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캐릭터
완결

내가 사랑한 캐릭터

진화하는 디즈니


호주 시드니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뤼 스피릿(Ry Spirit)은 디즈니 캐릭터가 포켓몬처럼 3단계로 진화한다는 설정의 그림으로 33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오리지널 캐릭터가 진화 2단계라면 1단계는 귀여운 유년기, 3단계는 강력한 성인기로 설정되어 있다.
미키 마우스의 포켓몬형 진화 Ⓒ Ry Spirit
캐릭터의 특징을 최대한 부각해 상상력을 불어넣은 결과물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누구도 1928년부터 지금까지 얼굴과 귀를 상징하는 원 3개만으로 우리의 머릿속을 점령한 미키 마우스(Mickey Mouse)가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스피릿의 재치 있는 일러스트가 주목받는 이유다.
미키 마우스 초기 디자인 Ⓒ The Walt Disney Company
우리에게 익숙한 미키 마우스도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90년간 수차례 반복 수정을 거쳤다. 최초의 미키 마우스는 기다란 귀를 가진 기이한 모습에 비뚤어진 성격이었다. 일 벌리기를 좋아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설립자 월트 디즈니(Walt Disney)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결과였다. 이름도 미키 마우스가 아닌 모티머 마우스(Mortimer Mouse)였다. 이후 월트 디즈니는 아내 릴리언의 조언을 듣고 캐릭터 이름을 미키로 수정했다. 동업자 어브 아이웍스(Ub Iwerks)가 몇 차례 회의 끝에 미키 마우스의 귀 모양도 둥글게 바꿨다. 미키 마우스는 1928년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도 연간 8조 원의 수익을 디즈니에 안겨 주고 있는 디즈니의 대표 캐릭터다.[1]
미키 마우스 디자인 변천 과정 Ⓒ The Walt Disney Company
미키 마우스는 새로운 애니메이션에 출연하지는 않지만 여전한 존재감으로 소비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키 마우스의 성공 원인으로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만의 고유한 아이덴티티인 동그라미 3개의 기본 형태를 철저하게 유지했다. 미키 마우스의 디자인을 수정할 때마다 얼굴 방향은 바뀌더라도 두 귀는 항상 정면을 향했다. 동그라미 3개를 소비자에게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미키 마우스의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게 했다. 명확한 아이덴티티가 있었기 때문에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를 끊임없이 리뉴얼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 출시된 미키 마우스 문방사우 세트 Ⓒ 한국콘텐츠진흥원
중국 소비자를 겨냥한 리뉴얼 전략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중국 시장 진출 당시 디즈니의 목표는 캐릭터의 완전한 현지화였다. 우선 400여 개의 중국 기업과 손을 잡고 중국 현지 소비자 성향을 파악했다. 중국 소비자를 타깃으로 개발된 미키 마우스는 유연한 붓놀림으로 표현됐다. 2016년 중국의 명절 중추절에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고급 문방사우 세트를 판매해 인기를 얻었다. 이와 같은 현지화 전략의 영향으로 중국의 디즈니 캐릭터 상품 판매량은 2016년에서 2017년 사이 33퍼센트 증가했다. 2017년 중국 14세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캐릭터 선호도 조사에서는 미키 마우스가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2]
미국판 미니 마우스(왼쪽)와 일본판 미니 마우스 Ⓒ Wall Street Journal
2007년 일본에서는 바쁜 현대 사회에 피로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시(癒し) 상품이 유행했다. 이야시는 피로, 고민, 괴로움을 달래는 치유를 뜻한다. 디즈니는 젊은 일본 여성층이 이야시 캐릭터를 선호할 것으로 예측하고 이들을 타깃으로 미키 마우스의 여자 친구 미니 마우스(Minnie Mouse)를 변형했다. 과장된 입 크기를 단순화하고 강렬한 원색을 파스텔 톤으로 바꿔 보다 얌전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일본을 겨냥해 제작한 미니 마우스 캐릭터는 일본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3]

