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윈은 왜 농업과 함께 돌아왔나

8월 7일, explained

잠적했던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이 농업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새로운 도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중국 최대 전자 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이 새로운 투자 소식으로 침묵을 깼다. 2019년 설립한 투자 회사를 통해 스마트 농·어업 스타트업 ‘1.8 미터 해양 기술’에 투자한 것이다. 알리바바의 현 CEO 역시 일부 지분을 사들였다. 알리바바는 자체 연구소인 다모아카데미를 통해 ‘스마트 육종’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농업 관련 기술 투자를 늘리고 있다. 그간 중국 정부의 미운털이 박혀 종적을 감췄던 마윈의 새로운 행보는 무엇을 의미할까?

WHY NOW

기술이 국제 정세의 패권을 가름한다는 기정학 시대 이전에도 위대한 창업자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혁신은 동시대 사람들의 욕망과 사회적 수요 속에 탄생하기 때문이다. IT 시대를 연 1세대 창업가 마윈의 행보는 13억 인구를 책임지는 중국의 어제와 오늘이었다. 그러나 마윈의 선택이 중국의 내일까지 담보할 수 있을까? 첨단 산업의 각축전 된 지금도 마윈의 혁신이 유효할까? 빅테크의 지형도가 바뀌는 지금, 마윈의 선택은 혁신의 향방을 반추할 단서다.

중국 인터넷 시대의 창시자

영어권에서 ‘잭 마(Jack Ma)’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마윈은 국가적, 개인적 차원에서 모두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중국 인터넷 시대의 창시자다. 중국의 인터넷 발전은 알리바바 전과 후로 나뉠 정도다. 창시자, 설립자를 의미하는 ‘founder’의 어원엔 기초를 놓는다는 뜻이 있다. 마윈은 그 정의를 가장 혹독하게 입증해 낸 사람이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의 시장 경제에서 혁신을 일궜기 때문이다. 이베이 창업자 피에르 오미다이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와는 출발선부터 달랐고, 유복한 유학 시절을 보낸 바이두의 리옌훙,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엘리트들이던 구글의 브린과 페이지와도 달랐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사범대학을 나온 영어 강사 출신인 그는 중국의 영웅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마윈은 무엇을 바꿨나?

마윈의 혁신은 중국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 마윈은 13억 인구의 중국이 거대한 시장임을 입증했다. 기업 간 거래와 소비자 대상 거래를 온라인화하며 세계의 자본 및 기술을 중국에 이식했고, 그 결과 중국은 값싼 노동력과 공산품을 만드는 2차 산업 국가에서 첨단 기술이 태동하는 곳으로 다시 태어났다. 중국에 서방과 같은 혁신이 있음을 입증한 것이 바로 마윈이다. 개혁개방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금융 부문 자회사 앤트그룹의 등장은 또 다른 변곡점이었다. 그는 핀테크 ‘알리페이’로 고객의 지갑을 없애는 수준이 아니라 중국이 세계에서 디지털 국가로 앞서갈 기반을 마련했다. 마윈의 혁신이 중국의 어제와 오늘인 이유다.

마윈은 왜 농업에 투자하는가?

2019년 다보스 포럼에서 마윈은 “다시 창업한다면 농업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IT는 천재가 많아 경쟁이 어려운 반면 농업은 21세기 초 인터넷처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농업은 유망한 분야다. 기록적인 폭염과 기후 위기는 작황을 악화시켰다. 세계 곡창 지대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먹고사는 문제는 중국에서 특히 각별하다. 중국은 세계 인구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지만 경작 가능한 토지의 면적은 전 세계 농지의 10퍼센트 미만이다. 도농 격차도 심하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해안가를 중심으로 점차적으로 진행되며 지역 불균형을 불렀기 때문이다. 모든 이를 농업 호구, 비농업 호구로 나누는 중국의 호구 제도는 도농 간 인력·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았다. 혁신이 절실한 분야다.

마윈과 게이츠의 차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1세대 창업자가 후학 양성에 힘쓰고 새로운 기술에 투자한다는 점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도 닮았다. 게이츠 역시 인공지능(AI)을 비롯해 핵융합, 애그테크 등 미래의 다양한 과학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마윈은 농업에 있어 투자 관점을 넘어 직접 기술을 배우며 육성하고 있다. 아무리 농업이 유망하다 해도 전자 상거래를 베이스로 성장한 마윈이 갑자기 농업에 투신하는 것은 의아한 구석이 있다. 2015년 “지금은 IT에서 DT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고 발언한 마윈은 2년 후 AI와 사물인터넷(IoT) 등에 향후 17조 원의 거금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스마트 육종 프로젝트를 시작한 다모아카데미는 원래 AI, IoT, 양자컴퓨팅 등을 위한 연구소였다. 그는 어쩌다 생각을 바꾸게 됐을까?

