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퍼센트의 모든 것

9월 6일 - FORECAST

태풍이 빠져나간다. 그러나 기후재난은 더 지독하고 불공정해진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 슈퍼태풍 힌남노가 물러가고 있다. 그러나 기후재난은 끝나지 않는다.
  • 기후재난은 불공정하다. 버틸 수 없는 곳에 더 가혹하다. 데이터가 이를 증명한다.
  • 우리는 공범이다. 그 어떤 국가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BACKGROUND_ 힌남노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오늘 (6일) 오전 4시50분 경남 거제 부근을 통해 내륙에 상륙했다. 전국 곳곳에서 정전 사태가 발생하고, 강풍에 가로수가 쓰러지거나 구조물이 날아가고 낙하 사고도 속출했다. 뜨거운 바다를 지나온 태풍은 그야말로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비바람을 한반도에 쏟아내고 있다. 앞서 힌남노가 거쳐온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5480여 채 가구에 전력 공급이 끊겼고 부상 피해가 잇따랐다.
ANALYSIS_ 이상한 태풍

사실, 힌남노는 우리의 상상을 한참 뛰어넘는 돌연변이다. 탄생부터 한반도를 지나가기까지 모든 과정이 기이하다. 다만 한국도, 일본도 자연재해를 예측하고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과 기반 시설이 갖추어진 국가다. 즉, 돌발 상황에 대응할 기초체력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국가라는 얘기다.
  • 역주행 ; 보통 태풍은 북쪽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힌남노는 역주행했다. 한반도 주변에서 서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북상한 것이다. 이렇게 길을 돌아오는 과정에서 세력이 조금 약해지나 싶다가 제23호 열대저압부를 ‘잡아먹으면서’ 오히려 영향력을 키웠다.
  • 출생지 ; 태풍은 보통 북위 25도 아래에서 해수면의 온도가 27도 이상일 때 발생한다. 그러나 힌남노는 북위 27도에서 만들어졌다. 중심기압 920hPa 이하의 슈퍼태풍으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 라니냐 ; 지금 서태평양은 덥다. 그 뜨거운 바다 탓에 슈퍼태풍이 예년보다 더 북쪽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바다를 지나오는 동안 더 많은 수증기를 품게 되었다. 서태평양의 수온이 상승한 것은 바로 ‘라니냐’ 현상 때문이다.

DEFINITION_  이상한 기후의 라니냐

‘라니냐’는 적도 지역의 열대태평양이 차가워지는 현상이다. 바다는 나뉘어 있지 않다. 저쪽이 차가워지면 상대적으로 따뜻한 바닷물은 이쪽으로 이동한다. 결과적으로 라니냐가 발생하면 서태평양의 바다가 뜨거워진다. 물론, 라니냐 자체는 이상기후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라니냐가 이상하다. 올해, 이번 세기 처음으로 3년 연속 라니냐 현상이 이어지는 ‘트리플딥’이 발생했다. 그리고 최근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오존층 파괴나 남극이 녹아 생긴 담수 유입 등으로 남극 앞바다가 부분적으로 냉각되면 라니냐 현상과 비슷한 태평양 수온 패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RISK_ 대환란

라니냐가 발생하면 무역풍이 거세지면서 광범위한 이상기후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폭우 및 슈퍼태풍, 미국 서부의 가뭄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 올해 전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속출했다. 그야말로 대환란이다.
  • 미국 ; 미국 서부에는 12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경험했다. 자연스럽게 산불도 잦았다. 반면, 라스베이거스에는 시간당 250mm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다.
  • 유럽 ; 유럽 및 영국의 60퍼센트가 가뭄에 시달렸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1200년 만의 가뭄을 기록했다. 독일에서는 라인강이 말라붙어 선박 운송에 차질이 생겼다. 가뭄에 뒤이은 폭우도 잔인했다. 말라붙은 땅은 폭우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고,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지하철역이 침수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 중국 ; 지난 7월 13일 상하이 기온은 40.9도를 기록하면서 149년 만에 기록을 경신했다. 61년 만의 가뭄으로 양쯔강이 말라붙어 80만 명이 식수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했으며 수력 발전소도 가동률이 반토막 나는 바람에 공장 가동도 중단되었다. 한편, 남부지역은 갑작스러운 홍수로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러나 기후재난은 국가의 힘으로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곳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에티오피아, 케냐,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의 뿔’ 지역은 수십 년 만의 가뭄으로 200만 명의 아이들이 굶어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인도 동북부와 방글라데시도 20년 만의 홍수로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리고 50도 안팎의 폭염에 시달리던 파키스탄은, 지금 물에 잠겼다. 페테리 탈라스 WMO(세계 기상기구) 사무총장은 아프리카와 남미 지역 가뭄, 동남아와 호주의 폭우 등이 라니냐의 영향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굳이 트리플딥 현상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이 모든 재난은 인류가 초래한 기후위기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NUMBER_ 0.4퍼센트의 불공정

