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LIFE》

2024년 4월 5일, explained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사진 잡지가 돌아온다.

1968년 3월,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 병사가 《LIFE》지를 읽고 있다. 사진: Getty Images
NOW THIS

미국의 20세기를 상징하는 잡지, 《LIFE》가 부활한다. 몇 번의 정간과 복간, 폐간과 부활을 거쳐 2007년 4월 20일 마지막 호를 발행했다. 지금까지는 공식 웹사이트에서 예전 사진과 기사를 무료로 제공하며 명맥을 유지해 왔지만, 이제 디지털은 물론 인쇄된 종이 잡지로도 새로운 《LIFE》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 오픈AI의 최대 투자자 중 하나인 스라이브캐피털을 이끌고 있는 조쉬 쿠쉬너와 그의 아내 칼리 클로스가 이번 복간을 추진하고 있다.

WHY NOW

디지털 네이티브 미디어조차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시대, 폐간되었던 종이 잡지가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은 의미심장하다. 《LIFE》는 시대의 아이콘이었으며 포토 저널리즘을 만들어 낸 잡지였다. 《LIFE》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왜 시대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20세기 저널리즘이 감추고 있던 결함과 2024년의 기회가 보인다.

사진과 잡지의 시대

《LIFE》는 원래 19세기부터 발행되던 유머 잡지였다. 그 잡지를 1936년 사들여 사진 잡지로 리뉴얼 한 인물이 바로 ‘헨리 루스’다. 《타임(Time)》, 《포천(Fortune)》 등 현재까지 저널리즘 권력을 쥐고 있는 잡지들을 창간한 인물이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콘셉트였다. 글이 아니라 사진을 잡지의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이에 따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급 광택지를 사용했다. 미디어 업계의 전설, 헨리 루스의 기획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하던 시대, 20세기는 《LIFE》와 같은 사진 잡지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계 시민의 탄생

16세기의 농부가 마을 경계 바깥의 일을 궁금해할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다. 아니, 마을 바깥의 세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0세기의 인류는 국경 바깥의 일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1,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바다 건너 먼 곳의 상황이 나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때마침 이런 수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신기술이 등장했다. 35mm 필름 카메라가 그것이다.

라이카 I

카메라는 원래 거대하고 무거웠다. 여기저기 가지고 다닐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1925년, 독일에서 라이카 I(Leica I)이 생산된다. 35mm 카메라의 탄생이다. 이 카메라는 목에 걸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사진 작가들에게 이동의 자유가 생긴 것이다. 거리에서 자연스러운 삶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도 생생한 사진 촬영이 가능해졌다. 라이카 카메라를 품고 전쟁터로 떠난 사진가들은 급박한 현장에서 숨 가쁘게 셔터를 눌렀다. 그런 사진들이 《LIFE》라는 잡지를 탄생시켰고, 성공시켰다. 1940년대, 《LIFE》의 발행 부수는 천만 부를 돌파했다.

포토 저널리즘

전쟁과 불황이 이어지던 시대, 사회 전반에 팽배했던 불안 심리는 세계를 알고 싶다는 욕구로 발현되었다. 그렇게 《LIFE》는 ‘포토 저널리즘’을 탄생시켰다. 세계로 향하는 문이 ‘대중’에게도 열렸다. 때로 사진 한 장은 긴 글보다 더 큰 함의를 담아내곤 한다. 사진은 글보다 ‘사실’에 더 가깝게 느껴지며, 사건과 독자 사이의 간극을 극단적으로 좁힌다. ‘이미지’의 힘은 아니다. 회화와 사진의 핍진성은 하늘과 땅 차이다. 독자가 사진을 ‘믿는’ 이유는 사진에 부여된 ‘객관성’의 신화 때문이다. 사진은 사실이 아니면 담을 수 없다는 상식이다. 그래서 독자는 사진을 보고 ‘현실’을 파악했다고 쉬이 단정짓게 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반성문

