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경제가 위기인 이유

2023년 9월 6일, explained

유럽 최강국 독일이 유럽의 병자로 거듭나게 생겼다.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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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유럽의 강자이던 독일이 위기에 처했다. 올해 주요 7개국(G7) 대부분이 성장을 기대하는 가운데, 독일이 유일하게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독일의 국내 총생산(GDP)이 0.3퍼센트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이 ‘유럽의 병자’가 되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독일 내부에서도 경제 위기를 경고하는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독일의 좋은 시절이 끝나가고 있다.

WHY NOW

독일의 경제 부진은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은행은 나홀로 침체 중인 독일의 산업 구조가 한국과 닮은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중국 의존도 높은 제조업 국가에, 고령화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허덕이는 독일은 왜 위기를 겪고 있으며 어떻게 타개하려 할까. 독일의 현재는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 독일을 알면, 우리에게도 힌트가 될 것이다.
독일 경제는 왜 무너지고 있을까

독일의 문제점으로 꼽히는 건, 너무 많다. IMF는 독일이 중국에 의존하는 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 러시아에 의존하는 에너지 구조, 관료주의에 의존하는 행정 구조를 지녔다고 지적한다.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의 보수적인 은행 시스템을 원인으로 꼽는다. 한국의 일부 언론은 탈원전이 근본 원인이라 말한다. 독일의 경제 연구소들도 제조업, 관료주의 등 각자의 원인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들이 공통적으로 짚는 한 가지 원인이 있다. 부족한 인력이다. 그리고 그 어떤 보고서에서도 제대로 짚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독일이 분단을 완벽히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독일 통일 30년 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 1990년 동독은 해체되고, 독일연방공화국은 마침내 한 나라가 된다. 그러나 서독과 동독은 2023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다르다. 동독 사람들은 여전히 서독에 비해 700유로가량 적은 월 급여를 받고 있다. 한국 돈으로 100만 원 가까운 돈이다. 독일 통일 이후 동독 경제는 붕괴됐다. 동독은 주로 시골 지역으로, 기반을 둔 대기업이 몇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노동생산성과 소득이 서독의 85퍼센트 수준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정주 여건이나 전문 인력 부족 등 투자 환경은 취약하다. 성장 동력 없는 동독은 통일 후 30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또 유럽 최대 경제 국가라는 독일의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낙후된 지역으로 유지돼 왔다.

동독의 3등 시민

동독의 젊고 유능한 인재들은 기회를 찾아 서독으로 이주한다. 동독은 고령층이 거주하는 시골로 남았다. 한국으로 치면 젊은 인구를 흡수하는 서울과 지방 간의 관계를 떠올릴 수 있다. 동독 주민들에겐 자연스럽게 2등 시민이라는 패배감이 자리잡는다. 이에 더해 독일을 이끌던 메르켈 전 총리는 2010년대 들어 이민자에게 문을 연다. 동독 주민들에게 이민자는 일자리와 복지 혜택을 뺏어가는 경쟁자로 인식됐다. 반난민 정서와 함께 동독 사람들은 스스로를 서독 사람, 이민자 다음인 3등 시민으로 여기게 됐다. 그 결과, 동독 지역은 서독에 비해 이민자 수가 확연히 적었으나 서독에 비해 이민자에 대한 증오 범죄는 10배에 이르렀다. 좌절감과 분노가 커진 동독에는 극우가 득세한다.

동독 발전의 함정

위기를 느낀 정부는 동독 지역을 발전시키고자 해외 첨단 기업의 공장을 동독에 유치한다. 2021년 캐나다의 록테크리튬이 유럽의 첫 번째 공장 부지로 동독 구벤 시를 선택했다. 테슬라 역시 브란덴부르크에 첫 유럽 공장을 짓는다. 인텔과 TSMC도 구동독 지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 독일 정부가 이들에게 제공한 것은 109억 달러의 보조금 패키지다. 동독의 넓은 땅, 낮은 임금 등 기존의 낙후한 경제 수준은 기회가 됐다. 올라프 숄츠 총리도 동독이 “매력적인 성장 엔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회의 땅이기만 할까. 전기차, 반도체 등 미래지향적인 산업이 들어왔지만 동독에는 자격을 갖춘 노동자가 부족하다. 경제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한국과 독일의 닮은 꼴

