부담이 커진다. 오히려 주식이 저평가되어 있어야 유리한 경우도 있다.

한국은 안된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본의 사례를 충실히 벤치마킹한 것이다. 일본 기업도 주주환원에 게을렀고, 이윤은 쌓아둔 채 투자하지 않았다. 당연히 주가도 저평가의 늪에 빠져 있었다. 이 오랜 관성을 흔든 것이 10년 전 발간된 ‘이토 보고서’다. 학계와 기업, 금융계가 모두 참여해 1년간 논의하고 토론해서 내놓은 결과다. 기업 문화를 개선하고 주주의 권리를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또, PBR 등 기업 가치 평가 지표 향상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폈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공개했다. 주주행동주의 펀드에도 힘을 실어줬다. 10년 만에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우리의 밸류업 프로그램도 내용은 이와 비슷하다. 그런데 한국은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보고서가 나왔다. 영국의 헤지펀드 헤르메스(Hermes Investment)의 분석이다.

취약한 지배구조

지난 13일, 헤르메스가 공개한 보고서는 한국과 일본의 ‘디스카운트’ 원인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문제는 재무구조다. 현금은 쌓아 두고 투자는 하지 않는 보수적인 기업 문화가 기업의 가치를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문제는 기업의 지배구조다. 특히, 가족이 지배하는 상장 기업이 많고, 총수 일가는 소액주주를 희생시키며 이익을 추구해 온 전력이 있으며, 이를 통해 상당한 금전적 이득을 취해 왔다고 지적한다. 한국식 ‘재벌 경영’ 얘기다. 특히, 지난해 12월에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서는 더 구체적으로, “상속세를 적게 내려고 주가는 낮게, 배당은 적게”해 왔다고도 언급한 바 있다. 헤르메스는 한국이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려면,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도 100퍼센트의 경영권을 휘두르는 한국 기업의 거버넌스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IT MATTERS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지난 2020년 이후 일본 5대 종합상사의 지분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저평가된 일본 주식 시장이 그 가치를 찾아 나가고 있다는 신호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버핏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작년 3월부터 일본 금융 당국이 실시한 PBR 개선 정책이 기폭제가 되어 2014년 ‘이토 보고서’ 이후 쌓아온 노력이 결실을 거뒀다. 일본 증시가 그야말로 ‘폭발’한 것이다. 한국의 현실은 어떨까. 버핏이 강조하는 ‘가치 투자’는 너무나 호사스러운 얘기다. 한국의 주식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의 대상이다. 기업이 일을 잘해도 투자자에게는 그만큼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의 잠재력이 경제의 활력으로 돌아올 방법을 찾지 않으면 저성장의 늪은 더 끈질기게 코스피에 달라붙을 것이다. 문제가 대체 무엇인지, 확실히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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