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 아트로 읽는 뉴밸류에이션 시대
5화

신대륙 정복을 위한 경쟁

1.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가


NFT 아트를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투자자와 컬렉터, 그리고 창작자들간의 차이는 더욱 선명하다. 투자자의 경우 NFT 작품의 완성도와 미학적 기준보다는 현 시장에서의 화제성이 중요할 것이다. 컬렉터의 경우 개인의 미적 취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창작자의 경우 서로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고 취향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각 장르만의 기준이 존재한다.

미술 작품의 가치 평가는 18세기 중후반, 갤러리와 경매 회사 등의 작품 유통 구조가 생겨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현재는 NFT 아트를 판매하는 마켓이 존재할 뿐 그 시장의 중심을 잡아 주거나 담론을 생성하는 연구가와 작가의 작품을 분석하는 큐레이터 등 주요 주체가 부재한 상황이다. 객관적인 가격 측정이 어려운 이유다. 또 미술품의 가격은 작품 그 자체의 가치와 더불어 작품의 소장처, 시의성 등 다양한 유형의 가치를 포괄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NFT를 구현해 내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에 대한 특성까지도 이해해야 객관적인 가치 산정이 가능한데, 이 모든 분야를 이해하고 조화롭게 바라볼 중재자가 아직은 없다. 뿐만 아니라 NFT 시장은 진행형이다. NFT 작품의 특징과 목적, 그리고 시장의 문맥을 고려할 체계적인 방법론이 전무하다. 그렇다면 NFT의 미적 가치를 평가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NFT 아트 생태계에선 미적 기준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다. 바로 ‘얼마나 영향력 있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는가’다. “NFT의 가격은 커뮤니티가 결정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앞서 BAYC는 NFT 구매자들을 위한 파티를 개최하고 그들만을 위한 후속 NFT를 발행해 무료로 배포한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커뮤니티의 결속력을 강화한다. 실제로 BAYC는 NFT 구매자들에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했다. 2021년 6월 BAYC NFT의 주인공인 원숭이에게 반려견 NFT를 제작해 〈보어드 에이프 켄넬 클럽 NFT〉란 이름으로 발행해 무료로 배포했다. NFT 커뮤니티 일원들은 무료로 받은 NFT를 재판매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으며 커뮤니티에 대한 소속감과 우월감도 강화됐다. BAYC는 이후에도 새로운 컨셉의 NFT를 선보였는데, 새로운 시리즈를 만드는 대신 기존 원숭이 캐릭터에 접목할 수 있는 ‘돌연변이 혈청병’ NFT를 출시한 것이다. 이 NFT를 구입해 가격이 저렴한 일반 원숭이에 이 혈청을 주입하면 〈변이 원숭이들의 요트 클럽(Mutant Ape Yacht Club, MAYC)〉 NFT가 생성된다. 이처럼 기존의 작품을 업그레이드하는 콘셉트의 NFT는 많은 투자자와 컬렉터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BAYC 커뮤니티만의 매력을 어필했다.
BAYC가 출시했던 혈청 NFT, 〈M1, M2, Mega Mutant BAYC〉©BAYC 페이지, 오픈씨
BAYC 돌연변이 원숭이. ©BAYC 페이지, 오픈씨
여기서 멈추지 않고 BAYC는 2022년 3월, NFT 구매자들을 위한 APE(ApeCoin) 토큰을 발행했다. 해당 코인은 10억 개가 발행됐으며 그중 15퍼센트, 약 1억 원 상당의 코인을 BAYC와 MAYC NFT 보유자에게 에어드롭을 통해 무료 제공했다.
©BAYC 공식 트위터
아직 어떤 NFT가 좋은 작품인지 평가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구매자의 목적에 따라 ‘좋은 NFT 작품’에 대한 기준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NFT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큰 요소는 커뮤니티이며, 이것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가 BAYC다. BAYC는 계속해서 흥미로운 이슈를 생성하고 있다.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인 아디다스의 협업을 통해 기존 블록체인 및 NFT 생태계 외부로 뻗어 나가고자 한다. 지난 5월엔 프로젝트 〈Otherside〉를 통해 BAYC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동시에 BAYC 회원이 아닌 사람들도 초대할 수 있는 NFT 커뮤니티 구축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Adidas x BAYC, 〈NFT #8774〉©아디다스 공식 트위터 캡처

