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달리는 사람들
5화

히맨 ; 고프로 들고 후지산 한 바퀴

엔지니어에서 트레일 러닝 유튜버로


트레일 러너 히맨(He-Man)의 유튜브 채널을 보다 보면 영화 한 편이 오버랩된다. 〈스쿨 오브 락〉, 〈비포 선라이즈〉 등으로 유명한 미국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각본, 제작, 감독을 맡은 영화, 〈보이후드〉다. 영화는 실제로 여섯 살 소년 메이슨이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의 모습을 담았다. 12년 동안 매년 만나 15분 분량을 촬영한 일종의 프로젝트다. 메이슨이 학교에 들어가고, 새 아빠를 만나고, 사진에 빠져드는 일련의 모습이 그의 성장에 맞춰 전개된다. 이 작품은 12년간 같은 배우로 촬영했다는 아이디어와 연출, 연기가 호평을 얻어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다.

히맨의 ‘프로젝트’는 2012년 시작됐다. 그는 서귀포 일대를 달리는 제주 국제 트레일 러닝 대회 40K 레이스에 참가했다. 국내에 트레일 러너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영상에는 지금은 흔한 트레일 러닝 조끼 없이 다들 일반 배낭을 멘 모습이 보인다. 히맨은 본인의 첫 트레일 러닝 대회에서 넘어지고 지쳐서 주저앉는 장면을 영상에 고스란히 담았다. 11년 전 비기너였던 그는 2023년 4월 일본 후지산 일대 약 165킬로미터를 달리는 울트라 트레일 러닝 대회 UTMF를 완주했다. 그의 채널에서는 트레일 러너의 성장기를 만날 수 있다.
지리산 화대종주 트레일러닝 영상 ⓒ히맨
사실 인플루언서 히맨이 생각하는 채널의 아이덴티티는 러닝보다 장거리 하이킹에 가깝다. 닉네임 ‘히맨’은 하이킹 당시 만난 외국인 부부가 빠르고 힘차게 걷는 그를 보고 애니메이션 ‘우주의 왕자 히맨’을 닮았다고 하여 지어준 것이다. 그는 2015년 미국 서부 약 4300킬로미터의 PCT(Pacific Crest Trail) 종단을 영상에 담고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PCT를 걸으며 자연에 오래 머무는 것에 빠졌고, 하이킹에서 트레일 러닝으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에서도 장거리 하이킹을 기대했으나 야영, 취사 금지 등 제약으로 트레일 러닝의 비중을 늘리게 됐다. 서울, 제주, 거제, 운탄고도 등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후지요시다, 태국 치앙마이 등 해외 대회까지 끊임없이 달렸다. 러닝은 곧 꾸준함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히맨은 영락없는 ‘러닝 매니악’이다.

꾸준히 달리고 꾸준히 찍는다. 히맨은 지리산 화대종주 트레일 러닝부터 동네 코스까지 늘 고프로를 들고 달린다. 360도 카메라도 챙긴다. 장거리 트레일 러닝이 코스에 따라 5시간에서 40시간 이상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그냥도 힘든데, 저걸 들고서?’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가 이토록 기록에 집착하는 것은 도리어 ‘기록하지 못한’ 경험 때문이다. 2010년 참가한 대한산악연맹 한국 청소년 오지 탐사대 당시 그는 기록 담당 대원이었다. 고산병이 의심되는 증상으로 인해 운행 일지 다수에 여백을 남겼다. 기록되지 않은 경로는 결국 변형되거나 잊혔다.[1]

코스 설명, 장비, 레이스 후기 등 특유의 꼼꼼한 기록 덕분에 유튜브 채널 히맨은 트레일 러너와 하이커 사이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서울 강북 다섯 개 산을 종주하는 ‘불수사도북(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을 촬영한 히맨의 영상과 산악 매거진 《월간산》의 인터뷰를 보고서 나 역시 친구와 종주에 도전하기도 했다.

산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는 그는 늘 웃음을 잃지 않는다. 레이스 중후반 체력이 바닥나고 어떠한 악천후에도 즐겁게 달린다. 자연과 러닝, 각종 액티비티를 즐기는 그의 순수한 열정이 돋보였다.

