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베트남

2024년 5월 9일, explained

미국 컬럼비아대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미국 대선을 흔들고 있다. 

2024년 4월 29일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열린 가자 지구 전쟁 반대 시위. 학생들이 캠퍼스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농성했다. 사진: Fatih Aktas, Anadolu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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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가에서 가자 지구 전쟁 반대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반전 시위의 발화점이 됐던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는 5월 15일 열릴 예정이던 졸업식을 취소하기로 했다. 캠퍼스에서 전체 졸업식을 거행하면 안전 문제가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전체 행사를 여는 대신 10~16일 단과 대학별로 소규모 졸업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WHY NOW

4월 중순 이후 미국 대학에서 반전 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학생은 50개 대학, 2500명에 달한다. 전국 대학으로 시위를 옮겨붙게 한 컬럼비아대의 반전 시위는 1968년 베트남전 반대 시위와 여러모로 닮았다. 컬럼비아대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는 1968년에 그랬던 것처럼 11월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컬럼비아대 시위의 지난 2주를 돌아본다.

집단 학살의 공범

4월 17일 새벽,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에 분노한 수백 명의 학생이 컬럼비아대 캠퍼스 잔디밭에 약 50개의 텐트를 쳤다. 그들은 그곳을 ‘가자 연대 야영지’라고 선언했다. 시위대는 대학이 막대한 기금을 이스라엘 관련 기업과 군수업체에 투자하는 것을 철회할 때까지 텐트 농성을 벌이기로 했다. 컬럼비아대가 팔레스타인 학살의 공범 역할을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업료

미국 명문 사립대인 컬럼비아대의 1년 학비는 9만 달러(1억 2200만 원)다. 시위대는 자신이 내는 수업료가 팔레스타인 집단 학살의 자금으로 쓰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동안 반전 집회를 열었지만, 워싱턴까지 닿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방식을 시도했다. 텐트 농성을 극비에 부치고 한날한시에 모였다. 이 아이디어는 하버드, MIT 등 다른 캠퍼스로 빠르게 퍼졌다.

총장

텐트 농성이 시작된 날, 컬럼비아대 총장 샤피크는 워싱턴DC에 있었다. 미국 하원의 반유대주의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그보다 몇 달 전 열린 청문회에서 하버드대와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은 반유대주의에 대한 확고한 대응 방침을 밝히지 않아 유대계의 압력을 받았고 결국 사임했다. 샤피크는 달랐다. 시위대를 비판하며 반유대주의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NYPD

샤피크는 청문에서 밝힌 대로 시위대에 강경하게 대응했다. 4월 18일 샤피크는 시위대가 학내 안전 규정을 위반했다며 뉴욕 경찰(NYPD)에 시위대 해산을 요청했다. 그날 오후 진압 장비를 착용한 경찰관 수십 명이 캠퍼스로 진입해 텐트 시위 참가자 108명을 연행했다. 1968년 베트남전 반대 시위 이후 컬럼비아대 캠퍼스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체포였다.

친이스라엘 시위

샤피크의 경찰 진압 요청은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첫째, 캘리포니아에서 플로리다에 이르기까지 전국 대학의 친팔레스타인 학생들이 캠퍼스 점거 시위에 나서게 됐다. 둘째, 친이스라엘 학생들도 맞불 집회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위한 연합 행진’을 벌였는데, 컬럼비아대 유대인 동창회, 기독교 보수 단체, 보수 운동가들이 시위를 조직했다.

협상

경찰이 시위대를 연행하고 잔디밭 텐트를 철거하는 사이, 바로 옆 잔디밭에 학생 수백 명이 모였다. 그들은 다시 텐트를 쳤다. 텐트 수가 전보다 늘었다. 대학은 협상에 나섰다. 투자 투명성을 높이고 가자 지구에 보건 및 교육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시위대는 이스라엘과의 완전한 결별을 요구했다. 4월 29일 샤피크 총장은 협상 결렬을 발표하고 학생들에게 해산 시일을 통보했다.

해밀턴홀 점거

4월 30일 시위대는 해밀턴홀로 향했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의 이름을 딴 건물로 컬럼비아대 반전 시위의 상징이다. 1968년 베트남전 반대 시위 때도 시위대가 이 건물을 점거했다. 시위대는 해밀턴홀에 들어가 창문과 문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건물 이름을 ‘힌드스 홀(Hind's Hall)’로 바꾼 배너를 내걸었다.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아 숨진 팔레스타인 6세 소녀 힌드 라자브(Hind Rajab)의 이름을 땄다. 그날 밤 경찰은 2층 창문을 통해 건물에 진입했다. 5분 만에 상황을 종료하고 학생 50여 명을 연행했다. 시위는 끝났다.

IT MATTERS

해밀턴홀 점거 학생이 경찰에 연행된 4월 30일은 1968년 같은 곳에서 베트남전 반대 시위대가 체포된 지 56년 되는 날이었다. 당시 시위 학생 700명이 연행됐고, 경찰의 강경 진압 논란이 일면서 반전 여론이 거세졌다. 그해 8월 민주당 전당 대회가 열린 시카고에서는 베트남전 반대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해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베트남 파병 문제를 두고 분열한 민주당은 베트남 철수를 약속한 공화당의 닉슨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줬다. 지금 가자 지구는 바이든의 베트남이 되어 가고 있다. 바이든은 이스라엘에 등을 돌릴 수도 없고, 적극적으로 편을 들 수도 없다. 공교롭게도 올해 8월 민주당 전당 대회 장소는 시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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