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라는 낭떠러지

2024년 5월 16일, explained

지금까지의 군대 관련 논의는 군인이 되지 못한 이들만을 봤을 뿐이다.

2020년 6월 18일, 한국군이 파주 비무장지대 인근에서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사진: Seung-il Ryu,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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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대대적인 군사력 증강에 착수하면서 여성 군인을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군 내 성폭력 사건이 잇따르면서 입대를 신청하는 여성의 수는 2023년 3월 말 기준 12퍼센트 감소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군 내 괴롭힘 문화가 여성의 자위대 가입을 단념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WHY NOW

인구 감소, 저출생으로 인한 군 인력의 감소는 예정된 미래다. 국제 정세는 날이 갈수록 험악해진다. 한국보다 10년 이른 시간을 사는 일본은 미래의 모습을 그려 보기에 좋은 레퍼런스다. 여성 징병제와 모병제가 논의되는 한국에 현재의 일본이 던지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의 제도 논의는 어쩌면 군인이 아니라, 군인이 되지 못한 이들만 바라봐 왔을지 모른다.

3200억 달러

2022년 12월, 일본은 대대적인 군사력 증강 계획을 발표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전쟁 공포가 고조되는 가운데, 일본은 중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구매하겠다고 밝혔다. 지속적인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32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도 덧붙였다. 평화주의 국가였던 일본은 이 5개년 증강 계획으로 인해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군사비를 지출하는 국가가 됐다.

적절한 시행

2008년 일본 함대를 지휘했던 코다 요지 전 해상자위대 제독은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이번 계획은 일본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적절히 시행된다면 자위대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군대가 될 것이다.” 코다 요지가 말한 ‘적절한 시행’을 막는 것은 다름 아닌 군 내 부조리였다. 군 내에서 반복된 성희롱 사건으로 인해 자위대 입대를 신청하는 여성의 수가 줄었다. 정부가 임명한 연구 패널은 지난 8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성희롱과 괴롭힘, 그에 대한 미비한 감독이 군 내 문제의 주요 원인임을 밝혔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군사비도 군 내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1400건과 2분

일본 자위대 내 성폭력 문제가 가시화한 사건은 2022년 있었던 고노이 리나 전 일본 자위대 대원의 기자회견이었다. 고노이는 2020년부터 부대 내에서 원치 않는 신체 접촉 등에 시달렸다. 공론화 시도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자 고노이는 유튜브를 통해 자신이 겪은 일을 폭로했다. 사건에 대한 본격 재조사가 이뤄졌다. 자위대에는 2개월 만에 1400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일본 국방부는 성 관련 교육을 강화하겠다 밝혔지만 여섯 명의 전문가는 해당 교육이 효과적이지 않은 ‘일반적이고 피상적인 진술에 해당한다’고 결론 지었다. 로이터통신이 참석한 두 시간짜리 교육에서는 불과 2분 정도가 성 교육에 할애됐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 이뤄지지 못한 셈이다.

15배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군인권센터가 발표한 2022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발생한 군 성폭력 사건 중 여성 피해자는 45퍼센트, 남성 피해자는 55퍼센트를 차지했다. 여군의 수가 적다는 걸 고려한다면 여군의 성폭력 경험 비율이 훨씬 높은 셈이다. 피해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강한 강간 사건의 경우 피해자 17명 중 여성이 15명이었다. 물론 남성에게도 현실은 가혹하다. 군대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으로 인한 신고 상담이 급증한다. 2019년 90건, 2020년 131건이었던 상담 신고는 2022년 1329건으로 늘었다. 3년 만에 15배 증가한 셈이다. 관련 교육은 약화하고 있다. 올해부터 병사들을 대상으로 한 성 인지 교육에서 민간 전문 강사가 제외됐다. 군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전담 교관이 맡는 게 낫다는 판단인데, 교육의 질적 수준이 낮아지고 폐쇄성이 강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람이 없다

