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디자인 시대
8화

재생 침술 ; 적응하고 재사용하라

“창고에서 파티하고 공장에서 밥 먹는 게 유행이다. 쓰러져 가는 다방 건물 지하에서 전시회를 하고, 충주 정미소에서 가져왔다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커피를 마신다. 철근 자재를 마구 쌓아 놓은 철공소 같은 식당일수록 사람이 몰리고, 폐선(廢船) 자재를 뜯어 내부를 꾸민 옷 가게일수록 ‘핫’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대체 왜 이럴까?”

2013년 4월 12일 《조선일보》의 송혜진 기자는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1970년대 생긴 성수동의 정미소 창고는 패션 론칭쇼나 파티 공간으로 활용되고, 대림미술관은 서울 한남동의 구슬모아당구장을 대안공간 갤러리로 사용한다. 당시 유선 인터뷰를 요청받은 필자는 “낡고 퇴화한 공간일수록 독특한 시간의 흔적이 남고, 그 공간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기억이 남기 마련이다. 문화 엘리트들은 폐허에서도 바로 이런 시간성과 역사성을 읽고 싶어 한다”고 밝혔다.[1]

무려 10년 전 유행하던 이 트렌드는 지금껏 유효하며 대표적인 재생 침술로 자리 잡았다. 재생 침술은 용도를 다해 방치된 근대 유휴 건축, 시설이나 역사적 상징성이 있는 건축물을 현대의 문화적 욕구와 필요에 맞춰 적극적으로 재사용하는 공공디자인이다. 건물이나 공간을 본래의 모양대로 박물관처럼 보존(preservation)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복원을 의미하는 리노베이션(renovation)에 가깝다. 정확히는 보존과 복원을 포함해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는 적응형 재사용(adaptive reuse)이다. 공간의 가치를 바라보는 경제적 관점은 문화적 관점으로 바뀌고 있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공간에 대한 기억’이나 과거로부터 전해진 ‘공간의 스토리, 역사’가 그 장소 및 공간의 무형적 자산이 된 것이다. 근현대 산업 유산들을 동시대 문화적 가치로 환원하는 것이 바로 재생 침술, 즉 ‘개발을 통한 보존’의 공공디자인이다.[2]
 


시민이 만든 풍경

미국 뉴욕의 하이 라인 ⓒ김주연
재생 침술의 장점은 지역 공동체에 생기를 불어넣고 도시 환경의 경쟁력을 증진해 지속 가능성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미국 뉴욕의 첼시(Chelsea) 지구에 버려진 공중 화물 철로를 공원화한 하이 라인(High Line)이 대표적이다. 하이 라인은 1934년 개장된 철도 선로로, 거의 사용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그러다 1999년, 평범한 시민 두 명은 그 철도가 파괴되지 않도록 하이 라인 친구들(FHL·Friends of the High Line)이란 단체를 만들었다. 버려진 선로에 꽃과 나무를 심고, 벤치를 설치하는 등 재생 침술의 꿈을 꾸었다. 그들은 적극적인 활동으로 대중의 지지와 기금을 모았고, 2003년에 모인 기금은 총 1억 5000만 달러에 달했다. 뉴욕의 공무원들도 철로를 공원화하는 데 동참하고자 연방교통위원회의 소유권 양도를 청원했다. 이 양도를 확신한 마이클 블름버그 당시 뉴욕 시장은 뉴욕시의 공식 공원으로서 하이 라인 계획을 발표했고 5000만 달러의 지원을 약속했다. 두 평범한 시민의 꿈이 뉴욕시의 꿈이 된 것이다. 이윽고 2009년, 도시 빌딩의 숲 사이에서 시민들을 위한 세계 최초의 공중 공원 하이 라인이 탄생했다. 그 어느 도시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도로 위 공원은 미국 현대 조경 건축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으며, 우리나라 서울로(Seoullo)의 레퍼런스가 되기도 했다.

