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 중동 전쟁의 첫 페이지

2024년 4월 16일, explained

국제 사회가 원칙을 지켰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024년 4월 14일 이란 테헤란 시내에서 사람들이 이스라엘 국기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 Morteza Nikoubazl/NurPhoto via Getty Images
NOW THIS
 
이스라엘이 공격당했다. 이번엔 이란이다. 현지 시각 지난 4월 13일 밤부터 300기가 넘는 자폭 드론과 미사일을 이스라엘 본토로 발사했다. 국제사회는 일제히 이란을 비난하는 한편, 확전만은 막아야 한다는 데에 뜻을 모으고 있다. 다만, 싸움을 시작한 것은 이스라엘이었다. 지난 4월 1일, 시리아 내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이란 혁명수비대(IRGC) 고위 지휘관들이 사망했던 것이다. 이번 폭격은 이란의 무력 보복이다.

WHY NOW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강철지붕, ‘아이언돔’이 제 성능을 발휘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공격 중 99퍼센트를 막아냈다고 발표했다. 인명 피해 규모도 제한적이었다. 7살 소녀 한 명이 중상을 입었고, 수십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중동을 ‘화약고’라 부르는 까닭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경우 세계대전 급의 전쟁으로 확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최악의 시나리오가 바로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쟁이다. 이야기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동, 아랍, 이란
 
우리는 이란을 잘 모른다. 이란은 중동 국가일까. 맞다. 중동은 지정학적 용어다. 제국주의 시대, 영국은 유럽을 기준으로 가장 가까웠던 이집트를 근동(Near East), 조금 더 동쪽으로 떨어진 아라비아 반도 일대를 중동(Middle East), 그리고 인도보다 더 동쪽에 있는 중국과 한국, 일본 일대를 극동(Far East)라고 칭했다. 그렇다면 이란은 아랍 국가일까. 아니다. 아랍은 문화적 용어다.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지역을 일컫는다. 모로코부터 이집트, 수단, 소말리아 같은 아프리카 지역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카타르 등 총 22개국이 ‘아랍 국가’에 속한다. 이란은 다르다. 이란어(페르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니 아랍 국가에는 속하지 않는다.

우정이 깨진 이유
 
게다가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 미움만 받았던 이스라엘의 거의 유일한 친구였다. 중동 지역에서 터키 다음으로 이스라엘을 주권국가로 인정해 줬으며,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고립되다시피 했던 이스라엘에 석유를 공급해 주기도 했다. 가는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 이스라엘도 이란에 건설업체와 기술자를 보내는가 하면, 양국은 함께 고성능 미사일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군사적으로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혁명과 함께 끝났다. 1979년, 친미 성향의 무함마드 레자 이란 국왕이 이란의 종교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에게 끌려 내려왔다. 이란 혁명이었다.
 
작은 사탄, 거대한 사탄
 
미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세속적인 발전을 꿈꿨던 국왕, 조혼을 방지하는 가족 보호법을 제정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개혁 군주, 무함마드 레자. 그러나 그는 동시에 독단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지도자였고 그의 정권은 경제적 불평등과 부패로 곪아있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이란의 전통과 이슬람의 가치를 소홀히 한다는 불만까지 쌓였다. 1979년, 혁명으로 세상이 뒤집히자, 선과 악의 가치 판단도 함께 뒤집혔다. 호메이니는 이렇게 단언했다. “이스라엘은 작은 사탄이고 미국은 거대한 사탄의 나라다.”
 
혁명, 그 이후
 
‘사탄’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혁명 이후, 양국의 관계는 악화 일로였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으며, 국내 정치용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을 이용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란은 사탄과 맞서 싸울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 이슬람권의 양대 교파는 수니파와 시아파다. 수니파를 대표하는 국가는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였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이라크는 세력이 약화했고, 정권도 시아파에게 넘어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꾸준히 친미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남은 것은 이스라엘에 맞서 싸울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 이란이다.
 
그림자 밖으로 나온 전쟁
 
양국은 대리전과 무장단체 지원, 암살과 비밀 작전 등으로 이른바 ‘그림자 전쟁’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런데 이번 보복 공격에서 그 그림자들이 실체를 드러냈다.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 이제는 예멘의 실질적인 정치 세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후티 반군’이 그들이다. 이스라엘에 보복 공습을 감행하던 그날 밤, 이란은 혼자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을 향해 후티 반군은 남쪽에서, 헤즈볼라는 북쪽에서 동시에 공격을 감행했다. 이들이 그림자 밖으로 나온 이유가 있다. 이번 공격은 철저히 명분을 위해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이중 잣대
 
지난 4월 1일 발생한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 건물이 공격받으면서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실세들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단언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공습의 주체가 자신들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외교사절단의 공관을 ‘불가침’의 영역으로 정의하고 있는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Vienna Convention on Diplomatic Relations)’ 위반이다. 서구 사회가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외교 원칙이다. 그런데 이 침공을 UN 안보리에서는 비난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성명 채택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공격의 당위

안전을 보장해야 할 이사회가 영사관 공습에 비난 성명도 내지 못하니, 서방 세계에 대한 불신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실제로 영사관 공습 이후 이란에서는 분노한 국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안 그래도 국내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인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이란은 이번 보복 공격이 ‘자위권’ 행사임을 분명히 했다. 그림자 밖으로 나온 무장 세력도 ‘응징’이라는 이름으로 힘을 보탰다. 그러나 민간 지역에는 공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며, 실제 피해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란이 공격받지 않는 한 새로운 군사 작전은 없을 것”이라 못 박았다. 즉, 이란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공격한 것이다.

IT MATTERS
 
지금 전쟁 버튼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다. 네타냐후 입장에서는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지금의 상황이 사실 반갑다. 하마스와의 전쟁이 길어지면서 민심을 잃고 있고, 선거를 코앞에 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가자지구에서의 민간인 학살로 악화하는 민심 앞에 이스라엘과 거리를 두는 중이다. 내심 이스라엘의 조기 정권 교체까지 바라는 눈치다.

그러나 네타냐후는 사법 리스크 때문에라도 권력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비상시라면 조기 정권 교체는커녕 정권 연장 수순으로 갈 수도 있다. 이스라엘은 돈이 많지만, 이란은 병력이 많다. 군비 수준도 양국은 체급이 비슷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둘 다 핵을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그 누구도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일단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를 멈춰 세웠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그 버튼이 눌릴 수 있다. 불행의 크기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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