 

히맨 인터뷰 ; “10년 넘게 아카이빙, 나의 러닝 성장 일기”


히맨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김희남으로서의 그는 대학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하고 건설사에 들어갔다. 홍해가 보이는 사우디아라비아 플랜트 건설 현장이 그의 부임지였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사계절을 보내고서 사표를 냈다. 매일 오전 6시부터 14~15시간 이어진 일과에 따른 피로,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이 이유였다. 대학 시절 티베트의 6200미터 고봉을 등정하고 마라톤, 트레일 러닝을 즐겼던 그에게 활동 제약이 심한 중동의 건설 현장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는 이후 앱 개발 스타트업에서 일했고 지금은 아웃도어 촬영을 지원하고 캠핑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히맨의 러닝 루틴 코스인 북한산과 불광천 사이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일과 액티비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유튜브 영상에서처럼 차분하면서 해맑은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반기와 내년을 목표로 준비 중인 울트라 레이스와 각종 프로젝트를 설명할 땐 진중함이 느껴졌다.
2022년 12월 태국 치앙마이 도이 인타논(Doi Inthanon) 100K 대회 ⓒ히맨
달리면서 촬영까지 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사진은 보는 사람에게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게 좋을 수도 있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고 싶다. 예전 영상을 보면 어느 순간 거울을 보는 느낌이 든다. 나를 알아 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고프로를 왼손에 든 상태로 러닝과 하이킹을 하면 힘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미화된다. ‘그때 좋았지’ 하는데, 막상 영상에서는 지금 생각과 다르게 말한다. 2010년 청소년 오지 탐사대 때의 경험이 큰 영향을 줬다. 힘들더라도 카메라를 한 번 더 켠다.

챙길 장비도 많을 것 같다.

제법 된다. 기본 세팅은 카메라 외에 아웃도어 시계, 골전도 이어폰, 러닝 벨트, 소프트 플라스크 정도다. 장거리 코스에서는 조끼를 착용하지만 아무래도 답답해 평소 훈련이나 짧은 코스에서는 웨이스트 벨트만 사용한다. 보급이 어렵지 않다면 60킬로미터까지는 벨트만으로 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이 주로 구독하나.

대부분 30~50대 남성이다. 성비는 남성이 90퍼센트 이상이다. 대회 콘텐츠를 많이 본다. 지리산 화대종주 트레일 러닝, 일본 UTMF 영상의 반응이 좋았다.

닉네임과 유튜브 콘셉트가 잘 맞는다.

PCT 8일 차에 만난 외국인 부부가 지어 줬다. ‘넌 희남이 아닌 히맨’이라면서. 안 쉬고 걷긴 했다. 히맨 하면 이미지가 기본적으로 히어로다. (웃음) 장거리 하이킹 중에 부상으로 힘들 때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더라. 지쳐 쓰러져 있는 모습의 히어로 히맨은 뭔가 어색하지 않은가.

구상 중인 유튜브 콘텐츠가 있나.

채널은 지금처럼 트레일 러닝 대회와 그걸 준비하는 콘텐츠에 집중하려 한다. 구독자 모임도 계획 중이다. 유튜브에서는 나 자신을 ‘기록하는 하이커’로 소개하지만, 지금은 러닝에 집중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러닝뿐만 아니라 클라이밍, 다이빙, 카약, 백패킹까지 다양하게 보여 주고 싶다. 여러 액티비티가 한데 모인 히맨만의 하이킹을 보여 주려 한다.

어떻게 하이커에서 트레일 러너가 됐나.

