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이 이기는 이유

2024년 3월 18일, explained

러시아 대선이 끝났다. 푸틴의 5선 당선이 확실시된다.

2024년 3월 14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지하철에 대선 포스터가 붙어 있다. 사진: Contributor,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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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3월 15일 오전 8시에 시작한 이번 대선은 17일 오후 8시(한국 시간 18일 오전 2시)에 종료됐다. 영토가 워낙 광활해 극동 지역부터 서쪽 지역까지 순차적으로 투표를 마감한다. 투표 종료와 동시에 개표를 시작하는데, 승부는 이미 결정 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5선 당선이 확실시된다.

WHY NOW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면 푸틴 대통령은 30년간 집권하게 된다. 스탈린의 29년 집권 기록을 넘어선다. 임기 6년을 마치고 2030년 대선에 또 출마해 당선되면 83세까지 러시아를 통치하게 된다. 표면적으로 민주화된 선거에서 푸틴은 어떻게 항상 승리할까. 푸틴은 슬라브 민족주의와 군사 케인스주의, 부패한 시스템을 결합했다. 이길 수밖에 없는 선거다.

종신 집권

푸틴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면 집권 기간이 2030년까지 연장된다. 1999년 12월 31일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갑자기 사임하면서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은 푸틴은 30년간 러시아를 통치하게 된다. 이오시프 스탈린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29년 집권(1924~1953년) 기록을 넘어서게 된다. 푸틴은 2020년 헌법을 개정해 2030년 대선에도 출마할 수 있다. 그때도 당선돼 2036년 임기를 마치면 푸틴은 83세가 된다. 사실상 종신 집권이다.

슬라브 민족주의

푸틴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동력 중 하나는 슬라브 민족주의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우크라이나, 벨로루스, 발트 3국 등이 독립했다. 푸틴은 러시아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우크라이나에서 서구와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서구는 푸틴을 독재자와 전범으로 보지만, 러시아에서 푸틴은 외세와 맞서 러시아성(Russianness)을 회복하는 지도자다. 러시아의 여론 조사 기관 레바다 센터에 따르면 푸틴의 지지율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69퍼센트에서 현재 86퍼센트로 올랐다. 2008년 조지아 전쟁,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합병 때도 지지율이 급등했다.

경제 호황

러시아는 전쟁 중인데 경제가 호황이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러시아 경제는 지난해 3.6퍼센트 성장했다. 세계 평균(3퍼센트)보다 높다. 러시아 경제 성장의 동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서방 대신 중국 의존도를 높였다. 지난해 러·중 교역액은 2401억 달러로 전년 대비 26퍼센트 늘었다. 둘째, 군사 케인스주의(Military Keynesianism)의 영향이다. 러시아는 GDP의 7.5퍼센트를 군사비에 지출하고 있다. 냉전 이후 최대 비율이다. 무기 생산 공장이 3교대로 돌아간다. 국방 지출이 늘면서 단기적으로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쟁자 없음

푸틴을 긴장시킬 야당 후보가 없다. 유력 야당 주자는 죽거나, 투옥되거나, 추방되거나, 출마가 금지됐다. 1990년대 후반까지 대권 주자 1위로 꼽혔던 보리스 넴초프는 한때 푸틴을 지지하다가 반정부 성향으로 돌아섰는데, 2015년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괴한의 총격으로 암살됐다. 푸틴의 독재와 부정을 비판했던 알렉세이 나발니는 지난달 감옥에서 숨졌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는 총 4명이다. 푸틴을 제외하고는 존재감이 미미하다. 선거에 최소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크렘린이 출마를 허용한 들러리인 셈이다.

언론 장악

정치적 맞수가 없는 상황에서 푸틴을 견제할 언론마저 없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푸틴에 비판적인 독립 언론이 꽤 있었다. 그러나 기자가 공격당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비판적인 언론이 위축됐다. 20년간 러시아에서 취재를 하다가 목숨을 잃은 언론인은 25명이다. 대표적인 예가 2006년에 있었다. 푸틴 정권의 인권 유린을 책까지 펴내 비판했던 언론인 안나 폴릿콥스카야가 푸틴의 생일날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범인은 붙잡혔지만, 누가 지시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반푸틴 진영에서는 러시아 정부나 친정부 단체에 의한 암살로 추정한다.

선거 기구 장악

이번 대선에서 사전 등록한 유권자는 투표소에 가지 않고 집에서 컴퓨터로 온라인 투표를 할 수 있다. 온라인 투표 사전 등록자는 470만 명이다. 러시아 시민 단체는 정부가 온라인 투표를 조작하거나, 누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알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21년 하원 선거에서 당시 종이 투표에서 패한 친크렘린 후보 9명이 온라인 투표에서 역전해 당선된 바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도 투표가 벌어지고 있는데, 무장한 군인이 집마다 방문해 투명 투표함에 투표를 받았다.

정부와 국영 기업

푸틴은 70퍼센트 투표율에 80퍼센트 득표율을 목표로 삼고 있다. 2018년 대선의 득표율 76.7퍼센트를 뛰어넘는 수치다. 푸틴은 높은 투표율과 득표율을 우크라이나 전쟁과 종신 집권의 명분으로 삼으려 한다. 이 목표는 달성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관료들이 충성 경쟁을 벌이며 행정 자원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주 정부와 국영 기업은 높은 투표 참여를 보장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러시아 공무원과 국영 기업 근로자들은 투표한 내용을 핸드폰 사진으로 찍어 상사에게 보여 줄 것을 지시받기도 한다.

IT MATTERS

푸틴의 다음 임기가 어떤 모습일지 전망하는 건 어렵지 않다. 전쟁은 끝나지 않고, 러시아는 더 군사화하고, 군사비 지출이 러시아 경제를 지탱할 것이다. 유럽 정세도 달라진다. 트럼프는 유럽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돈을 쓰거나 피를 흘릴 생각이 없다. 유럽은 고립주의적인 미국에 대비해야 한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의 올해 국방비는 GDP의 4.2퍼센트다. 나토 회원국 중에서 유일하게 미국(3.49퍼센트)보다 높다. 병력 규모도 10년 사이 두 배 늘었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침공까지 3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본다. 러시아의 군수 공장은 3교대로 돌아간다. 3년이면 우크라이나에 쏟아부어 소진된 러시아의 포탄이 다시 채워진다. 다른 유럽 국가도 폴란드의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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