2. 신구 세력의 갈등


초기 NFT 시장에 반응한 것은 디지털 수용도가 높은 신진 작가들이었다. 전통적인 작가 세력은 초기 NFT 시장을 잠깐 지나가는 거품 현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대두되며 대형 기업들이 뛰어드는 것을 보고, 기성 작가 세력 또한 뒤늦게 자본을 투입하고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로써 NFT라는 신대륙을 둘러싼 신구 세력의 갈등이 거세지고 있다.

폐쇄적인 미술 시장에 답답함과 갈증이 깊어 가던 시점에, 신진 작가들은 NFT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났다. 이들은 기성 미술 시장과 달리 자유로운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주로 디지털 프로그램을 활용해 작품을 제작하며, 온라인에서 작품을 홍보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온라인 활동 범위는 디스코드와 텔레그램 등 철저히 암호화된 메신저다. 기성세대의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그들만의 견고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같은 목적과 가치관을 가진 젊은 아티스트들이 모여, NFT 아트만 선보이고 거래하는 전문 플랫폼이 등장했다. 대표 플랫폼으로 슈퍼레어(SuperRare)파운데이션(Foundation) 이 있다. 각각 2018년, 2021년 미국 시장을 기반으로 론칭했다. 특히 파운데이션은 최근엔 누구나 가입이 가능한 체제로 바뀌었으나, 초기엔 초대장을 받은 작가만 작품을 업로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출범해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선보였다. 산발적이었던 NFT 관련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아티스트들간의 커뮤니티를 공고히 하는 새로운 공간의 탄생이었다. 또 블록체인 기술의 투명성 덕에 작품의 판매 이력을 멤버 구성원 누구나 확인하고, 누적된 정보를 감별할 수 있다는 점에 구매자들 역시 빠르게 모여들었다.
Niftygateway에서 판매된 다니엘 아샴의 작품. ©Niftygateway
그러나 NFT 아트 시장에는 아직 작품의 평가 기준을 제시하는 큐레이터나 비평가로 활동하는 사람이 드물다. 예컨대 미국의 현대 미술 작가 다니엘 아샴(Daniel Arsham)은 포르쉐, 아디다스 등 다양한 브랜드와 콜보레이션 작업을 이어갈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의 실물 조각 작품은 약 1000만 원을 웃도는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NFT 아트 작품의 경우 니프티게이트웨이(Niftygateway) 거래소에서 3000달러, 한화 약 389만 원에 판매됐다. 즉 같은 작가의 작품이더라도 실물 작품 시장과 NFT 아트 시장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다를 수 있으며,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중재자가 부재한 상황이다.

