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경쟁 밖 태평양 섬나라

2023년 7월 14일, explained

태평양 섬나라가 미중 경쟁 격전지로 떠올랐다. 힘의 논리만으로 태평양 도서국을 설명할 수 없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태평양 도서국 포럼(PIF)에 속한 솔로몬제도가 중국과 전면적 전략동반자 관계를 수립했다. 태평양 전역에 외교적·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중국이 작은 섬나라로 향하고 있다. 솔로몬제도는 2019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바 있다.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지난 3월, 솔로몬제도에 대사관을 다시 열었다. 작은 태평양 섬나라가 미중 경쟁의 격전지가 됐다.

WHY NOW

미중 경쟁의 격전지로만 보면, 태평양 도서국을 다 이해할 수 없다. 태평양 도서국 포럼은 엑스포 부산 유치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관해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해관계자기도 하다. 미중 경쟁 격전지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태평양 도서국의 이슈를 짚어 본다.

태평양 도서국 포럼

세계 지도를 보면 호주 오른쪽, 뉴질랜드 위쪽에 점들이 있다. 바로 작은 섬들이다. 이 작은 섬 여러 개로 이뤄진 국가들을 묶어 태평양 도서국이라 부른다. 솔로몬제도는 총 992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수도는 가장 큰 섬인 과달카날에 있다. 전체 면적을 합치면 한반도의 8분의 1 정도다. 인구도 70만 명뿐이다. 1971년 비슷한 상황을 공유하는 태평양 도서국은 손을 잡았다. 태평양 도서국 포럼(PIF)이다. 솔로몬제도, 피지, 나우루 등 14개 태평양 섬나라와 호주, 뉴질랜드가 속해 있다. 역내 공동 문제에 협력하기 위해 매년 정상회의를 열어 왔지만 큰 반향은 없었다.

솔로몬제도와 중국

작은 섬나라들은 힘이 없다. 중국은 이 점을 파고들었다. 솔로몬제도와 중국의 관계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솔로몬제도는 대만의 수교국이었다. 솔로몬제도는 토지 면적도 적은 데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4퍼센트가 안 된다. 나라 경제를 참치 등 생선과 목재 수출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그중 65퍼센트가 중국으로 간다. 나아가 중국은 적극적인 경제 지원에 나섰다. 2019년 솔로몬제도는 결국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2022년 4월에는 유사시 중국이 솔로몬제도에 병력을 파견할 수 있다는 내용의 안보 협정까지 체결했다. 미국은 올해 3월 솔로몬제도에 다시 대사관을 열며 뒤늦게 중국을 견제하고 나섰다.

안보 협정

미국이 이렇게 놀란 이유는 무엇일까? 지도에 점처럼 나타난 섬들을 이으면 마치 사슬처럼 보인다. 중국은 이 가상의 선을 도련선이라고 부른다. 중국 해군의 작전 반경을 뜻한다. 1980년대 중국은 오키나와-대만-필리핀-보르네오를 연결해 제1도련선이라 불렀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무인도에 군사기지를 만들면서 영향력을 넓혀 왔다. 다음 목표는 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를 잇는 제2도련선, 태평양 도서국 다수가 이 부근에 위치한다. 솔로몬제도는 호주와 불과 2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만약 솔로몬제도 부근에서 중국 전투기가 출발하면 세 시간 만에 호주에 닿을 수 있다.

광물 자원

태평양 도서국 전체의 배타적경제수역은 지구의 20퍼센트에 달한다. 다시 말해, 태평양에서 패권을 쥐면 어디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패권이 추가됐다. 바로 광물 자원이다. 구리나 망간 등 전기차 배터리 소재로 쓰이는 핵심 광물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 해저 4~6킬로미터에는 망간을 비롯한 해양 광물들이 묻혀 있다. 태평양 도서국의 전체 해양 면적은 중국, 미국, 유럽 대륙을 합한 것보다 크다. 중국은 심해 채굴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나라다. 태평양 도서국과의 관계를 통해 광물 패권까지 노리고 있다.

캐스팅보트

우리나라도 뒤늦게 태평양 도서국을 주목하고 있다. 2022년 우리 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태평양 도서국을 핵심 파트너 중 하나로 언급했다. 그리고 올해 5월, 처음으로 태평양 도서국 정상급 인사를 서울로 초청해 ‘한-태도국 정상회의’를 열었다. 우리 정부에게 태평양 도서국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이들이 부산 엑스포 유치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태평양 도서국 포럼 14개국 중 11개국이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이다. 최근 가입 신청한 파푸아뉴기니까지 합하면 12개국으로 늘어난다.

이해관계

태평양 도서국이 우리나라와 공유하고 있는 것도 있다. 바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의 이해관계자라는 점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바로 이 태평양 섬나라들이다. 2022년 3월, 태평양 도서국 포럼은 일찍이 핵물리학·해양학·생물학 등 각 분야 국제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적인 자문단을 꾸렸다. 이들은 일본을 상대로 자료, 화상 토론, 원전 시찰을 요청했다. 이후 이들이 내린 최종 결론은 ‘방류 연기’였다. 이에 일본 외무상은 PIF 회원국 정상들을 초청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기후 변화

특히 환경 이슈와 관련해 태평양 도서국의 목소리가 크게 반영되고 있다.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높아지면 가장 먼저 잠길 나라로 언급되는 투발루가 태평양 섬나라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의 당사국이라고 할 수 있다. 2023년 3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의 법적 의무를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제시하도록 하는 결의안이 유엔 총회에서 채택됐다. 그리고 이 결의안은 다름 아닌 태평양 섬나라 학생들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솔로몬제도의 학생단체 ‘기후 변화에 맞서는 태평양 섬나라 학생들(PISFCC)’의 제안을 바누아투 정부가 받아 다른 나라를 설득한 결과다.

IT MATTERS

미중 경쟁의 격전지로만 이해되기엔 태평양 도서국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많다. 우리나라와도 생각보다 가까운 이야기다. 그런데 왜 이제야 태평양 도서국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까. 국내에서 세계를 조명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국제뉴스다. 2021년 기준, 지상파 방송사와 종합일간지 5개사가 보도한 국제뉴스를 분석한 결과, 약 7만 5000건 중 2만 건​​​​​이 넘는 기사가 미국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중국에 관한 기사가 두 번째로 많았다. 분야도 정치, 경제에 치우쳐져 있었다. 기후, 에너지 등 국제적 공동대응이 필요한 분야는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 세계를 향한 시각은 힘의 논리에 갇혀 있던 것일지 모른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