디즈니는 문화, 연령, 특성에 따라 소비자 성향을 철저히 연구해 캐릭터 개발에 반영한다. 기존 디자인이 소비자 성향을 담지 못한다면 과감한 리뉴얼을 단행한다. 캐릭터를 단순히 귀엽게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철학에 면밀하게 분석한 데이터를 결합해 전략적으로 움직인다.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 이후 도날드 덕, 라이온 킹, 백설공주, 미녀와 야수 등 후속 캐릭터를 잇따라 선보이며 디즈니만의 캐릭터 세계를 구축했다. 디즈니의 수많은 캐릭터는 전문가의 철저한 디자인 분석과 고증,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한다. 1942년에 탄생한 밤비는 스튜디오에 실제 사슴 두 마리를 데려와 관찰하며 수천 번의 스케치를 거친 결과물이다. 모아나를 만들기 위해서 캐릭터 디자이너들이 오세아니아 현지 마우이족과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4] 이렇게 만들어진 디즈니 캐릭터는 현재 300종이 넘는다.

20년간 디즈니에 몸담은 캐릭터 디자이너 김상진 역시 캐릭터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철저한 리서치를 꼽았다. 그다음이 단순함이다. 단순하지만 고유의 느낌을 살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캐릭터와 디자이너 사이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반영하기 어려울 때는 주변인이나 영화배우를 떠올려 생생한 이미지를 담는다.[5]

디즈니의 캐릭터 개발에는 한 가지 조건이 더 추가된다. 바로 가족 중심 리얼리즘이다. 캐릭터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2005년까지 디즈니 최고 경영자였던 마이클 아이스너(Michael Eisner)가 밝힌 이유는 간단하다. 어린이가 만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면 보호자가 동행한다. 아이들에게 캐릭터 장난감을 사 주고 함께 놀아 주는 것 역시 부모들이니 캐릭터 개발에서 어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6]

미키 이후에는 디즈니가 서양의 유명 신화 혹은 동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주로 제작하면서 사람 캐릭터가 다수 탄생했다. 디즈니 최초의 사람 캐릭터 백설공주를 시작으로 디즈니는 수많은 공주 캐릭터를 개발했다. 공주하면 자연스레 디즈니가 연상될 정도다. 초창기 공주인 백설공주와 신데렐라가 착하고 현실 순응적이었다면, 〈미녀와 야수〉의 벨과 〈인어공주〉의 에리얼은 적극적인 성격이다. 그럼에도 공주들은 여전히 바비 인형처럼 큰 눈과 풍성한 머릿결, 성숙한 몸매로 묘사되고 있었다. 21세기에 가까워지며 여주인공 캐릭터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각진 얼굴의 포카혼타스, 동양적 외모의 뮬란, 굵직한 팔다리의 모아나처럼 다양한 민족과 문화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의 캐릭터가 등장했다. 디즈니는 수십 년 동안 관습처럼 유지해 온 여주인공 캐릭터 이미지에서 자연스럽게 탈피하고 있다.
디즈니 공주들(왼쪽)과 모아나 Ⓒ The Walt Disney Company
김상진 전 디즈니 캐릭터 디자이너는 모아나의 어린 시절 캐릭터와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의 어린 시절, 〈빅 히어로〉의 베이맥스(Baymax)까지 수많은 캐릭터를 디자인했다. 그는 기존 여주인공 캐릭터와 모아나의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은 팔다리가 길고, 허리는 잘록한 전형적인 바비 인형 모습이었죠. 모아나는 외형 면에서 좀 더 현실에 기반을 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아나를 연출한 론 클레먼츠(Ron Clements)와 존 머스커(John Musker) 감독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강미 넘치는 아이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죠. 처음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이 전형적인 공주 캐릭터를 벗어났다며 좋아했습니다.”[7]

이러한 변화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소비자의 달라진 인식을 디즈니가 포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많은 여성들은 성차별에 저항하고자 한다. 미모를 완벽한 여성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콘텐츠나 캐릭터에 비판적이다. 디즈니는 달라진 소비자의 성향을 고려해 실제 여성들의 모습을 닮은 캐릭터들을 창조해 냈다.

