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을 버리고, 필름으로 살아남다
1화

필름을 버리고, 필름으로 살아남다

혁신의 가장 큰 적은 고정 관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혁신 하면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을 떠올린다. 이미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대기업들이 성과를 내고 있는 기존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산업의 흐름이 바뀌고 있는데도 자동차 대기업은 내연 기관 자동차를 쉽게 없애지 못하고, 유통 대기업은 오프라인 매장을 단번에 온라인 스토어로 바꾸지 못한다.

문제는 시장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는 것이다. 기존 사업 모델에 안주할 수 있는 기간이 이전만큼 길지 않다. 대기업은 스타트업의 피벗(pivot)과 같은 큰 변화를 시도하기도 어렵다. 가지고 있는 자산을 완전히 버렸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후지필름(Fujifilm Holdings Corporation)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후지필름은 성공한 대기업이 기존의 자산을 활용하면서 방향을 전환한 대표 사례다. 후지필름은 회사 이름대로 한때 필름 업계 대표 주자였다. 1984년 미국 LA올림픽 공식 후원사가 되면서 20세기 초반까지는 필름 카메라 시장의 성장과 함께 전성기를 누렸다. 2000년에는 필름 부문이 회사 이익의 70퍼센트를 냈다. 하지만 필름 시장이 몰락하면서 기존의 필름과 카메라 사업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후지필름은 필름 회사가 아닌 바이오 기업이다. 화장품, 제약, 의료 분야로 사업을 확대해 성과를 내고 있다. 코로나 사태 해결에 기여할 주요 제약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후지필름 자회사 다이오신스 바이오테크놀로지(Fujifilm Diosynth Biotechnologies)는 미국 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백신 원약을 위탁 생산한다. 2020년 7월 미국 정부는 다이오신스에 2억 6500만 달러(2928억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1] 후지필름은 2021년 초에는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항원 검사 키트의 승인을 신청했다.[2]
©북저널리즘
얼핏 보면 필름과 무관한 일 같다. 하지만 모두 사진 필름을 만드는 기술을 활용한 결과다. 회사의 핵심 기술과 제조업 역량을 재정의해 추진한 신사업은 후지필름을 다시 일으켰다. 비결은 ‘상품에는 수명이 있지만 기술에는 수명이 없다’는 뚜렷한 경영 철학이다. 후지필름은 생존이라는 단기적인 목표뿐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회복력과 성장성을 키웠다.

다른 필름 기업들은 어떨까. 후지와 함께 필름 시장의 3대 축이었던 미국의 코닥과 독일의 아그파 역시 존폐 위기에 직면했었다. 코닥은 1976년 디지털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회사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를 팔기보다는 아날로그 필름 시장을 지키는 데 열중했다. 새로운 도전에 주저한 결과는 참담했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다 실패했다는 의미의 ‘코닥이 되다(Being Kodaked)’[3]라는 신조어가 나왔고, 옥스퍼드 사전에 ‘우물쭈물하다가 망한 회사’로 기록됐다. 코닥은 인쇄기, 특수 필름 등으로 겨우 버텨 오다 2020년에서야 바이오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아그파는 136년 만에 사라졌다. 살아남은 건 후지뿐이다. 후지필름은 위기를 비즈니스 기회로 바꾸면서 여전히 일류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


후지필름은 디지털 기술이 앞당길 포스트 필름 시대를 정확하게 읽었다. 이미 1980년대 초부터 필름 업계 종사자들은 미래 사진 사업이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리라는 것을 예견했다. 후지필름의 3대 사업 분야인 사진·인쇄·의료 영상에서도 디지털화 조짐이 있었다.[4] 고모리 시케타카(古森重隆) 후지필름 최고경영자(CEO)는 언론 인터뷰에서 “후지와 코닥 모두 디지털 시대가 올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그것에 대비해 무엇을 했느냐에 있었다”고 말했다.[5]

