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0일 정치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을 쐈다
2017년 로힝야족 집단 학살 사태의 가해자 증언이 처음으로 나왔다. 미얀마 정부군에서 탈영한 병사 2명이 당시 상관의 명령에 따라 로힝야족을 학살했다고 증언했다. 지휘관이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을 쏘라”고 사병들에게 지시했다는 것이다.

핵심 요약: 2017년 미얀마군은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의 반군을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토벌 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고, 로힝야족 74만 명이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미얀마 정부는 집단 학살을 여전히 부인하고 있다.
유료 기사 전문은 프라임 멤버만 읽을 수 있습니다. 북저널리즘 프라임 멤버가 되시면 지금 깊이 읽어야 할 다양한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지적이고 지속 가능한 저널리즘을 지지하는 방법입니다.

북저널리즘 프라임 멤버가 되시면:
  • 북저널리즘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매주 업데이트되는 새 콘텐츠를 만나 보세요. 오직 북저널리즘에서만 읽을 수 있습니다.
  • 뉴스, 오디오북, 스타트업 플레이북, 뉴룰스 등 프라임 전용 콘텐츠, 프라임 멤버의 지적 여정을 돕는 일대일 컨시어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온·오프라인으로 에디터와 저자, 다른 멤버들을 만나고 토론할 수 있습니다. 북저널리즘이 개최하는 여러 모임에 우선 초대 및 할인 혜택을 드립니다.

프라임 가입하기: 젊은 혁신가를 위한 콘텐츠 커뮤니티 가입하기
2020년 7월 20일 정치
Rest In Power, 존 루이스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존 루이스 전 민주당 하원의원이 17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루이스 의원은 마틴 루터 킹 목사 등 흑인 인권 운동을 이끈 6인 ‘빅 식스(Big Six)’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다.

핵심 요약: 루이스는 흑백 분리법 반대 시위, 흑인의 일자리와 참정권을 요구하는 행진 등을 이끌었고,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의원을 거쳐 17차례 하원의원에 당선된 인권 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다. 루이스로부터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아 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추모의 메시지를 남기고 전국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역사를 이끌다: 루이스는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역사를 이끌어 온 인물로 꼽힌다.
  • 앨라배마주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루이스는 1955년 킹 목사의 연설을 듣고 킹 목사가 주도한 흑백 분리법 반대 투쟁에 참여하며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학생 비폭력 조정 위원회(SNCC) 설립에 참여했고, 백인 운동가들과 함께 워싱턴DC에서 뉴올리언스까지 버스로 이동하며 시위를 벌이는 프리덤 라이더스 운동에도 참여했다. 당시 이동 도중 백인들에게 각목과 야구 방망이로 구타당해 의식을 잃기도 했다.
  • 흑인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1965년 셀마 평화 시위에서는 경찰의 폭행으로 두개골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당시 이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방송되면서 전국적인 분노를 일으켰고, 흑인 참정권을 보장하는 연방 투표권법이 제정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 1981년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17선 하원의원을 지냈다. 2011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받았다.
  •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비판을 계속해 왔다. 러시아와 공모해 당선됐기 때문에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보지 않는다”며 대통령 취임식에 불참했고, 반이민 정책을 펴는 “인종 차별주의자”라고 비판했다.