미키 마우스와 공주들, 그리고 모아나는 디즈니 캐릭터가 오랜 세월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려 준다. 디즈니는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캐릭터를 찾아 나선다. 뛰어난 캐릭터를 만들어 낼 뿐 아니라 기존 캐릭터에 다양한 변화를 더해 개성과 매력을 강화한다. 무엇보다 디즈니는 캐릭터를 개발하고 확장할 때 소비자의 감정, 경험, 취향 같은 개인적인 특성을 투영하기 위해 노력한다.

 

세상을 뒤흔든 노란 생물체


디즈니가 픽사(Pixar)를 인수하며 미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디즈니와 드림웍스(DreamWorks)의 양대 산맥으로 나뉘는 듯했다.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Illumination Entertainment)가 〈슈퍼배드(Despicable Me)〉 시리즈를 제작하기 전까진 말이다. 2007년 설립된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는 2010년 〈슈퍼배드〉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더니 2013년 속편으로 9억 7076만 달러(1조 1352억 원)를 벌어들였다. 〈슈퍼배드〉에서 조연이었던 미니언(Minion) 캐릭터가 엄청난 사랑을 받자 2015년에는 아예 미니언을 주인공으로 한 〈미니언즈(Minions)〉를 제작했다. 미니언즈가 거둬들인 수익은 무려 10억 1885만 달러(1조 1914억 원)다.[8] 흥행의 일등 공신인 노란색 단세포 생물체 미니언 캐릭터의 탄생 배경에는 전 세계에서 사랑받은 애니메이션〈치킨 런(Chicken Run)〉과 〈심슨 가족(The Simpsons)〉이 있다. 초기 구상 당시 미니언은 거대한 괴물 형체였다. 여기에 〈치킨 런〉 캐릭터의 동그란 눈, 〈심슨 가족〉 호머 심슨의 노란색 피부, 엉뚱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이미지를 녹였다.[9] 미니언은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점점 작아지면서 마치 어린아이 같은 현재의 모습이 됐다.

일루미네이션 설립자인 크리스토퍼 멜레단드리(Christopher Meledandri) 회장은 미니언의 성공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미니언들은 말썽꾸러기입니다. 나는 내성적이고 보수적인데, 내가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일을 미니언들이 해주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캐릭터 하나가 애니메이션의 성패를 결정한다며 캐릭터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소비자는 일단 캐릭터에 빠지면 그 캐릭터 때문에라도 애니메이션 속편을 본다. 슈퍼배드 시리즈와 미니언즈가 이를 입증했다.[10]
미니언즈 Ⓒ Illumination Entertainment
미니언의 귀여움은 일루미네이션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이다. 일루미네이션은 매년 애니메이션과 미니언 캐릭터 사업으로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15년 4월 미니언즈 출시에 앞서 색채 연구소 팬톤은 미니언 색상을 담은 ‘미니언 옐로우’를 선보였다. 캐릭터 이름을 딴 색상이 출시된 것은 캐릭터 역사상 처음이다. 가히 세계적인 귀여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일루미네이션도 디즈니만큼이나 소비자 특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은 소비자가 캐릭터에 푹 빠질 수 있도록 소비자의 바람, 취향, 특성을 캐릭터에 녹여 낸다. 소비자 중심의 캐릭터 디자인은 디즈니와 일루미네이션의 공통적인 성공 비결이다. 그렇다면 대체 소비자의 무엇을 캐릭터에 담아야 하는 걸까.