2015년 PCT를 완주하고 한국에서도 백패킹을 길게 하고 싶었다. 다만 국내는 야영, 취사의 제약이 많았다. 하이킹을 하면서 러닝도 병행했다. 몇천 킬로미터를 걸었는데 50, 100킬로미터 달리는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달리기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꾸준히 달리며 점점 러닝에 빠져들었다. 하프 마라톤, 풀코스를 차례로 뛰고 나니 웬만한 거리에 자신이 생겼다. 첫 트레일 러닝은 2012년 제주에서였다. 사우디에서 일할 당시 휴가 중에 40킬로미터에 출전했다. 레이스 초반 오버 페이스를 하고 나무에 걸려 넘어지면서 ‘마라톤과는 다르네’, ‘이렇게 계속 달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결승선에 들어왔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이후 70, 100킬로미터 등 레이스에 참가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2022년 12월 태국 치앙마이 도이 인타논 100K 대회에선 처음 DNF(Did Not Finish·완주 실패)를 기록했다. 레이스를 겨우 끌고 갔는데 극심한 복통으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고비가 UTMF 100마일에서도 왔다. 또다시 완주를 못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몰려 왔다. 다만 태국 때와 달랐던 점은 응급 상황에 철저히 대비한 것이다. 태국에서 만난 여러 선수의 조언대로 소화제, 지사제 등 비상약을 빠짐없이 챙겼다. 응급 상황, 컨디션 난조 등 악조건에 대비하는 능력이 생겼다.

계속 도전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100마일 대회 특유의 에너지가 있다. 로드 레이스인 춘천 마라톤 때도 비슷한 걸 느꼈다. 주자들 가운데 발소리만 들린다. 결연함이 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완주 의지를 다진다. 일본 대회도 그렇다. 워낙 장거리다 보니 막판에 절뚝거리며 레이스를 이어 가는 러너도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며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다. ‘어떻게든 완주할 것 같다’는 것이다. 100마일은 160킬로미터다. 정말 마니아틱한 대회다. 참가자와 대회 운영진에 대한 존경이 절로 든다. 후지산 둘레를 달리며 여러 마을을 가로지르는 레이스는 동네마다 주민들이 나와서 축제처럼 응원한다. 레이스 내내 감동이다.

해외 트레일 러닝 대회만의 특징이 있나.

일본 UTMF의 경우 100마일 전체 구간에서 계단이 나온 적이 거의 없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둔다.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점이다. 한국은 빠른 이동을 위해 자연을 과도하게 개발하는 측면이 있다. 이전에는 자연 보전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직접 걷고 달리면서 자연의 변화를 보다 보니 문득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영상을 보면 러너들과 교류가 많다.

트레일 대회에서 자주 보는 얼굴들이 많으니 친해지게 된다. 로드 레이스보다 확실히 트레일에 그런 분위기가 있다. 트레일 러닝에 관심이 있다면 입문용으로 강원도 정선에서 열리는 운탄고도 스카이레이스를 추천한다. 장거리에 관심이 있고 트레일 러닝 문화를 알고 싶으면 사흘에 나눠 진행되는 제주 국제 트레일 러닝 100K를 권한다. 제주 대회의 경우 아침에 레이스 시작해 점심이면 마친다. 2박 3일간 함께 달리고 지내다 보면 금세 친해진다. 여행하는 느낌이다.
일본 UTMF 100마일 완주 모습 ⓒ히맨
영향받은 러너가 있나.

2022년 제주 국제 트레일 러닝에서 산악인 박정헌 대장님을 만났다. 히말라야 6400킬로미터급 촐라체 등정 후 조난 사고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잃은 분이다. 사고 이후 세계 최초로 패러글라이딩으로 히말라야 산맥 2400킬로미터를 넘기도 했다. 트레일 러닝까지 하시는 줄 몰랐는데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완주까지 했다. 손가락 신경을 다쳤던 때가 떠올랐다. 젓가락질만 해도 불편한데 박 대장님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는지,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지 궁금했다. 또 국내 대회 최정상급인 김지섭 선수의 기록을 보며 감탄했다. 오지 탐사대 OB 중에도 트레일 러너가 많다. 친구들을 보며 자극도 받는다. 입상까진 아니어도 국내에서 가장 잘 뛰는 트레일 러닝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

프리랜서로 어떤 일을 주로 하나.