후지필름은 빠르게 디지털 전환에 나섰다. 1981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X선 영상 진단 시스템을 개발하고 이를 상품화하면서 세계 표준을 만들었다. 엔지니어들은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더 이상 X선 진단 분야가 발전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후 고감도 센서에 X선 정보를 기록하고, 컴퓨터로 영상을 디지털 처리해 필름과 모니터에 표시하는 장비를 개발하기 시작했다.[6] 후지필름은 현재 의료용 영상 관리 시스템 세계 시장에서 17.5퍼센트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7]
©북저널리즘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후지필름은 고객 니즈의 변화를 예측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필름 시장이 전성기를 향하는 중에도 사진 인화를 하는 사람은 줄어들 것이고, 기술 발달로 사진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1989년 후지필름은 입력부터 출력까지 모두 디지털화한 ‘FUJIX DS-1P’ 라는 세계 최초의 풀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다. 또한 반도체 메모리 카드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카메라를 최초로 발표했다. 후지필름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사진 사업의 주변 분야에 불과했던 잉크젯과 광디스크 연구에도 주력했다. 1987년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은 도네가와 스스무(利根川進) 교수[8]와 공동으로 항암제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정밀 화학 분야인 사진이 제약과 연결될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름 사업의 호황이 오히려 사업 확장의 발목을 잡았다. 그때만 해도 사진 필름은 여전히 고수익을 보장하는 캐시 카우(cash cow)였다. 당장 돈이 되는 사업 모델을 눈앞에 두고 방향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신규 사업 성과는 바로 보이지 않을뿐더러 필름 사업에 비하면 규모도 미미했다. 새로운 기술이 대중화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결국 잉크젯과 광디스크, 의약 사업은 모두 중단됐다.

위기는 절정의 순간에 찾아왔다. 2000년을 정점으로 필름 사업은 빠르게 붕괴했다.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면서 필름 시장은 매년 20~30퍼센트씩 규모가 줄었다. 2010년으로 접어들자 필름 시장은 10분의 1규모로 쪼그라들었다. 컬러 필름을 포함한 사진 감광 재료 부문은 적자 사업으로 전락했다.

후지필름은 다시 빠른 결단을 내렸다. 사진 필름 관련 매출액이 이익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기존 사업 구조를 파괴적으로 혁신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술의 재고 정리(技術の棚卸し)’다. 정기적으로 재고를 점검하듯 회사가 보유한 기술 역시 계속 리뷰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해답은 핵심 역량에 있다고 믿은 후지필름은 ‘우리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를 분석했다.
후지필름의 기술 4분면 분석법 ©후지필름, 표: 북저널리즘
우선 회사가 가진 기술을 전수 조사했다. 고모리 CEO는 이때 4분면 분석법을 사용했다. △기존 시장에 적용하지 않았던 기존 기술 △새로운 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기존 기술 △기존 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로 나눠 분석하는 방식이다.[9] 이를 토대로 지금껏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던 숨은 자산과 기술을 찾아내고, 이를 어떻게 시장에 적용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필름은 종이보다 얇은 20마이크로미터 두께의 초박막에 빛이 잘 통과할 수 있도록 발색제 등 100종류의 화합물을 얇게 펴 바른 정밀 화학 제품이다. 결국 후지필름이 보유한 핵심 원천 기술은 화학 성분을 다루고 가공하는 능력이다. 후지필름은 ‘무에서 유의 창조’가 아니라 이미 갖고 있던 기술을 활용해 곁가지를 치는 전략을 세웠다.[10] 이때 신사업의 선택 기준은 단순히 해당 상품을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었다. 제품이 시장에서 선택받고 지속적으로 생존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느냐였다. 신사업을 성장하기 위해 물었던 핵심 질문은 ‘성장 시장인가?’, ‘기술은 있는가?’, ‘경쟁력은 있는가?’ 세 가지였다.

