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에로티카

팝 에로티카

대중음악과 에로티시즘


“음악이 사랑의 양식이라면, 계속 연주하라(If music be the food of love, play on).”

셰익스피어의 《십이야》에 나오는 구절이다. 오르시노 공작이 올리비아를 향한 구애에 실패하여 그 상심을 달래기 위해 내뱉은 이 말은 음악이 사랑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것을 넘어 대체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과식이 식욕을 감퇴시키듯, 음악이 애욕을 둔화해 실연의 고통을 줄여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음악은 감정의 전달에 특화된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한 형식이다. 그것은 다른 예술 형태와 달리 시각이나 언어의 매개 없이 인간의 몸에 직접 호소한다. 이러한 정동적 작용[1]은 음악이 감정을 생산하고, 조절하고, 전환하는 데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음악은 성적인 이미지나 메시지의 전달 없이도 에로티시즘을 표현하는 최적의 매체로 기능한다.

음악은 모든 종류의 감정을 다루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성애적 사랑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의 노래부터 라벨의 〈볼레로(Boléro)〉에 이르기까지 음악은 지난 수천 년간 인간의 성적 감각을 유혹하고 자극해 왔다.[2] 에로티시즘과 직결된 음악은 단연 대중음악이었다. 클래식 음악으로 통칭되는 서양 예술 음악에도 오르가즘을 시뮬레이션한 슐호프의 〈소나타 에로티카(Sonata Erotica)〉나 무대 위에서 섹스를 시연한 아데의 오페라 〈그녀의 얼굴에 분칠을(Powder Her Face)〉 같은 예외가 없지는 않았지만, 이 장르에 속하는 음악은 대체로 고급문화로서의 품위 유지를 위해 직접적인 성적 표현을 삼가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하층 계급의 문화인 대중음악은 이러한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성에 관한 온갖 메타포가 넘쳐났다.[3] 실제로 미국에서는 재즈, 로큰롤, 댄스 등의 용어가 섹스를 의미하는 은어로 통용되었다. 대중음악의 에로티시즘은 복수의 층위에서 작동한다. 재즈와 로큰롤의 고유한 싱커페이션(syncopation), 당김음은 성적 인터코스의 리듬으로 인식되고, 색소폰이나 전기 기타의 음색에는 ‘관능적’이라는 수사가 따라붙는다. 한 대중음악 평론가는 70년대 대중가요에 사용된 메이저 세븐 코드에 대해 “야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4]

음악적 요소만으로 대중음악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대중음악은 폭넓은 표현 양식과 문화 현상을 포괄하는 쇼 비즈니스이며 종합 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이다. 노래의 가사, 연행 방식, 음반 재킷과 뮤직비디오의 이미지, 스타일과 패션 등은 음악 못지않게 중요한 대중음악의 표현 수단들이다. 이를 통해 대중음악의 에로티시즘은 다양하고 중층적인 방식으로 구성된다. 나아가 대중음악은 테크놀로지, 놀이 문화, 가십과 비평 담론, 국가, 종교, 시장 등 다양한 사회·기술적 요인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대중음악 에로티시즘의 구체적 형태가 나타난다. 이 글은 대중음악의 에로티시즘을 이와 같은 다양한 차원에서 규명하고 논의한다. 시공간의 특정 국면에 집중한 논의를 위해 20세기 서양 로큰롤, 20세기 아시아 디바, 그리고 21세기 한국의 아이돌 팝을 선택했다. 20세기 서양 로큰롤은 대중음악 성애화(eroticization)의 전범으로서, 20세기 아시아 디바는 극심한 억압의 상황에서 소수자 주체의 섹슈얼리티 실천 사례로서, 21세기 한국 아이돌 팝은 합리화된 에로티시즘의 전형으로서 살펴볼 수 있다.

 

고삐 풀린 성적 에너지, 로큰롤


1956년 미국 CBS의 인기 프로그램 〈밀튼 벌 쇼(The Milton Berle Show)〉에 출연한 엘비스 프레슬리가 자신의 히트곡 〈하운드 도그(Hound Dog)〉의 리듬에 맞춰 격렬하게 골반을 흔들어 댄 장면은 미국 전역에 엄청난 충격파를 주었다. 미국의 주류 사회가 소문으로만 듣던 엘비스의 존재를 처음으로 목격한 순간이었고, 로큰롤의 새로운 시대가 젊은 세대의 열광과 기성세대의 경악 속에서 본격적으로 개막한 사건이었다. 방송 이후 ‘풍차 돌리기(gyrating)’라 불린 엘비스의 춤 동작에는 ‘음란하다’는 비난이 따라붙었다. 신체를 과도하게 노출하거나 성적으로 노골적인 표현을 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주류 언론은 그에게 ‘골반의 엘비스(Elvis, the Pelvis)’라는 별명을 선사하고, 그의 춤을 스트립쇼(striptease)에 비교했다.[5] 그의 등장은 성도덕의 타락이자 건전한 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1968년 NBC-TV에서 방영된 특집 쇼에서 그는 당시의 분위기에 대해 농담을 섞어 가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골반의 엘비스(Elvis, the Pelvis)'라는 별명을 얻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춤 동작.
“플로리다에서 공연할 때,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새끼손가락뿐이었다. YMCA, P.G.A. (이런 단체들의 항의로) 경찰이 출동해 내 공연을 채증했다. 나는 가만히 서서 새끼손가락만 까딱거리며, ‘You ain’t nothing but a hound dog~’이라고 노래를 불러야 했다.”[6]

로큰롤은 과잉(excess)의 미학이다.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강력한 비트와 고막이 찢어져라 울려 대는 전기 기타의 기계음은 이전 세대 대중음악의 절제와 공손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로큰롤 가수들은 무대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흔들어 대고 얼굴을 찡그리며 괴성을 지르는 등 일찍이 볼 수 없던 광경을 연출했다. 정중한 아름다움을 미덕으로 삼았던 기성세대의 대중음악과 달리 로큰롤은 거칠고, 더럽고, 저속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젊은이들은 이 새로운 음악에 급격하게 빠져들었다. 〈밀튼 벌 쇼〉가 방영된 지 4개월 만에 출연한 〈에드 설리번 쇼(The Ed Sullivan Show)〉에서 엘비스의 노래는 여성 팬들의 쏟아지는 비명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대중음악 공연에서 여성 팬들이 브래지어와 가터벨트를 던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로큰롤은 젊은이들의 몸속 깊이 내재해 있던 ‘희한한 감정(funny feelings)’[7]을 끄집어내 증폭시켰고, 그들의 과감한 행동을 이끌었다. 로큰롤 공연은 대중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종교 행사를 방불케 하는 집단적 흥분의 장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로큰롤이 울려 퍼지는 댄스 플로어는 젊은 남녀의 성행위를 위한 전희의 코스가 되었다.