 

너는 내 취향 저격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소비자가 캐릭터를 선호하는 이유를 조사했다. 3년간 부동의 1위는 ‘캐릭터의 외모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캐릭터에게 외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는 결과다. 소비자는 한 번 마음에 들지 않는 캐릭터에는 좀처럼 다시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만큼 캐릭터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확실한 외형을 갖추어야 한다. 표면상으로는 캐릭터의 외모가 무엇보다 중요해 보일 수 있다. 말 그대로 귀여우면 다 되는 것이다. 하지만 조사 결과에서 2위를 차지한 이유 ‘캐릭터가 친근해서’는 사랑받는 캐릭터에 외모만큼 중요한, 다른 무언가가 있음을 시사한다.[11]

친근함은 교감 욕구로 이어진다. 캐릭터가 또렷한 정체성을 지닐수록, 또 그 정체성이 자신과 비슷할수록 소비자는 캐릭터에 친근함을 느낀다. 어느 캐릭터든 기본적으로 의인화를 거쳐 사람과 소통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캐릭터 정체성 구성에서 다른 무엇보다 먼저 염두에 둘 것은 소비자다. 즉, 사람의 자아를 캐릭터에 담아야 한다. 브랜드의 의미나 제작 의도는 그다음 문제다.

내가 누구인지를 이미지로 구상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자아 이미지(Self-image)라 한다. 자아 이미지를 두고 학자들은 나름의 정의를 내렸는데 종합하면 자신의 모습, 성격,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개념화하는 것이다. 노래를 잘 부르거나 달리기를 잘하는 등의 특기, 말이 많다거나 순진하다는 식의 특징, 얼굴과 몸, 개성과 취향 등 스스로에 대해 갖는 생각들을 꺼내 보고 정리하는 사이 자아 이미지가 생성된다.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의 주인공 라일리의 머릿속에서 감정 캐릭터들이 기억을 저장하고 개성을 설계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면을 찾아 동질감을 얻고자 한다. 관심사가 같거나 나이가 동갑인 사람이 자연스레 더 반갑고 편하다. 캐릭터를 인지할 때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는 캐릭터를 인지하는 즉시 자신과 비슷한 요소를 찾는데 많이 찾아낼수록 캐릭터에 대한 호감이 상승한다.[12] 자아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는 디자인 설득력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세상에 귀여운 캐릭터는 많다. 하지만 귀여운 캐릭터가 모두 성공하지는 못한다. 소비자의 자아 이미지를 분명하게 담아낸 캐릭터만이 특별한 존재로서 생명력을 부여받아 작게는 애니메이션 하나, 크게는 기업 전체의 성공을 이끈다.

권순호 디자이너는 카카오로부터 이모티콘 제작 의뢰를 받고 4개월간의 작업 끝에 지금의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선보였다.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이 카카오톡 서비스를 사용하는 만큼 모든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자 했다. 캐릭터와 소비자 사이의 정확한 공감 포인트를 잡는 것이 핵심이었다. 캐릭터는 일반적으로 고유한 스토리와 형태를 갖고 있지만, 사용하는 사람마다 떠올리는 이미지는 각기 다르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캐릭터 이모티콘을 사용하면서 소비자 개인의 스토리를 더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했다.[13] 가령 ‘어피치’는 자신이 유전자 변이로 자웅동주가 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복숭아나무에서 탈출한 악동 복숭아다. 섹시한 뒷모습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키지만 사춘기를 겪고 있는 개구쟁이 캐릭터이기도 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친근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복합적인 매력을 담았다. 다양한 설정 속에서 소비자는 자신과 닮은 모습을 찾아내고 애정을 느낀다.