이때 도출해 낸 신사업이 여섯 가지다. 디지털 이미징(디지털카메라·렌즈·화상 센서·화상 처리 기술 등), 광학 디바이스(TV 렌즈·감시 카메라용 렌즈·스마트폰 렌즈 등), 고기능 재료(편광판·보호 필름 등), 디지털 인쇄, 문서 솔루션(사무용 복사기·복합기·프린터, 관련 업무 솔루션 등), 메디컬 라이프 사이언스(기능성 화장품과 영양제) 등이다. 후지필름은 우선 디지털 의료 화상 시스템 제품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사진용 필름 기술을 개발하면서 확보한 X선 진단 장치 필름 및 관련 화상 처리 장치 기술을 활용하는 전략이었다. 이를 통해 유방암 조기 발견 및 전자 내시경 등을 위한 디지털 검사 시스템을 제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북저널리즘
이후에는 TV나 노트북, 휴대폰 등에 사용되는 액정 표시 장치(LCD) 부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후지필름은 LCD 패널에 부착돼 투과된 빛을 통과하거나 차단하는 편광판을 보호하는 TAC 필름 개발에 나섰다. LCD TV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전인 2005년에 이미 1500억 엔 이상을 투자해 공급 체계를 만들었다. 현재 후지필름은 전 세계 TAC 필름 시장의 7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시장 상위권 업체들도 TAC 필름의 상당 부분을 후지필름에서 공급받는다.

후지필름은 위기 속에서 과감히 ‘한 우물 파기’를 포기했다. 후지필름을 대표하던 사진 필름은 다양한 사업 중 하나가 됐다. 후지필름은 2005년 10월 사명을 후지 사진 필름에서 ‘사진’만 뺀 ‘후지필름홀딩스’로 바꿨다. 필름 사업을 축소하기로 했지만 이름에서 필름을 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생존을 위해 신사업에 진출하지만, 모두 회사 본업인 필름 기술을 활용한 것임을 대내외에 강조하기 위해서다. 창립 당시와 다름없이 필름이 회사의 근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잘하는 것으로 시장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가?

©북저널리즘
후지필름은 필름이라는 핵심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그동안 전혀 생각하지 않은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첫 번째는 화장품이다. 고모리 CEO는 2006년 화장품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필름과 화장품은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후지필름이 완전히 다른 분야에 진출한 것도, 무모한 도전을 한 것도 아니다. 사진 필름과 화장품은 공통점이 많다. 인간의 피부는 70퍼센트가 콜라겐으로 구성돼 있다. 콜라겐은 피부의 윤기와 생기를 유지해 주는데, 사진 필름의 주된 원료가 콜라겐이다. 또 화장품은 좋은 성분이 피부 속에 잘 침투되도록 한다. 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피부가 노화하고 윤기와 탄력을 잃는다. 필름도 비슷하다. 민감한 화학 약품들을 발라 놓은 필름은 공기에 오래 노출되면 산화되고 변한다. 후지필름은 시간이 지나면 사진이 어떻게 변하는지, 열화를 막으려면 어떤 물질을 더해야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항산화 물질을 도포해 유해한 활성 산소를 차단하는 것이 필름 사업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후지필름은 필름 재료인 콜라겐과 필름 변색을 막는 항산화 화합물을 활용한 노화 방지 물질을 원료로 안티에이징 화장품 ‘아스타리프트’(ASTALIFT)를 만들었다. 아스타리프트는 2007년 시장에 출시되자마자 인기를 얻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프랑스, 영국 등에 진출했다. 이 화장품에는 식물에서 추출한 아스타크산틴(astaxanthin)이라는 항산화 성분이 들어 있었다. 이 성분은 효과가 뛰어나지만 물에 잘 녹지 않아 활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후지필름은 물질을 잘게 쪼개는 나노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녹일 수 있었다. 나노 기술은 화장품의 유익한 성분을 피부에 침투시키는 데도 효과적이었다.
후지필름의 안티에이징 화장품 ‘아스타리프트’(ASTALIFT) ©북저널리즘
문제는 필름과 화장품 업계의 비즈니스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었다.[11] 후지필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바이어들을 상대로 연구소 견학을 실시했다. 또 후지의 항산화 기술과 나노 기술 등 뛰어난 실력을 확인시키면서 설득해 나갔다. 후지필름이 전통적으로 고집해 왔던 녹색 포장 박스도 버렸다. 2018년 후지필름의 매출액은 2조 8468억 엔, 영업 이익 2073억 엔으로 창사 이래 최고의 실적을 올렸다. 화장품은 성장의 핵심인 주력 사업이 됐다.