트레일 러닝, 하이킹 콘텐츠가 종종 매개가 된다. 영상을 보고 연락이 닿아 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 일대를 달리는 서울 100K 주최 측과도 그렇게 연결됐다. 충남 가야산 일대의 내포문화숲길에서 다양한 아웃도어 프로그램도 기획했다. 국가 숲길로 지정된 이곳은 가야산 주변 네 개 시군에 걸친 320킬로미터의 장거리 트레일이다. 숲길 백패킹, 트레일 러닝 클래스 등 아웃도어 활동을 만들었다. 그때 시작한 사찰 백패킹 프로그램 기획을 현재까지 이어 오고 있다.

러닝과 액티비티, 일의 구분이 따로 없는 것 같다.

맞다.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재미있는 것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그래서인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거의 없다. 그나마 있다면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부담 정도다. 아웃도어 활동으로 수익이 발생하지만, 이것을 일로 생각하는 것을 경계한다. 장거리 하이킹 이후 아웃도어 회사에서 제안도 해왔으나, 내가 좋아하는 액티비티를 일로 하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은 건 고민이다. 백패킹 클래스의 경우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모객이 어려워졌다. 조촐하게 하니까 집중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건 좋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기 쉽지 않았을 텐데.

해외 현장에서 일하니 수익은 넉넉했다. 그런데 문득 삶에 있어 돈이 최우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직하고 그간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해보자는 생각으로 귀국했다. 클라이밍, 다이빙도 그때 시작했다.
2015년 PCT 하이킹 완주 지점인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서 ⓒ히맨
어려서부터 달리기를 좋아했나.

평발이라 장거리는 전혀 못 뛰었다. 발의 아치가 낮아서 수술도 고려했다. 20대 중반까지 교정 깔창이 필수였다. 장거리를 시작한 건 군대에서의 규칙적인 생활 덕분이다. 행군과 구보를 꾸준히 하면서 발바닥 근력이 발달했다. 장거리 러닝에 관심이 생긴 것도 그때였다. 전역 후 학교 동아리 선배와 첫 하프 마라톤을 뛰었다. 그때 기록이 여전히 PB(Personal Best·개인 최고 기록)이다. 태권도를 취미로 할 때라 순발력과 근력이 남달랐다.

달리기로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한 것인가.

하프를 뛰고 나서 그간 경험하지 못한 성취를 느꼈다. 자연스레 풀코스에도 도전했다. 2020년부터 제대로 뛰어 보자 생각했다. 월평균 러닝 200킬로미터, 턱걸이 1000~1500개를 꾸준히 한다. 작은 부상에도 마일리지를 채우려 무리해서 달린 적도 있다. 결국 족저근막염 등 부상에 시달렸다.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아들이고 강도를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몸 상태에 따라 운동량을 조절한다. 꾸준함은 내가 스스로 강점이라 생각하는 포인트 중 하나다. 목표를 잡으면 타협 없이 실천한다.

꾸준히 달리는 코스가 있나.

집 뒤편의 언덕을 넘으면 은평 둘레길, 서울 둘레길이 연결된다. 진관사 입구가 있는 은평 한옥마을까지 왕복 8킬로미터를 달린다. 주로 밤에 헤드램프를 착용하고 조용한 트레일에 나선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주로 천변을 달렸는데, 이후에는 트레일이 메인 코스가 됐다.

계속 달리는 이유가 궁금하다.

대부분 러너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달릴 때 강렬하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일상생활을 할 때면 심장이 뛰는지 아닌지 모르고 지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비로소 강렬하게 뛰는 심장을 느낀다. 그때 ‘내가 살아 있구나’를 새삼 깨닫는다. 바보처럼 웃기도 한다. 러너스 하이인 것 같다. 트레일을 항상 숨이 차도록 뛰는 건 아니다. 산과 자연에 오래 머무는 것이 좋다. 과거에는 자연을 ‘운동장’으로 생각했다. 체력을 위한 도구로 여겼다. 하지만 산을 달리고 하이킹을 꾸준히 하면서 도전이 아닌 라이프스타일로 여기게 됐다. 욕심을 내려놓고 ‘그저 가보자’ 생각한다. 주로 혼자 달린다. 산을 달리며 명상하고 생각한다. 가만히 있을 때보다 운동할 때 오히려 생각을 많이 한다.
[1]
황상호 외 2인,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이상북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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