그러나 그 믿음은 사실과 다르다. 사진은 시선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볼지, 보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사진을 찍는 행위이다. 집중해야 할 피사체에는 초점을 맞추거나 조명을 비춘다.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흐릿하게 담거나 프레임 바깥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LIFE》와 함께 대표적인 사진 잡지로 꼽히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은 2018년, 반성문을 실었다. 1970년대까지 잡지에 실린 미국의 유색 인종은 노동자나 가사 도우미의 모습이었고, 교수나 성공한 사업가, 선량하고 관대한 이웃의 얼굴을 한 유색 인종은 사진에 담기지 않았다. 해외 르포 사진에는 지역의 선주민을 나체로 생활하는 사람, 사냥꾼, 야만인 등의 모습으로 담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고백한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의 기사는 인종 차별적이었습니다. 과거를 뛰어넘기 위해 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VIDEO KILLS THE MAGAZINE

《LIFE》 또한 그런 맹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냉전 시대, 잡지에 실린 미국의 모습은 대개 완전무결한 중산층으로 상징되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종군 사진작가 ‘유진 스미스’는 편집자에 의해 자신의 작품이 곡해된다고 주장하며 《LIFE》와의 오랜 인연을 끊기도 했다. 상업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초창기에는 광고의 비율이 절반 가까이였다. 광고 또한 사진으로 실렸기 때문에 뉴스와 광고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이 《LIFE》의 시대를 끝낸 것은 아니다. 사진 잡지의 페이지를 덮은 것은 텔레비전이었다. 《LIFE》는 1972년 발행을 멈춘다. 이후 몇 차례 복간되긴 했지만, 《LIFE》가 문화적 아이콘으로 기능했던 시대만큼 사랑받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종이 위 사진이 아니라 브라운관 안 비디오에서 현실을 찾았다. 2008년, 《LIFE》는 결국 디지털 아카이브로 남는 길을 선택한다. 스스로 역사가 된 것이다.

《LIFE》를 가진 사람

이 잡지를 다시 정기 간행물로 발행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억만장자 벤처 투자자인 조쉬 쿠쉬너와 사업가 칼리 클로스 부부다. 조쉬 쿠쉬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쉬너의 동생이다. 재러드 쿠쉬너는 대학원 재학 중에 뉴욕의 잡지 《옵저버》를 인수해 편집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다. 모델 출신인 칼리 클로스는 지난 2023년 영국의 패션 잡지, 《i-D》를 인수했다. 잡지에 ‘실리는’ 존재에서 잡지는 만드는 주체로의 변신이다. 이들이 다시 만드는 《LIFE》에는 어떤 사진이 담길까. 클로스는 《LIFE》가 “혼란스러운 미디어 환경에서 고양되고 통합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IT MATTERS

여전히 종이 잡지는, 포토 저널리즘은 우리에게 유의미한 뷰파인더가 되어줄 수 있을까. 쿠쉬너는 문화와 일상, 시사 이슈 등을 담아 ‘독특한 관점’을 제공하는 기능이 《LIFE》의 유산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LIFE》를 통해 시대를 상징하는 장면들이 수많은 독자에게 가 닿았다. 다만, 지금은 사진이 너무 많은 시대다. 저널리즘 전반이 그러하듯, 잡지라는 매체가 생존을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LIFE》가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 《LIFE》의 창조주, 헨리 루스의 또 다른 유산, 《TIME》지다. 역사와 함께 쌓은 IP를 이용해 다큐멘터리 및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해 OTT, 방송사 등에 공급하고 있다. 한때 ‘엘리트’의 잡지로 포지셔닝 했던 《디 애틀랜틱》도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유의미한 수익을 확보하고 있다. 포토 저널리즘의 시대를 열었던 《LIFE》도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독자들이 원하는 콘텐츠의 형태를 제대로 찾아내기만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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