50년대 로큰롤은 육체적 표현의 금기를 파괴함으로써 대중음악 에로티시즘의 물꼬를 텄다. 이후 후발 주자들은 남아 있는 금기를 빠르게 깨 나갔다. 로큰롤은 더욱 빨라지고, 더욱 시끄러워졌으며, 더욱 성적으로 분방해졌다. 금기가 급속도로 사라지면서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도 크게 변화했다. ‘섹스와 마약과 로큰롤(sex & drugs & rock'n'roll)’이 새로운 쾌락주의 문화의 슬로건으로 확산되었다. 롤링 스톤스의 매니저 앤드류 루그 올드햄은 “당신의 딸이 롤링 스톤스 멤버와 결혼하는 걸 허락하시겠습니까?(Would you let your daughter marry a Rolling Stone?)”, “롤링 스톤스가 출몰했다. 딸들을 집 밖에 내보내지 마라!(Lock up your daughters, the Stones are rolling your way!)” 등의 홍보 카피를 고안하여 의도적으로 성적 약탈자의 이미지를 구축했다.[8] 60년대 초에 연주자의 배 높이에서 연주되던 전기 기타는 60년대 중반까지 골반 위치로 내려오더니, 1967년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Monterey Pop Festival)〉에서 지미 헨드릭스가 다리 사이에 끼우고 연주하면서 성행위를 흉내 낸 이후 남근 상징(phallic symbol)으로 확립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거치면서 성은 로큰롤의 중심으로 부상해 갔다.

육체의 열정과 충동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던 50년대 로큰롤 에로티시즘은 60~70년대를 지나면서 더욱 대담하고 직설적으로 변해 갔다. 흑인 노예를 상대로 인종주의적·여성 혐오적·폭력적 섹슈얼 판타지를 노래한 롤링 스톤스의 〈브라운 슈거(Brown Sugar)[9]〉, 제인 버킨의 거친 숨소리로 오르가즘을 묘사한 세르쥬 갱스부르의 〈사랑해요… 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Je t’Aime… Moi Non Plus)〉 등 성을 정면으로 다룬 노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로큰롤은 록이라는 용어로 단축되면서 더욱 강력하고 헤비하며 남성적인 사운드로 진화해 갔다. 대부분 남성이던 록 밴드의 보컬리스트와 기타리스트는 ‘섹스 신(sex god)’으로 추앙받았다. 60년대 이후 빠르게 성장한 음악 전문지들은 이들을 세속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자기 파괴적 쾌락에 탐닉하는 보헤미안적 영웅으로 형상화했다. 미국의 《롤링 스톤(Rolling Stone)》과 영국의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ME)》를 비롯한 잡지는 록 스타들의 환각 및 섹스 파티와 각종 기행에 관한 가십을 연이어 보도함으로써 그들의 초인적인 성적 능력과 록 스타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환상을 증폭시켰다. 지루한 일상에 멈춰 있던 젊은이들은 미디어가 뿜어내는 현대의 신화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록 음악의 쾌락주의가 정점에 달한 것은 80년대였다. 60년대 서구 사회에 휘몰아친 성 혁명 이후 록 에로티시즘의 진보는 거침없었다. 머틀리 크루로 대표되는 헤비메탈 그룹들은 ‘섹스와 마약과 로큰롤’ 라이프 스타일을 극단까지 밀어붙였고, 프린스, 마돈나, 프랭키 고스 투 할리우드 등은 대중음악의 표현 범위를 변태 성욕, 여성의 섹슈얼리티, 동성애로 확장했다. 그러나 정점에 오른 록 에로티시즘은 역풍을 맞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후천성 면역 결핍증(HIV), 즉 에이즈의 지구적 창궐이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이 파티에 몰두하지 않았고, 미국의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은 성적 방종에 대한 도덕적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10] 성 혁명 이후 전개되어 온 쾌락주의 트렌드는 크게 위축됐고 성 윤리에 관한 보수주의의 입지가 강화되었다.
보호자 지도 권고(Parental Advisory) 스티커.
이런 맥락에서 두 번째 역풍인 “보호자 지도 권고: 노골적인 가사(Parental Advisory: Explicit Lyrics)” 스티커의 도입이 몰아닥쳤다. 일군의 워싱턴 D. C. 거주 주부들의 캠페인에서 시작된 이 제도는 성적 표현에 대한 검열의 강화를 주된 목표로 삼았다. 이들은 자위와 섹스를 묘사한 신디 로퍼의 〈쉬 밥(She Bop)〉, 프린스의 〈달링 니키(Darling Nikki)〉, 마돈나의 〈드레스 유 업(Dress You Up)〉 등의 노래를 포함하여 ‘부도덕한 15곡(the filthy 15)’ 리스트를 만들고, 워싱턴 정가의 인맥을 활용하여 강력한 입법 로비 활동을 벌였다.[11] 이들은 부도덕한 음반에 대해 X-등급 음란물에 상응하는 규제를 가하라고 요구했다.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음반은 제한된 장소에서 신분증 확인 절차를 거쳐서만 판매하라는 요구였다. 이들의 요구는 결국 관철되지 못했지만, 미국 음반산업협회(RIAA)의 검열과 스티커 부착으로 이어졌다. 이 조치가 강제력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월마트를 비롯한 일부 대형 매장들이 스티커가 붙은 음반의 유통을 거부하기로 결정하면서 해당 음반사와 아티스트에게는 상당한 경제적 타격이 예상되었다. 음반사들은 클린 버전을 별도로 만들어 유통하는 방식으로 변화에 대응했다. 그러나 스티커의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스티커 버전을 구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스티커 버전을 진본으로 간주하여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도 생겨났다. 일시적 역풍은 있었지만 록 음악의 에로티시즘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주류 팝 음악에까지 전파되어 성적인 코드를 대중문화 전반으로 확산시켰다.

