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학물질의 가치

6월 27일, explained

3M이 13조 원의 합의금을 지불한다. 어떤 기업들은 먼저 말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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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M이 13조 원의 합의금을 물게 됐다. ‘영원한 화학물질’로 돈을 벌어온 대가다. 발암물질이다.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미국인 97퍼센트의 혈액에서 이 물질이 검출되었다. 이 위험한 화학물질이 광범위하게 퍼진 이유가 있다. 3M, 듀폰 등의 거대 기업들이 그 위험성을 몇십 년 동안 숨겨왔기 때문이다.

WHY NOW

담배도, 프레온 가스도, 가습기 살균제도 인류를 위협하지만, 그 위해성은 감춰지거나 왜곡되었다. 기업은 과학을 앞세워 유독한 것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라거나, ‘근거가 부족하다’라고 말한다. 인과 관계가 분명해질 때까지 불특정 다수의 피해가 발생하는데도, 계속 제품을 판매해 이득을 챙기거나 과학과 법의 이름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기술의 발달은 진보와 동의어가 아니다. 사람에게 해롭지 않은 기술만이 유효하다.

계란 프라이가 위험한 이유

1998년, 웨스트버지니아에서 한 농장에서 젖소가 떼죽음을 당한다. 무려 190마리였다. 농장 근처에는 글로벌 거대 화학기업, 듀폰(DuPont)사의 폐기물 처리장이 있었다. 젖소들의 죽음은 듀폰사가 폐기해 온 독성 물질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 독성 물질 위에 아침마다 식용유를 두르고 계란 프라이를 해 먹는다. 젖소를 죽인 범인은 테플론이다. 프라이팬 코팅재료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바로 그 화학 물질이다.

영원한 발암물질

테플론은 이른바  ‘영원한 화학물질’로 불리는 PFAS(과불화화합물)의 한 종류다. 물과 기름에 쉽게 오염되지 않고 열에 강하다. 프라이팬 코팅 재료는 물론, 섬유 방수 코팅, 화장품과 세제는 물론 화장지에도 포함되어 있다. 물과 기름을 어느 정도 견디는 우리 주변의 생활용품에는 높은 확률로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물질은 탄소와 불소가 아주 강하게 결합되어 있어 자연 상태에는 잘 분해되지 않는다. 즉, 없어지지 않고 거의 영원히 남는다. 인체에 들어와도 잘 배출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물질은 독성을 갖고 있다. 암, 호르몬 기능 장애, 간 질환, 면역 약화 등 각종 문제를 일으킨다. 세계 각국은 규제에 나서고 있다.

20년이 흐르는 동안

1990년대에 들어서야 관련 사실이 공개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알고 있었다. 3M도, 듀폰도 20년 가까이 이 사실을 알면서 숨겨왔다. 3M은 1994년 관련 물질 제조 시설에서 전립선암 증가 가능성을 인지했다. 1980년에는 3M과 듀폰의 생산 공장에서 임신했던 직원 8명 중 2명이 선천성 기형아를 출산했다. 1979년과 1961년에는 듀폰이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간 비대증, 각막 혼탁 및 궤양 등의 증상이 관찰되었다.

부족한 근거, 조작된 평가

우리는 이와 같은 장면을 적지 않게 목격해 왔다. 담배가 그랬다. 담배 회사들은 위해성을 알면서 은폐했다. 심지어 미국의 담배 제조사 필립모리스는 어린이들의 간접흡연 문제를 지적한 연구 결과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딱지를 붙이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기도 했다. 필립모리스측 의 자금 지원을 받은 연구자는 결론을 180도 바꿔버렸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도 닮아있다.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 실험 결과를 은폐한 대기업 임원이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안정성 평가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은 서울대 교수는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았지만, 최종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과학의 두 얼굴

우리는 과학이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실증과 논리에 기반을 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 결과에는 연구자의 주관이 얼마든지 개입할 수 있다. 과학에 100퍼센트란 없기 때문이다. 30퍼센트의 유병률은 연구자의 주관에 따라 심각한 수치가 될 수도, 평균치 이하의 무시할 만한 수치가 될 수도 있다. 돈이 개입되면 30퍼센트라는 숫자 자체가 바뀌어 버릴 수도 있다. 과학은 객관적이다. 그러나 사람은 객관적인 존재가 아니다. 게다가 돈이 개입되면 그 무엇도 객관적일 수 없다. 돈은 윤리가 아니라 이익을 향한다.

버틸 만한 시간

그래서 기업들은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버티기’에 들어간다. 존슨 앤드 존슨은 발암물질인 석면이 함유된 활석 가루로 ‘베이비 파우더’를 만들어 판매했다가 지난 2016년 87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파우더의 판매가 전면 중단된 것은 2023년, 올해다. 듀폰사가 판매해 온 프레온 가스의 경우, 지난 1974년 오존층 파괴 문제가 제기됐다. 그러나 프레온 가스의 생산과 사용을 규제하는 몬트리올 의정서가 체결된 것은 1987년, 선진국에서 해당 물질의 생산 및 수입이 금지된 것은 1996년이다. 법과 제도가 막아서지 않는 이상 기업은 계속 만들고, 판매한다.

법 기술자들

게다가 때로는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법꾸라지’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텍사스 파산법’이다. 미국의 텍사스주에서는 회사를 두 개로 쪼갠 후 그중 하나의 회사가 모든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 즉, 수많은 소송으로 막대한 배상금이나 합의금을 물어줄 위험에 처한 기업이라면, 편법으로 자회사를 하나 만들어 법적 책임을 모두 떠넘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자회사가 파산해 버리면 거액의 소송들은 일단 파산법원 관리 아래 들어가거나 중단된다. 3M도, 존슨 앤드 존슨도 모두 이 파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시도했다.

IT MATTERS

3M은 13조 원의 돈을 지불하지만, 오염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기업은 책임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다. 책임에는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임이란 보는 시각에 따라 애매하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책임을 생산 기업에 물어 책임지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기에, 영원한 화학물질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청바지에도, 치실에도, 게다가 없어지면 한국경제가 무너진다는 반도체 생산 공정에도 있다. 상수도의 오염을 입증할 만한 논의가 진행된 것은 PFAS가 화재진압용 소방 거품에도 쓰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자명하게 수원지를 오염시키는 원인이 된다.

돈의 논리로는 위험한 물질을 멈출 수 없다. PFAS가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이 공공연히 알려져 글로벌 기업들이 합의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성급하다는 이야기가 산업계에서 나온다. 프라이팬을 못 팔까 그러는 것은 아니다. 혹여나 반도체 업계에, 특히나 우리 기업들이 손해라도 입을까 전전긍긍하는 보도가 나온다. 유럽연합이 PFAS 규제를 10년 뒤로 예고했다. 이게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과학의 잣대로도 위험한 물질은 멈추지 않는다. 과학이 돈에 흔들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청부과학’이라는 조소 섞인 말이 회자되겠는가. 《과학 혁명의 구조》로 잘 알려진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은 “주도권 경합으로 과학 이론도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과학계 내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과학계를 흔들 수 있는 주도권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계속해서 피해를 주장하고, 진실을 말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적어도 다음의 피해를 막거나, 최소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 성분이 더 이상 함부로 사용되지 않고, 프레온 가스가 사라져 오존층이 회복되는 등의 변화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주장과 말은, 특히 피해자의 목소리는 작고 약하다. 그래서 정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의 경우 화학 제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 사용과 이동에 있어 엄격한 규제 법안을 시행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영원한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 계획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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