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다음 최고 지도자

2024년 5월 24일, explained

대통령의 공백보다 더 위험한 건 차기 후계자의 공백이다.

2024년 5월 22일 이란 테헤란에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장례식이 열렸다. 사진: Meghdad Madadi ATPImages,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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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장례식이 5월 22일 수도 테헤란에서 열렸다. 라이시 대통령은 지난 19일 헬기 추락 사고로 실종됐다가 이튿날 사망이 확인됐다. 사고 원인은 기술적 고장이었다. 장례식에는 수백만 인파가 몰렸다.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가 장례 예배를 집전했다. 라이시 대통령의 시신은 그의 고향이자 시아파 최대 성지인 마슈하드로 옮겨져 매장될 예정이다.

WHY NOW

이란에서 대통령은 2인자다. 사실상 모든 권한은 최고 지도자가 갖고 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다. 대통령의 공백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지금 더 중요한 건 유력 후계자의 공백이다. 라이시 대통령은 차기 최고 지도자 후보로 꼽혀 왔다. 라이시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하메네이의 후계 구도를 둘러싸고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정치 체제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

중동 정세는 종교, 민족, 역사, 영토 문제가 얽혀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중동 국가들은 내부 갈등과 미국, 영국 등 서방의 압력으로 정치적 혼란을 겪어 왔다. 정치 노선 변경도 예사로 일어났다. 드문 예외가 있다. 이란이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종신직 최고 지도자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흔들림 없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한 투쟁을 이어 오고 있다.

신정 일치

이란은 신정 일치 국가다. 대통령 위에 종교 지도자인 ‘라흐바르(최고 지도자)’가 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인준하고 해임하는 권한이 최고 지도자에게 있다. 군 통수권도 최고 지도자가 가진다. 최고 지도자는 시아파 고위 성직자 88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회의에서 결정된다. 1대 최고 지도자가 호메이니였다. 호메이니는 1979년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 신정 국가를 세웠다.

하메네이

1989년 호메이니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전문가 회의는 2대 최고 지도자로 하메네이를 추대했다. 당시 이란 대통령직을 수행하던 하메네이는 중급 성직자여서 최고 지도자로는 소위 ‘급’이 안 됐다. 그런데 호메이니가 집권 초기에 반대파를 대거 숙청한 탓에 적임자가 없었고, 유력 후보마저 자리를 마다했다. 리더십 공백이 국가 위기로 번지기 전에 찾은 타협점이 하메네이였다.

혁명수비대

하메네이는 지지 기반을 갖추지 못한 채로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이란의 정신적 지주 호메이니처럼 국민적 추앙을 받지 못했고, 강력한 카리스마도 없었다. 정권 내 경쟁자도 많았다. 그래서 하메네이는 이란 혁명수비대와 손을 잡았다. 혁명수비대는 최고 지도자의 직속 부대다. 하메네이는 혁명수비대를 앞세워 반대파를 압박하고 사회 변화 요구를 강경 진압했다.

후계자

그렇게 하메네이는 혁명수비대라는 총을 통해 권위를 쌓았다. 호메이니만큼은 아니어도 지금 그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하메네이는 85세다. 과거 전립선암 수술을 받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권력 공백 사태를 막으려면 후계자를 세워야 한다.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던 인물이 이번 헬기 사고로 사망한 라이시였다. 후계 구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모즈타바

라이시가 후계 구도를 이탈하면서 급부상하는 인물은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다. 모즈타바는 강경 보수 성향의 중급 성직자다. 이란 정부에서 공직을 맡고 있진 않지만, 아버지의 후광으로 이란 정계의 숨은 실세로 활약해 왔다. 《뉴욕타임스》는 모즈타바가 최고 지도자 자리를 승계하기 위한 발판으로 6월 말 열릴 대통령 보궐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고 관측한다.

권력 구도

모즈타바는 17세였던 1985년에 입대해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 당시 그는 훗날 혁명수비대의 고위직에 오르게 되는 인물들과 친분을 쌓았다. 강경파에다 혁명수비대 핵심과 네트워크까지 있으니, 혁명수비대가 차기 최고 지도자로 옹호할 만한 인물이다. 그가 최고 지도자가 되면 혁명수비대의 대내외적 영향력도 지금보다 더 확대될 수 있다. 미국은 혁명수비대를 테러 조직으로 규정한다.

IT MATTERS

모즈타바는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가장 가까이 와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자리를 승계하면 권력의 정통성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1979년 세급 군주제를 전복하고 이슬람 공화국을 세운 정권이 권력을 세습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모즈타바가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려면 권력의 다른 한 축인 혁명수비대를 중용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정권 내에서 혁명수비대의 권한이 더 커질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이 성직자와 군부가 권력을 나눠 갖는 혼합 정권에서 향후 군사 정권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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