 

억압 속의 여성 섹슈얼리티 


아시아의 대중음악은 서양에서 유래한 모더니티의 산물이다. 나라와 지역마다 전통과 접합하여 제각기 독특한 혼종의 형태를 만들어 내기는 했지만, 20세기 아시아 각국 각지의 대중음악 트렌드는 크게 보아 재즈, 로큰롤, 사이키델릭·포크, 디스코, 헤비메탈, 얼터너티브, 힙합으로 이어지는 서양, 그중에서도 미국과 영국의 발전 궤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서양 대중음악의 최신 트렌드를 부지런히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대중음악은 서양의 에로티시즘과 일정한 담을 쌓고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강력한 비트, 자극적인 사운드, 격렬한 스테이지 액션, 약물에의 탐닉, 비명을 지르는 여성 팬들, 정열적인 댄스 플로어까지 서양에서 발생한 모든 것들이 아시아에서도 나타났지만 긍정적인 의미에서 성적으로 의미화된 경우는 드물다. 밴드의 프론트 맨이 아무리 성적으로 ‘활발한’ 삶을 영위해도 그가 섹스 신으로 추앙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의 화려한 편력은 믿거나 말거나식 풍문으로나 전해질 뿐, 성에 관한 모든 것은 침묵이 원칙이었다.

20세기 아시아 각국의 성적 보수주의에서 그 원인의 일단을 찾을 수 있다. 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같은 포스트 식민주의 독재 국가든, 중국, 북한, 베트남 같은 사회주의 국가든,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이란 같은 종교 국가든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은 지극히 보수적인 잣대로 대중의 성도덕을 규제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는 사회 전반적으로 국가의 직접적 개입이 없어도 성적 표현을 억압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런 상황에서 에로티시즘이 피어날 여지는 적었다. 그러나 금욕적인 분위기에서도 성적 욕망과 에너지는 완벽하게 통제되지 않았다. 오히려 억압된 욕망은 미세한 자극에도 터져 나오도록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20세기 아시아 대중음악에서 여성은 바로 이 지점에 위치한다. 여성 가수들은 한편으로 가부장제의 금욕적 규율에 순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남성 청중의 에로티시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모순적 위치를 갖고 있었다. 모순 사이의 협상과 규범에 대한 전략적 위반이 아시아 대중음악의 에로티시즘을 형성했다.

20세기 초의 아시아는 극단적 가부장제가 지배한 공간이다. 남성과 여성은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서로 다른 성 역할을 수행하도록 규율되었다. 여성의 공간인 가정을 벗어나 남성의 공간에 들어온 여성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취급되었다. 대중음악은 비교적 일찍부터 여성의 참여가 이루어진 분야다. 비록 가수나 무용수 등 일부 분야에 국한되었을 뿐이지만 대중음악은 여성 엔터테이너에 대한 일정한 수요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 진출을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일반 가정의 규수가 선뜻 이 길에 뛰어들기는 어려웠다. 초창기 여성 대중음악가들이 주로 낮은 신분에서 충원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0세기 초 한국의 여성 가수 중에는 기생이나 작부 출신이 많았고,[12] 이는 아시아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대중음악의 이러한 기원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여성 가수와 성매매 여성을 동일시하는 편견이 만연하게 된 근본 원인이다.[13]

물론 이러한 편견에는 대중 엔터테이너라는 직업의 특성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외간 남성과는 눈도 맞출 수 없는 사회 분위기에서 여성 가수들은 뭇 남성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그들에게 웃음을 던지고 말을 걸며, 육체의 일부인 목소리로 쾌락을 제공했다. 가부장제의 시각에서 이는 성매매와 비슷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당시의 여성 가수들은 남성 관객들의 성적 희롱과 도덕적 비난을 일상적으로 받아넘겨야 했다. 여성 가수들은 처음부터 성애화된 존재로 생산되었다. 그들이 특별히 성적으로 자극적인 행위를 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목소리, 외양, 몸동작, 그들에 관해 만들어진 담론 하나하나가 욕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여성 가수의 몸은 세심하게 관찰되고, 평가되고, 욕망되었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에로티시즘의 화신이었다.

여성 가수의 에로티시즘을 증폭시키는 데는 기술의 발전도 한몫했다. 방송과 음반이 보급되면서 ‘육체에서 분리된(disembodied)’ 목소리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언제 어디든 도달하게 되었다. 이는 여성의 유혹적인 목소리가 깊은 밤 내밀한 가정집 침실에까지 침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가 지니는 성적 함의는 건전한 주류 사회의 도덕적 공황을 불러일으켰다. 1934년 12월호 《개벽》에는 라디오의 보급이 초래한 도덕적 타락을 개탄한 기사가 실려 있다.

“술 취해서 부르는 요정의 불건실한 기분과 타락한 가사를 기생의 입으로 부르는 그 노랫소리가 가정에까지 매일 밤 드러온다. 이는 자녀 교육에 불소(不少)한 정신상 해독을 받을까 보아 두렵다.”[14]

마이크 기술의 발달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마이크가 광범위하게 활용되면서 가수들은 더 이상 소리를 지를 필요가 없어졌다. 이는 다양한 창법과 보컬 표현의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특히 여성 보컬은 속삭임과 호흡, 비음 등을 활용하면서 보다 여성적이고 내밀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압도적인 성량을 과시하는 오페라식 창법은 섹시함과 거리가 있다. 귀에 대고 속삭이듯, 은밀하게 유혹하듯 노래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목소리는 관능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이른바 ‘소리 반, 공기 반’ 창법은 숨소리를 보컬에 포함시킴으로써 성적 욕망 또는 흥분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15] 중국에서는 이를 기성(气声) 창법이라 부르는데, 1980년에 여성 가수 리구이(李谷一)가 이 창법을 사용하여 〈고향을 그리워함(乡恋)〉이라는 노래를 불러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에서는 통속 창법의 전형으로 간주된 기성 창법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기성 창법은 1986년에야 정식으로 승인되었다.[16]

