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미의 전기차가 선언한 것

2024년 4월 2일, explained

이제 자동차는 가전제품이며 전자 기기다.

2024년 2월 2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24의 샤오미 부스에서 샤오미 SU7 맥스 전기 자동차가 전시되었다. 사진; Xavi Torrent/Getty Images
NOW THIS

중국의 가전 기업, 샤오미가 전기차를 출시했다. 출시 하루 만에 9만 대에 달하는 주문이 쇄도할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가격은 가장 저렴한 모델이 4천만 원 선으로, 정조준 한 테슬라의 ‘모델 3’보다 저렴하다. 업계에선 테슬라를 제치고 지난해 4분기 세계 전기차 판매량 1위 자리를 차지한 중국 비야디(BYD)에 이어 샤오미까지 가세하면서 경계수위를 높이는 분위기다. 전기차 시장을 중국에 잠식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WHY NOW

그런데 샤오미가 출시한 전기차, SU7을 뜯어보면 중국보다 더 큰 존재가 보인다. 바로 전자 기업이다. 지금까지 자동차 산업은 기술력을 진입장벽으로 삼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몇몇 완성차 기업들이 과점 시장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내연 기관을 버리고 배터리를 장착하게 되면서 자동차라는 기계의 정의가 바뀌고 있다. 자동차는 이제 가전이다. 샤오미의 전기차 시장 진출은 이와 같은 시대적 변화를 선언적으로 드러낸다.


엔진의 시대

한국의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는 업계에서 유례 없는 성공 사례로 꼽힌다. 후발 주자라서 그렇다. 정확히는 한국이 1,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기술을 발전시켰던 국가가 아니라서 그렇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지배한 것은 자동차와 비행기였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참전국들은 목숨을 걸고 엔진을 만들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 기술은 고스란히 완성차 전쟁으로 이어졌다. 독일의 몇몇 완성차 브랜드를 두고 ‘전범 기업’ 논쟁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한국의 기업들은 그 과정 없이 바닥부터 시작해서 엔진을 비롯한 핵심 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내연차 시대의 흙수저 성공 신화로 꼽힐 법하다.

전장의 시대

그런데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 엔진의 시대가 끝났다. 이제 전기차의 시대다. 엔진이 없어진 자동차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구동 모터다. 전기차의 주행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조금 더 미래를 보면 자율주행 관련 기술이다. 각종 센서는 물론이고, 자율주행용 반도체와 OS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새로운 시장도 열린다. 자동차가 스스로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차량 내에서 즐기고 소비할 콘텐츠 제공이다.

이 자동차를 만든 것은 누구인가

핵심 기술이 달라졌으니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도 달라진다. 물론, 우리는 아직 완성차 업계의 브랜드를 소비한다. 자동차에는 생명이 걸려있다. 신뢰가 가장 큰 브랜드 자산이다. 하지만 생산 과정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자동차 부품 중 전장(자동차용 전자 부품) 비율이 70퍼센트까지 증가하게 된다. 전장은 전자 회사가 잘 만든다. 우리로 치면 삼성전자, LG전자 등이다. 실제로 두 기업은 자동차 업계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미래 먹거리로 전장을 점찍고 있다.

소니와 LG의 자동차

전자 제품을 잘 만드는 회사가 자동차도 잘 만들 수 있는 경쟁력을 갖게 되는 시대. 그래서 CES 2024에서는 LG전자, 소니 등의 브랜드가 자동차를 선보였다. LG전자가 내놓은 것은 ‘알파블’이라는 이름의 콘셉트카다. 전장 기술의 최첨단을 집약해 놓은, 완전 자율 주행 시대의 자동차를 재정의하는 모델이었다. 양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소니의 자동차는 ‘아필라’라는 이름으로, 2026년 출시를 예정하고 있다. 소니가 담당하는 것은 전장과 차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다. 주행 기능 부분은 혼다가 담당하게 된다.

