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공격당했다

2024년 3월 25일, explained

푸틴의 5선 확정 5일 만에 최악의 테러가 발생했다.

3월 23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구급대원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Ministry of Emergencies of Russia, Handout, Anadolu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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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저녁 러시아 모스크바 북서쪽 공연장에서 총격 테러 사건이 벌어졌다. 검은색 야구 모자와 복면을 쓴 무장 괴한 네 명이 공연장에서 무차별 총격과 방화 테러를 벌였다. 러시아 측 사건 조사위원회는 현재까지 133명이 사망하고 14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24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하고 테러 세력에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WHY NOW

지도상에서 지워진 줄 알았던 이슬람국가(IS)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IS는 이번 테러의 배후를 자처한다. 미국 정보 당국도 IS를 테러 용의자로 보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개입설을 제기한다. 우크라이나는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러시아의 목적은 따로 있어 보인다. 푸틴은 이번 테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러시아 국민에게 우크라이나 전쟁 참여를 촉구하려 한다.

금요일 밤

지난 금요일 밤 8시, 크렘린궁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모스크바 외곽의 공연장 ‘크로커스 시티홀’에선 록그룹 공연이 열릴 참이었다. 공연장은 6200석 규모인데, 매진된 상태였다. 공연 시작 5분 전 무장 괴한 네 명이 로비로 들이닥쳤다. 테러범들은 로비와 공연장에서 돌격 소총을 난사했다. 공연장은 순식간에 생지옥이 됐다. 총기 난사 후 테러범들은 공연장 커튼과 의자에 인화성 액체를 뿌리고 수류탄과 소이탄을 던졌다. 그리고 도주했다.

전원 검거

테러범들은 흰색 르노 자동차를 타고 달아났다. 경찰은 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300킬로미터 떨어진 브랸스크 지역에서 추격 끝에 테러범들을 검거했다. 차량에서 권총과 탄창, 타지키스탄 여권 등이 발견됐다. 사건 발생 14시간 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총격과 방화에 직접 연루된 용의자 네 명을 포함해 사건 관련자 11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의 구체적인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는데, 러시아 정부는 이들이 외국인이라고 밝혔다.

배후

사건 직후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이번 테러의 배후를 자처했다. 23일에는 범인들의 사진과 함께 성명을 냈다. 미국 정보 당국 역시 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 격인 IS 호라산(ISIS-K)을 용의자로 보고 있다. 호라산(Khorasan)은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간 일부를 이르는 옛 지명이다. 한편 사건 2주 전인 3월 7일,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은 자국 시민에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임박했다며 대규모 모임, 특히 콘서트를 피하라고 경고했다.

알카에다의 하부 조직

테러 배후로 지목된 IS는 어떤 단체일까. IS는 2001년 9.11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의 이라크 내 하부 조직으로 시작한 단체다. 알카에다와 IS는 모두 이슬람의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뿌리로 둔다. 그런데 알카에다는 아랍 세계에서 미국으로 대표되는 외세를 몰아내는 것에 초점을 뒀다. 9.11 테러 역시 서방 세계와의 전쟁 개념이었다. 반면 IS는 Islamic State라는 명칭처럼 이슬람 국가 건설에 초점을 두고 중동 지역에서 영토를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탈레반 등 중동의 다른 세력과 사이가 좋지 않다.

IS의 흥망

2011년 미국 특수 부대가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면서 알카에다는 구심점을 잃는다. 2014년 IS는 알카에다와 완전히 결별하고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일대에서 국가 수립을 선포한다. 2015년 세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IS는 시리아의 3분의 1, 이라크의 40퍼센트를 장악했다. 단순 무장 단체를 넘어 영국만 한 크기의 땅덩이를 지배한 유사 국가였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한 국제 동맹군, 러시아, 이란 등이 IS 퇴치에 나서면서 영토를 잃고 점조직만 남았다. 급기야 미국은 2019년 3월 “지도상에서 IS를 지웠다”고 선언했다.

ISIS-K

그렇게 사라진 줄 알았던 IS의 하부 조직인 ISIS-K가 다시 국제 사회를 흔들고 있다. ISIS-K는 2014년 말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무장 단체 회원들이 모여 결성한 조직이다. 아프간과 파키스탄 접경지를 본거지로 한다. IS 중에서도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다. 2021년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면서 급격히 세력을 키웠다. 병력은 2000명 내외인데,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ISIS-K는 올해 초 이란에서 약 100명을 숨지게 한 폭탄 테러를 자행하기도 했다.

시리아

외교 전문가들은 ISIS-K가 수년간 러시아에 집착하며 푸틴을 비판해 왔다고 말한다. 러시아가 무슬림을 탄압해 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시리아 내전이다. 2010년 ‘아랍의 봄’으로 시리아를 통치하던 시아파의 아사드 정권이 힘을 잃었다. 이때 수니파 무장 단체인 IS가 시리아로 세력을 확장했다. 러시아와 이란은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다. 반군과 IS에 맞서 아사드 정권을 지원했다. 아사드 정권은 전세를 역전해 영토 대부분을 되찾았다. IS가 이란과 러시아에 이를 가는 이유다.

IT MATTERS

푸틴의 5선 당선이 확정된 게 불과 5일 전이다. 푸틴은 강력한 안보를 약속하며 87퍼센트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얻었다. 그 약속이 5일 만에 깨졌다. 그런데 러시아의 대응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IS가 자기들이 테러를 저질렀다는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가리킨다. 푸틴은 “검거된 테러 용의자들이 우크라이나 방향으로 도주했고,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었다”며 우크라이나 연루 의혹을 제기했다. 우크라이나는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심각한 병력 부족을 겪고 있다. 2022년 9월에는 예비군 30만 명을 대상으로 부분 동원령을 내렸다. 당시 대중의 불안이 커지며 러시아 남성 수십만 명이 해외로 탈출하기도 했다. 이번 테러로 푸틴의 안보 약속은 깨졌지만, 푸틴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로 화살을 돌려 러시아 국민을 결집해 총동원령을 내릴 수도 있다. 뜻밖의 테러가 3년째로 접어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을 가를 키가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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