여자만 없는 게 아니다. 일본 자위대 정수는 2022년 기준으로 24만 7154명이지만 실제 배치 인원은 23만 3341명에 불과했다. 1만 3000여 명 부족한 수치다. 급기야 방위성은 문신을 한 사람에게도 자위대 입대를 허용하는 방안, 외국인 용병을 검토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미래의 자위대가 일부 기능을 민간에 위탁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심각한 수준의 저출생과 인구 절벽을 마주한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2018년 기준 39만 1000명이었던 현역병은 2031년부터 18만 명 이하로 감소할 전망이다. 한국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병력 감소에 대비해 2027년까지 여군 비율을 15.3퍼센트까지 끌어 올린다는 구상을 내놨다. 일본 자위대가 더 많은 여군을 유치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군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줄어든다. 더 나이 든 사람들, 더 많은 여성이 유일한 대안처럼 비친다.

좋아진 군대

한국에서는 제도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실질적 변화도 있었다. 2023년, 병장 월급이 100만 원으로 올랐다. 2025년까지는 150만 원으로 오를 예정인 데다가, 전역 때까지 매달 지원하는 내일 준비 적금을 합치면 최대 월급은 205만 원이 된다. 육군은 2023년을 급식 혁신의 해로 정했고, 생활관을 쾌적하게 바꾸겠다 선언했다. 의복류로는 브랜드 신발과 기능성 속옷을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휴대전화 사용 시간도 늘어난다. 이렇게 보면 군대는 분명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군대는 국적을 포기해서라도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그로 인해 빚어지는 사회적 충돌과 갈등도 적지 않다. 마음이 급해진 국가는 이제 ‘좋은 군대’를 만들기보다 ‘가야만 하는 군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방안

정부의 셈법은 그동안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됐던 이들을 징집 망 안에 포섭시키는 안이었다. 정부는 지난 1월 병역 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 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여성이 6개월 이상 여성 호르몬 치료를 받지 않으면 공익요원으로 근무해야 한다. 파격적인 원칙들도 함께 논의된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총선 당시 신당 창당을 준비하던 류호정 의원과 금태섭 전 의원이 제안했던 모병제 및 여성 징병제가 대표적이다. 한계는 명확하다. 남북 대치라는 특별한 상황으로 인해 안정적 병력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지점,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가 먼저 선결돼야 한다는 지점이 장애물로 꼽힌다. 합의는 요원하고 제도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 와중에도 군대와 관련한 문제는 끊이지 않는다.

IT MATTERS

군대와 관련한 제도 개선 논의, 발생한 사건을 해결하려는 뒤늦은 시도는 많다. 지금 군대가 마주한 문제의 심각성만큼이나 말이다. 다만 제도는 여성을 군대에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혹은 모든 남성을 군대에 보내야 할지를 논의하는 데 그쳤다. 이런 논의는 파격적이고 시끄럽지만, 군대 문화 자체가 처한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의 제도는 군인이 되지 못한 이들만 봤다. 이미 군인이 된 이들을 보지 못했다. 군 내 부조리는 개인의 고발로, 시민단체의 희생으로, 몇몇 이름과 사건으로 잠시 가시화될 뿐이었다.

2024년 3월,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고(故) 변희수 하사의 사망을 순직으로 결정했다. 군인권센터는 “군이 성 소수자에게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남은 숙제를 풀어 가겠다”라고 밝혔다. 고(故) 이예람 중사를 2차 가해한 중대장과 군검사는 징역 1년 판결을 받았다. 지금은 여성 징병제를, 모병제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 군대 문화라는 낭떠러지를 붙잡고 있는 이들을 들어올려야 하는 때다.

일본의 한 여성 군인은 현재 일본의 군 시스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아무도 문제를 막기 위해 조처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게 전해졌다.” 일본의 사라진 12퍼센트의 여군은 세대를 타고 전해진 전통의 결과였다. 우리도 어쩌면 파편적인 논의 속에 갇혀 이미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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