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 성심당의 도시, 대전이 만들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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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주혜진
에디터 김혜림
발행일 2023.11.28
리딩타임 1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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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지금, 깊이 읽어야 하는 이유

노잼도시가 늘어 가는 동안, 서울은 인스타그래머블한 위세를 떨친다.
한국의 지방 도시들은 어쩌다 노잼이 됐을까?


성심당밖에 들를 곳이 없다는 대전의 오래된 소문은 노잼도시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재미없는 도시는 궁금하지 않다. 궁금하지 않은 도시는 매력이 없다. 매력이 없는 도시에는 이야기가 없다. 그런데, 이야기가 없으니 또 재미없는 도시가 된다. 서울은 이와 정확히 반대에 위치한다. 서울은 찍기만 해도 콘텐츠가 된다. 동네마다, 건물마다 이야기와 경험이 쌓인다. 지역 소멸 시대의 한국 도시에게는 그렇게 한 가지 생존 전략이 생겼다. 바로 ‘서울 같은 도시’가 되거나, 지역만의 고유성을 발명하는 것이다. 대전의 노잼도시는 이 둘 사이에 놓여 있다. 그런데 그 둘 어디에도 실제 도시의 경험과 모습, 감각이 없다. 노잼은 도시를 감싼 무감각함에서 태어날지 모른다. 그러니까 이건, 대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 소개

주혜진은 지방 정부가 만든 정책연구기관인 대전세종연구원에서 일한다.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연구원에서 대전 사람들의 삶이 조금 더 괜찮아질 방법을 고민해 왔다. 사람과 삶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을 품는 공간과 장소에 관심을 두게 됐다. 요즘엔 대전이란 도시를 규명할 수 있는 아카이빙 작업과 장소 정동(Affect) 형성을 주제로 한 연구를 ‘재미있게’ 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키노트
이렇게 구성했습니다.

1화. 프롤로그 ; 성심당 갈 때 대전 한번 들를게

2화. 지금은 지방 (소멸) 시대
‘디나이얼 지방출신’을 아십니까
지방 도시의 쪼그라드는 역사
도시를 잘 팔고 싶은 사람들

3화. 사람들은 검색창 앞에서 가장 솔직해진다
소셜 미디어가 매긴 우리 도시 성적표
‘좋아요’가 쌓이면 장소를 잃는다
지리적 능력은 장소를 만든다

4화. 언제부터 대전은 ‘노잼도시’였나
지인이 대전에 온다는데, 어떡하지?
비로소 완성된 밈, 노잼도시
성심당 빵과 칼국수만 먹고 떠나는 사람들

5화. 여기는 왜 힙하지 않은가
힙과 핫은 카페에 있다
사진이 되는 장소가 힙하다
힙과 핫은 이미 서울에 있다

6화. 있습니까, 나만의 도시를 만드는 방법?
도시 앤솔로지
도시 해킹하기
2030 여성, 스마트폰을 든 탐험가

7화. 에필로그 ; 당신의 #가 짓는 도시

8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 김포와 대전을 제대로 묻는 법


에디터의 밑줄

“서울은 ‘올라가’고 대전은 ‘내려간다.’ 대전보다 북쪽에 있으니까 올라가는 게 맞는데, 왠지 위에 있으니까 서울 사람들은 상전 같다. 20세기 초 표준어가 된 건 서울 중산층의 말이고, 서울말을 곧 표준어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서울 사투리’라는 말 자체에 발끈한다. 서울 외 다른 곳은 ‘지역 혹은 지방’이라 구분해서 부르지만, 서울은 그냥 서울이다.”

“서울은 구와 동네가 각기 개성과 특성을 가진다. 종로구엔 광화문이 있고, 한옥이 지닌 감성과 골목길의 옛 정취가 있다. 심지어 탑골공원의 할아버지들과 80년대풍 상점들은 종로가 만들어 낸 레트로풍 스타일이 됐다. TV 드라마에서 한 번쯤 들어본 “예, 성북동입니다”는 부잣집 사모님의 단골 멘트였고, 성북동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어도 성북동을 저택과 외교 공관, 갤러리와 연결해 상상할 수 있게 했다. 대치동은 대학 입시 학원가로, 성수동은 트렌디한 카페 거리로 소환된다. 이렇게 서울은 다채롭고 다양하다.”