또 앞서 언급한 신진 아티스트들의 교류 수단, 디스코드와 같은 메신저는 휘발성이 강하다는 단점이 있다. 디지털 아트의 저작권 개념에 대한 재정립 이슈와 AR, VR로 확장하는 디지털 아트의 속성과 미학 등 보존할 가치를 지닌 담론들이 많은데 이들을 아카이빙할 만한 창구가 아직 없다. 작품 창작자와 수집자들로 구성된 광범위한 블록체인 커뮤니티들을 한데 모아, 소통 창구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또 NFT 아트만을 취급하는 전문 갤러리와 미술관을 만들어야 한다. 미술관은 NFT 아트의 발단과 성장 과정을 데이터화하여 향후 연구자들에게 좋은 레퍼런스가 되는 동시에 이들의 교류 창구 역할을 한다. 또한 NFT 아트의 히스토리 마케팅과 스토리 텔링의 좋은 소재가 되어, 현재 투기로 여겨지는 NFT 아트에 대한 시선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태동기를 지나 성숙기를 향해 가는 지금, NFT 아트가 전통적인 예술과 같이 실물 경제에 편입될 수 있도록 중재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NFT 아트신에서 활동하는 창작자와 컬렉터, 커뮤니티 일원 그리고 갤러리스트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NFT 미술관은 NFT 아트 시장에 무엇이 필요한지 점검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성 화랑들은 NFT 시장 진출을 위해 어떠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형 화랑의 중심엔 가나아트(Gana Art)가 있다. 가나아트는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갤러리다. 국내 최대 미술품 경매 회사인 서울옥션의 모체로, 1983년 개관해 국내 예술 시장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가나아트에서는 아직 NFT에 대한 작품 제작 및 플랫폼 진출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서울옥션에 다수의 NFT 작품을 연결해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2022년 3월 서울옥션에서 선보인 김환기 화백의 〈우주(Universe, 05-Ⅳ-71 #200)〉의 NFT가 대표적이다. 해당 작품의 원작은 김환기 작가가 생전 1971년 뉴욕에서 작업한 두 폭의 작품으로, 서정적 자연과 우주의 신비함을 표현했다. 지난 2019년 11월 홍콩 크리스트 경매에선 약 132억 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최고가를 달성해 화제를 불러 모은 바 있다.

〈우주〉 NFT의 정식 제목은 〈환기 NFT : Digital Media Reproduction : KIM Whanki_Universe 05-IV-71〉로, 저작권을 소유한 환기재단에서 승인받아 제작한 첫 번째 김환기 NFT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원작 내 10만 개의 점들을 분리해 색채의 미묘한 변화를 담아 냈으며,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위치한 ‘가나아트 보광’ 갤러리에서 전시됐다. 세 개의 에디션으로 발행된 이 작품은 국내 암호 화폐 거래소 업비트에 경매 작품으로 출품됐다. 해당 경매에서 본 작품 1번 에디션은 30회의 경합을 거쳐 77 ETH, 한화 약 2억 9000만 원에 낙찰됐다. 2번, 3번 에디션은 각각 58.5 ETH, 약 2억 2000만 원에 팔렸다. 세 개 에디션의 총액은 194 ETH으로, 대형 화랑이 중개한 거장의 NFT답게 국내 NFT 에디션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낙찰가에 대한 얘기만으로 가득한 언론 보도는 제쳐 두고, 미술계는 이 김환기 NFT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오랜 세월 동안 미술 시장은 강한 물성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전통적인 미술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김환기의 NFT 작품을 원작이 복사된 디지털 판형 그 이상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미술 장르 중 복사의 개념을 가진 판화에는 적어도 아티스트의 사인이 남아 있다. 반면 〈우주〉는 이러한 표식도 부재해 원작자의 숨결을 느끼기 어렵다는 점에서 과연 예술 정신에 부합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번 김환기 NFT에선 작가의 삶과 가치관을 표현하는 예술 정신이 배제돼 있다는 것은 필자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다. 현재 전통 화랑들이 시도하는 NFT 작품들은 단순히 디지털 형식을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 크고 작은 상업 화랑들이 NFT 미술에 대한 수요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고 있으나, 그 설득력이 부족하다. 시장 진입에 앞서 전통 미술 시장의 구성원들의 의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과거의 작품을 디지털화하며 이미 획득한 그들의 권리를 유지하려는 모습이 아닌, 새롭게 열린 NFT세계의 문법을 연구하고 그에 맞는 예술 형식을 강구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회화 작품을 창작하고 지지하는 작가 및 컬렉터들은 디지털 아트를 독립된 예술의 영역으로 존중해야 하며, 큐레이터와 갤러리스트 또한 새로운 창작자들의 방식을 이해하고 이들과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NFT 아트를 바라보는 기성 화랑의 입장은 여전히 분분하다. NFT 아트를 둘러싼 예술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NFT 작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내 그림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사진을 찍어 만든 디지털 이미지가 대체 불가능한 것이라는 이름으로 고가에 팔리며 내 그림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나는 오프라인 세상의 사람이고, 물질 세계에 속해 있으며 내 작품 역시 이 시대와 지평의 산물”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NFT 아트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계속되는 와중, NFT 아트가 전통 회화와 미술 시장의 위기가 될 것인지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한 축은 기성 화랑일 것이다.
©박서보 작가 트위터 캡처