잭 마에게 휘둘러진 잭 해머

경영 일선에서 중국 빅테크의 글로벌 영향력을 주도했던 마윈은 창업 20주년인 2019년 자신의 55번째 생일에 알리바바 회장직을 내려놓는다. 위대한 창업자의 다음 행보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그는 모종의 사건으로 한순간에 추락한다. 한 공개 포럼에서 중국 금융 시스템 전반에 강도 높은 비판을 했기 때문이다. 당국의 핀테크 규제를 꼬집던 그의 모습은 ‘CEO 리스크’로 대표되는 일론 머스크를 연상케 했다. 결국 알리바바가 준비하던 앤트그룹의 상장은 중국 당국에 의해 무산됐고 마윈은 종적을 감췄다. 침묵의 기간, 마윈은 앤트그룹의 지배권을 상실했고 알리바바는 3조 4000억 원의 반독점 과징금을 맞았다. 세계는 그간 개혁개방을 외치며 자본주의 시장으로의 편입을 꾀한 중국이 사실은 붉은 자본주의였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붉은 자본주의

“중국의 빅테크 규제.” 경제지에서 간단히 볼 수 있는 이 헤드라인은 중국과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나라들에 ‘차이나 리스크’라는 단어로 인식된다. 하지만 어떤 국가도 리스크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사회 통제가 잘 되는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국공내전을 치르며 세워진 현대 중국은 칡뿌리밖에 없는 황폐한 국가였다. 토지 개혁과 사상 혁명, 점진적 개혁개방과 전랑외교는 중국의 자구책이었다. 중국을 G2로 키워낸 것은 결국 차이나 리스크라 부르는 중국공산당의 권위주의적 시스템인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빅테크 규제는 파워 게임임과 동시에 혁신의 향방을 자신들이 정하겠다는 의지다. 마윈은 잠적한 동안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농업 기술을 배우고 자신이 소유한 미디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를 통해 그 모습을 노출했는데, 이는 중국 정부가 식량 안보를 주요 과제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윈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때 위대한 창업가로 칭송받던 마윈에게서 이제 사람들은 중국공산당의 그림자를 본다. 중국 농산물 플랫폼 핀둬둬의 창업자도 2021년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생의학, 농업, 식품 등에 투자하며 중국공산당이 점지한 방향을 따르고 있다. 그들의 혁신은 끝난 걸까? 세계는 지난 3월에 열린 중국 최대 행사 ‘양회’의 기업가 명단에 주목했다. 텐센트의 마화텅이 빠지고 AI, 반도체, 전기차 기업의 CEO들이 새로 모습을 드러냈다. 고부가 가치 산업에서 미국과 겨루려는 새 라인업인 셈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중국 정부는 탈중국에 맞서 자급자족의 대과제를 안고 있다. 1세대 창업자들의 역할은 여기에 있다. 백의종군이든 공산당의 지령이든 뿌리 깊은 농업의 문제를 혁신할 수 있는 검증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마윈의 새로운 혁신은 지금부터다.

IT MATTERS

10년 전만 해도 많은 이들은 창업자를 꿈꿨고 마윈은 그들의 롤모델이었다. 그러나 한 시대가 저물었다. 많은 혁신가의 옥석은 이미 가려졌고 IT 시대를 연 1세대 창업자들은 은퇴하고 있다. 투자 시장은 얼어붙었고, 기술 경쟁은 혁신을 국가 전략의 문제로 탈바꿈시켰다. 이 과정에서 서구 사회와 중국의 체제 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규제의 속도를 아득히 벗어난 인공지능을 두고 뒤늦게 머리를 맞댄 자유 시장 경제와 기업을 숙청에 가깝게 규제하며 고삐를 조이는 사회주의 시장 경제의 각축전에서 1세대 창업자들이 설 자리는 마땅치 않아 보인다. 이들을 보고 꿈을 키워온 새로운 창업자들도 마찬가지다.

다음 시대의 혁신은 어디를 향하게 될까? 그것을 주도하는 것은 누구일까? 자유 시장 경제의 투자 시장은 첨단 산업에만 기형적으로 몰려 있고, 사회주의 시장 경제는 외부 투자에 난항을 겪는다. 기술 경쟁의 이면에 잠식되는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건 일선에서 물러난 1세대 창업가들의 지혜다. 돈의 논리에서 벗어난 인류 공통의 문제점에서 과거 위대했던 혁신의 경험이 빛을 발할 수 있다면 체제 경쟁의 한가운데서 새로운 1세대 창업가들의 시대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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