영국 런던의 시티오브웨스트민스터에 위치한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은 원래 수도원이 있던 자리로, 1970년도에 부설 야채 시장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며 유휴 공간이 됐다. 주철식 아케이드[3]로 섬세하게 지어진 이 공간은 1980년대부터 자연스럽게 펍과 상점들이 들어서며 현재 런던의 대표적인 문화 거리로 자리 잡았다. 한때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채 시장의 본거지였던 애플마켓(Apple Market)은 수제 보석, 판화, 수채화, 아름다운 공예품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이스트 콜로네이드 마켓(East Colonnade Market)에는 수제 비누, 손으로 짠 아동복, 마술사 가판대, 과자, 가정용품 등이 가판대 위에 종류별로 진열돼 있다. 월요일마다 이곳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골동품 전용 시장이 되고, 주말에는 각종 공예품 마켓이 열린다. 코벤트 가든 광장은 매일 거리에서 펼쳐지는 음악 공연과 코미디 쇼 덕에 시민과 관광객이 북적이는 세계적인 야외 극장이 되고 있다. 코벤트 가든의 특징은 특별한 도시 계획 없이도 문화적 특징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인프라의 재활용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고전에 감각을 더하다

영국 테이트 모던 ⓒAcabashi
런던 테임즈 강변에 위치한 현대 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또한 폐허로 방치된 근대 유휴 건축물을 계획적으로 재활용한 경우다. 스위스의 건축 사무소 헤어초크&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템스강가(River Thames)에 20년 이상 방치된 화력 발전소를 재설계하며 2000년 5월, 지금의 테이트 모던이 문을 열었다. 건물의 외관은 최대한 살리는 동시에 내부 기능에 변화를 줬다. 산업혁명 때 경제 동력의 상징이었던 화력 발전소의 외형 및 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내부만 미술관이라는 새로운 기능에 맞게 탈바꿈했다. 과거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해 지역 주민들이 낯설게 느끼지 않도록 했고, 내부는 기존의 화력 발전소 시설을 활용하되 현대인의 감각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디자인했다. 뿐만 아니라 흉물로 남아 있던 시설을 재사용함으로써 런던이라는 도시의 인지도가 상승하는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루르 뮤지엄 내부 ⓒ김주연
테이트 모던이 하나의 건축물을 재생한 경우라면, 독일 에센(Essen)의 졸페라인 광산 단지(Zollverein Coal Mine Industrial Complex)는 지역 전체를 재생한 결과물이다. 150년 가까이 루르(Ruhr) 공업 지역의 중심 탄광지였던 이 도시는 석탄이 고갈되며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1986년, 탄광이 폐광되며 거대한 철조 골격의 채광 시설이 흉물로 남았다. 이 장소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Nordrhein-Westfalen)주 정부는 졸페라인을 사들이고 문화 공간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산업 시설 자체를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생각하고 2억 유로라는 막대한 금액을 투자했다. 흉물로 방치된 샤프트나 건물들을 그대로 활용해 만든 루르 박물관(Ruhr Museum)에는 석탄과 화석, 지역인들의 생활사 및 탄광 관련 활동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광산단지에 난방을 공급하는 보일러 하우스(Boiler House)는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손을 거쳐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인 어워드 레드닷(Red Dot)의 수상작들을 관리, 보존하는 레드닷 디자인 박물관(Red Dot Design Museum)으로 태어났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한 해 무려 12만 명에 달한다. 졸페라인 광산 단지는 이후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2010년 유럽문화도시로 선정됐으며,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도시를 문화로 살려낸 에센 정부의 재생 침술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유산의 새활용


1918년, 네덜란드의 선박 회사 로열 홀란드 로이드(Royal Holland Lloyd)는 건축가 에버트 브레만(Evert Breman)에게 암스테르담에 커다란 호텔을 지을 수 있는지 의뢰했다. 여기엔 외부 관광객 유치를 염두에 둔 네덜란드 왕실의 입김도 들어갔다. 이후 3년의 준공을 거쳐 로이드 호텔(Lloyd hotel)은 완성됐으나, 로이드 회사는 초기 예상했던 건설비의 여덟 배나 되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해 버렸다. 이후 약 15년간 로이드 호텔은 초기 목적과는 달리 이민자들이나 가난한 동유럽 유대인들을 위한 임시 숙소로 사용됐다.