섹슈얼리티는 젠더 정체성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다. 20세기 아시아의 여성 가수들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부정하는 가부장제의 강요된 여성성에 대해 때로는 대항하고 때로는 타협하면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실험하고, 구축하는 긴 투쟁을 전개했다. 그렇다고 마이크를 상대로 애무를 시연한 티나 터너나 무대 위에서 자위하는 모습을 연출한 마돈나식의 도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 제스처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디바들의 금기 위반은 억압적 상황에서 성적 표현과 여성의 성적 주체성 확장에 기여했다. 예를 들어 50년대 인도 타밀어 영화의 플레이백 가수[17] 에스와리(L. R. Eswari)는 허스키한 목소리와 역동적인 무대 매너로 가부장제의 허용 한계를 시험했다. 타밀족 문화에서는 맑은 목소리는 선, 탁한 목소리는 악이라는 도식이 확립되어 있었고, 가수는 무대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노래에만 집중해야 했다. 에스와리의 선택은 이러한 요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다. 그는 탁성으로 세속적인 감정을 노래했고, 무대 위에서 몸을 흔들거나 두 팔을 들어 올려 박수를 유도하고 손 키스를 날리는 등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이처럼 여성이 육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성적 유혹과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사회적 존경을 박탈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감행한 것이었고, 결국 그의 행동은 성적으로 매력적인 ‘나쁜 여자(bad girl)’의 페르소나를 구축했다.[18]

70년대 인도네시아의 크론총(keron cong)[19] 가수 왈지나(Waldjinah)는 성적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경우에 해당된다. 젊은 시절 섹스 폭탄(sex bomb)이라 불릴 만큼 성적 매력을 앞세웠던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일정한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왈지나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카인 크바야(kain kebaya)를 입고 무대에 섰다. 그 옷이 인도네시아를 상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크론총이 고급스런 음악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 카인 크바야의 장점은 공식적이지만 지나치게 공식적이지 않다는 점에 있다. 나는 종종 허벅지까지 트인 카인을 입었는데, 그런 차림으로 나타나면 사람들은 몹시 흥분했다. (웃음) 하지만 너무 많이 노출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20]

20세기 아시아 여성 가수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된 특징은 성적 표현과 관련한 한계를 예민하게 지각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추방이라는 현실적인 위협이 늘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순응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위반을 감행했다. 즐겨 채택한 전략은 중화(neutralization)였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 나쁜 여자나 섹스 폭탄 등의 페르소나를 활용했지만, 사생활에서는 사회적으로 모범적인 여성상을 연기했다. 에스와리는 어린 동생들을 직접 양육하는 동시에, 종교 음악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왈지나는 치밀한 자기 관리를 실천했다. 그는 공개된 장소에서 목격되는 것을 극히 삼갔다. 사람들과의 만남은 주로 집에서 가졌고, 밖에서 모임이 있을 경우에는 가족과 동행했다. 혼자 나가거나 낯선 남자와 함께 있는 광경은 처음부터 만들지 않았다. 이들은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사생활의 단면을 통해, 성적인 무대 페르소나가 단지 콘셉트에 불과함을 보여 주려 했다. 서양의 경우와 달리 ‘섹스와 마약과 로큰롤’이라는 라이프 스타일은 사생활의 영역으로 연장되지 않았다.
펜 란(Pen Ran)의 앨범.
아시아에도 성적으로 과감한 디바들은 존재했다. ‘캄보디아의 흑인 가수’로 불린 60년대 인기 여성 가수 펜 란(Pen Ran)은 역동적인 춤 동작과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다. 그는 남성이 대다수인 청중을 상대로 야한 농담을 던지고 시시덕거릴 정도로 대담했다. 그의 노래는 전통적인 사회 규범과 관습을 조롱했고, 때로는 직설적인 성적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오! 내 몸은 꿈틀거려/내 얼굴과 입술은 불붙은 듯 뜨거워/민감해져/소름이 돋고/짜릿해!”라고 노래하는 〈부끄러워할 것 없어(Kmean Avey Khmas)〉[21]는 아시아 대중음악으로는 이례적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정면으로 다뤘다. 그러나 그의 당차고 비타협적인 태도는 1975년에 캄보디아 프놈펜을 점령한 공산당 무장 군사 조직 크메르 루주에게 결코 우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체포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종되었다.

펜 란에 비해 조금 늦게 등장한 한국의 김추자도 20세기 아시아 대중음악의 에로티시즘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다. 가수로서 그는 대단히 이례적인 존재였다.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유명한 말이 있지만, 우리는 김추자를 단순히 노래 잘하는 가수로 기억하지 않는다. 가수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지만 김추자의 진면목은 목소리가 아니라 몸에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빼어난 미모나 팔등신의 몸매를 과시한 것도 아니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김추자의 몸은 움직일 때 그 진가를 발휘했다. 훈련되지 않은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춤 동작은 전문가의 눈에는 어설프게 보일 수 있겠지만, 바라보는 청중에게는 육체적 충격의 느낌으로 전달되었다. 그는 격렬한 움직임을 통해 문화평론가 이성욱이 “모든 것을 녹여 버리는 존재성”[22]이라고 표현했던 강력하고 원초적인 성적 에너지를 발산했다. 1956년 엘비스가 그랬듯 75년 이전의 김추자는 순수한 리비도(libido)의 구현이었고, 저항할 수 없는 자연력(force of nature)이었다. 주류 사회는 이처럼 위험한 김추자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미친 ×’, ‘퇴폐’, ‘간첩’ 등의 비난이 줄곧 따라다녔다. 이윽고 75년 겨울의 대마초 일제 단속으로 그의 음악 커리어는 실질적 종말을 고했다.

 

