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대안 없는 목소리

8월 2일, explained

이스라엘 극우파 정권이 사법 개혁을 단행했다. 7개월째 이어진 시위는 여전히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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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전역이 뒤집혔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24일, 크네세트(의회)가 사법 개혁을 단행한 후 주요 도시 거리를 메운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이 가결됨에 따라 사법부가 정부 독주를 견제할 수단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집권 일주일 만에 나왔던 사법 개혁안에 장장 7개월 동안 끊임없는 시위가 이어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3월 시위에 못 이겨 계획을 일시 중단했으나, 결국 연정 파트너인 시오니스트 극우파들과의 약속을 챙겼다. 시위는 사법 개혁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다.

WHY NOW

이스라엘의 민주화는 바스라지고 있다. 한때 이스라엘에 친화적이던 서방 언론은 지금은 이스라엘 정부를 때리고 있고, 이스라엘의 형제인 미국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에 유감을 표명했다. 많은 언론은 시위가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보도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시위는, 지금 그 무엇도 지키지 못했다.

시위에서 휘날리는 이스라엘 깃발

지금 거리에는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이스라엘의 깃발이 휘날린다. 여기에 동참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팔레스타인 국민들이다. 팔레스타인은 네타냐후의 뜻대로 사법부가 움직이는 걸 막고 싶지만, 그렇다고 마냥 시위를 환영할 수도 없다. 시위의 메시지가 ‘사법 개혁을 중단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으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무관심하고 안일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문제를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나서지 않는다. 네타냐후의 뜻에 따라 사법부가 움직인다면 팔레스타인은 지금보다 고통받을 것이다. 그러나 사법 개혁이 무산된다고 해도 팔레스타인은 고통 받는다.

진보적이지 않은 이스라엘의 진보

지금껏 이스라엘 대법원이 내려 왔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을 합법화했던 결정들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법부는 그 사회 내에서는 진보적이라는 평을 듣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는 언제나 유대 민족의 단일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시오니즘에 굴복해 왔다. 또한 지금 이스라엘 시위에서 주축이 되고 있는 한 세력은 예비군, 즉 군인들이다.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바탕을 둔 시위 조직을 환영하기 힘들다. 사법 개혁을 둘러싼 이스라엘 내의 갈등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유대인의, 유대인에 의한, 유대인을 위한 갈등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

이스라엘이 국제적인 비난을 감수하고도 팔레스타인을 공격한 배경에는 형제국인 미국이 있다. 미국 워싱턴 정가를 주무를 정도로 파워가 센 유대인은 미국 정부가 시오니즘에 반대하지 못하도록 로비를 해왔다. 세계 초강대국이 내놓은 결과는 침묵이었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 걸 외면했고, 언론은 ‘학살’을 ‘충돌’로 보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국제법상 중립 지대인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하며 텔아비브에 있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중동 평화 구상’이라는 이름으로 서안 지구 내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하고, 전쟁 범죄를 조사하려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대한 제재를 가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2021년, ICC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전쟁 범죄를 조사하겠다고 했을 때 바이든 대통령은 단호히 반대했다.

무너지는 민주주의

이스라엘은 중동 내에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다. 그러나 서방과 이스라엘의 공통 가치인 민주주의는 사법 개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왜 사법일까. 이스라엘은 확정된 성문헌법 대신 유동적인 성격의 기본법을 가진다. 헌법이 없기 때문에 대법원이 행정부와 의회를 견제한다. 진보적인 사법부는 동성 커플도 대리모 출산을 허용하는 등 유대교 보수파 의견과 다른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그래서 네타냐후 정권의 타깃이 됐다. 이제는 의회 다수가 찬성하면 다시 법원의 판결을 뒤집을 수 있게 된다. 시오니즘에 기반한 집권 세력은 원하는 바를 더 당당히 행할 수 있게 된다. 그 핵심에는 서안 지구 정착촌 내 이스라엘의 장악도를 높이는 것이 있다. 즉, 팔레스타인과의 더 많은 전쟁이다.

