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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4는 어떻게 할리우드 최고의 제작사가 됐을까?
2024년 1월 16일, explained
독립 영화사 A24는 마블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할리우드의 독보적인 제작사가 됐을까.
〈성난 사람들〉 포스터. 한국계 노동자와 중국계 이민자가 마트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시비가 붙으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드라마다. 사진: IMDb
NOW THIS
한국계 감독과 배우들이 활약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원제 BEEF)〉이 14일 북미 비평가가 수여하는 크리틱스 초이스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4관왕을 차지했다. 〈성난 사람들〉은 앞서 지난 7일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3관왕에 올랐다. 15일 열리는 에미상 시상식에도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WHY NOW
〈성난 사람들〉의 제작사는 A24다. 영화 〈미나리〉, 〈문라이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을 제작한 독립 영화사다. A24는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제작사다. 독특한 인디 영화와 예술 영화를 상업적으로 연달아 성공시켰고, 평단의 찬사를 받고,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설립 10년 만에 회사 가치는 25억 달러까지 올랐다. A24는 마블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할리우드의 독보적인 제작사가 됐을까.
틈새 공략
A24는 이탈리아 로마와 테라모를 연결하는 고속 도로의 이름이다. 2012년 구겐하임 파트너스에서 영화 부문 투자자로 일하던 다니엘 카츠는 이 길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1993년 영화 흥행 순위 20위 중 2개가 속편이나 리메이크, 스핀오프, 프리퀄이었다. 2013년이 되면 14개로 급증한다. 영화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흥행이 불확실한 오리지널 IP보다는 실패하지 않는 시리즈 영화를 만든 것이다. 카츠는 여기서 기회를 발견했다. 대형 제작사가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고 해서 관객이 그런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카츠는 독립 영화사를 설립한 경험이 있는 데이비드 펜켈, 영화 〈리틀 미스 선샤인〉 제작을 주도한 존 호지스와 함께 2012년 미국 뉴욕에 A24를 설립한다.
스타트업의 문화 + 보수적인 재무 전략
A24는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영화사라기보다 스타트업에 가깝다. 직원들은 회사 지분을 갖고 있고, 회사는 수평적으로 운영된다. 뉴욕 본사에는 아무도 개인 사무실이 없다. 모두 개방된 홀에서 함께 일한다. 지위와 관계없이 팀원들이 아이디어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조직 문화는 개방적인데, 재무 전략은 보수적이다. 한 프로젝트에 거액을 투입하지 않고 여러 프로젝트에 소액을 베팅한다. A24는 영화 배급사로 시작했다. 영화 제작에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몇 번만 실패해도 회사가 망한다. 그래서 회사 설립 초기에는 큰 위험 없이 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배급에 집중했다. 영화제를 찾아다니며 유망한 영화의 판권을 구입하고 마케팅했다.
제한된 자원으로 경쟁이 적은 영역을 선점
A24는 텔레비전 광고를 하지 않았다. 홍보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신 A24는 인터넷을 선도적으로 활용했다. 2012년만 해도 소셜 미디어는 영화사의 주력 마케팅 채널이 아니었다. A24는 2013년 500만 달러를 투자한 〈스프링 브레이커스〉를 개봉해 3000만 달러를 벌었는데, 흥행에 페이스북 홍보가 한몫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하게 하는 홍보 이미지를 페이스북에 올려 1억 7400만 회 노출시켰고 60만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2015년 〈엑스 마키나〉를 홍보할 때는 영화 속 휴머노이드 로봇의 이미지로 틴더 가짜 계정을 만들었다. 주류 언론이 기사화하면서 화제가 됐다. 이 영화 역시 투자금 두 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위험을 헷지하는 투자 전략
2016년 A24는 영화 배급을 넘어 제작에 도전한다. 그해 〈문라이트〉를 제작한다. 엄마가 마약 중독자인 흑인 게이 소년 이야기다. 감독은 할리우드 경력이 없고 생계유지를 위해 목수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할리우드의 평범한 제작사라면 모두가 꺼릴 주제와 감독이었는데, A24는 첫 작품으로 낙점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문라이트’는 400만 달러를 써서 6500만 달러를 벌었다.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2022년에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카데미 7관왕에 올랐는데, 이 작품 역시 2500만 달러를 투자해 1억 4000만 달러를 벌었다. A24는 연간 18편 정도를 제작한다. 영화 한 편당 투자 금액은 1500~2000만 달러로, 할리우드 평균인 6500만 달러보다 훨씬 적다. 대형 스튜디오는 막대한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해 거의 모든 영화를 성공시켜야 하지만, A24는 한두 편만 흥행작으로 만들어도 한 해 예산을 조달할 수 있다.
