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난동, 시민을 불안하게 하는 것들

8월 11일, explained

동시다발적 흉기 난동 사건에 당국이 다양한 대응책을 내놨다. 실효적 예방책은 보이지 않는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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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신림역 칼부림 사건을 시작으로 유사 사건과 범행 예고가 연이어 발생한다. 행정 당국은 다양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8월 3일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이후로 경찰은 경찰특공대와 장갑차 등을 전국 주요 도심에 배치했다. 머그샷을 거부한 피의자는 이례적으로 검거 당시의 모습이 추가로 공개됐다. 법무부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과 함께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법 입원제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 시민들은 안심할 수 있을까?

WHY NOW

지난 8월 4일 광운대역 근처 한 남성이 흉기를 들고 다닌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이 자초지종을 살펴보니 등산객이 허리띠에 나온 실밥을 제거하려고 등산용 나이프를 꺼낸 것이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선 호신용품 검색량이 전 연령에서 1위(3일 기준)를 차지했다. 헌법 제36조제6항은 국가가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하지만 인재 앞에서 국가는 자주 무기력했다. 무엇이 실효적 조치인지 따져봐야 한다.

예고된 범죄, 조용한 범행

두 차례 일어난 흉기 난동 사건은 크게 세 가지 유사점이 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시간대·장소를 노렸고 일면식 없는 타인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으며 숱한 모방 범죄 예고를 초래했다. 8월 7일 경찰이 수사 중이라고 밝힌 범행 예고 글은 194건에 이른다. 검거된 인원 중 절반 이상이 10대로 드러났다. 커뮤니티의 익명성에 기댄 전형적인 관심 끌기(attention seeker)형 범죄였다. 문제는 실제 협박이나 살인 예비가 적용돼 구속된 자도 여섯이나 있었다는 점이다. 개중엔 서울고속터미널역에서 실제 흉기를 소지한 채로 돌아다닌 이도 있다. 심지어 최초 신림역 사건은 예고 없는 범죄였다. ‘사이코패스’ 딱지를 넘어 대중들은 이례적으로 근본 원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주로 사회적 고립을 이유로 들었다.

아키하바라의 외로운 늑대

2008년 일본 전역을 공포에 휩싸이게 한 범죄가 있었다. 미디어에서도 자주 소개된 ‘아키하바라 사건’이다.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쳤다. 범인은 “생활이 피곤하고 삶에 지쳐” 범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사회적 고립, 비교하는 문화 속에 ‘외로운 늑대’는 탄생한다.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일컫는 이 용어는 개인적인 반감을 이유로 범행하는 ‘선진국형 범죄 유형’에 속한다. 국제대테러정책연구소(ICT)의 설립자인 보아즈 가노르는 외로운 늑대 테러 유형의 동기를 ‘욕조(bathtub)’ 모델로 설명한다. 다양한 동기의 수도꼭지가 모방이나 트라우마 등의 유발 요인에 따라 욕조를 무작위로 채우고, 그게 넘치면 공격으로 이어진다는 게 골자다. 테러엔 단일한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근본적 해법은 포용적 사회를 만드는 것뿐인데 당장은 너무 먼 얘기다.

폭력의 전염성

코로나19를 치러내자마자 한국은 전염병처럼 퍼지는 불안을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수법의 모방에 숨은 충동과 폭력의 전염이다. 역학자 애덤 쿠차르스키의 《수학자가 알려주는 전염의 원리》는 각종 폭력 사건이 전염병의 확산 양상과 유사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특히 강력 범죄가 많은 시카고는 관련 연구가 풍부한데 연쇄적 총기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천연두 퇴치 매커니즘을 쓰기도 했다. 글로벌 폭력 예방 포럼에서 발표된 일리노이대학교의 논문도 폭력을 뇌에 걸리는 감염병으로 묘사하는데 폭력을 관찰,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개인의 정신적 면역 수준에 따라 감염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긴급 방역 체계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국가가 내놓은 대책은 폭력과 공포의 확산을 실효적으로 막아야 하는 임무가 있다.

특별 치안 활동의 이면

경찰의 카드는 ‘특별 치안 활동’으로 불리는 위력 순찰 강화, 그리고 강경 진압에 대한 면책권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일련의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며 시작됐다. 강남역 교차로에서 장갑차를 볼 수 있게 된 이유다. 범죄 현장에 물리적으로 인원이 많은 것은 유사시에 큰 도움이 된다. 이상 동기 범죄를 위압감으로 억제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문제는 이 위력 순찰이 일반 시민들의 불안도 가중한다는 점이다. 영장 없는 불시 검문·검색으로 한 무고한 중학생이 경찰 폭력의 피해를 받기도 했다. 거대 공권력은 민주화의 역사가 극복해 낸 민주주의의 산실이다. 한국 경찰의 공권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많지만 그간 남용된 공권력이 수많은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기도 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신상 공개의 원리

