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8일 사회
슬로건을 입다, 티셔츠의 정치학
해외 독립 의류 브랜드들이 앞다퉈 인종 차별 반대 메시지가 담긴 기부 티셔츠 판매에 나서고 있다. 인종 차별 시위 구호인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부터 ‘흑인은 범죄자가 아니다’, ‘모두를 위한 정의’까지 문구는 다양하다. 판매 수익금은 인종 차별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사회단체로 보내진다. 

핵심 요약: 고작 티셔츠 한 장이 아니다. 패션 브랜드들은 티셔츠가 인종 차별을 바로잡기 위한 가장 쉽고, 직접적인 수단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표현하는 티셔츠는 이제 정치적인 신념을 강력하게 전달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투쟁과 패션이 만났을 때: 소리 높여 외치는 것 대신 슬로건을 입고 온몸으로 말하는 시대다.
  • LA 의류 브랜드 브라운 스톤은 경찰에 목숨을 잃은 흑인 300여 명의 얼굴을 티셔츠에 담았다. 또 다른 브랜드는 ‘Heroes of Blackness’ 티셔츠를 판매해 우리 돈 1800만 원 상당의 수익을 기부할 예정이다. 17일 기준 매거진《컴플렉스(COMPLEX)》홈페이지에 소개된 인종 차별 반대 티셔츠 제작 브랜드는 30곳이 넘는다. 
  • ‘메시지를 입자’고 말하는 건 의류 브랜드뿐만이 아니다. 스타벅스는 매장 직원들에게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가 적힌 티셔츠 25만 장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며칠 전 스타벅스가 직원들에게 인종 차별 반대 슬로건이 적힌 옷 착용을 금지하자 거센 비난이 일었고, 결국 경영진이 한발 물러선 것이다. 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선수들은 18일부터 리그가 다시 시작되면 유니폼 뒷면에 선수 이름 대신 ‘Black Lives Matter’ 를 새겨 넣기로 했다. 희망하는 팀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유니폼 앞면에 ‘BLM’ 로고를 넣을 수 있다.

패션 정치학: 티셔츠의 슬로건은 먼 거리에서는 읽을 수 없지만, 한번 보면 뇌리에 새겨진다는 장점이 있다.
  • 슬로건과 티셔츠의 첫 만남은 1984년으로 올라간다. 영국 디자이너 캐서린 햄넷은 “58퍼센트는 퍼싱 미사일(중거리 핵탄두 미사일)을 반대한다”는 반핵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당시 영국 국무총리 마가렛 대처를 만났다. 햄넷은 당시를 회상하며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었고, 우리에게 발언권이 없다고 느꼈지만 슬로건 티셔츠가 그 발언권을 되찾아 줬다”고 말했다. 
  • 미투 운동을 넘어 여성을 위한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캠페인 ‘타임즈 업(Time’s Up)’ 티셔츠는 나탈리 포트먼을 비롯한 많은 스타들이 입어 더욱 화제가 됐다. 2016년 여름 영국이 유럽 연합을 탈퇴할 때, 디자이너들은 잔류를 지지하는 메시지 ‘in’이 쓰인 티셔츠를 입고 패션쇼 피날레에 등장했다.
  •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인 마리몬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꽃 삽화가 새겨진 티셔츠를 판매한다. 이 기업은 영업 이익의 50퍼센트를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기부한다. 아르바이트생의 인권 침해 문제를 꼬집는 ‘남의 집 귀한 자식’ 티셔츠도 화제가 됐다.

드레스 코드와 행동: 브랜드의 새로운 정체성을 홍보하는 마케팅 수단인 티셔츠가 정치와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 텍스트에 익숙하다.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주는 티셔츠 속 텍스트, 그 텍스트를 입는 행위는 새로운 액티비즘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2020년 4월 1일 정치
지키자 vs. 바꾸자 - 총선 슬로건 전쟁
4월 2일부터 시작되는 공식 선거 운동을 앞두고 각 정당들이 슬로건을 발표했다. 주요 정당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불안 심리를 위로하고 위기를 극복할 역량을 보여 주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을 지킵니다. 더불어민주당’을, 미래통합당은 ‘힘내라 대한민국, 바꿔야 산다’를, 정의당은 ‘원칙을 지킵니다. 당신을 지킵니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선거 로고송으로는 유산슬의 〈사랑의 재개발〉이 압도적인 인기를 얻었다.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민생당이 모두 이 곡을 로고송으로 선정했다.