스타트업 엑소더스

사법 개혁이 통과함으로써 이스라엘 본토도 전쟁의 땅이 될 수 있다는 긴장도가 올라갔다. 시내 전역의 시위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 가세했다. 이스라엘에 투자했던 북미 투자자들은 짐을 빼고 있다. 이스라엘은 본디 ‘스타트업 네이션’으로 불리던 곳이다. 북미 지역의 스타트업과 투자자들이 많이 진출해 있다. 국내 상황이 불안해지자 기업과 투자자가 빠지고, 그러자 이스라엘 통화 가치도 내려앉기 시작했다. 혼란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통화 가치는 달러당 3.3셰켈 수준이어야 했는데, 지금은 달러당 3.7셰켈 수준으로 치솟았다. 의사와 거대 기업의 노동자들은 파업 활동을 시작했다. 미국 투자 은행 ‘모건 스탠리’는 이스라엘의 국가 신용 등급을 ‘부정적’이라고 하향 평가했다. 이제 이스라엘은 누가 보아도 위험한 땅이다.

외전을 예고하는 내전 상태의 이스라엘

지금 이스라엘은 사실상 내전을 치르고 있다. 야당 정치인과 예비군, 시민이 모인 정권 반대파는 매일 같이 시위를 하고, 거기에 이스라엘 정권은 물대포로 대응한다. 미국은 사우디와 함께 이스라엘을 중재하려 하지만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사우디는 일찍이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요구해 왔다. 바이든이 이스라엘 현 정부에 대해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정부”라고 비난하자, 이스라엘의 극우파 벤그비르 국가 안보 장관은 “이스라엘은 더 이상 성조기에 들어있는 별 중의 하나가 아니다”라고 맞받아쳤다. 극우파에게는 지금 미국의 원조만큼, 어쩌면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오니즘을 실현하는 것이다.

초라한 반대파

여기에 맞서는 야당의 메시지는 초라하다. 반대파는 통합되지 않고 있으며, 가장 대표적인 세력이 군인 그룹일 정도다. 반대파는 왓츠앱(WhatsApp) 그룹, ZOOM 등을 통해 세력을 통합하고 시위대 숫자를 발표하며 야당의 추진력과 통합을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매력적이지 않다. 이들은 ‘자유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민주주의에는 팔레스타인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는다는 모순이 존재한다. 반면 여당인 이스라엘 우파는 왜 유대인이 비유대인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해야 하는지 민족과 정체성을 내세우며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 매체 《+972 매거진》의 편집장인 하가이 마타르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는 이스라엘의 현실은 무시한 채 사법 개혁 단행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이 시위가 오히려 반동적이라고 말한다. 

IT MATTERS

민주주의로써 모든 걸 지키고 싶은 반대파의 목소리는 결국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을 수용할 법도, 사법 개혁에 대한 대안도, 폭주하는 정권을 막을 방안도 생각해내지 못한 야당은 9월 12일에 시행될 사법 정비에 관한 대법원의 심리를 지켜보며 똑같은 구호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정치학자 요아브 펠레드(Yoav Peled)는 이에 대해 “시위 운동도 우파 종교인의 정치사회적 헤게모니에 편입돼 있다”고 평한다.

전 세계가 우려하는 이스라엘 사법 개혁은 분명 민주주의를 해친다. 그러나 우파 정권의 뜻대로 실현될 가능성은 크다. 정권이 만든 ‘사법 개혁’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은 반대파에도 책임이 있다. 무능력하지 않으려면 일단 그 프레임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이스라엘로서는,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는 블록을 공고히 형성하는 것이 될 수 있다. 펠레드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면 할수록 “전쟁에 대한 불안함과 죄책감이 그들을 오른쪽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다. 나이브한 좌파는 극우의 독주를 막을 대안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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