이후 1936년에는 암스테르담시가 로이드 호텔을 매입했다. 1928년 독일 대공황을 피해 온 유대인 난민들의 쉼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나치에 저항하던 사람들의 수용소로 사용됐다. 종전 후에는 성인 교도소를 거쳐 소년원으로 기능했으나 사실상 방치됐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그러다 1989년, 구 유고슬라비아(Yugoslavia) 출신 예술가들이 모이며 이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곳을 스튜디오 공간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6년엔 건물의 재사용 용도를 결정하기 위한 현상 공모가 진행됐고, 큐레이터 수잔느 옥세나르(Suzanne Oxenaar)와 미술사가 오토 난(Otto Nan)이 건축 사무소 MVRDV와 합작해 2004년 완성한 로이드 호텔은 새롭게 개장했다. 이 작업에는 네덜란드 출신 디자인 거장 마르셀 반더스(Marcel Wanders)를 비롯해 40여 명의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참여했고, 뉴욕의 크라이슬러(Chrysler Building) 빌딩 같은 우아한 기하학의 네덜란드 아르데코 양식을 접목해 117개의 객실을 단장했다. 참고로 로이드 호텔은 2001년 네덜란드 국립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로이드 호텔 내부 ⓒ‘Guide Me To’ 유튜브
흥미로운 것은, 로이드 호텔이 이런 호화롭고 세련된 디자인과 동시에 과거의 투박한 역사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이드 호텔에선 특이하게도 하나의 호텔이 1~5성급 객실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호텔의 입구는 안내 데스크라기보다는 검문소의 느낌이며, 과거 사용하던 비품의 대부분을 재사용하고 있다. 복도의 낡은 회색 타일과 다소 어두운 조명에서도 교도소의 옛 모습이 드러난다.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데 불편한 계단이 많은 구조도 일부러 고치지 않았다. 그 불편함이 호텔의 역사를 온전히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어떻게 보면 미로와 같고, 방 안에 들어서면 초현실적인 숙박을 경험할 수 있다. 호텔의 별명이 ‘로이드 호텔 & 문화 대사관’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로이드 호텔은 그 자체로 특별한 숙소이자 문화유
산이 살아 숨 쉬는 박물관이다.[4]
1933 라오창팡 ⓒ김주연
상하이의 1933 라오창팡(老場坊) 또한 과거의 시설을 색다른 방식으로 활용했다. 라오창팡은 ‘오래된 작업장’이란 뜻으로, 상해가 영국의 조계지였을 때 영국 건축가 벨푸어(Balfours)가 설계한 아시아 최대의 소 도살장이었다. 1933년 완공된 이곳은 중국 최초의 국영 육류 도살장으로서 외국인들을 위한 육류 생산을 담당했다. 이후 약 40년 뒤인 1970년부터 생화학 제약 공장으로, 이후 식품 공장, 창고 등으로 활용되다가 2002년 정부 개입 이후 4년간 방치돼 있었다. 2006년 중국 정부로부터 ‘우수 역사 건축물’로 지정된 후 라오창팡은 기존의 모습을 되살려 복합 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소를 도살하기 위해 설계됐던 경사로는 독특한 구조를 이룬다. 올라가는 계단은 곧 내려오는 계단이 되고, 회백색으로 통일된 계단과 내벽은 혼란을 야기하며 환상적인 수직 미로 공간을 형성한다. 미로 같은 경사로는 도살장으로 가는 소 떼가 정체되는 것을 막으려 일부러 빙빙 돌게 한 목적이었다. 공간은 현재 대부분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며 전시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활용된다. 스타벅스와 같은 카페를 비롯해 많은 디자인·광고회사, 웨딩홀, 드라마 제작소, 갤러리, 설계소, 극장, 레스토랑 등이 함께 모여 창의 예술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다. 하루에 1000여 마리의 소와 돼지를 잡던 이곳 도살장의 으스스하고 기묘한 분위기는 뉴트로(newtro)로 느껴지며 수많은 관광객과 사진가들이 찾는 상해의 문화 예술 명소가 됐다.
 


