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잃은 사회

11월 22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잠 못 드는 세대’가 3조 원대 슬리포노믹스를 만들었다. 현대인들이 잠 못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 국내 슬리포노믹스 시장이 3조원대 규모로 성장하며 블루오션으로 주목 받고 있다.
  • 그 이면엔 자의로, 타의로 ‘잠 못 드는 세대’가 있다. 
  • 잠 못 드는 밤은 빚이 되어 돌아온다. 

BACKGROUND_ 슬리포노믹스
  • 잠 못 드는 현대인들이 자그마치 3조 원대 시장을 만들어냈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10년 전 4800억원 수준이던 국내 슬리포노믹스 시장은 10년 만에 5배 성장했다. 아로마 오일부터 매트리스, 수면제 처방에 이르기까지 숙면을 위한 모든 제품이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에 포함된다. 

  • 수면 상태를 진단하고 수면의 질을 개선하는 기술 ‘슬립 테크(sleep-tech)’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는 2019년부터 슬립테크관을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마켓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슬립테크 시장은 2021년 150억달러, 한화 약 21조 원이었다. 2026년까지 321억달러, 한화 약 46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 슬리포노믹스가 블루오션으로 주목 받고 있다. 하지만 이를 블루오션으로만 보는 시선은 위험하다. 이건 잠 못 드는 사회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뜻이다.


NUMBER_ 67만 명

슬리포노믹스의 빠른 성장 뒤엔 잠 못 드는 세대가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질환별 진료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약 67만 명이 불면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2016년 49만 명에서 약 35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특히 어린이 불면증이 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0~9세 어린이 불면증 환자의 증가폭이 두드러진다. 0~9세 어린이 불면증 환자는 2020년 178명에서 2021년 244명으로 늘었다. 10~19세 청소년도 올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7.2퍼센트 증가했다. 일반적으로 불면증 환자는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느는데, 낮은 연령대 환자가 폭증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DEFICITION_ 수면 빚

잠 들지 못한 밤은 빚이 되어 돌아온다. 우리나라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49분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반면 수면 빚(sleep debt)은 가장 높다. 수면 빚은 수면 부족 시간을 연 단위로 누적한 것을 말한다. 프리미엄 매트리스 브랜드 씰리침대는 한국, 호주, 중국,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5개국을 대상으로  ‘씰리 슬립 센서스(Sealy Sleep Census)’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수면 빚은 여성 15일, 남성 18.5일로 5개국 중 가장 높았다.
RISK_ 진짜 원인

슬립 테크는 대부분 생체 리듬에 영향을 끼치는 물리적 요소를 조절해 숙면을 돕는다. AI 기술을 통해 생체 리듬에 최적화된 빛, 온도, 소리를  제공하는 조명, 매트리스, 헤어밴드 등이다. 하지만 아직 실제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 사용자 후기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헬스케어 전문 컨설팅 기업 록 헬스 어드바이저리의 조사에 따르면, 수면 웨어러블 기기 사용자의 약 40퍼센트가 “원하는 숙면 효과를 느끼지 못해 기기 사용을 중단했다”고 답했다. 생체 리듬에만 초점을 맞춘 기기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슬립 테크가 수면을 도울 순 있어도 수면 부족의 궁극적인 해결방안은 될 수 없다.
ANALYSIS_ 잠 못 드는 세대

그렇다면 현대인이 잠 못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면장애의 인지적 행동 모델을 만든 심리학자 찰스 모린은 스트레스, 과도한 업무 등의 정서적·인지적 각성이 현대인의 수면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했다.
  • 사당오락과 미라클 모닝;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7퍼센트가 ‘돈을 위해 잠을 포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1970년대에 사당오락(四當五落)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네 시간 자면 붙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이다. 잠을 희생하는 이러한 성공 신화는 ‘미라클 모닝’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리벤지 수면장애; 바쁜 일과는 역설적으로 다시 잠을 희생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낮에 일 외의 생활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취침 시간을 미루는 현상을 ‘보복성 취침 미루기(Revenge Bedtime Procrastination)’라고 하는데, 이는 수면 장애의 원인이 된다. 2014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연구진은 사람들이 수면 시간을 줄이면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CONFLICT_ 수면 불평등

또 누군가에겐 잠도 불평등하다.
  • 경제 수준; 2015년 하버드 카이저 재단의 연구진은 경제 수준에 따른 수면 불평등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취약 계층의 주거지가 소음이나 빛 공해 등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또 취약 계층이 호소하는 영양 불량, 운동 부족 문제는 모두 수면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 근로 환경; 교대 근로자는 근무 시간에 따라 수면시간이 정해진다. 불규칙한 수면 패턴을 전제로 하는 교대 근로자의 수면장애 유병률은 일반 근로자에 비해 2배 높다. 재난 현장의 근로자들도 높은 수면 장애 유병률을 보인다. 재난 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 10명 중 3명은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장애를 호소하고 있다.
  • 기후 변화;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진은 기후 불평등은 잠까지 이어진다고 분석한다. 체온은 24시간을 주기로 조절되는데, 온도가 낮아질 때 쉽게 양질의 잠에 들 수 있다. 기후온난화가 심한 지역 주민일수록 수면 손실 정도가 크다. 그 중에서도 체온 조절력이 약한 노인과 냉방기 사용률이 낮은 지역 주민이 더 큰 영향을 받는다.

INSIGHT_ 손실의 손실

인간은 자발적으로 수면 시간을 줄이는 유일한 종이다. 잠이란 일과는 개인적이나 잠 못 드는 이유는 그렇지 않다. 끊임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수면은 비생산적인 활동이 됐다. 생산을 위해서 언제든 포기할 수 있는 것이 됐다. 그렇다면 잠 들지 않는 것은 생산적인가? 잠의 손실은 또 다른 손실로 이어진다. 2018년 경기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근로자들의 수면 부족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은 11조 원에 달한다. 미국에선 질 낮은 수면이 미국 경제에 연간 4000억달러, 한화 약 573조 원 규모의 손실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호주는 수면 부족으로 인한 직·간접적 비용이 GDP의 1퍼센트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FORESIGHT_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수면 부족을 ‘공중보건 전염병’으로 정의했다. 앞서 언급된 경기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수면장애 진료비는 이미 2016년에 1178억원을 넘겼다. 지금의 슬리포노믹스의 성장은 언제든 사회적 손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슬리포노믹스의 성장은 잠과 반비례한다. 그저 시장의 가치로 환산하면 잠 못 드는 이유는 지워진다. 잠마저 돈으로 사는 시대의 이면엔 과도한 경쟁과 성과주의가 있다. 경쟁이 잠 들지 않는 사회에서 잠은 언제나 비생산적인 시간일 뿐이다. 지금 잠 못 드는 세대에게 필요한 건 잠, 휴식, 나아가 과정을 긍정할 수 있는 분위기다.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이 없다면 사회는 계속 고갈될 것이다.
쉬지 못하는 세대를 둘러싼 또 다른 논의가 궁금하다면 〈퇴직과 번아웃 사이〉,〈멍하니 갓생살기〉, 〈친애하는 나의 커피여〉를,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의 가치를 깊이 알고 싶다면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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