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은 스타트업이 아니다

2024년 2월 29일, explained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스타트업 하듯 정치를 한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타고 다니는 선거 유세 차량. 소형 트럭 ‘라보’를 개조했다. 새로운미래 이낙연 대표는 카니발을 탄다. 사진: 이준석 대표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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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양당 구도를 깨트리고 제3지대 통합 정당을 만들겠다던 개혁신당이 합당 발표 11일 만에 쪼개졌다. 이준석계와 이낙연계가 당 주도권을 놓고 대립하다가 결국 합당을 철회했다. 놀라운 건 두 세력이 11일 만에 결별했다는 게 아니다. 애초 달라도 너무 다른 둘이 세력을 합치기로 했었다는 것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참담한 마음으로 국민에게 사과드린다”고 했다.

WHY NOW

이준석 대표는 스타트업 하듯 정치를 한다. 크게 생각하고, 작게 시작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조직을 지향한다. 창당 비용을 최소화해 실속을 챙겼다. 완벽을 추구하기보다 시제품을 빠르게 내놓고, 성과를 측정하고, 피드백을 학습해 제품에 반영한다. 제품과 서비스가 시장에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방향을 바꾼다. 그런데 정치는 스타트업이 아니다.

린스타트업

창당을 하려면 당원 5000명을 모아야 한다. 시도별로 팀을 꾸려 주민 한 사람씩 붙잡고 가입서를 받는다. 인건비와 활동비가 들어간다. 여의도에 번듯한 당사를 구하고, 올림픽공원 같은 곳에서 창당 대회까지 열려면 최소 3억 원은 써야 한다. 이준석 대표는 작고 빠르게 시작했다. 구글 폼으로 당원 5만 명을 모으고, 창당 대회도 약식으로 열었다. 중앙당사도 당산역 오피스텔로 얻었다. 이 대표는 2021년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도 3000만 원을 쓰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다른 후보는 억대를 썼다.

MVP

개혁신당은 올해 1월 20일 공식 출범했다. 그런데 창당도 하기 전인 1월 8일 총선 1호 공약을 발표했다. 18일에는 5호 공약을 냈다. 떠들썩했던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다. 30일에는 8호 공약으로 ‘경찰, 소방 직렬의 여성 공무원 병역 의무화’를 내놨다. 정책연구소까지 따로 두고 있는 거대 양당보다 정책 제시 속도가 빠르다. 스타트업의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 기능 제품)와 유사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완벽한 제품을 내놓기보다는 최소한의 기능을 갖춘 제품을 빠르게 출시해 시장을 검증하는 것이다.

인수·합병

여론 조사를 돌리면 제3지대 정당의 출현을 바라는 유권자가 20퍼센트 가까이 나온다. 그런데 한 달 전까지 개혁신당을 포함해 제3지대 정치 세력 네 곳의 지지율은 각각 1~3퍼센트였다. 이준석 대표는 창당 한 달도 되기 전인 2월 9일 다른 세 개 정치 세력과 통합해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리기로 한다. 표면적으로는 통합이었지만, 새로운미래(이낙연), 새로운선택(금태섭·류호정), 원칙과상식(이원욱·조응천)이 사실상 개혁신당에 흡수되는 형태였다. 그렇게 개혁신당은 빠르게 몸집을 불렸다.

Build-Measure-Learn

스타트업은 만들고, 측정하고, 학습한다. 이 사이클을 반복하며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한다. 통합 선언 이후 개혁신당의 지지율은 기대와 달리 4퍼센트에 그쳤다. 정의당 출신부터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출신까지 네 세력이 합쳤는데, 시너지는커녕 역효과가 났다. 통합 과정에서 페미니즘 색채가 강한 정의당 출신 류호정 전 의원이 합류하자 이 대표의 핵심 지지층인 20~30대 남성 당원이 탈당 인증을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 대표는 제품 개선에 나선다. 기능 몇 개를 고치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제품을 만들기로 한다. 피벗팅(pivoting, 사업 방향 전환)이다.

피벗팅

이준석 대표는 이낙연 대표에게 특정 인물을 당에서 배제하고 총선 정책을 결정할 권한을 위임해 달라고 요구했다. 제3지대 통합 정당이 아니라 도로 이준석 신당이 되겠다는 뜻이다. 이낙연 대표로서는 당명도 양보한 마당에 인사와 정책 결정권까지 넘겨줄 수 없었다. 그러자 2월 19일 개혁신당 최고위원회는 선거 전권을 이준석 대표에게 위임하는 안건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킨다. 이낙연 대표는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회의장을 나갔다. 다음 날 기자 회견을 열고 “합의가 부서졌다”며 합당 철회를 선언한다.

투자

개혁신당이 제3지대 통합 정당에서 이준석 신당으로 노선을 변경하자 그동안 꿈쩍도 하지 않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응답했다. 김 위원장은 ‘여의도 차르’로 통한다. 여야 가리지 않고 위기에 빠진 정당에 구원 등판해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왔다. 이준석 대표는 삼고초려 끝에 공천관리위원장으로 김 위원장을 모셔 왔다. 섣부른 통합으로 핵심 지지층의 실망을 샀고 신당의 신선함도 잃어가던 개혁신당은 김종인이라는 신뢰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반전의 계기를 맞게 됐다.

엑시트

스타트업의 결승선은 엑시트(exit)다. 창업자와 직원과 투자자가 기업 가치를 현금화하는 것이다. 엑시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증권거래소에 회사를 상장시키는 것과 더 큰 회사에 인수·합병되는 것이다. 후자를 스몰(small) 엑시트라고 한다. 이준석 대표가 제3지대 통합을 포기하고 핵심 지지층으로 방향을 돌린 순간, 이 대표의 지향점은 분명해졌다. 스몰 엑시트다. 4월 10일 총선 이후 개혁신당은 국민의힘에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총선 성적표에 따라 이 대표가 받을 지분이 달라질 뿐이다.

IT MATTERS

미국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민주주의의 엔진은 갈등”이라고 했다. 다양한 갈등이 다양한 정당을 만들고, 다양한 정당이 다양한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한다. 이준석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 시절부터 많은 갈등을 일으켜 왔다. 그 대상은 윤핵관이었고, 여성이었고, 노인이었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였다. 갈라치기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유익한 갈등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몇 주간 그가 일으킨 갈등은 유해하기만 했다. 영국 보수당의 기반을 닦은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말처럼 “정당은 조직된 의견(organized opinion)”이어야 한다. 조직되지 않은 의견들을 좌판에 늘어놓고 하나가 터지기를 바라는 건 정당이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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