아이돌 팝, 매뉴얼화된 에로티시즘


록 음악이 주도한 서양의 공격적이고 남성적인 에로티시즘과 달리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대중음악에서 에로티시즘의 주된 캔버스가 된 것은 댄스 음악이다. 댄스 음악은 다른 어떤 대중음악 장르보다 몸에 초점을 맞춘 음악이라는 점에서 에로티시즘과 관련이 깊다. 댄스 음악의 흥겨운 리듬은 듣는 사람의 몸을 움직이게 함과 동시에 가수의 춤 동작에 주목하도록 만든다. 이를 통해 얻어지는 쾌락의 성격은 육체적이다. 춤은 경계와 통제를 이완시키고 타인의 신체와 즉각적인 정동적 결합을 촉진한다. 이는 나의 경계를 초월해 타인과 하나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23] 한국의 댄스 음악에서 시연되는 에로티시즘은 서양의 록 또는 힙합의 그것에 비해 여성 중심적이고 덜 공격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멀리는 김추자에서 가깝게는 김완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댄스 음악의 역사를 주도한 것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춤이 지닌 젠더적 함의로 인해 남성은 춤을 추지 않았다. 80년대 중반 이후에야 뒤늦게 소방차와 박남정 등이 여기에 가세했지만, 이들에게서 에로틱한 감정을 느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김추자의 로우 앵글 샷이 담긴 앨범 재킷. ⓒDiscogs
이런 상황에서 댄스 음악은 대중음악에서 여성 에로티시즘이 시연되는 가장 중요한 무대로 발전해 왔다. 두말할 나위 없이 에로티시즘의 전략적 지점은 여성 가수의 육체였다. 김추자의 사진 중에는 엉덩이를 강조한 로우 앵글 샷이 유난히 많다. 이러한 기법은 70년대 말 희자매의 사진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김인순(인순이)을 중심으로 한 세 명의 글래머 여성들이 스판덱스 소재의 옷을 입고 엉덩이를 내밀며 서 있는 로우 앵글 샷 사진은 단박에 시선을 빼앗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김완선의 경우 이런 사진은 없으나, 그의 춤이 가슴과 다리와 허리 등 신체 부위를 부각시키도록 만들어졌다는 지적이 있다.[24] 이렇듯 댄스 음악의 에로티시즘은 시각 매체를 겨냥한 여성 신체의 성애화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한국 댄스 음악의 성적 표현은 아직 온건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김완선이 컬러TV 시대를 대표하는 섹스 심벌로 부상했지만, 과도한 노출을 하거나 선정적 제스처를 취한 적은 없었다.[25] 그가 무기로 삼은 것은 화려한 이미지와 섹시한 분위기였다. 아마도 그의 어린 나이가 작용했겠지만, 그는 성적으로 적극적이기보다는 무지한 쪽에 가까웠다. 한국 댄스 음악, 나아가 대중음악 전체가 성에 대한 죄의식을 덜고 에로티시즘을 전면화하기 시작한 것은 박진영의 등장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데뷔 초인 90년대부터 음악뿐 아니라 각종 발언과 미디어 이벤트를 통해 성에 관한 진취적 견해를 피력해 왔다.[26] 데뷔곡 〈날 떠나지 마〉의 엉덩이춤과 〈엘리베이터〉의 관능 예찬으로 그는 남성의 몸을 성애화한 최초의 한국 아티스트로 기록되었다. 그의 시도는 2000년에 박지윤과 함께 만든 〈성인식〉과 이듬해 자신이 직접 발표한 앨범 《Game》에서 정점에 올랐다. 〈성인식〉은 90년대와 확연히 구별되는 팝 에로티시즘의 진일보를 표상하는 곡이다. 노래의 가사와 뮤직비디오는 옅게 가려진 성적 메타포로 충만하며, 박지윤의 눈빛과 목소리는 성적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80년대 김완선에 이어 엄정화와 백지영으로 이어지는 90년대 ‘섹시 댄스 디바’들이 관능적 외모와 육감적 목소리에 의존한 다소 소극적인 에로티시즘을 연행했다면, 박지윤은 보다 과감하고 도발적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했다. 반면 앨범의 절반이 성에 관한 노래로 채워진 《Game》은 직설적인 성적 표현을 동원해 권력관계에서 자유로운 ‘진정한’ 에로스적 사랑을 복원하려 했다.[27]
박진영이 JYP에서 육성한 남성 아이돌 그룹 2PM.
21세기 초입에 발표된 이 두 작품은 한국 대중음악에서 보다 과감한 성적 표현이 쏟아져 나오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이후 수많은 노래가 가사와 춤과 이미지의 수단을 매개로 한층 고조된 에로티시즘을 연출했다. 박진영은 박지윤을 끝으로 여성 에로티시즘에 대한 탐구를 멈추고, 남성 에로티시즘의 세계를 파고들었다. 그가 JYP를 통해 육성한 원더걸스나 미쓰에이, 그리고 최근의 트와이스 같은 여성 그룹들은 그의 과거 행적을 고려할 때 다소 보수적인 성향의 퍼포먼스를 보여 준다. 반면 비와 2PM 등 남성 가수들은 섹슈얼리티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을 구사했다. 여기서도 핵심어는 몸이었다. 이들은 ‘몸짱’ 또는 ‘짐승돌’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스테이지에서 옷을 벗어 근육질의 몸을 드러내는 장면을 즐겨 연출했다. 그것은 확실히 여성을 타깃으로 한 퍼포먼스였다. 그가 90년대부터 ‘여성에게 쾌락을 주는 남성의 성적 대상화’[28]를 추구한 점을 감안하면, 그러한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한 연구는 젊은 여성들로 이루어진 비의 싱가포르 팬덤이 그의 성애화된 벗은 몸을 소비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고한 바 있다.[29]

남성 아이돌의 섹슈얼리티가 소비되는 또 하나의 방식은 팬픽의 형태로 유통되는 동성애 코드다. 일본의 야오이(やおい)나 영어권의 슬래시 픽션(slash fiction)에서 알 수 있듯 이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여성 팬덤 문화의 일부다. 한국 아이돌 팬픽의 독특한 점은 그것이 소설의 실제 주인공에게 다시 영향을 미쳐 보이 밴드 멤버들 간의 동성애 판타지가 무대 위에서 재현된다는 점이다. 재현의 재현인 셈이다. 슈퍼주니어의 김희철과 이성민, 그리고 팬들 사이에서 ‘릭셩’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신화의 에릭과 신해성은 이성애자임에도 불구하고 팬 서비스 차원에서 무대 위 동성애 관계를 연출하곤 했다.[30]

반면 여성 아이돌의 경우는 이른바 ‘섹시 콘셉트’가 에로티시즘을 표현하는 주된 수단으로 정착했다.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털기춤’이나 ‘쩍벌춤’ 등 야한 몸동작을 구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다. 미디어 노출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마이너 기획사에서 단번에 소비자의 시선을 끌거나 화제를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즐겨 사용한다. 섹시 콘셉트의 범람은 한편으로 한국 사회에서 성 표현에 대한 금기의 벽이 크게 낮아졌음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에로티시즘의 합리화를 보여 주기도 한다. 여기서 합리화란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가 사용한 의미로서, 에로티시즘이 이윤 추구의 목적으로 적용 가능한 하나의 표준화된 기술 또는 매뉴얼의 형태로 객관화되었음을 지칭한다.[31] 사실 TV에 나와 사무적인 톤으로 야한 춤 동작을 “이렇게 하는 거예요”라고 설명하는 걸그룹 멤버들을 보면, 그들이 표현하는 에로티시즘은 그들 몸의 욕망에서 유리된 어떤 것임을 명확히 깨닫게 된다. 겉으로는 아무리 도발적으로 보인다 해도 배운 대로 하는 에로티시즘은 순응적이고 보수적이다. 그것은 냉소적이며 에로틱하지 않다.

