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코트 이후

2023년 11월 6일, explained

새 대법원장이 온다. 새 대법원은 어떤 모습일까.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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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주중 대법원장 후보자를 지명할 전망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임기 종료로 퇴임하면서 공석이 된 지 40여 일 만이다. 김형두 헌법재판소 재판관, 조희대 전 대법관, 정영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된다.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후보자를 지명한 이후 국회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표결을 거쳐 임명된다.

WHY NOW

윤석열 대통령의 사법 개혁 방향은 간명하다. 문재인 정부의 조치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이다. 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가 대표적이다. 법원 개혁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김명수 코트(court)가 구축한 진보 벨트를 깨는 것이 목표인데, 이미 달성했다. 대법원은 보수 과반이 됐다. 그런데 여기서 멈출 것 같지 않다. 역대 가장 보수적이고, 가장 다양성이 부족한 대법원이 될 수 있다.

걸리적거리는 대법원

대통령은 대법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단서가 되는 발언이 있다. 올해 3월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한일 관계 정상화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선제적으로 걸림돌을 제거해 간다면 분명 일본도 호응해 올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걸림돌’이란 2018년 대법원이 일본 전범 기업의 한국인 강제 동원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다. 대법원 때문에 한일 관계 진전이 어렵다는 뜻이다. 지난 8월에는 대법원에서 불과 3개월 전에 유죄 확정 판결이 난 김태우 전 서울 강서구청장을 광복절 특사로 사면하기도 했다. 

사문화(死文化)된 제청권

걸림돌은 치워야 한다. 올해 7월 대법관 두 명이 임기를 마쳤다. 헌법은 “대법관은 대법원장 제청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제청, 동의, 임명의 주체가 다르다. 그런데 당시 김명수 대법원장이 제청하기도 전에 ‘특정 이념 성향’ 후보를 제청할 경우, 대통령이 임명을 거부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용산이 콕 집어 반대한 후보 두 명은 모두 여성이었다. 결국 김 대법원장은 중도 성향의 다른 후보를 제청했고, 대통령이 임명했다.

가장 진보적인 대법원

그리고 이번 주에 윤 대통령은 새 대법관 후보자를 지명한다. 보수라는 정치 철학을 법 해석으로 지탱해 줄 사람, 제청권과 임명권의 우선순위를 두고 다툴 여지가 없는 사람을 지명할 것이다. 윤 대통령만 그러는 건 아니다. 6년 전에도 그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기수, 경력 같은 관행을 깨고 진보 성향의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대법원장에 파격 발탁했다. 문 전 대통령은 대법관 13명을 임명했는데, 진보 성향이 8명이었다. 진보 성향이 가장 강한 대법원이었다.

가장 보수적인 대법원

진보 대법원은 되고 보수 대법원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그 정도다. 윤 대통령은 연일 이념을 강조하고, 뉴라이트를 중용하고 있다. 지금 여당에서 대통령보다 왼쪽에 있는 사람이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짧은 임기 동안 대법관 5명을 임명했는데, 모두 보수 성향이었다. 윤 대통령은 임기 중에 대법원장 1명과 대법관 12명을 임명한다. 지금 같아선 윤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보다 더 보수적으로 보인다. 13명이 모두 중도·보수 성향으로 채워질 수 있다. 게다가 내각 구성을 봤을 때 다양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서울대, 판사 출신, 50대 남성, 보수

김명수 코트는 좌편향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다양성은 있었다. 비(非)서울대, 비판사, 여성 대법관이 있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 1명과 대법관 12명, 총 13명으로 이뤄진다. 이들이 서로 다른 시각과 관점으로 새로운 사회적 기준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서울대 법대, 판사 출신, 50대 남성, 보수 성향, 평균 재산 38억 원, 서초동 아파트에 사는 사람으로만 채워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회적 약자와 인권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러니 버스 요금통에서 800원을 꺼내 커피를 사먹은 버스 기사를 해고한 것은 정당하고, 담당 사건의 변호사에게 룸살롱에서 85만 원어치 접대를 받은 검사의 면직은 가혹하다며 면직을 취소하는 판결이 나온다.

토론이 없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3명, 홀수인 이유는 최종 결정을 다수결로 하기 때문이다. 7명 이상 찬성하면 국가 최고 법원의 최종 견해가 된다. 그런데 대법원에 전통적인 엘리트 법관만 모아 놓으면 토론이 되지 않는다. 7 대 6이 아니라 13 대 0만 나온다. 같은 환경에서 나고 자라 같은 코스를 밟아 온 사람들이라 생각이 비슷하다. 소수 의견이 나오지 않는다. 소수 의견은 해당 재판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법 해석을 넓혀 하급심에서 인용될 수 있다. 수십 년 전 소수 의견이 시간이 흘러 다수 의견이 되는 일도 많다. 대법원이 서오남(서울대, 50대, 남성)으로만 이뤄지면 법리 해석이 좁아지고 시대에 뒤떨어질 수 있다.

독수리 5남매

가장 다양성이 컸고 토론이 치열했던 대법원은 언제였을까. 윤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의 이용훈 코트다. 노 전 대통령의 사법 개혁 키워드는 다양성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대법관 12명을 임명했다. 진보가 5명, 중도·보수가 7명이었다. 첫 여성 대법관도, 진보 대법관 5명을 일컫는 ‘독수리 5남매’도 이때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은 안대희, 김황식 등 보수 성향이 강한 대법관도 임명했다. 이 시기 대법원은 보수와 진보의 스펙트럼이 가장 넓었고, 생각이 다른 만큼 치열하게 토론했다.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다섯 번에 한 번꼴로 소수 의견이 나왔고, 의외로 전원 일치 판결도 많았다. 토론과 설득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IT MATTERS

대법원의 인적 구성은 우리 사회와 닮아 있어야 한다. 성별, 연령, 정치 성향, 출신 지역 등이 다양하게 꾸려져야 국민 각계각층의 이해를 고려할 수 있다. 특히 정치가 대변하지 못하는 약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국민의 비판을 받는 국회도 비례대표제 등을 통해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법원만 예외다. 독수리 5남매의 한 명이었던 전수안 전 대법관은 2012년 10월 퇴임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끝으로, 여성 법관들에게 당부합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전체 법관의 다수가 되고 남성 법관이 소수가 되더라도, 여성 대법관만으로 대법원을 구성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전체 법관의 비율과 상관없이 양성 평등하게 성비의 균형을 갖춰야 하는 이유는, 대법원은 대한민국 사법부의 상징이자 심장이기 때문입니다. 헌법 기관은 그 구성만으로도 벌써 헌법적 가치와 원칙이 구현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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