3. 탈중앙화의 이상과 현실


블록체인 생태계의 핵심은 탈중앙화다. 자율적인 소규모로 개인의 자율적인 결정을 기반으로 운영될 것을 지향한다.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이 2013년 이더리움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일종의 백서(whitepaper)에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개념을 정의하고 강조하며 암호화폐 경제학에서도 유행하게 됐다. 탈중앙화의 특징은 특정 주체가 시스템을 관리하지 않고 다수의 주체에게 권한이 분산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 사회는 중앙화 시스템 기반이었다.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면 큰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빠르고 쉬운 의사 결정이 가능한 중앙화 방식을 선호해 왔다.

하지만 오랜 기간 축적된 수직 구조의 비효율성과 부정부패 리스크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중앙화 시스템에 대한 의문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투명성과 공정에 갈증을 느낀 현 세대는 새로운 시스템에 주목하고 있다. 바로 계층 없이 탈중앙화된 자율 조직,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다. DAO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참여자들에 의해 약속된 규칙 체계로 운영된다. 규칙이 정해지면 DAO는 참여자들에게 토큰을 발행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투자, 기부, 모금 방식 및 토큰의 지출과 보상 방식 등을 투표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러한 탈중앙화의 개념이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일으키진 않을지 염려스럽다. 미국의 대표 암호 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Coinbase)는 공식 블로그에서 “수천 명의 토큰 소유자가 의사 결정에 참여할 경우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며 “어려운 결정을 내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위계 질서가 존재한다”고 전했다. DAO의 의사 결정 구조가 과연 진정한 평등을 담보하는지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예컨대 지난 2021년, 탈중앙화 코인 거래소 유니스왑(Uniswap)에서 ‘유니스왑 V3에서 폴리곤(polygon, 이더리움에서 거래를 처리하는 속도의 저하를 의미하는 확장성 문제 해결을 위해 해결책을 제공하는 서비스)을 배포해야 하는가”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에 참여한 사람은 300명이지만 그중 오직 두 구성원의 표가 전체 의사 결정권의 97퍼센트를 차지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DAO는 개인이 보유한 토큰 수에 비례해 투표권을 행사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토큰을 많이 보유한 구성원이 의사 결정권을 독점하며, DAO가 표방하는 평등한 의사 결정 구조와 상충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DAO 사회에선 토큰 보유 기간만큼 투표권을 주는 새로운 방식도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현실화된 경우는 없다.

책임의 주체에 대한 논란도 있다. DAO는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계약을 자동으로 이행하는 컴퓨터 프로그램)를 통해 참여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주체들에 대한 정보가 없다. 따라서 책임 소재 또한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있다. 문제 발생 시 스마트 컨트랙트를 작성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 아니면 DAO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는지, DAO와 연결된 금융 시스템의 참여자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결정하기가 어렵다.

