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카는 없다

2024년 3월 4일, explained

애플이 10년을 공들인 애플카 프로젝트를 중단한다.

스티브 잡스도 애플의 자동차 시장 진출에 관심이 많았다. 2010년 스티브 잡스의 제안에 따라 브라이언 톰슨이 스케치한 자동차 인테리어. 사진: 브라이언 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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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10년을 공들인 애플카 프로젝트를 중단한다. 블룸버그가 2월 27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애플은 자율주행 전기차를 개발하던 스페셜 프로젝트 그룹을 해산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직원 2000명을 AI 부서로 재배치할 계획이다. 이들은 애플의 최우선 과제인 생성 AI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애플은 애플카 개발에 1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WHY NOW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자동차를 만드는 일을 이렇게 표현한다. “시제품은 쉽고, 대량 생산은 어렵고, 긍정적인 현금 흐름 창출은 극히 어렵다.” 애플은 자동차 프로젝트에 10년간 100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시제품조차 만들지 못하고 중단했다. 세계 최고의 IT 기기 제조사이자 소프트웨어 회사인 애플은 왜 자동차 제조에 실패했을까.

잘못된 출발

2014년 애플이 애플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자율주행차 업계는 호황이었다. 구글은 캘리포니아에서 프로토타입 테스트를 시작했고, 2017년이면 무인차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자율주행 스타트업이 쏟아졌고 투자금이 몰렸다. 당시 애플은 애플 워치 개발을 마친 상황이었다. 많은 엔지니어가 새 프로젝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팀 쿡 애플 CEO는 자율주행 붐에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또 엔지니어들이 테슬라로 이직하는 걸 막기 위해 애플카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리더십 혼란

애플은 뭘 만들지 갈팡질팡했다. 그간 프로젝트 리더가 네 번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방향성도 바뀌었다. 2014년 프로젝트의 첫 리더였던 스티브 자데스키 부사장은 운전 보조 기능을 갖춘 전기차를 만들려고 했다. 2년 뒤 그가 회사를 떠나자 애플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로 방향을 전환한다. 최근에는 애플 워치 개발을 이끈 케빈 린치가 프로젝트를 맡으며 자율주행을 버리고 다시 전기차 제작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올해 초 애플카 개발을 아예 접고 생성 AI에 집중하기로 한다.

테슬라 인수 제안 거절

애플이 전기차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기회도 있었다. 2017년 테슬라는 모델3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일론 머스크는 팀 쿡에게 지금 테슬라 시가 총액의 10분의 1인 600억 달러에 테슬라 인수를 제안했는데, 팀 쿡은 만남을 거부했다. 강력한 브랜드와 충성도 높은 고객을 보유한 애플은 브랜드 가치를 얻기 위해 회사를 인수하지 않는다. 자체 개발을 선호해 인수를 잘 하지도 않고, 하더라도 기술과 인재를 얻기 위해 한다. 당시 애플의 현금 보유량은 1550억 달러였다. 테슬라를 인수하기보다 테슬라의 고급 인력을 스카우트해 전기차를 자체 개발하는 방식을 택했다.

파트너십 부족

애플의 비밀주의도 프로젝트 좌초의 원인이 됐다. 애플은 10년간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자동차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제대로 된 파트너사를 두지 않았다. 애플은 현대차와 닛산을 포함해 여러 완성차 업체와 협업을 논의했지만, 성사된 곳은 없었다. 애플이 완성차 업체를 파트너사가 아니라 OEM 다루듯 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애플카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제권을 모두 요구했는데, 완성차 업체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애플의 이런 접근은 전기차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IT 기업들과 대조된다. 소니는 혼다와, 샤오미는 베이징자동차그룹과 협력하기로 했는데, 애플은 누구와도 동등하게 손잡으려 하지 않았다.

자율주행의 늪

2017년이면 무인차가 상용화될 거라는 구글의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자율주행 기술은 생각보다 더디게 발전했다. 당초 애플은 운전대와 페달이 없는 레벨5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려 했지만, 운전자가 핸들을 잡아야 하는 레벨2+로 목표치를 낮췄다. 테슬라와 큰 차이가 없다. 내부적으로 테슬라 모방 제품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애플은 시장을 파괴할 혁신 제품이 아니면 내놓지 않는다. 2000년대 중반에 추진했던 초고화질 TV 개발도 그래서 중단했다. 자율주행차 역시 마찬가지다. 테슬라, 폭스바겐, GM, 포드, 도요타, 현대차를 이길 만한 압도적인 혁신이 없었다.

수익성 낮은 시장

자동차 시장은 영업 이익률이 IT 시장보다 훨씬 낮다. IT 기업의 영업 이익률은 30~40퍼센트인데, 테슬라, GM, 현대차는 9퍼센트 수준이다. 럭셔리 카를 만드는 포르쉐조차 19퍼센트에 그친다. 게다가 중국 전기차가 부상하면서 수익성이 더 떨어지고 있다. 중국 전기차 회사 비야디(BYD)는 지난해 4분기 테슬라를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전기차 판매 1위에 올랐다. 강력한 내수 시장과 국가 지원, 1400만 원대 전기차라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빠르게 몸집을 불렸다. 일론 머스크도 중국 전기차 회사들을 “가장 경쟁력 있는 도전자들”이라며 “무역 장벽이 없으면 중국 기업이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을 파괴할 것”이라고 말한다. 혁신 없는 애플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생성 AI 경쟁

게다가 결정적으로 2022년 11월에 챗GPT가 나왔다. 이후 1년 반 사이에 반도체, 플랫폼, 소프트웨어, 엔터테인먼트, 핸드폰, 가전까지 모든 게 달라졌다. 빅테크 전체가 생성 AI 전쟁에 뛰어들었다. 애플만 생성 AI 관련 제품을 내놓지 않았다. 2월 28일 열린 주주 총회에서도 투자자들은 애플이 AI 분야에서 뒤처지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애플은 자율주행차라는 불투명한 미래에 투자하기보다 이제라도 생성 AI에 집중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핸드폰 라이벌인 삼성전자가 온디바이스 AI를 내놨다. 애플이 보유한 AI 인력은 4773명이다. 아마존(1만 113명), MS(7287명), 메타(5590명), 알파벳(5341명)보다 적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IT MATTERS

그래도 유산은 남았다. 애플카 프로젝트는 기반 기술로 살아남아 다른 제품에 적용될 것이다. 또한 애플이 애플카 프로젝트를 중단한다고 해서 자동차 시장에서 철수하는 건 아니다. 애플은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카플레이(CarPlay)로 자동차 산업에서 여전히 중요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차량의 90퍼센트 이상에 카플레이가 설치돼 있다. 애플은 차세대 카플레이를 통해 화면 제어, 카메라 통합, 차량 모니터링, 실내 온도 조절, 에너지 효율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할 예정이다. 애플은 하드웨어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차량 관리 소프트웨어 쪽으로는 계속 힘을 실을 전망이다. 애플은 자동차 제작은 포기하지만, 자동차 안의 앱스토어가 되는 건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애플이 가장 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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