곧이어 의약품 시장에도 진출했다. 필름을 만드는 과정에서 20만 개가 넘는 화학 성분을 합성해 본 기술이 밑바탕이 됐다. 화학 약품을 겹겹이 쌓으면 필름이 되고, 피부에 사용하면 화장품이 되고, 먹으면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내다 본 결과다. 후지필름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망한 의료 사업에서 교두보를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후지필름은 2008년 제약 기업인 도야마화학공업을 1300억 엔에 인수했다. 의약품 사업 기반을 조기에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의약품 개발에서는 병에 잘 듣는 약을 개발하기 위해 적절한 화합물을 찾는 경쟁이 있는가 하면, 약이 인체에 잘 흡수되는 방법을 찾는 경쟁도 있다. 후지의 경우 후자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나노 기술은 약이 최적의 타이밍에 필요로 하는 곳에 흡수될 수 있도록 도왔다. 후지필름은 바이오 기술을 활용한 고분자 의약품 개발도 진행했다.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인 ‘아비간’을 내놓은 것도 후지필름이다. 아비간은 감염된 사람 몸 안의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늦출 수 있는 효과가 있는데, 현재 일본 정부는 약 200만 개를 비축하고 있다.
©북저널리즘
후지필름은 코로나19 이후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면서 더 큰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고모리 CEO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2020년 봄, 직원들에게 “사업 변화의 결실을 수확할 때”라고 말했다.[12] 후지필름의 자회사 다이오신스는 2021년 가을까지 텍사스주 백신 제조 시설을 추가로 늘리고,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도 의약품 위탁 개발 제조(CDMO) 공장을 만들기로 했다.[13] 후지필름은 바이오 CDMO 투자에 3000억 엔 가까이 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1분기 글로벌 CDMO 시장에서 10퍼센트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1위 기업인 스위스 론자(Lonza)에 이어 2위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14] 컴퓨터 단층 촬영 이미지를 분석해 코로나19 폐렴 진단을 지원하는 AI 시스템도 2022년 초 정부 승인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후지필름은 컴퓨터 단층 촬영 이미지로 코로나19 폐렴을 진단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후지필름
코로나19 백신의 효용성과 안전성이 조금씩 입증되면서 백신 제조와 공급이 시급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백신 제조사들은 당국의 최종 승인을 받기 전부터 백신 제조 시설의 확보에 신경 쓰고 있다. 다이오신스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대량 생산하게 된다면 후지의 성장세는 가팔라질 것이다.

 

누구와, 어떻게 힘을 합할 것인가?


후지필름은 공격적인 인수 합병(M&A)을 통해 사업을 다각화했다.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아니었다. 본업과 무관한 분야는 절대 진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후지필름은 단순히 매출만 높이는 M&A를 원한 게 아니라, 회사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동시에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M&A를 선택했다. 무엇보다 시대 흐름에 가장 적합한 기술력을 가진 회사를 찾아내기 위해 힘을 쏟았다.

M&A는 빠른 사업 전개에 큰 도움을 주고 불확실성을 최소화한다. 기술 연구 개발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열심히 개발해도 이미 경쟁자들이 많은 기존 시장에서 존재감을 알리기 쉽지 않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와 있는 회사나 사업을 인수하는 것이 경영 전략상 유리하다. 후지필름은 자신이 가진 확실한 경영 자원과 M&A를 통한 인수 기업의 기술 자원을 조합해 새로운 제품을 빠르게 만들었다.
©북저널리즘
특히 바이오 사업 기반을 조기에 구축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했다. 2010년 일본 국내에서 재생 의료 제품 사업의 개척자인 J-TEC(Japan Tissue Engineering)과 자본 제휴를 맺었고, 이후 자회사로 편입했다.[15] 이 회사는 피부나 연골 재생 의료를 담당하고 있고, 또 일본 내에서 유일하게 재생 의료 제품 승인을 받은 회사다.