마블의 대척점, 다양성
이렇게 여러 영화에 저예산을 투입하는 보수적인 재무 전략 덕분에 다양성과 창의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한두 편 망해도 큰 타격은 없으니 감독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둔다. 회사 설립 초기부터 공동 창업자 셋은 대담하고 독창적인 생각을 가진 특이한 작가를 찾기로 했다. 그들은 남다른 관점을 가진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라면 할리우드의 진부한 속편에 대한 해독제를 찾는 젊은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른 제작사들은 감독의 창작 본능을 억제하려는 경우가 많지만, A24는 정반대의 전략을 택했다. 오히려 그 창작 본능, 또는 창작의 뿌리에 의존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흑인 게이 소년의 성장기,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계 미국인 중년 여성의 이야기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 창작자의 내밀한 이야기가 영상에 고스란히 담기면서 A24 영화의 관객은 전통적인 예술 영화 애호가에서 훨씬 더 넓은 전 세계 인구 집단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강력한 브랜딩과 팬덤 이코노미
많은 사람이 스스로 영화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을 워너 브라더스의 팬,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팬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A24는 예외다. 영화나 캐릭터가 아니라 영화사 팬덤이 존재한다. A24는 다른 스튜디오와 달리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하다. A24는 영화를 고르고 감독을 고를 때 그들만의 취향이 있다. 할리우드 경력이 없어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하게 있는 감독을 선택한다. 영화를 보고 제작사를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다. 다른 말로 하면 브랜딩이다. A24는 강력한 브랜딩과 팬덤을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본업은 여전히 영화 스튜디오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음악, 출판, 팟캐스트, 숍, 물리적 경험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팬들은 A24의 영화뿐만 아니라 티셔츠를 기꺼이 산다.
안정적인 수입 확보를 위한 멤버십
영화 사업이 도박에 가까운 이유는 결과를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뭐가 흥행하고 뭐가 실패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A24는 이 불안정한 비즈니스를 통제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A24는 2022년 멤버십 서비스를 출시해 안정적인 수익원을 추가했다. 한 달에 5달러를 내면 ‘A24 All Access(AAA24)’ 멤버가 될 수 있다. 멤버가 되면 계간지를 보내 주고, 무료 영화 티켓, 굿즈 할인 혜택, 한정판 상품 접근 권한 등을 준다. 회원 수는 공개되지 않았는데, 인스타그램 팔로워 225만 명 중 5퍼센트만 멤버십으로 전환해도 연간 수익이 675만 달러다. 소규모지만 안정적인 수익원이 될 수 있다. 물론 A24의 멤버십 서비스가 넷플릭스처럼 성장할 수는 없다. 그건 A24도 기대하는 바가 아니다. A24는 멤버십으로 영화 티켓을 판매하려는 게 아니라 관객과 직접적인 관계를 구축하려 한다. 멤버십 전용 앱에서 새 프로젝트를 미리 엿보고, 감독 인터뷰 같은 독점 콘텐츠를 볼 수 있다. 매개 없이 스튜디오와 팬이 직접 소통할 수 있다.
IT MATTERS
2022년 A24는 2억 25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당시 A24의 가치는 25억 달러로 평가됐다. 설립 10년 만에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고 가치가 3조 원이 넘는 회사가 됐지만, 시가 총액 1654억 달러인 디즈니에 비하면 아직 구멍가게 수준이다. 그래서 A24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A24는 “캐릭터, 작가 중심의 드라마를 강조하지 않는” 새로운 전략의 일환으로 액션과 대형 IP 프로젝트에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개봉 예정인 〈시빌 워〉는 75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돼 A24 역대 최고 제작비를 기록했다. 즉 A24는 저예산 예술 영화를 만드는 독립 영화사에 머무르지 않고 ‘대형 부티크’가 되고자 한다.