“세세하고 다양한 정보의 양이 서울을 키운다. 우리가 ‘크다’라고 생각하는 도시의 크기는 사실 행정 구역의 실질적 크기와는 상관없다. 지리적 크기가 아니라 서울에 대한 지식과 정보의 양이 크다. 다양한 매체와 방법을 통해 전달된 서울에 대한 지식은 서울을 다채롭게 인식하게 하고 입체적으로 기억하게 한다. 알면 알수록 서울은 머릿속에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오르고, 길어지고, 커진다.”

“원본이 굳이 복사본을 궁금해할 필요가 없듯이, 그 자체로 중심이고 기준이며 다른 도시들의 워너비인 서울은 다른 도시를 참고하고 비교해서 새로운 정체성으로의 변화나 확장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 이런 ‘서울을 나의 도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안정돼 있고, 편안하며, 부대낌 없이 해맑을 수 있다. 이들이 지역 특색과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정체성을 깊이 생각하는 것은 늘 ‘특별하다’고 규정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장소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 장소와 관계를 맺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 기회다. ‘지리적 능력’을 나와 세계에 대한 ‘탐구 자세’라고 달리 표현할 수도 있다. 스마트폰을 들고 처음 보는 건물의 특이한 외벽을 찍기 전에 자신이 선 위치를 생각해 보자. 카메라의 초점을 조절해 원하는 대상을 집중 조명할 때처럼, 이 공간을 보고 있는 자신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면 공간을 더 잘 감각할 수 있다. ‘이 건물 앞에 선 나는 누구인가?”

“그래서 사실 성심당만 찾은 사람들은, 오히려 대전이란 장소와 더 멀어진다. 대전의 노잼을 찾아온 사람(방문자)과 대전에서 꾸준히 ‘유잼’을 발견해 온 사람(원주민)이 섞여 새로운 경험과 정서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대전의 특징 하나만을 보고 찾아온 이들은 이런 기회를 마주하지 못한다. ‘대전이 노잼인’ 사람들과 ‘아니 왜 대전이 노잼이야? 이렇게 유잼인데!’라고 발끈하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은 점점 벌어진다.”

“사람들은 대전의 힙·핫 플레이스를 얘기하면서 그곳을 서울과 비교한다. 서울은 대전의 매력적인 장소를 얘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준이자 비교 대상이다. 블로그 텍스트에서 서울은 멋지고 매력적인 곳을 판단할 수 있는 표준으로 쓰인다. 서울에서 유행한 것, 다시 말해, 서울 사람들이 인정한 것이 대전에 오면 ‘대전의 힙과 핫’이 된다.”

“표준이 있으면 비교가 쉬워지고, 경쟁의 원칙을 세우는 것도 가능해진다. 무엇보다도 순위 매기기가 쉬워진다. 어느 공간이, 장소가 그리고 도시가 더 매력적인가 혹은 더 힙하고 핫한가를 표준이 된 서울을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도시끼리의 비교와 순위 매기기가 어떻게 가능하냐고 따지고 싶겠지만, 사실 우린 은밀하고도 정확하게 순위를 매겨 왔다.”

“이처럼 도시의 장소성을 느끼고 기록하는 과정은 나의 위치와 입장을 자각하는 순간의 기록이다. 기록자는 장소를 경험하면서 자신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장소를 통해서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내가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장소와 관계를 맺으며 알게 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당신은 이 도시의 주인이 되어본 적 있었나? 혹시 주인이 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방해 온 것은 아닐까. 모방 끝에 결국 그 도시를 ‘노잼’이라 느낀 것은 아닐까. 직접 주체적으로 도시 장소성을 만들고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나만이 알고 느낀 것을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다면 ‘노잼 도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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