 

금기와 협상하고 위반하는 에로티시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에 따르면 에로티시즘은 생물학적 재생산 활동인 섹스가 문화적으로 승화된 것이다. 재생산을 위해 자연적으로 주어진 성적 에너지는 재생산이 이뤄지는 바로 그 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잉여 상태로 존재한다. 에로티시즘은 바로 이 풍부하게 남아도는 성적 에너지가 인간에 의해 재활용되는 방식이다.

여기서 핵심은 재생산과 쾌락의 분리다. 이를 통해 성적 쾌락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쾌락의 극치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섹스는 쾌락 추구 행위로 재구성되며, 에로티시즘은 경험의 강도와 관련한 미학적 범주로 재정의된다. 에로티시즘은 재생산의 자연적 과정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유로운 상상력과 실험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육체적 쾌락으로서의 에로티시즘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섹스의 한정된 범위를 벗어나 인간 생활의 전 영역으로 번식한다.

인간 사회는 번식하는 에로티시즘의 통제 가능성에 대해 깊은 의구심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국가, 종교, 교육으로 대표되는 정신적 지배 도구들은 에로티시즘을 재생산 기능으로 축소하거나 (쾌락적 섹스의 도덕적 정당화라 할 수 있는) 사랑에 종속시킴으로써 그것의 잠재적 파괴성을 관리하려 했다. 이런 의미에서 성의 역사[32]는 금지와 규제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바우만은 20세기 중반 서구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진 성 혁명 이후 비로소 에로티시즘이 이러한 이중적 제약에서 해방되었다고 본다. 바우만은 모든 구속에서 자유로운 포스트모던 에로티시즘의 도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찰나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은 불안하고 강박적인 자아를 생산하고 익숙한 사회성(sociality)을 붕괴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에로티시즘이 모든 외적 제약에서 풀려나왔다는 바우만의 진단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젠더와 연령, 성적 지향과 친족 관계의 분리선을 타고 벌어지는 성적 억압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사실이다. 특히 많은 비서구권 사회에서 성은 여전히 위험성 높은 주제로 남아 있다. 나아가 과연 금기와 규제 없는 에로티시즘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바우만 자신도 암시하듯 하나의 금기가 무너진 곳에는 언제나 새로운 금기가 세워진다. 한 사회의 에로티시즘은 시공간적으로 위치 지워진 금기에 대한 협상과 위반(transgression)을 통해 그 모습이 구체화된다. 이런 점에서 에로티시즘을 이해하는 데 금기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인간의 에로티시즘은 동물의 성행위와 다르다. 결정적인 차이는 금기의 존재다. 제아무리 급진적인 성해방주의자도 아무런 금기 없는 무한한 성적 자유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성적 활동에는 언제나 금기가 수반된다.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는 에로티시즘을 기능적·합리적·생산적 노동 세계의 맞은편에 위치한 신성한 영역으로 개념화한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쾌락을 넘어선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경험으로서 오직 금기의 위반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 바타유에 따르면 세속적 삶을 구성하는 긍정적 재생산의 영역은 인간 존재의 단지 한 측면만을 표상할 뿐이다. 인간에게는 죽음과 파괴로 상징되는 어둡고 폭력적인 세계가 다른 한편에 있고, 바로 이 세계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

흥미로운 것은 금기가 준수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반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바타유의 주장이다. 금기는 우리에게 공포심을 갖게 만들지만, 에로티시즘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금기를 눌러 이기고 싶은 욕망이다.[33] 이 점에서 바타유의 에로티시즘은 공포와 죄책감이라는 고통을 수반하며, 궁극적으로 죽음과 동일한 것이 된다. 오르가즘의 전율을 ‘작은 죽음(petit mort)’으로 표현하는 그는 에로티시즘의 완성이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바타유의 금기는 에로티시즘의 방해물이나 철폐되어야 할 악이 아니라,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움 사이의 경계다. 없앨 수도 없고,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금기는 세속의 단조로움을 벗어나 지고의 엑스터시를 경험하기 위해 넘어야 할 관문인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에로티시즘


에로티시즘의 진화는 단선적인 경로를 따르지 않는다. 각국 각지의 상이한 조건은 상이한 어젠다를 생성하며, 이는 다시 상이한 종류의 해결책을 유발한다. 한 국가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나라도 폐쇄적인 발전을 하지 않는다. 발전은 내부와 외부를 아우르는 시공간적 관계의 연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 나라나 이상형으로 간주되는 한 문화에 시선을 집중하는 것은 부족하고 적절치 못하다. 각국 각지에서 전개되는 에로티시즘의 다양한 양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거시적인 수준에서 대중음악 에로티시즘의 진화가 성적 자유 또는 성적 표현의 자유가 확장되는 과정이라는 진보주의적 관점을 간직하는 것도 중요하다. 진보주의적 관점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랬다는 객관주의적 언명과도,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목적론적 예견과도 무관하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정치적 신념에 가깝다.

