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의 의미

2024년 3월 19일, explained

대기업 간 싸움이 났다. 7.8조 원짜리 싸움, 혹은 그 이상이다.

HD현대중공업의 기본설계에 따른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조감도. 사진: HD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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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우리 해군은 KDDX 사업을 통해 구축함을 추가로 확보하고, 이를 포함해 ‘66 기동함대’를 창설할 예정이다. 여섯 척의 구축함에 각각 헬기가 한 대씩 실려 붙은 별명이다. 해군의 목표는 최종적으로 66 기동함대 3개를 만들고, 2030년에는 3만 톤급의 경항공모함까지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WHY NOW

그런데 KDDX 사업을 둘러싸고 잡음이 새어 나온다. 사업 수주를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는 두 회사,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갈등이다. 대기업 간 물밑 다툼은 있어도,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전쟁은 드물다. 그리고 이 전쟁은 우리 안보와 직결되어 있다. 지정학적 위험이 급부상하고 있다. 국방은 어렵지만, 알아야 하는 시대다. 특히, 우리 국방력의 ‘특이점’을 만들어낼 사업에 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항공모함

항공모함은 ‘현대전의 꽃’으로 불린다. 여러 대의 전투기를 싣고 다니며, 넓고 평평한 비행갑판을 갖추고 있다. 잠수함도 데리고 다닌다. 말 그대로, ‘떠다니는 군사기지’다. 미 해군이 등장하는 영화에는 거의 예외 없이 항공모함 신이 포함된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활주로의 모습은 그 자체로 그림이 된다. 게다가 미 국방력의 상징과도 같은 자원이니 이른바 ‘국뽕’ 아이템으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항공모함이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적국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언제 어디서 전투기가 날아올라 공격해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구축함

그런데 이 항공모함이 요격당한다면 큰일이다. 그래서 호위무사들이 반드시 함께한다. 항공모함을 둘러싸고 함께 항해하며, 적의 공격을 미리 감지하여 항공모함을 지킨다. 미사일이 날아온다면 일찌감치 요격해 파괴하는 식이다. 구축함이 대표적인 호위무사다. 구축함이 있어야 연안을 벗어나 대양에서 작전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바다 건너 이웃들이 만만치 않다. 일본과 중국, 동해와 서해로 미사일을 쏘는 북한까지. 그래서 우리도 구축함을 만든다. 그것도 아주 잘 만든다.

이지스, 신의 방패

다만, 거대한 함정을 튼튼하게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탑재되는 시스템도 엄청난 기술의 집약체다. 구축함은 수상은 물론 항공, 수중 미사일까지 상대해야 한다. 게다가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은 유효 사거리가 5천5백km 이상이다. 몇천km 이상의 탐지거리가 보장된 고성능 탐지 기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레이더로 미사일을 잡아냈다면 어떤 경로로 얼마 후에 미사일이 떨어질지도 계산해야 한다. 슈퍼컴퓨터가 동원되는 고난도 작업이다. 계산이 끝나면 대공미사일을 이용해 적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최고의 기술이 미국 록히드 마틴의 이지스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탑재한 구축함이 바로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지스함’이다.

KDDX

거칠게 비유한다면, 우리 이지스함은 컴퓨터 본체만 국산인 셈이다. 나머지는 미국 록히드사에서 사 온 것이다. 그래서 본체부터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는 물론이고 탑재된 소프트웨어까지 국산인 구축함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사업이 바로 KDDX 사업이다. 2020년부터 2036년까지 개발비 1조 8천억 원, 건조비 6조 원을 들여 총 6척을 만들 예정이다. 이걸 할 수 있는 우리 기업은 두 군데다. 한화오션, 그리고 HD현대중공업. 그런데 이 두 기업이 지금 대놓고 싸움 중이다.

기밀 유출?

KDDX 사업은 단계별로 진행되며, 시작은 ‘개념설계’다. 일종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이 단계에서 수주를 따낸 것은 현재 한화오션에 인수된 ‘대우조선해양’이었다. 2012년의 일이다. 그런데 중간에 ‘뜨는 시간’이 생겼다. 다른 구축선을 만들게 되면서 사업 자체가 일시 정지되었다. 그런데 그 사이 군사기밀 유출이 일어났다. 2018년도 국군방첩사령부의 감사에서 적발된 내용이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군에서 각종 기밀을 빼돌려 사업에 이용한 것이다. 유출된 기밀에는 옛 대우조선해양이 작성한 개념설계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경쟁사의 기술이다. 관련된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작년까지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들의 전쟁

이렇게 되면 KDDX 사업의 나머지 과정을 한화오션이 수주받아 진행하게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판결이 나기 전 HD현대중공업은 개념설계 다음 단계인 ‘기본설계’를 이미 수주받았다. 그리고 기본설계를 맡은 업체가 그다음 단계인 상세설계와 첫 함정 건조를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한화오션이 반발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을 경찰에 고발하고 연달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군사기밀 유출 과정에서 HD현대중공업의 임원이 개입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즉,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다. 물론 HD현대중공업은 강력하게 반발한다. 2년 반에 걸친 수사와 법원 판단으로 임원 개입이 없다는 점이 확인되었다는 내용이 골자다. 양사의 전쟁은 미디어로 확전하는 분위기다. 레거시 언론은 물론이고 뉴미디어에서도 양사는 화력을 한껏 높이고 있다.

7.8조 사업, 그 이상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에 보안 감점을 부여하고 ‘행정지도’ 처분을 내렸다. 다만, KDDX 사업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은 유지하기로 했다. 이대로라면 첫 구축함을 만들게 될 사업자로 HD현대중공업이 낙점될 확률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화오션이 고발까지 감행하며 이번 사안에 사활을 거는 까닭이다. KDDX는 세계 시장에서 일종의 ‘보증서’가 될 것이다. 이지스함에 준하는, 그러나 비용 효율이 훨씬 좋은 첨단 구축함을 만들 수 있다는 보증서 말이다. 당장 폴란드와 캐나다에서 두 기업은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IT MATTERS

전 세계 조선 시장에서 중국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기술은 못미치지만, 가격 경쟁력으로 세를 확장하는 중이다. 기술력으로 승부 볼 수 있는 특수선 분야가 한국 조선업계에는 더욱 중요해진 셈이다. 특히,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실질적으로 선박 건조 능력을 상실한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손을 내밀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 상황이다.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몰아치는 가운데,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전쟁은 분명 좋은 소식이 아니다. 해외 시장 진출에 있어 양사가 전략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KDDX 사업은 우리 국민의 세금이 8조 원 가까이 사용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보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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