바로 이 지점이 한국은행이 지적한 한국과 독일의 닮은 꼴이다. 고령자와 비숙련 노동자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노동 시장 구조는 성장을 제약할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부족한 첨단 산업이 들어온대도, 이 산업을 받쳐줄 숙련된 노동자는 부족하다. 한국에서 지금 당장 인력 부족 문제에 시달리는 곳들은 대부분 충분히 발전된 서울이 아니라 지방의 산업 도시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의 산업계와 농어촌 지역은 이 문제를 외국인 근로자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불황 속에서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자동차 업계의 협력업체 공장, 조선업계의 조선소는 외국인 없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

이민자가 살 만한 곳

인력이 부족한 독일은 이주를 장려한다. 시민권 획득에 필요한 자격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식이다. 기존 이민자가 시민권을 얻는 데 8년이 걸렸다면, 개정된 국적법하에서는 이것이 5년 안에 가능해진다. 독일어를 잘하거나 성과가 좋으면 3년 만에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주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일자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나라로 국경을 건너 가지 않는다. 교육을 받고 숙련도가 높은 인력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단순히 제도를 넘어 그들이 정착할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독일은 지금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인 곳일까? 독일에 온 이민 노동자들은 3~4년 후 다시 본국으로 유턴한다. 거주권이 만료된 후 연장되지 않은 법적인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문화 문제가 거론된다. 비유럽 국가 출신의 고급 인력 3분의 2는 당국이나 직장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비자 문제로 인해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한국의 인력난과 이민 정책

지금 전 세계는 숙련 노동 인구가 부족하다는 문제를 겪고 있다. 출생률 저하로 인력난이 실감나기 시작하자 우리 정부 역시 이민을 해법으로 꺼내 들었다. 특히 한동훈 장관이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국익을 위해 이민 개혁으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단기 비전문 취업 비자(E-9)를 받아 한국에 온 비숙련 노동자도 열심히 일하고 한국에 적응하면 숙련 장기 취업 비자(E-7-4)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하고, 장기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사람 수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지금 우리의 이민 정책 모델은 독일이다. 숙련된 영역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주해 온 노동자들이 한국 경제에 기여할 만큼 잘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을 만한 정책은 아직 공백 상태다.

IT MATTERS

독일은 낙후한 동독 지역에 첨단 산업을 입지시켰다. 하지만 정작 거기서 일할 사람은 없다. 외국인 노동자를 받았으나 동독 사람들은 이민자와 오히려 갈등을 겪고 이민자를 내쫓자고 말하는 사람을 선거에 당선시키고 있다. 동독의 이런 모습은 독일 경제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기존에 압력을 받던 사회 문제들이 경제 분야에서 폭발한 결과, 유럽에서 가장 파워풀하던 국가는 이제 역성장 기조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지금 한국도 적극적으로 이민자를 받으려 한다. 그러나 이주민들은 한국에서 자신의 인권이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다고 말한다. 바뀐 제도 안에서도 10년 동안 성실히 일해야만 정주권이 있고 가족을 초청할 수 있는 숙련 인력 비자를 받을 수 있다. 박노자 교수는 이 방안을 내놓은 한동훈 장관에게, 본인은 배우자와 자녀와 이별해서 외국에서 10년 동안 혼자 지내며 일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이민 철학은 이민자를 이웃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독일에서는 사회가 초래한 경제 문제가 점점 커질 것이다. ‘독일의 국익만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극우 대안당은 본격적으로 집권을 준비하며 이민자를 돌려보내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 없이 산업은 돌아가지 않는다. 이민자의 추방이 독일에 불러올 결과는 침체의 연장뿐이다. 독일이 극복하지 못한 이민 갈등 문제는 우리도 곧 직면할 예정이다. 우리는 이민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전부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과 처우 문제가 속속들이 드러나 왔던 사회이기 때문이다. 독일과 비슷한, 독일과 닮아갈 한국이 생각해야 할 지점이다. 우리는 이민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철학 없이는 독일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백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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