그런데 근래 발생한 미투 운동은 에로티시즘에 대한 판단을 복잡하게 만든다. 에로티시즘은 과연 좋은 것인가? 그것이 인간의 삶을 고양하고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는 오랜 신념을 그대로 유지해도 괜찮은 것일까? 문제의 핵심은 기존의 에로티시즘이 남성 중심적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불가피하게 편향된 시각을 드러내며 폭력적인 성격을 내포한다. 우리는 그동안 가려져 있었거나 주목받지 못한 에로티시즘의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티나 터너가 선보인 과감한 스테이지 액션은 남편 아이크 터너가 폭력을 휘두르며 강요한 결과물이었다. 남성 관객들과 무대 위에서 당차게 추파를 주고받던 필리핀 여성 가수 케이티 데 라 크루스(Katy de la Cruz)는 현실에서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남편과 불행한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21세기 한국 대중음악 에로티시즘의 빗장을 연 박지윤은 섹시 콘셉트가 자신의 성격과 맞지 않아 고민 끝에 음악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사정을 토로한 바 있다. 이 사실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우리가 즐기는 에로티시즘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적지 않은 경우 그것은 에로티시즘을 시연하는 당사자의 뜻과 무관하게 생산되며, 그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각에서는 에로티시즘과 성희롱을 동일시하여 여성 앞에서는 성적 표현이나 농담을 일체 삼가야 한다는 청교도주의적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주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여성을 성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지워 버리는 봉건적 가부장제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에로티시즘에서 폭력의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이 독점하던 에로티시즘의 세계에 여성의 참여를 더욱 증대시키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서양에는 이미 여성이 자신의 성적 경험과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한 노래들이 많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이나 오지은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런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찾기 어렵다. 아마도 아직 강고하게 남아 있는 여성과 성이라는 금기가 이를 막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결국 금기를 푸는 문제와 결부된다. 단기적으로는 남성의 성희롱적 언사에 규제를 가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표현의 자유를 확대함으로써 젠더화된 에로티시즘의 새로운 지평을 구축해야 한다.
 