국내 최초의 DAO는 2022년 1월, 그라운드 X의 한재선 대표가 직접 조직한 ‘국보’ DAO다. 한재선 대표는 암호 화폐 클레이튼(Klaytn)을 창시한 인물로, 블록체인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에서 국보 DAO 또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케이옥션 경매에 출품한 국보 2점을 낙찰받기 위해 설립됐다. 총 56명이 일주일 만에 900 ETH, 약 32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모았지만 애초 목표액이었던 50억 원 달성에 실패하며 경매에 참여하진 못했다. 이 과정에서 규제에 관한 문제가 대두됐다. 국내에서는 가상 자산 공개(Initial Coin Offering·ICO. 새로운 암호 화폐를 만들기 위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로부터 초기 개발 자금을 모집하고 그 대가로 코인을 나눠 주는 행위)가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한재선 대표는 토큰 발행을 전자적 증표인 NFT로 대체하고, 그 역할을 기부 증서로 한정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기부금품 모습과 재산적 가치를 갖는 유가 증권으로 비춰지며 논란을 일었다. 이에 국보 측은 법률상 문제될 요소를 제거했으나, 이제는 국보의 법적 지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새로운 문제점이 지적되며 투자자들 사이에서 국보 DAO를 입찰 참가자로 인정할 것인지, 문화재 등록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등을 설왕설래하는 과정에서 투자자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결국 국내 최초 DAO 국보는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가 투자자들에게 모금액을 환불해 주며 마무리됐으나, 촉박한 시간에 이뤄진 자금 조달 속도와 그 조직력은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위계 질서가 강한 예술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국보 DAO의 의사 결정을 위한 투표. ©한재선 대표 트위터
NFT 아트 거래 플랫폼 슈퍼레어는 그 이름에서 정체성이 드러나듯, 플랫폼의 자체 심사를 통과한 소수의 아티스트만이 NFT를 발행할 수 있다. 엄격한 관리 덕분에 슈퍼레어에 업로드된 작품은 신뢰할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돼 고가에 거래되는 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소수의 중앙 집권식 큐레이션에 문제를 제기하는 여론이 일자, 슈퍼레어는 자유와 공정이라는 블록체인의 철학에 따라 2022년 DAO의 출범을 예고했다. 슈퍼레어의 CEO 존 크레인(John Crain)은 기존 중앙 집권화된 큐레이션에서 벗어나 슈퍼레어 위원회와 토큰 소유자, 커뮤니티 이용자 모두가 큐레이션에 참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갤러리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전한 것이다. 이처럼 전통 미술 시장이 가진 폐쇄성과 불평등의 갈증 속에서 탄생한 NFT 아트가 더욱 투명해질 날을 기대해 본다.

비단 미술 시장뿐 아니라, 여러 기업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며 그들의 문화를 흡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주로 교류하는 소셜 미디어 디스코드, 트위터, 텔레그렘, 레딧 등에서 채널을 새로 오픈하고 DAO와 같은 조직을 구성하고자 한다.

다만 DAO의 법적 지위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미국의 생물학자 개릿 하딘(Garrett Hardin)은 《사이언스Science》에서 ‘공유지의 비극’ 이론을 소개한 바 있다. 물, 공기, 초지 등 공동체가 함께 사용하는 자원은 남용되고 고갈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 골자다. 공유지의 비극에서 ‘공유지’는 누구나 와서 이용할 수 있는 목초지를 지칭한다. 양치기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많은 양을 공유지로 데리고 와 풀을 뜯게 하지만 비용을 지불하거나 목초지에서 일어난 사건에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결국 늘어난 양의 수로 아무런 풀도 자라지 못하는 비극에 이르고, 이것이 현실화되면 시장 실패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가 DAO에서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딘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자원을 사유화하거나 국가가 적극 개입하는 것이다. DAO도 마찬가지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개념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블록체인 기술로서 자유를 지향하고자 한다면 DAO는 여러 시도를 통해 문제를 직면하고 이를 해결하며 규제를 다져가야 한다. 이상적인 가치를 현실화하는 것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DAO가 주목받는 이유는 해당 개념이 기업을 넘어 교육, 정치 등 사회 여러 분야로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처럼 큰 비용이 움직이는 경우 DAO가 적용된다면 사회와 조직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다. 일부 자본가와 권력자에게 집중돼 있던 의사 결정이 다수에게 기회를 주고, 투명한 사회 혁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4. 예술가, 지위를 되찾다


예술가에게 독창성,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는 그들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는 단초가 된다. 앞서 1장에서 크리에이티브 산업이 확장되며 독창성을 기반으로 한 지적 재산권이 주목받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지적 재산권의 개념과 중요성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소셜 미디어가 성장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과거엔 지금과 다르게 지적 재산권을 보호받는 것이 녹록지 않았다. 지난 2011년, 삼성전자가 제작한 김치 냉장고가 논란이 된 적 있다. 삼성전자 측은 해당 냉장고의 디자인을 해외 유명 디자이너가 담당한 것처럼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한 미술대학원생의 것이었다. 2009년 12월 삼성전자가 학생과 계약을 진행했으나, 실제 카탈로그는 해외 디자이너의 이름으로 제작 및 배포한 것이다. 이에 학생이 소송을 걸어 원고의 승소로 마무리됐지만, 손해 배상 청구액은 3000만 원에 그쳤다.