A24의 덩치를 단숨에 키울 수 있는 전략이지만, A24에 열광했던 팬들에겐 실망스러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아직 기대할 부분은 그 대형 IP를 만드는 곳이 A24라는 점이다. A24는 창작자의 가치를 옹호하는 데 핵심 비즈니스 모델을 두고 있다. 창작자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실제로 2023년 미국 작가 조합 파업에서 작가 조합이 파업을 하지 않은 유일한 제작사가 A24였다. A24는 창의력과 비즈니스 통찰을 결합해 핵심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고, 인접 시장으로 제품을 다각화해 왔다. 그 중심에는 창업 초기처럼 여전히 창의적인 인재가 있다. 전 세계에서 14억 달러를 벌어들인 상업 영화 〈바비〉를 연출한 그레타 거윅도 A24에서 감독 데뷔를 했다. A24가 창업 미션을 잊지 않는다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깨고 ‘예술적인’ 블록버스터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계 감독과 배우들이 활약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원제 BEEF)〉이 14일 북미 비평가가 수여하는 크리틱스 초이스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4관왕을 차지했다. 〈성난 사람들〉은 앞서 지난 7일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3관왕에 올랐다. 15일 열리는 에미상 시상식에도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WHY NOW
〈성난 사람들〉의 제작사는 A24다. 영화 〈미나리〉, 〈문라이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을 제작한 독립 영화사다. A24는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제작사다. 독특한 인디 영화와 예술 영화를 상업적으로 연달아 성공시켰고, 평단의 찬사를 받고,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설립 10년 만에 회사 가치는 25억 달러까지 올랐다. A24는 마블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할리우드의 독보적인 제작사가 됐을까.
틈새 공략
A24는 이탈리아 로마와 테라모를 연결하는 고속 도로의 이름이다. 2012년 구겐하임 파트너스에서 영화 부문 투자자로 일하던 다니엘 카츠는 이 길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1993년 영화 흥행 순위 20위 중 2개가 속편이나 리메이크, 스핀오프, 프리퀄이었다. 2013년이 되면 14개로 급증한다. 영화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흥행이 불확실한 오리지널 IP보다는 실패하지 않는 시리즈 영화를 만든 것이다. 카츠는 여기서 기회를 발견했다. 대형 제작사가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고 해서 관객이 그런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카츠는 독립 영화사를 설립한 경험이 있는 데이비드 펜켈, 영화 〈리틀 미스 선샤인〉 제작을 주도한 존 호지스와 함께 2012년 미국 뉴욕에 A24를 설립한다.
스타트업의 문화 + 보수적인 재무 전략
A24는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영화사라기보다 스타트업에 가깝다. 직원들은 회사 지분을 갖고 있고, 회사는 수평적으로 운영된다. 뉴욕 본사에는 아무도 개인 사무실이 없다. 모두 개방된 홀에서 함께 일한다. 지위와 관계없이 팀원들이 아이디어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조직 문화는 개방적인데, 재무 전략은 보수적이다. 한 프로젝트에 거액을 투입하지 않고 여러 프로젝트에 소액을 베팅한다. A24는 영화 배급사로 시작했다. 영화 제작에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몇 번만 실패해도 회사가 망한다. 그래서 회사 설립 초기에는 큰 위험 없이 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배급에 집중했다. 영화제를 찾아다니며 유망한 영화의 판권을 구입하고 마케팅했다.
제한된 자원으로 경쟁이 적은 영역을 선점
A24는 텔레비전 광고를 하지 않았다. 홍보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신 A24는 인터넷을 선도적으로 활용했다. 2012년만 해도 소셜 미디어는 영화사의 주력 마케팅 채널이 아니었다. A24는 2013년 500만 달러를 투자한 〈스프링 브레이커스〉를 개봉해 3000만 달러를 벌었는데, 흥행에 페이스북 홍보가 한몫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하게 하는 홍보 이미지를 페이스북에 올려 1억 7400만 회 노출시켰고 60만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2015년 〈엑스 마키나〉를 홍보할 때는 영화 속 휴머노이드 로봇의 이미지로 틴더 가짜 계정을 만들었다. 주류 언론이 기사화하면서 화제가 됐다. 이 영화 역시 투자금 두 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위험을 헷지하는 투자 전략
2016년 A24는 영화 배급을 넘어 제작에 도전한다. 그해 〈문라이트〉를 제작한다. 엄마가 마약 중독자인 흑인 게이 소년 이야기다. 감독은 할리우드 경력이 없고 생계유지를 위해 목수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할리우드의 평범한 제작사라면 모두가 꺼릴 주제와 감독이었는데, A24는 첫 작품으로 낙점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문라이트’는 400만 달러를 써서 6500만 달러를 벌었다.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2022년에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카데미 7관왕에 올랐는데, 이 작품 역시 2500만 달러를 투자해 1억 4000만 달러를 벌었다. A24는 연간 18편 정도를 제작한다. 영화 한 편당 투자 금액은 1500~2000만 달러로, 할리우드 평균인 6500만 달러보다 훨씬 적다. 대형 스튜디오는 막대한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해 거의 모든 영화를 성공시켜야 하지만, A24는 한두 편만 흥행작으로 만들어도 한 해 예산을 조달할 수 있다.