2015년에는 미국의 바이오 벤처 기업인 CDI(Cellular Dynamics International)를 3억 700만 달러에 인수했다. CDI는 인간의 iPS 세포로 만든 심근 세포, 신경 세포, 간세포 등을 신약 개발 목적으로 연구 기관이나 기업에 판매한다. 제조 기술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원래 CDI는 일본에서 자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일본 업체들과의 제휴를 타진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후지필름은 제휴 대신 인수라는 빠르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덕분에 후지필름은 일본과 미국의 재생 의료 핵심 기업을 자회사로 보유하면서 줄기세포 치료제뿐만 아니라 세포 배양 배지, 시약 개발, 저비용 대량 생산 기술 업체 등 재생 의료 전 영역을 포괄하는 그룹사 체제를 구축했다.
©북저널리즘
후지필름은 2018년 2월에는 다케다(武田)약품공업과 함께 유도 만능 줄기 세포(iPS) 유래 심근 세포를 이용한 재생 의료 제품의 공동 사업화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현재 후지필름의 미국 자회사인 CDI가 개발하고 있는 재생 의료 제품은 중증 심부전 환자의 심근 기능을 회복시키는 기능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세포를 배양해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재생 의료는 미래 의학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후지필름이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이유다. 사진 필름의 주요 성분인 콜라겐이 iPS 세포 및 심장, 간 등으로 분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후지필름은 의약품 분야에서 후발 주자지만, 기존 업체의 전략을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아니라 기술 개발에서 앞서 나가는 메인 플레이어를 꿈꾼다.

이렇게 후지필름이 10여 년간 인수, 합병한 기업은 40여 개, 투자 금액은 7000억 엔에 달한다. 이 정도로 신속한 의사 결정과 과감한 추진력을 가진 기업은 일본 내에서 소프트뱅크 정도다. 사업 다각화 전략으로 2000년 20퍼센트에 달했던 필름 부문의 매출 비중은 2020년 1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한다


후지필름이 이뤄낸 혁신의 중심에는 고모리 CEO가 있다. 문제점을 파악하고 전략을 짜는 것만큼 리더의 추진력도 중요하다. 고모리 CEO의 본격적인 개혁은 필름 분야 매출이 본격적으로 감소하던 2003년 CEO로 취임한 후부터 시작됐다. 과감한 사업 전환을 시도하는 리더십은 후지필름을 위기에서 구해 냈다.

취임 이듬해 고모리 CEO는 제2의 창사(創社)를 선언했다. 경영 목표를 ‘세계 1위 코닥 타도’가 아니라 ‘탈(脫)필름 구조 조정’으로 바꿨다. 고모리 CEO는 취임 당시를 회상하며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변신을 시도했다”고 밝혔다.[16] 핵심은 수익이 높지 않은 사업들을 정리하면서 미래 성장 동력을 키워 나가는 데 있었다. 그는 CEO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용기라고 봤다.
©북저널리즘
고모리 CEO는 2000억 엔을 들여 필름 공장을 폐쇄하는가 하면, 필름 판매·유통망을 정리했다. 2005년에서 2006년 사이에는 필름 사업 인력 5000명을 구조 조정 대상에 올렸다. 후지의 주력 산업인 사진 필름은 이미 일본과 미국, 그리고 네덜란드 등 3곳에 대형 공장을 갖고 있었고, 전 세계 150여 곳에 대형 현상소를 보유할 만큼 규모가 거대했다. 게다가 직원들의 가족까지 생각하면 20만여 명의 생계가 달려 있기 때문에 대규모 구조 개혁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현재의 규모를 유지하기에는 막대한 고정비가 들어가고, 잠시라도 매출이 떨어지면 적자가 끝도 없이 불어난다는 문제점이 있다. 말이 좋아 구조 개혁이지 인원 감축은 결국 경영자가 가장 회피하고 싶어 하는 최후의 선택이다. 특히 종신 고용제가 일종의 사회적 규범처럼 정착된 일본의 기업 문화에서 대규모 인원 감원 결정은 더욱 쉽지 않다. 더군다나 CEO는 전문 경영인으로 기업의 대주주인 오너가 아니다. 개혁에 대한 저항도 많았지만 그는 직접 사내 방송에 출연해 구조 조정의 불가피성을 설득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면서 후지필름은 전체 사업을 대상으로 또다시 5000명을 감원해야 했다. 후지필름은 이때의 구조 조정을 통해 연간 1000억 엔 이상의 고정비를 줄일 수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M&A를 이어간 덕분에 신약 개발, 바이오 의약품 위탁 생산 등 역량 확대에 성공했다. 인력을 줄인 다음 해인 2010년에는 전년보다 영업 이익도 대폭 높아졌다.