대한민국 최대의 다국적 기업 삼성전자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과거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인식과 그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매우 낮았음을 보여 준다. 다행스럽게도 해당 사건의 원고는 정식 계약을 진행했기에 논란이 된 제품을 본인이 디자인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으나, 지적 재산권의 피해 사건 중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건들은 무수하다. 대한민국 법원 종합 법률 정보 사이트에서 지적 재산권 침해에 대한 판례는 2022년 기준 85건, 유사한 라이선스 판례는 59건이다. 또한 해당 건수에 대한 기간이 명시돼 있지 않아 어느 정도 규모의 분쟁이었는지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 지적 재산권에 대한 판례 자체가 많지 않고 크게 쟁점화된 판례도 드물다는 점에서, 지적 재산권의 법률 해석상의 기준을 제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현재는 지적 재산권 분쟁이 일어날 경우 피해자가 직접 증거를 수집하고 입증해야 하는 구조다. 이때 많은 경우 피해자는 개인인데, 소송을 준비하는 비용과 시간이 부담스러워 피의자와의 협의 하에 소송을 취하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지적 재산권 분쟁은 특히 미술계의 케케묵은 문제였다. 같은 창작 분야에서도 음원 저작물의 경우 음원 제작에 참여한 가수, 작곡가, 편곡가, 연주가 등에게 수익이 분배되는 구조다. 그러나 미술 분야엔 이러한 구조조차 자리 잡지 않았다. 미술품 경매에 출품된 작품이 최고가를 달성해도, 작품을 만든 아티스트에게 수익이 분배되지 않는다. 일회성 수익 외에 추가 수익이 존재하지 않고, 작품의 소장자와 경매 회사가 그 몫을 나눠 갖는 기이한 현상이 계속됐다. 아티스트 입장에선 작품이 유명세를 타면 작가로서의 네임 밸류를 높여, 그 이후 제작하는 작품을 더 고가에 판매하는 것이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블록체인 기술의 등장은 이러한 지적 재산권 분쟁의 해결책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 작품이 경매 시장이나 화랑에서 중개인을 통해 판매되면 정산까지 대략 한 달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NFT 아트의 경우 판매 즉시 수익 정산이 이뤄진다. 전통 미술 시장에서는 작품 판매 이후 회계 처리 등을 이유로 작가가 갤러리의 정해진 일정에 맞춰 정산을 기다려야 했지만, NFT 시장에서는 효율적이고 즉각적으로 정산이 진행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첫 판매뿐 아니라 n차 판매가 이뤄질 경우에도 판매금 일부를 원작자에게 지급하는 추급권 시스템이다. 전통 미술 시장에서는 작가의 작품이 주목받아 고가의 재거래가 이뤄져도 작가에게 이익이 돌아가진 않았다. 그러나 NFT 아트의 경우 원작자가 n차 판매 수수료를 결정하며, 대부분 작품가의 5~10퍼센트 내외로 설정된다. 작가는 유명세만 얻을 뿐 추가적인 수익은 발생하지 않고, 경매 회사가 고스란히 재판매 수익을 취하던 고질적인 문제가 NFT 시장에서는 해결된 것이다.

다음은 NFT 아트 작가 ‘파코망(Pacomang)’과의 인터뷰다. 파코망은 NFT가 국내에서 활발히 논의되지 않던 2021년 1월부터 파운데이션에서 활동 중인 일러스트레이터다. NFT 시장의 장단점과 전망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어 보았다.

NFT 시장을 언제, 어떤 경로로 처음 알게 됐나.

