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 투자하세요

2024년 3월 11일, explained

2026년부터 기업의 기후 대응 정보가 재무적 요소처럼 취급된다.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지난해 9월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Drew Angerer,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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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상장 기업에 기후 위기 관련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는 규칙을 최종 승인했다. SEC는 2년간 각계 의견을 수렴한 끝에 3월 6일 이 규칙을 표결에 붙여 3 대 2로 통과시켰다. 제정을 주도한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을 포함한 민주당 성향 위원 3명이 찬성표를 던졌고, 공화당 성향 위원 2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WHY NOW

이제까지 비재무적 요소였던 기업의 기후 대응 정보가 앞으로는 재무적 요소처럼 취급된다. 새 규칙이 시행되는 2026년부터 미국 상장 기업은 매출을 공개하듯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개해야 한다. 홍수, 산불처럼 기업 수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적 기후 위험도 분석해 공개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2026년부터 ESG 공시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기업 공시 제도

상장 기업은 분기마다, 연도마다 사업 보고서를 공개한다. 공시 시기가 아니어도 최대 주주가 주식을 취득하거나 처분할 때처럼 회사에 중요한 이슈가 발생하면 공개해야 한다. 이를 기업 공시 제도라고 한다. 투자자의 투자 판단을 돕기 위해 경영 실적, 재무 상태, 대주주 현황, 증자 같은 기업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다. SEC는 이런 공시 항목에 기후 정보를 추가하기로 했다.

기후 공시

기후 정보를 왜 공개하게 할까. 투자자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 대응 노력은 이제 기업 매출과 투자 유치에 영향을 미친다. 지난 몇 년간 투자자들은 기업에 기후 정보를 더 많이, 더 일관되게 공개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 결과 미국 상위 1000개 기업 중 80퍼센트 이상이 ESG 보고서를 펴내 기후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SEC는 이미 많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기후 정보에 일관성을 요구하기 위해 규칙을 도입했다.

공개 범위

기후 정보 공개는 범위에 따라 세 단계로 구분된다. 스코프(scope)1은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면서 직접 발생시키는 탄소 배출이다. 스코프2는 기업이 구매해서 소비한 전기, 냉방, 난방 등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이다. 스코프3은 기업의 가치 사슬에서 발생하는 모든 탄소 배출이다. 협력 업체의 탄소 배출부터 직원의 통근으로 발생하는 탄소 배출까지 모두 포함된다. SEC의 이번 규칙은 스코프1과 2만 공개 대상으로 삼는다.

잠재적 위험

기업은 향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후 관련 위험도 공시해야 한다. 허리케인, 폭염, 산불, 해수면 상승 같은 기후 재난의 영향을 공개하고, 회사의 기후 관련 목표도 제시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석유 기업이 기후 변화의 위험을 은폐했다면서 산불, 폭염 같은 기후 재난에 책임을 묻는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투자자에게 이런 잠재적 투자 손실의 위험까지 공개하게 했다.

공화당의 반발

미국 상공회의소와 공화당은 기후 정보 공시 의무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공화당이 우위인 10개 주는 벌써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SEC를 무기화”하고 있다면서 “급진 좌파의 기후 의제가 기업에 부담을 주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화당 소속으로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패트릭 맥헨리는 “지독한 규제 과잉”이라며 이 규칙이 자본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청문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환경 단체의 반발

환경 단체 역시 이번 규칙에 반발하고 있다. 스코프3가 빠진 기후 공시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다. 당초 SEC는 스코프3까지 의무화하려 했지만, 기업들이 규정 준수에 들어가는 비용과 데이터 측정의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해 결국 제외됐다.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업에서 스코프3가 탄소 배출량의 70퍼센트를 차지한다.

세계적 흐름

SEC의 기후 공시 규칙이 세계 최초는 아니다. 유럽 연합(EU)에선 올해 1월부터 스코프3 배출량도 보고하게 하는 ‘기업 지속 가능성 보고 지침(CSRD)’이라는 규정이 발효됐다. 내년부터는 유럽에 있는 해외 기업의 지점에도 적용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2023년 10월 기후 공시 의무 법안을 제정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을 하면서 연간 매출이 10억 달러를 넘는 기업은 2026년부터 스코프1, 2 배출량을 공시하고, 2027년부터는 스코프3까지 공시해야 한다.

IT MATTERS

현재 우리나라는 기후 공시가 의무는 아니다. 오는 4월 탄소 배출량을 포함한 ESG 공시 기준 초안을 발표하고, 2026년 이후부터 도입할 예정이다. 2026년에 공시를 시작한다면 2025년 정보부터 공시해야 하니, 올해부터 준비해야 한다. 현재 국내 기업은 ESG 정보를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에 담아 공개한다. 2023년 기준으로 국내 시총 200대 기업 중 166곳이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를 펴냈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의무 사항이 아니다 보니 기업이 공개하고 싶은 부분만 선택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 공시라기보다 홍보에 가깝다. 지난해 녹색전환연구소는 기후 공시 관련 국제 권고안(TCFD)을 바탕으로 국내 온실가스 배출 상위 32개 기업의 기후 공시를 분석했다. 평균 점수가 100점 만점에 38점이 나왔다. 기후 공시까지 2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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