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 대제사장의 3연임

2024년 4월 22일, explained

모디 총리가 3선을 앞두고 있다. 힌두 신정 일치 국가가 오고 있다.

2024년 4월 14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총선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Abhishek Chinnapp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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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 인도에서 4월 19일부터 총선이 시작됐다. 유권자 수가 9억 7000만 명이다. 히말라야산맥부터 사막, 인도양 외딴섬까지 투표소를 설치해야 해 선거 기간이 44일에 달한다. 개표는 6월 4일에 실시한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인민당(BJP)이 전체 의석 543석 중 72퍼센트인 393석을 얻어 야당 인도국민회의(INC)에 압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WHY NOW

모디 총리는 인도를 세속 국가에서 힌두 신정 일치 국가로 바꾸고 있다. 3연임에 성공하면 모디는 총리이자 대제사장 역할을 하게 된다. 인도 인구 14억 명 중에서 무슬림이 2억 명이다. 힌두 우월주의가 완성되면 무슬림 2억 명은 2등 시민이 된다. 길고 느린 학살이 진행될 것이다. 아요디야 분쟁, 구자라트 학살 같은 무슬림 박해 사건도 또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

나렌드라 모디

모디 총리는 거리에서 홍차를 팔던 천민 출신이다. 힌두 근본주의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이 단체를 중심으로 창당된 인도인민당에서 선거 전략가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구라자트 주지사를 거쳐 2014년 인도 총리에 올랐다. 모디 총리의 최대 치적은 경제 발전이다.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으로 해외 자본을 유치해 제조업을 육성했다. 인도의 GDP는 2014년 세계 11위에서 지난해 5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외견상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을 뿐 사실상 신권 정치를 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인도를 힌두 신정 일치 국가로 만들고 있는 지적이다.

힌두 민족주의

인도 인구는 14억 명이다. 그중 80퍼센트가 힌두교 신자다. 15퍼센트가 무슬림이다. 15퍼센트라고 하면 적어 보이지만 인구가 워낙 많아 2억 명이나 된다. 힌두교 신자이자 힌두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모디 총리는 집권하는 동안 무슬림 차별을 강화해 왔다.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새 시민권법을 시행했는데, 종교적 박해를 받아 인도로 피난 온 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좋은’ 정책이다. 그런데 적용 대상에 힌두교, 불교, 기독교 신자 등은 포함됐는데, 이슬람교만 빠졌다.
 
국회의사당

힌두 민족주의는 국가 상징 건축물에서도 드러난다. 인도의 역사는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혼합돼 형성됐다. 그런 역사를 존중해 기존 국회의사당은 여러 문화를 반영하는 디자인을 갖췄다. 그런데 모디 총리가 새로 건설한 의사당은 인도의 다양한 색채를 힌두교 역사로 축소했다. 건물 내부 장식에는 힌두교와 밀접한 연꽃이 주로 사용됐다. 연꽃은 인도인민당의 상징이기도 하다. 의사당의 사자상도 불교의 온화한 사자에서 힌두교의 사나운 사자로 바뀌었다.

대중문화

인도의 영화, 방송, 음악, 출판 역시 힌두 근본주의 성향이 짙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다. 최근에는 ‘H-팝(힌두트바·Hindutva)’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힌두트바는 힌두주의라는 뜻이다. 이 노래들에는 무슬림과 소수 민족을 악마화하는 표현이 담겨 있다. 인도 영화에서 무슬림은 악역으로 등장하고, 교과서에는 힌두 민족주의가 담기고 있다. 모디 정부는 대학에서 정부나 힌두교 사상을 비판하는 수업과 연구를 감시한다.

잠무 카슈미르

모디 정부는 2019년 8월 인도 북서부 잠무 카슈미르 지역이 헌법상 누리던 자치권을 박탈했다. 이 지역 인구의 3분의 2가 무슬림이다. 역시 무슬림이 많이 거주하는 아삼주에서는 1971년 이전부터 인도에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시민권을 박탈하기도 했는데, 400만 명이 시민권을 뺏겼다. 인도인민당은 비슷한 시스템을 전국적으로 도입하기로 해 인도 전역의 무슬림에 대한 참정권, 시민권 박탈 위협이 커지고 있다.

람 만디르 사원

람 만디르 사원의 봉헌식은 힌두 국가로 전환하는 상징과 같았다. 2024년 1월 22일 모디 총리는 힌두교 사원인 람 만디르 사원의 봉헌식에 참석했다. 이곳은 힌두교 성지 중 한 곳인데, 1528년 무굴 제국이 인도를 지배하면서 이슬람 모스크를 세웠다. 1992년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이 모스크를 파괴하면서 전국에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충돌해 최소 2000명이 숨졌다. 모디 정부는 인도 최대의 종교 분쟁지로 꼽히는 곳에 힌두 사원을 세운 것이다.

바라트

람 만디르 사원 봉헌식에서 모디 총리는 이렇게 선언했다. “수세기에 걸친 기다림 끝에 우리의 람이 왔다.” 사실상 힌두 왕국의 선포식이었다. 모디 총리가 3연임에 성공하면 힌두 민족주의는 더 강력해질 것이다. 국명을 바꿀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도인민당은 인디아(India)라는 국명이 영국 식민 통치의 잔재라면서 힌두교 신화에서 유래한 이름인 바라트(Bharat)로 국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인도 정부는 지난해 G20 정상 회의를 개최할 때 인도 대신 바라트라는 국명을 사용했다.

IT MATTERS

인도 헌법 전문에는 인도가 “사회주의적이고 세속적인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돼 있다. 인도 헌법은 세속주의를 명시하며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시크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 간의 화합을 추구해 왔다. 국가는 종교에 중립적 입장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디 정부와 인도인민당은 세속주의를 지우고 힌두 민족주의를 넣고 싶어 한다. 지금 모디는 총리와 힌두교 대제사장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모디 집권 3기에서 힌두 신정 일치 국가가 완성되면 무슬림은 2등 시민으로 전락한다. 현재로서는 모디를 막을 방법이 없어 보인다. 국제 사회는 짧은 기간 자행되는 학살은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길고 느린 죽음은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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