시대에 어울리는 존재감

Museum de Fundatie ⓒMichielverbeek
기존 문화유산에 새로운 쓰임새를 입히는 것 외에, 새로운 형태를 더하는 증축도 재생 침술에 해당한다. 1838년 세워진 네덜란드 즈볼러(Zwolle)시 법원 건물은 현재 조각이나 그림 같은 국제 예술 작품 및 흥미로운 수집품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됐다. 즈볼러 재단 박물관(Museum de Fundatie)은 박물관의 면적이 부족해 증축을 계획했으나, 법적으로 건물을 측면이나 후면으로 증축할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혔다. 이에, 지붕에 마치 럭비공처럼 생긴 공간을 수직으로 덧붙이는 새로운 방식을 택했다. 신고전주의 양식을 따른 본래 건물은 완벽한 대칭을 띄고 있었기에, 설계를 맡은 비어만 헨켓(Bierman Henket) 건축 사무소는 그 대칭을 유지하기 위해 럭비공 같은 디자인을 도입했다. 고전적 건축물에 유기적인 디자인을 접합해서 탄생한 박물관은 매우 미래적이고도 기념비적인 인상을 준다. 증축 건물의 외부는 5만 5000개의 반짝이는 3차원 입체 타일로 덮여 있으며, 여기 사용된 타일은 푸른 배경에 흰색 유약을 덧칠해 하늘과 건물이 동화되는 듯한 효과를 준다. 2013년 더치 디자인 어워드(DDA·Dutch Design Awards)는 이 박물관에 공간프로젝트상을 수여했으며, 선정위원회는 “이 프로젝트는 도시에 엄청난 영향을 주며, 믿을 수 없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라고 평했다.[5]

2018년 4월, 서울 홍익대학교 앞 40년 이상 자리를 지킨 국민은행 영업점 또한 새로운 청년 문화 공간 ‘청춘마루’로 재탄생했다. 이곳은 현대 건축가 1세대 김수근 씨가 설계한 작품으로, 현존하는 국민은행을 대표할 수 있는 홍대 앞 지점을 복원해 문화적 공간으로서 소비자에게 다가가자는 내부 목소리가 있었다. 이 목소리는 공감을 얻었고, 홍익대 건축과 교수들이 설계에 참여했다.

홍대 앞은 주말이면 서울 주민은 물론 세계 각지의 관광객을 비롯해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이다. 그런데 편히 앉아서 쉬거나 약속 장소로 특정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이 많지 않다. 이에, 청춘마루 리노베이션의 목표는 ‘쉼표’가 됐다. 홍익대 교수팀[6]은 설계의 초기 단계부터 건물 외부는 과거 흔적 보존을 위해 최대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평범하던 내부 공간은 지하부터 옥상까지 지그재그 형태의 경사 계단으로 바뀌어 다이내믹한 공간이 됐다. 그러나 외관은 평범함의 역사성을 그대로 유지한다. 평범과 다이내믹,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이 청춘마루의 상징이다. 1층의 계단은 모두 KB금융그룹의 브랜드 컬러인 노란색을 입히고 거리에 노출되도록 개방하여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는 과감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 계단은 2층의 실내 갤러리를 지나 옥상의 루프탑 외부 계단으로까지 이어진다. 청춘마루의 노란 계단은 이제 사랑받는 홍대 앞 아이콘이 됐다. 이 쉼의 공간에선 자연스러운 버스킹도 일어나고, 간단한 음식이나 커피를 가져와 먹고 마실 수 있고, 잠시 비를 피할 수도 있다.[7] 기업이 소유하던 오랜 역사의 건축물에 재생 침술을 도입해 브랜드 이미지를 고양시킨 것은 물론, 대중을 위한 쉼터를 마련했다.
[1]
 송혜진, 〈다방에서 전시, 창고에서 파티, 공장에서 식사… 폐허의 재발견〉, 《조선일보》, 2013.4.12.
[2]
Paul Meurs et al., 《Reuse, Redevelop and Design: How the Dutch Deal With Heritage》, nai010 publishers, 2017., pp.16.
[3]
아케이드(arcade)란 건축적으로 기둥이나 교각에 의해 지탱되는 아치(arch)가 연속적으로 이어짐으로써 만들어지는 복도와 같은 공간이다. 위키피디아 참조.
[4]
최승표, 〈[내가 사랑한 호텔] 네덜란드 문화유산이 된 감옥호텔〉, 《중앙일보》, 2018.3.5.
[5]
Alyn Griffiths, 〈Museum De Fundatie by Bierman Henket architecten〉, 《dezeen》, 2013.10.26.
[6]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이영수, 이현호, 장용순, 이경선, 김수란 교수.
[7]
이주원, 〈[건축과 도시-KB락스타 청춘마루] 햇살 머금은 ‘노란 계단’…바쁜 일상 속 ‘노란 쉼표’가 되다〉, 《서울경제》, 2018.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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