핵심 요약: 선거 슬로건은 정당의 정책 방향성과 가치관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전략의 핵심이다. 선거의 목적, 투표의 기준을 제시하며 구도를 수립하는 역할도 한다. 이번 선거 슬로건을 통해 여당은 정부의 성과와 안정성을, 야당은 정권 심판과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 당의 슬로건을 소개합니다: 4월 15일 총선의 핵심 의제는 코로나19 사태 대응책이다. 일상이 마비되고 경기가 침체되는 상황에서 주요 정당들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슬로건을 내놓고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국민을 지킵니다. 더불어민주당. - 코로나 전쟁 반드시 승리합니다.’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국회를 국회답게, 일하는 민주당’이라는 슬로건을 검토했으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정부의 대응에 대한 긍정 평가가 나오고 있다는 점 등을 반영해 방향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 미래통합당: ‘힘내라 대한민국, 바꿔야 산다. - 새로운 미래 새로운 통합’ 제1야당 미래통합당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와 정권 심판론을 부각하고 있다. 김종인 총괄 선거 대책 위원장은 29일 당 합류 후 첫 공식 행사였던 기자 회견에서 “‘못살겠다. 갈아 보자!’가 민심”이라고 강조했다.
  • 정의당: ‘원칙을 지킵니다. 당신을 지킵니다. - 대한민국을 진보하게 하는 힘, 정의당/ 양당 정치 견제할 대안 정당, 정의당’ 더불어민주당의 ‘비례 연합 정당’에 참여하지 않고 지역구, 비례대표 의원 후보를 모두 내놓은 정의당은 ‘원칙을 지킨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는 이번 선거에서 위성 비례 정당을 만든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과의 차별성을 부각한 것이다.
  • 국민의당: ‘늘, 국민 곁에 있겠습니다. 언행일치, 안철수! - #비례는 #국민의당 #국민과_함께’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지역구 후보 없이 비례대표 후보만 냈다. 중앙당에서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고공전’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지명도가 높은 당 대표의 이름과 해시태그를 선거 슬로건으로 제시한 것은 온라인 선거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로도 해석된다.

슬로건의 정치학: 잘 만든 슬로건은 권력의 지형을 바꿔 놓는다. 전문가들은 좋은 슬로건의 요건으로 ①시대정신 ②간결함 ③쉬운 표현을 든다.
  • 슬로건은 스코틀랜드어의 슬로곤(slogorn)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인(slaugh)과 함성(gaimm)의 합성어인 슬로곤은 전투를 앞둔 군인들이 지르는 함성을 의미한다.
  • ‘못살겠다 갈아 보자’는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직관적인 슬로건으로 꼽힌다. 1956년 3대 대선 때 야당인 민주당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겨냥해 내걸었던 정권 교체 구호다.
  • 미국에서는 1992년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활용한 로널드 레이건의 1980년 선거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Let's make America great again)’ 등이 성공한 슬로건으로 평가받는다.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로고송은 부동층을 공략하고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전략으로 꼽힌다. 이번 총선에서는 개그맨 유재석의 트로트 가수 캐릭터 유산슬의 히트곡 〈사랑의 재개발〉이 가장 많이 들릴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민생당이 로고송으로 선정한 이 곡은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 로고송 시장에서 트로트는 꾸준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멜로디가 강점으로 꼽힌다. 송가인의 〈가인이어라〉(민생당), 박상철의 〈무조건〉(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등이 대표적이다.
  • 더불어민주당은 코로나19로 침체된 분위기를 감안한 로고송 네 곡을 활용할 계획이다. 1998년 IMF 위기 당시 스타 가수들이 함께 불렀던 곡 〈하나되어〉,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 이승기의 〈스마일보이〉, 윤상의 〈달리기〉다.

결론: 각 정당의 이번 총선 슬로건은 ‘지키자’, ‘바꾸자’, ‘갈아엎자’는 메시지를 앞세우고 있다. 슬로건이 제시해야 할 메시지 중 하나인 정책의 방향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책 경쟁보다 구도 대결에 집중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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