[1]
이 글에서 정동(affect)은 물질적 신체로서의 인간이 다른 사물들과 주고받는 비언어적 상호 작용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을 의미한다. 정동 개념에는 다양한 갈래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정동은 언어 이전 또는 의식 이전의 신체적 반응을 지칭한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을 흔히 경험한다. 입에 안 맞는 음식을 먹었을 때, 어색한 분위기에 노출되었을 때, 신나는 음악을 들었을 때 등의 순간이다. 정동 이론의 문제의식은 언어, 의도, 의식 등 인간의 주체성을 가정하는 범주가 인간의 행위나 세계의 작동을 설명하기에 너무나 빈약한 도구들이라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2]
이는 특정한 몇몇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경건함을 생명으로 하는 종교 음악에서조차 음악은 불가피하게 성적 에너지를 표출했고, 이를 억누르는 것은 종교의 오랜 난제로 남아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탈레반이나 IS 같은 종교적 원리주의자들은 음악 자체를 전면 폐지했고, 말레이시아의 이슬람 팝이나 이슬람 혁명 이후의 이란은 여성 가수의 대중 공연을 금지하는 극단적 조치로 대응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하라. Bart Barendregt, 〈The Art of No-seduction: Muslim Boy-band Music in Southeast Asia and the Fear of the Female Voice〉, IIAS Newsletter #40 (Spring 2006); Ann Powers, 《Good Booty: Love and Sex, Black & White, Body and Soul in American Music》, Harper Collins, 2017; Andrew N. Weintraub and Bart Barendregt, eds., 《Vamping the Stage: Female Voices of Asian Modernity》,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7.
[3]
여기서 ‘상대적’이라고 쓴 것은 대중음악이 성적 표현과 관련하여 무한정의 자유를 누리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성의 제도로서 대중음악은 국가의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가장 큰 표현의 자유를 누린 음악은 대중음악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민속 음악이다. 원작자도 없이 구전으로 유통되고 생산된 이들 노래는 규제가 불가능했던 만큼 놀랄 정도로 진솔한 성적 표현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 전통 블루스곡〈그는 큼직한 10인치짜리 물건을 꺼냈네(He Got Out His Big Ten Inch)〉나 한국의 〈진도아리랑〉(“뒷산에 딱따구리는 참나무 구멍도 파는데/우리 집에 멍텅구리는 있는 구멍도 못 찾네”)은 이를 단적으로 예시하는 곡들이다.
[4]
신현준, 〈최병걸 외 | 난 정말 몰랐었네/그 사람 (19780205)〉, 《WEIV》, 2003. 3. 20. (검색일: 2018. 5. 10)
[5]
Uta G. Poiger, 〈Rock ’n’ Roll, Female Sexuality, and the Cold War Battle over German Identities〉, 《The Journal of Modern History》68(3), 1996, 589쪽.
[6]
Elvis Presley, 〈NBC-TV Special〉, 1968, RCA.
[7]
Ann Powers, 《Good Booty: Love and Sex, Black & White, Body and Soul in American Music》, Harper Collins, 2017
[8]
Laura Jackson, 〈Brian Jones: The Untold Life and Mysterious Death of a Rock Legend〉, Hachette Digital, 1992.
[9]
이 노래의 원제는 〈검은 보지(Black Pussy)〉였으나, 차마 그대로 발표할 수 없었던 롤링 스톤스 멤버들이 마지막 순간 ‘흑설탕’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바꾸었다. 다음 글 참조. Lauretta Charlton, 〈Brown Sugar’ Is a Dirty Song About Slavery and Sex, and I Love It〉, 《Vulture: Devouring Culture》, April 3, 2015. (검색일: 2018. 6. 2)
[10]
Donald T. Critchlow, 〈The Conservative Ascendancy: How the GOP Right Made Political History〉,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217-219쪽.
[11]
이 단체를 주도한 인물은 몇 년 후 클린턴 정권의 부통령이 된 앨 고어(Al Gore)의 부인 메리 고어(Mary Gore)였다. 캠페인에 참가한 다른 주부들도 유력 인사를 남편으로 둔 경우가 많았다. 캠페인이 힘을 발휘한 것은 당시 미국의 보수적 분위기와 함께 이들의 특권적 지위에 크게 의존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신문 기사를 참조하라. Dave Simpson, 〈May contain masturbation: the woman weaponising pop’s Filthy 15〉, The Guardian, 2018. 4. 26. (검색일: 2018. 5. 20)
[12]
김창남 編, 《대중음악의 이해》, 한울, 2012, 257-258쪽.
[13]
이에 관해서는 Andrew N. Weintraub and Bart Barendregt, eds., 《Vamping the Stage: Female Voices of Asian Modernity》,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7을 참조. 이 책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이러한 현상이 공통적으로 발생했음을 잘 보여 준다. 일례로 중국에서는 이를 창녕불분(娼伶不分)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14]
마이클 로빈슨(신기욱·마이클 로빈슨 編), 〈방송, 문화적 헤게모니, 식민지 근대성, 1924~1945〉,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을 넘어서》, 도면희 역, 삼인, 2006, 123쪽에서 재인용.
[15]
Amanda Weidman, 〈The Remarkable Career of L.R. Eswari〉, Andrew N. Weintraub and Bart Barendregt, eds., 《Vamping the Stage: Female Voices of Asian Modernity》,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7. 185쪽.
[16]
장치엔(신현준·이기웅 編), 〈1978~1989년 사회 이행기의 중국 음악영상산업과 통속음악의 형성〉, 《변방의 사운드: 모더니티와 아시안 팝의 전개 1960-2000》, 채륜, 2017.
[17]
플레이백 가수란 뮤지컬 영화의 노래 부분을 전담해 부르는 가수를 지칭한다. 스크린상의 연기는 배우가 하지만, 노래는 플레이백 가수가 부른 것을 더빙해 상영한다. 이는 20세기 초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광범위하게 실천되던 관행이었다. 플레이백 가수 중에는 영화와 상관없이 높은 인기를 누린 가수도 있었다. L. R. 에스와리는 그 대표적 사례의 하나다.
[18]
Amanda Weidman, 〈The Remarkable Career of L.R. Eswari〉, Andrew N. Weintraub and Bart Barendregt, eds., 《Vamping the Stage: Female Voices of Asian Modernity》,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7.
[19]
인도네시아 근대 음악 중의 하나. 포르투갈 식민 시대에 항구 지역에서 태어나 동서 음악이 융합된 산물로서, 코드 진행이 있는 것이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과 다른 점이다. 〈크론총〉, 《파퓰러음악용어사전 & 클래식음악용어사전 - 네이버 지식백과》
[20]
Russell P. Skelchy, 〈Beyond Black and Gray: Portraits and Scenes of Javanese Singer Waldjinah in Indonesian Popular Print Media〉, Amanda Weidman, 〈The Remarkable Career of L.R. Eswari〉, Andrew N. Weintraub and Bart Barendregt, eds., 《Vamping the Stage: Female Voices of Asian Modernity》,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7, 285-286쪽.
[21]
신현준·이기웅 編,《변방의 사운드: 모더니티와 아시안 팝의 전개 1960-2000》, 채륜, 2017., 282-283쪽.
[22]
이성욱, 〈올드팬 열전(2): 김추자—억압된 대중의 욕망과 함께 솟구친 그녀〉, 《월간 말》188, 2002, 136쪽.
[23]
라캉은 주체 형성을 현실계, 상상계, 상징계의 개념들로 설명한다. 인간은 현실계로 태어난다. 여기서 아이는 어머니와 자신이 분리되지 않은 일체로 여기며, 그 관계는 완벽하고 완전한 것으로 경험된다. 6~18개월 사이에 아이는 거울 단계를 통해 상상계로 진입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독립적인 존재임을 깨닫고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다. 핵심은 아이가 자신을 어머니와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이후 아이는 언어를 배우면서 상징계에 진입한다. 이를 통해 아이는 자연의 영역인 현실계를 떠나 인간의 질서에 편입된다. 이 단계들은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서, 아이는 이를 거치면서 현실계의 원초적 풍부함과 완전한 만족을 영원히 상실한다. 라캉은 이를 인간의 본원적인 결핍(lack)이라 부르며, 이러한 결핍을 채우기 위한 추구가 바로 욕망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욕망은 끊임없이 불완전한 대체물만을 발견할 뿐, 자신이 상실한 것을 결코 되찾지 못한다. 라캉에 대한 비교적 쉬운 입문서로는 숀 호머(김서역 譯), 《라캉 읽기》, 은행나무, 2014 와 슬라보예 지젝(박정수 譯), 《How To Read 라캉》, 웅진지식하우스, 2007. 등을 볼 것.
[24]
Hee-sun Kim, “Mainstreaming Dance Music and Articulating Femininity: South Korean Dance Divas in the 1980s,” Andrew N. Weintraub and Bart Barendregt, Andrew N. Weintraub and Bart Barendregt, eds., 《Vamping the Stage: Female Voices of Asian Modernity》,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7, 312쪽.
[25]
그의 불행한 누드집은 이 맥락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26]
자세한 내용은 김환표, 〈평생 공연하다가 죽는 게 꿈이다: JYP 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인물과사상》 184, 2013, 131-133쪽.
[27]
《Game》에 대한 인문학적 비평으로는 조성면, 《대중문화와 정전에 대한 반역》, 소명출판, 2002.
[28]
주철환, 〈주철환이 TV 밖에서 만난 스타: 박진영—시사 토크쇼 진행하고픈 ‘대중 공화국’ 자유주의자〉, 《월간 말》 153, 1999, 220쪽.
[29]
Sun Jung, 《Korean Masculinities and Transcultural Consumption: Yonsama, Rain, Oldboy, Kpop Idols》, Hong Kong University Press, 2011, 96-98쪽.
[30]
최지연, 〈팬픽과 팬서비스: 이성애적 케이팝 산업 내의 동성애의 전용 및 상업화〉, 제19회 한국대중음악학회 정기학술대회 발표 논문, 2016.
[31]
막스 베버는 근대 사회의 근본적인 특성을 합리성으로 규정하고, 근대화의 과정을 점증하는 합리화로 기술했다. 그에게 있어 합리화란 사회생활의 모든 것이 계산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것으로 객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다. 베버는 이를 근대 사회의 불가피한 추세로 인정하면서도, 합리화가 가져올 파괴적 결과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합리화는 가치, 윤리, 심미, 감정 등 측정이 불가능한 주관적 요인들을 측정 가능한 단위로 단순화함으로써 인간의 주관을 조작과 통제가 가능한 영역으로 변환시킨다. 이는 자유와 의미의 상실을 초래한다. ‘섹시 콘셉트’는 걸그룹 멤버들의 자발적인 성적 자기표현이라기보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계산되고 연출된 동작이라는 점에서 베버의 합리성 개념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베버의 합리성 개념에 대해서는 막스 베버(박성환 譯), 《경제와 사회 1》, 문학과지성사, 2003 과 막스 베버(박문재 譯),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현대지성, 2018 등을 볼 것.
[32]
성의 역사는 엄밀히 말해서 에로티시즘의 역사다. 자연적 과정으로서의 섹스는 자신의 언어를 갖고 있지 못하고, 따라서 역사가 없다.
[33]
조한경·고광모, 〈바타이유와 에로티즘〉, 《한국프랑스학논집》 29, 2000,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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