컴퓨터 조립하듯

게다가 자동차도 반도체처럼 팹리스와 파운드리의 분업이 가능한 시대다. 실제로 현대자동차 베이징 공장에서는 중국의 전기차 브랜드, ‘아크폭스’ 차량을 ODM 생산하고 있다. 다른 형태의 분업도 가능하다. 독일의 벤텔러(BENTELER) 같은 회사는 전기차의 ‘모듈러 플랫폼’을 만들어 공급한다. 이 플랫폼에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와 구동 모터를 모듈 형태로 끼워 넣고 그 위에 차량의 콘셉트나 목적에 맞게 다양한 차체를 조립할 수 있다. 샤오미의 SU7이 바로 벤텔러의 플랫폼을 사용했다.

새로운 자동차의 시대

샤오미는 벤텔러 뿐만 아니라 화려한 협업 군을 자랑한다. 보쉬, 콘티넨털, ZF, 블렘보 등 자동차 업계에서 오랫동안 실력을 갈고 닦은 부품 공급 업체들이다. 내연차의 시대에는 이들이 주인공일 수 없었다. 그러나 차량을 나누어 만드는 시대에는 이들의 이름이 중요하다. 자동차를 만들어 봐야 알 수 있는 디테일은 이들의 경험으로 잡고, 샤오미는 전자 제품 만들며 닦아 온 기술을 십분 발휘하는 형태로 SU7을 완성했다. 자동차의 새로운 심장에 해당하는 구동 모터는 직접 만들었다. 내부에는 화려한 디스플레이 장치가 장착되었다. 스마트폰 세계 점유율 3위 업체답게,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만듦새가 좋다. 무선 충전 시스템이나 뒷좌석에 배치된 샤오미의 태블릿 등도 납득이 간다. 샤오미의 자동차는 샤오미가 잘 만드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100억 달러를 투자해 만든 결과

잘 못하는 것은 잘하는 쪽에 맡겼다. 디자인 총책임자는 BMW 출신의 스타 디자이너, 크리스 뱅글에게 맡겼다. 그 외에 BMW iX를 디자인한 리 티안위안, 벤츠의 EQXX를 디자인한 제임스 치우도 합류했다. 전면에서 보면 맥라렌, 측면에서 보면 포르쉐 같다는 말이 나오지만, 그만큼 기존 업체들의 디자인 노하우를 녹여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테슬라를 의기양양하게 겨냥한 모델답게 자율주행 시스템에도 공을 들였다. 엔비디아의 올인X 칩을 두 개 사용하며, 11개의 카메라는 물론 라이다, 밀리미터 레이더, USS 등 테슬라를 넘어서는 하드웨어 스펙을 갖췄다. 자율 주행이 가까워질수록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만드는 샤오미의 경쟁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IT MATTERS

다만 한계도 있다. 가전으로서의 자동차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SU7이 제시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샤오미가 만들었지만, 전통적인 자동차 브랜드나 테슬라보다 성능이 좋다는 점을 셀링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샤오미가 여전히 현재에 머무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나마도 벌써부터 만듦새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출근길에 차 안에서 방금 내린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실 수 있게 된다면, 이 자동차는 주방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영화 한 편을 감상했다면 이 자동차는 거실이다. 자동차의 공간적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자동차가 어떤 가전이어야 할 지가 달라진다. 아직은 과도기다. 전기차도, 자율주행 기능도 모두 그렇다.

지금 중국에서는 난립했던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정리되는 중이다. 2019년 약 500곳에 달했던 중국의 전기차 업체 수는 2023년 기준 약 100곳 정도로 줄어든 상태다. 더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많은 브랜드가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에는 지금 놀고 있는 전기차 공장이 새로운 일감을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샤오미의 성공으로 자극받은 전자 기업, IT 기업 등에는 새로운 기회다. 알리바바, 화웨이, 진둥닷컴 등은 이미 제조 업체들과 손잡고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여전히 우리는 자동차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테슬라로 눈을 돌린다. 새로운 플레이어들은 과연 새로운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 그 게임에 한국 기업들의 캐릭터는 어떤 모습일까? 자율주행은 물론 UAM의 시대도 멀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기에 참 좋은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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