가장 처음 ‘NFT’라는 단어를 들었던 것은 2021년 1월에 세계 각국의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이 모인 단톡방에서였다. 그 당시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게 있나 보다’ 하고 별로 관심 있게 보지 않았다. 그러다 몇 달 후 같이 작업실을 쓰고 있던 남대현 그래픽 아티스트로부터 “NFT 아트라는 것을 해보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NFT 아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처음 제대로 들은 것은 이때다.

어떤 이유로 시장에 참여하게 됐나.

2021년 당시 꽤 많은 NFT 작품들이 거래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다. 예술 작품을 거래한다는 것이 갤러리 경매나 전시장 구매의 이미지로 굳어져 있던 내가, 그 과정을 실제로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당시 암호 화폐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긴 했다. 초대권이 필요하고, 민팅과 리스팅을 하는 수수료가 꽤 비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함께 작업실을 쓰는 남대현 작가가 내게 암호 화폐를 구입하는 방법이나 월렛을 만드는 방법 등을 상세하게 공유해 줬다. ‘일단 한 번 도전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됐다.

처음 시장의 반응이 온 것은 언제인가.

첫 작품을 리스팅한 후 세네 달 정도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사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 내 작품을 돈 주고 사기에는 아직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비슷한 시기에 디지털 아트 외주 의뢰가 왔었는데, 수천 개 가량의 캐릭터 옵션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페이를 이더리움으로, 50퍼센트를 선지급 받기로 한 터였다. 어느 정도 가이드 라인이 완성되고 꽤 열심히 작업을 하다 나중에서야 그게 PFP 프로젝트였단 걸 알게 됐다. 그 프로젝트를 의뢰한 분이 내게 NFT를 아는지, 작품을 올려 본 적이 있는지 물어봤다. 몇 달 전에 올린 작품을 보여 드리며 별 반응이 없어서 포기하고 있는 상태라고 답하자, 그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들어 본인이 구매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 바로 경매가 시작됐고, 시작 직후 두세 명의 유저가 연달아 비딩을 했다. 결국 처음 경매에 참여했던 분이 작품을 가져가시진 못했으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높은 금액에서 작품이 판매됐다.

컬렉터들과 자주 소통하는 편인지 궁금하다.

작품이 판매될 때마다 연동된 트위터 계정으로 내가 먼저 연락을 하기도 하고 구매자로부터 먼저 연락이 올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내 작품을 구매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내 기준에선 내 작품이 그렇게 고가에 팔리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컬렉터는 “그냥 멋있어서 갖고 싶었다”라고 답하더라. 판매 이후에도 작품의 스토리나 NFT 아트 시장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며 꽤 자주 소통하는 편이다.

한 번 판매된 NFT 작품 중 n차 판매가 이뤄진 작품이 있나.

재판매로 플랫폼에 올라와 있는 작품이 한 점 있으나 아직 판매되진 않은 상태다.

NFT 아트의 등장이 작가님 개인의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예전부터 아이디어가 떠올라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면 비슷한 시리즈로 두세 점을 더 그리는 편이었다. 캐릭터성을 부여하고 작품의 세계관에 깊이를 더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 작품을 팔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판매가 가능하고, 이후에도 컬렉터와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NFT 아트의 성격과 내 가치관이 잘 부합한다 느꼈다.

당신이 생각하는 NFT 아트의 의미는 무엇인가.

작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NFT 아트 시장은 기회다. 수십 년 동안 작가들이 자신을 세상에 알리는 방법은 개인전을 열거나 소셜 미디어 계정으로 소통하는 방법뿐이었다. NFT 아트 시장이 활발해질수록, 신진 작가들은 훨씬 수월하게 작품을 홍보하고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다. 앞으로도 이런 NFT 아트의 장점을 잘 활용해 보고 싶다.

이처럼 NFT 아트는 정적이고 폐쇄적이던 예술 시장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다만 NFT 아트 시장엔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제도와 규범이 필요하다. 충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다면, NFT 아트는 창작자에게도 팬덤에게도 분명 새로운 길을 열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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