대신 성장 가능성이 있는 분야에는 확실하게 투자했다. 특히 연구 개발(R&D) 분야를 키웠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여러 기술을 복합적으로 활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모리 CEO는 2018년 가나가와(神奈川)현에 6000억 엔을 들여 후지필름 선진 연구소를 설립했다. 1000여 명의 연구자가 모여 신규 사업과 신제품 개발의 기반이 되는 코어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다. 지방에 흩어져 있던 화학, 전자 공학, 메커트로닉스(기계와 전자의 결합 기술), 광학, 소프트웨어 등 광범위한 기술력을 한 곳으로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회사는 재정 여력과 상관없이 매년 2000억 엔 규모의 연구 개발비를 지원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에 회사를 뒷받침할 분야에 투자한 셈이다.

디지털 시대, 고모리 CEO의 목표는 후지필름을 디지털 회사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17] 시장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디지털에 매달려 봤자 매출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후지필름은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는 것을 넘어서 변화를 예측하고 앞지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주력 상품인 필름이 없어지는 상황에서도 원천 기술을 창조적으로 재활용하고 재배치했다. 유능한 인재와 기술, 그리고 브랜드 파워와 기업 문화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냈다. 화장품이나 바이오 사업 경험이 전혀 없는 데도 개방적 기술 확보,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고모리 CEO는 과감한 결단의 비결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다른 회사가 할 것이다.”[18] 과감한 결단 이후에는 실행하는 리더십을 직원 모두가 가져야 한다고 독려했다. 각종 현장을 돌면서 직원들에게 회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여러 차례 명확하게 전달했다. 이는 직원들을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다.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지 않고 한발 앞서 변화와 혁신을 추구할 수 있는 기업 환경과 유연함은 후지필름의 문화로 정착됐다.

전 세계에서 저성장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해 오던 경영 방식만 고집한다면 성장은 불가능하다. 공감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다. 실천하기 위해서는 후지필름이 보여 준 아웃사이드 인(outside-in)전략이 필요하다. 회사 내부가 아닌 외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는 것이다. 변화하는 기술 트렌드를 이끌기 위해 협력과 공동 개발도 늘려야 한다. 코닥이 될 것이냐, 후지필름이 될 것이냐. 변화에 주저하는 많은 기업 앞에 놓인 질문이다.
[1]
[2]
[5]
Kana Inagaki and Juro Osawa, 〈Fujifilm Thrived by Changing Focus〉, 《월스트리트저널》, 2012. 1. 20.
[7]
[8]
일본 교토대 화학과 출신인 도네가와는 다양한 항체 생성의 유전적 원리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12]
Yukinori Hanada, 〈Fujifilm has title of Japan’s top medical device maker in focus〉, 《닛케이아시아》, 2021. 1. 3.
[14]
Yukinori Hanada, 〈Fujifilm has title of Japan’s top medical device maker in focus〉, 《닛케이아시아》, 2021. 1. 3.
[17]
고모리 시케타카(플리토 전문 번역가 그룹 譯), 〈후지필름, 혼의 경영〉, 《한국CEO연구소》, 2019. 
[18]
고모리 시케타카(플리토 전문 번역가 그룹 譯), 〈후지필름, 혼의 경영〉, 《한국CEO연구소》, 2019.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