파키스탄 정부와 UN은 올여름 홍수로 지금까지 파키스탄에서 1200여 명 이상이 숨지고 인구의 15퍼센트에 달하는 330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성경에나 나오는 대홍수가 현실이 되어 닥친 것이다. 그런데 파키스탄의 홍수와 관련해 새삼 주목받고 있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지난해 발표된 6차 유엔기후변화보고서에 실린 토양수분 증감 예측 부분이다. 지구 평균기온이 2도 상승할 경우 유럽과 중국 양쯔강 유역이 마르고 인도 및 파키스탄 지역에 폭우가 강해진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와 발해만 주변도 폭우가 강해지는 지역에 들어갔다. 이는 올해 그대로 들어맞았다. 같은 조건에서 평균 강수량 변화를 예측한 모델도 비슷한 결과치를 보여준다.
지구 평균 기온이 2도 상승할 경우의 평균 강우량 예측 모델 ©IPCC Sixth Assessment Report

1959년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가 배출한 이산화탄소 가운데 파키스탄이 차지하는 양은 단 0.4퍼센트다. 기후 재난은 불공정하다. 그리고 그 불공정은 이미 예측되어 있었다.
CONFLICT_ 책임소재

파키스탄은 탄소와 멀고 빈곤과 가깝다. 지난해 파키스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500달러에 그쳤다. 먹고 살 걱정을 하기에도 바쁜 처지다. 재해 예방에 예산이 갈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기후재해는 파키스탄의 빈곤을 더욱 심화한다.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된다. 누구의 책임일까? 적어도 파키스탄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KEYPLAYER_ 공범들

그렇다면 이 기후재난의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수치적으로만 따지면 시선은 중국을 향한다. 지난 2019년 기준, 중국의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총량의 27퍼센트로, 4분의 1이 넘는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공범이다. 전 세계가 사용하는 호사스러운 기술들은 중국산 탄소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에도 예외는 없다. 그린 에너지인 태양광 발전을 하려고 해도 패널의 핵심 원료인 규소를 광산에서 파내야 한다. 중국의 광산에서 파낸 원료, 중국의 공장에서 생산된 부품과 조립된 기계를 누리며 우리는 그린을 찾는다.
INSIGHT_ 무시된 경고

“매년 전 세계에서 석탄 20억 톤이 태워진다. 그리고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 70억 톤을 배출한다. 이는 장막이 되어 지구를 뒤덮고 기온을 올린다. 수 세기 안에 영향이 매우 커질 수 있다.” 요즘 시대 너무도 흔해 보이는 이 문장은 1912년 8월 14일에 발행된 한 신문의 기사다. 110년 동안 우리는 경고를 받아왔지만 듣지 않았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100년 만에, 1000년 만에. 기후와 관련된 보도에서 너무 자주 눈에 띄어 이젠 무감각해진 단어들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단어는 100년에 한 번, 1000년에 한 번 들어야 한다. 말의 뜻이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지 않은 시대다. 세기를 뛰어넘은 재난이 일상이 되어버렸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
REFERENCE_ 시카고

좁고 짧게 보자면 우리 사회의 안전망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승섭 교수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시카고의 폭염을 다뤘다. 1995년, 닷새간의 폭염으로 7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던 시카고는 그로부터 4년 뒤 비슷한 기후재난을 겪게 되었다. 달라진 것은 사망자 수였다. 110여 명으로, 급감했던 것이다. 기후재난을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재난’으로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았던 결과다.
FORESIGHT_ 3.5퍼센트의 희망

길고 넓게 보면 어떨까? 기후변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뜨거워지는 지구의 온도를 돌이킬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전문가 집단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불행하게도, 돌이킬 수 있다는 쪽의 이야기조차 희망적이지는 않다. 배출된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서 사라져도 이 영향은 장기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변화를 체감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얘기다. 기후가 회복되는 속도 또한 적도 인근 지역이나 극 지역에 위치한 경우 상대적으로 더 느리다고 한다. 아프리카나 인도, 파키스탄 지역 등이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 희망적이지 않은 전망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시카고에 답이 있다. 시카고는 재난을 해결하지 못했지만, 재난의 크기를 줄였다.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했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관점의 기후변화도 국가 단위에 책임을 지워서는 해결할 수 없다. 내가 산 신형 스마트폰이 파키스탄의 홍수를 불러오는 구조 속에서 국가 단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는 것이다. 정치를, 경제를 넘어 인류 단위로 고민할 방법부터 찾아야한다. 뻔한 결말에 절망하기는 이르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리카 체노워스는 인구의 3.5퍼센트가 행동하면 사회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우리는 지금, 3.5퍼센트일까?


 
태풍이 이재민을 만들듯, 기후재난은 기후난민을 만듭니다. 그 과정과 대안을 제시한 가디언의 칼럼 〈탄소 전쟁이 만든 난민〉을 추천합니다.
우리 삶의 터전을 태연한 얼굴로 빼앗는 기후재난에 관해 차분히 생각해 볼 지점들이 많습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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