마블의 대척점, 다양성
이렇게 여러 영화에 저예산을 투입하는 보수적인 재무 전략 덕분에 다양성과 창의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한두 편 망해도 큰 타격은 없으니 감독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둔다. 회사 설립 초기부터 공동 창업자 셋은 대담하고 독창적인 생각을 가진 특이한 작가를 찾기로 했다. 그들은 남다른 관점을 가진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라면 할리우드의 진부한 속편에 대한 해독제를 찾는 젊은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른 제작사들은 감독의 창작 본능을 억제하려는 경우가 많지만, A24는 정반대의 전략을 택했다. 오히려 그 창작 본능, 또는 창작의 뿌리에 의존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흑인 게이 소년의 성장기,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계 미국인 중년 여성의 이야기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 창작자의 내밀한 이야기가 영상에 고스란히 담기면서 A24 영화의 관객은 전통적인 예술 영화 애호가에서 훨씬 더 넓은 전 세계 인구 집단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강력한 브랜딩과 팬덤 이코노미
많은 사람이 스스로 영화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을 워너 브라더스의 팬,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팬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A24는 예외다. 영화나 캐릭터가 아니라 영화사 팬덤이 존재한다. A24는 다른 스튜디오와 달리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하다. A24는 영화를 고르고 감독을 고를 때 그들만의 취향이 있다. 할리우드 경력이 없어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하게 있는 감독을 선택한다. 영화를 보고 제작사를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다. 다른 말로 하면 브랜딩이다. A24는 강력한 브랜딩과 팬덤을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본업은 여전히 영화 스튜디오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음악, 출판, 팟캐스트, 숍, 물리적 경험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팬들은 A24의 영화뿐만 아니라 티셔츠를 기꺼이 산다.
안정적인 수입 확보를 위한 멤버십
영화 사업이 도박에 가까운 이유는 결과를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뭐가 흥행하고 뭐가 실패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A24는 이 불안정한 비즈니스를 통제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A24는 2022년 멤버십 서비스를 출시해 안정적인 수익원을 추가했다. 한 달에 5달러를 내면 ‘A24 All Access(AAA24)’ 멤버가 될 수 있다. 멤버가 되면 계간지를 보내 주고, 무료 영화 티켓, 굿즈 할인 혜택, 한정판 상품 접근 권한 등을 준다. 회원 수는 공개되지 않았는데, 인스타그램 팔로워 225만 명 중 5퍼센트만 멤버십으로 전환해도 연간 수익이 675만 달러다. 소규모지만 안정적인 수익원이 될 수 있다. 물론 A24의 멤버십 서비스가 넷플릭스처럼 성장할 수는 없다. 그건 A24도 기대하는 바가 아니다. A24는 멤버십으로 영화 티켓을 판매하려는 게 아니라 관객과 직접적인 관계를 구축하려 한다. 멤버십 전용 앱에서 새 프로젝트를 미리 엿보고, 감독 인터뷰 같은 독점 콘텐츠를 볼 수 있다. 매개 없이 스튜디오와 팬이 직접 소통할 수 있다.
IT MATTERS
2022년 A24는 2억 25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당시 A24의 가치는 25억 달러로 평가됐다. 설립 10년 만에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고 가치가 3조 원이 넘는 회사가 됐지만, 시가 총액 1654억 달러인 디즈니에 비하면 아직 구멍가게 수준이다. 그래서 A24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A24는 “캐릭터, 작가 중심의 드라마를 강조하지 않는” 새로운 전략의 일환으로 액션과 대형 IP 프로젝트에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개봉 예정인 〈시빌 워〉는 75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돼 A24 역대 최고 제작비를 기록했다. 즉 A24는 저예산 예술 영화를 만드는 독립 영화사에 머무르지 않고 ‘대형 부티크’가 되고자 한다.
A24의 덩치를 단숨에 키울 수 있는 전략이지만, A24에 열광했던 팬들에겐 실망스러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아직 기대할 부분은 그 대형 IP를 만드는 곳이 A24라는 점이다. A24는 창작자의 가치를 옹호하는 데 핵심 비즈니스 모델을 두고 있다. 창작자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실제로 2023년 미국 작가 조합 파업에서 작가 조합이 파업을 하지 않은 유일한 제작사가 A24였다. A24는 창의력과 비즈니스 통찰을 결합해 핵심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고, 인접 시장으로 제품을 다각화해 왔다. 그 중심에는 창업 초기처럼 여전히 창의적인 인재가 있다. 전 세계에서 14억 달러를 벌어들인 상업 영화 〈바비〉를 연출한 그레타 거윅도 A24에서 감독 데뷔를 했다. A24가 창업 미션을 잊지 않는다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깨고 ‘예술적인’ 블록버스터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