이번 사건에서 요구되는 또 다른 대응책은 ‘머그샷 강제 공개’다. 분당 사건의 범인 최원종이 머그샷 촬영을 거부하며 제기됐다. 효과적 예방책이 될까? 머그샷은 애초 용의자의 신원을 목격자나 피해자에게 확인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됐다. 미국은 ‘정보의 자유법(FOIA)’에 의해 범인의 프라이버시보다 공익의 가치가 크다고 판단되면 공개한다. 범인이 출소할 시 식별에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형량이 짧은 한국에 유효한 조치일 수 있다. 조두순같은 흉악범이나 보복을 예고한 부산 ‘돌려차기남’이라면 신상 공개의 공익은 크다. 다만 이미 잡혀 들어간 사람의 얼굴을 안다고 근미래의 잠재적 범죄자를 식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신상 공개는 시민 불안 해소에 도움이 되지만 외모를 통한 유형화와 혐오의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사법 입원제와 가석방 없는 종신형

법무부가 추진 검토 중인 대표적인 대책으로는 사법 입원제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있다. 사법 입원제는 자·타해 위험이 큰 정신 질환자를 치료 목적으로 국가가 비자의 입원 시킬 수 있는 제도다. 두 사건의 범인 모두 과거 경범죄 이력이 있었기에 사법 입원제는 유효했을지 모른다. 문제는 정신 장애인을 향해 잠재적 범죄자라는 낙인이 강화될 수 있고 강제 입원으로 인한 인권 침해 소지도 크다는 점이다. 강제 입원이 헌법 불합치를 받으며 강화되었어야 할 외래 치료 시스템이나 사회 안전망은 부실했다. 조동찬 SBS 의학 전문 기자는 라디오에서 “한국의 정신 질환 복지 비용은 GDP 대비 1.6퍼센트”라며 의지 부족을 꼬집은 바 있다. 재범 방지를 겨냥한 가석방 없는 종신형 역시 경찰의 위력 순찰처럼 ‘형벌 포퓰리즘’으로 읽히는 이유다.

테러리스

예고 없는 재난은 없다. 새만금 잼버리도,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책임자는 없고 진심이 부재한 정책만 나부끼는 현상이 반복된다. 코로나19가 퍼질 당시 방역 당국보다 발 빠르게 해법을 찾은 건 대학생들이었다. ‘코로나 알리미’ 등은 시민들이 확진자 동선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이번에도 대학생 네 명이 만든 사이트가 화제였다. 공일랩(01ab)의 ‘테러리스’는 온라인에 올라온 범죄 예고 지역을 표기하고 검거 및 허위 정보 여부를 알려 준다. 지난 6일 서비스를 시작해 하루 만에 5만 명이 넘는 방문자를 기록했다. 무예고 살인을 막을 순 없어도 부작용 없이 시민 불안을 효과적으로 해소한 사례다. ‘관계 부처에 강력한 대응 주문’보다 ‘테러 예고 알리미’가 더 반가운 이유는 정보 불균형과 범죄 예방에 실질적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IT MATTERS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묻지마 범죄’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범죄의 이유를 찾지 못한 국가가 편의상 붙인 명칭이라는 것이다. 사이코패스 검사(PCL-R)를 통해 범죄의 원인을 쉽게 사이코패스로 규정하지만 그는 사이코패스란 성격 장애라고 말한다. 성격 장애는 현상이기에 범죄 원인으로 볼 수 없으며 그 성격 장애를 만들어 놓은 개인적·사회적 배경이 더 큰 범죄 원인이라 일갈한다. 원인을 정신 질환에 놓으면 본질이 흐려진다. 사회는 본질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이는 특정 감염병 바이러스를 박멸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방역에 있어서는 과거의 방법론을 넘어서야 한다.

경찰력 강화와 처벌 강화, 특정 집단으로의 화살 돌리기는 언제 벌어질지 모를 극단적 범행을 예비하기에 적절한 대응책이 아니다. 테러 예고에 대한 주목도,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대중화된 디지털 환경, 범행 대상 선정의 무차별성에 집중했다면 더 나은 대안이 나왔을지 모른다. 각종 커뮤니티에 모니터링 집중 강화를 지시했다면 실효적 대책이 됐을 것이다. 영웅 심리를 조장할 수 있는 온라인 공론장에서 한시적으로 ‘살인’, ‘예고’ 등의 키워드를 잡아낸다면 적어도 허위 예고로 인한 시민 불안이 줄었을 것이다. 아키하바라 사건 이후 테러리스처럼 생겨난 ‘예고IN’ 사이트 역시 주요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범행 예고 등의 키워드를 자동 수집해 기록한다. 한 평범한 웹 프로그래머가 만들었다. 테러리스를 먼저 내놓았어야 하는 건 정부였다.

무차별성에 대한 대응으로는 차라리 정당방위로 인정되는 호신용품을 지급하거나 사고 대책 매뉴얼 등을 발 빠르게 마련했어야 한다. 지난 8월 7일 허벅지를 흉기로 찔린 한 피해자는 범인을 발로 차 넘어뜨리고 한 차례 더 발로 찬 뒤 흉기를 빼앗았다가 상해 피의자가 됐다.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한 면책, 각종 처벌 강화 규정만큼 중요하게 사법 당국이 해야 할 일은 시민들에게 정당방위에 대한 투명한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시가 급하다. 이번에도 예방의 골든타임을 놓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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