새로운 행진의 시작: 마틴 루터 킹, 제임스 파머, 필립 랜돌프, 로이 윌킨슨, 휘트니 영 등 6인의 거물급 시민 운동가를 지칭하는 빅 식스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였던 루이스가 세상을 떠나면서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평가와 함께 새로운 운동이 시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저널리스트 미셸 노리스는 《워싱턴포스트》에 “그의 배턴이 우리 손으로 넘어 왔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가 승리해야 할 레이스가 시작됐다”고 썼다.
  • 오바마 전 대통령은 “우리는 이제 이 나라를 재건하기 위한 행진을 명령받았다”고 썼다. 부고를 공식 발표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그에 대한 기억이 우리에게 부정의에 맞서 선한 투쟁을 이어 나갈 힘을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절대 두려워하지 말라: “좋은 문제, 꼭 필요한 문제를 일으키는 일, 소란을 벌이는 일을 절대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가 시대를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시대는 우리를 선택했다.” 루이스가 생전에 했던 말이다. SNS에서는 #restinpower라는 해시태그를 단 추모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용기, 공동체를 위한 투쟁의 힘은 그가 떠난 세계에서 더 큰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관련 주제 읽기: 아슬아슬한 인종 논쟁
2020년 7월 9일 사회
피고 김정은, 1심 패소
‘피고 김정은’이 1심 재판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은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북한 정권이 강제 노역을 당한 탈북 국군 포로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국군 포로 2명은 6·25 때 북한으로 끌려가 인권을 유린당했다며 2016년 김정은을 상대로 3억 원 상당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핵심 요약: 법원이 국군 포로에 대한 북한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다. 국내에서 김정은을 피고로 하는 재판이 진행된 것도 처음이다. 판결에 따르면 북한과 김정은은 국군 포로 2명에게 각각 2100만 원씩 지급해야 한다.
김정은 없는 김정은 재판: 법원은 북한과 김정은이 우리나라 법정에서 ‘피고’가 될 수 있다고 봤다.
  • 소송 원고인 두 사람은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북한군에 잡혀 포로가 됐다. 정전 후에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953년부터 3년간 평안남도의 탄광에서 일했다. 이 기간 못 받은 임금과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로 1인당 1억 6800만 원을 김정은에게 청구했다.
  • 대한민국에 사무실도, 집도 없는 김정은에게 소장을 어떻게 전달했을까. 법원은 소장을 ‘공시 송달’했다. 상대방 주소를 확인할 수 없을 때 소송 사실을 법원 게시판 등에 알리고 두 달이 지나면 서류가 전달됐다고 보고 소송을 진행하는 제도다.
  • 북한은 우리 헌법에서 국가가 아니다. 법원은 북한을 지방 정부와 유사한 정치적 단체인 비법인 사단으로 봤다. 따라서 우리 법정이 단체의 대표자 격인 김정은에 손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봤다. 비법인 사단은 인적, 물적 실체를 갖추고 있지만 법인 설립 허가를 받지 않은 단체다. 교회나 사찰, 동창회가 포함된다.

진짜 배상 받을 수 있나: 민사 소송에서 이긴 원고는 일반적으로 피고의 급여나 재산을 압류해 위자료를 받는다. 김정은과 북한의 재산에 대해서도 가능할까.
  • 한국에 북한 소유라고 볼 만한 자산이 있다. 국내 방송사들이 조선중앙TV 콘텐츠를 사용하고 지불하는 저작권료다. 그런데 대북 제재로 송금이 어려워지면서, 2009년부터 저작권료를 법원에 공탁해 왔다. 현재 공탁금의 규모는 20억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변호인단은 이 공탁금에 대한 강제 집행을 계획하고 있다.
  • 해외에서는 앞서 비슷한 재판이 진행됐다. 북한에 장기간 억류됐다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가족은 미국 법원에 김정은과 북한을 상대로 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은 우리 돈 약 5800억 원의 배상 판결을 받은 뒤 세계 곳곳에 은닉된 북한 재산을 압류하고 있다.
  • 지난달 25일에는 6·25 전쟁 납북 피해자 가족들이 처음으로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로 인권을 침해당했으며, 6·25 전쟁 이후에도 북한이 납북자들에 대한 정보 제공을 거절하면서 계속 피해를 겪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망: 이번 판결로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한 금전적인 배상을 받아 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평가다. 금강산 관광 중단,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 소송도 잇따를 가능성이 있다. 향후 비슷한 소송과 판결이 이어지면서 압박이 커질 경우, 삼권 분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북한이 우리 정부의 반응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