카카오IX는 2018년부터 캐릭터 강국인 일본 시장을 공략하고자 특별한 전략을 취했다. 국내외 선호도가 모두 높은 라이언 대신 어피치를 단독으로 내세운 것이다. 일본에서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선호도 조사를 했더니 일본의 20대 여성들에게서 어피치의 인기가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국 어피치(왼쪽)와 일본 어피치 Ⓒ 카카오 IX
카카오프렌즈 도쿄점 스튜디오K Ⓒ 카카오 IX
카카오IX는 일본의 20대 여성들의 성향을 분석한 결과에 따라 어피치 외형을 전면 수정했다. 국내 어피치보다 연한 복숭아 색상을 적용하고 기존 캐릭터 특유의 익살맞은 표정 대신 분홍색 볼터치와 귀여운 앞니를 강조해 아기같이 해맑은 표정으로 바꿨다. 카카오IX는 도쿄 매장 오픈 1개월 만에 매출 목표를 144퍼센트 초과 달성했다.[14] 오사카에서도 전용 팝업 스토어 오픈 당일 준비한 상품이 모두 소진될 정도로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일본 캐릭터 문화의 주요 소비자인 20대 여성의 자아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고 당초 설정한 개구쟁이 악동 이미지의 어피치를 그대로 내보였다면 결과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어피치는 한국에서도 이미 성공한 캐릭터였다. 그럼에도 카카오IX는 일본 20대 여성이 어떤 이미지를 원하는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집중 분석해 캐릭터 디자인을 수정했다. 일본의 어피치 성공 사례는 캐릭터가 단일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며, 소비자의 자아 이미지를 디테일하게 담아 확장성을 확보해야 함을 시사한다. 성공적인 캐릭터를 위해서는 공략하려는 소비자들의 자아 이미지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적합한 디자인을 선보여야 한다.
방귀대장 뿡뿡이 모습 변화 Ⓒ EBS1
〈방귀대장 뿡뿡이〉는 2006년 3월 3일부터 EBS에서 방영된 유아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주황색 몸에 빨간 코와 동그란 눈, 방귀를 뿜는 커다란 엉덩이가 특징이다. 특히 어린아이처럼 불룩한 배와 엉덩이, 커다란 머리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인형, 완구 등 상품화도 성공적이었다.

통통한 얼굴형과 몸매로 친근함을 주던 뿡뿡이가 2017년 3월 새 시즌에 맞춰 갑작스레 날씬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눈은 커지고 빨간 코도 작아진 데다가 풍만했던 몸은 매우 날렵해졌다. 달라진 뿡뿡이를 본 소비자들은 뿡뿡이가 성형 수술을 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 냈다. 〈방귀대장 뿡뿡이〉를 연출한 전경란 CP는 “3D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변형하고자 디자인을 정리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지만, 변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새로운 뿡뿡이 캐릭터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체형이 어른처럼 바뀌어 버린 뿡뿡이에게 어린아이들은 친밀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결국 2017년 9월 25일 뿡뿡이는 원래의 통통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온라인상에서는 통통한 뿡뿡이가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이어졌다.[15]

오랜 시간 소비자에게 인식된 캐릭터 정체성을 없애는 변형은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소비자가 캐릭터의 어떤 면에 자신을 대입하고 친근함을 느꼈는지, 어떤 모습을 선호하는지 등 소비자의 성향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고서 캐릭터 리뉴얼을 감행한다면 ‘성형 수술한 뿡뿡이’처럼 실패할 확률이 높다. 캐릭터 개발과 수정 과정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소비자를 생각해야 한다.

 

반복적 리뉴얼


2013년 IBK기업은행 디자인 경영팀에 막 입사했을 때, 나는 햇병아리 막내였다. 사회 초년생의 정신없는 회사 생활 속에서 여유가 생길 때마다 노트에 동물 캐릭터를 그렸다. 혼자 끄적인 그림을 우연히 팀원들이 보고는 이를 공식 캐릭터로 개발하자고 제안했다. 당시 IBK기업은행은 2008년 ‘오스카의 오아시스’ 캐릭터를 TV 광고에 출연시킨 후 별다른 브랜드 캐릭터를 갖고 있지 않았다. 생각날 때마다 병아리, 토끼, 양, 개구리 등을 그리다 보니 어느덧 14종의 동물 캐릭터를 완성했다.
IBK 영유아 캐릭터 Ⓒ IBK기업은행
지금 보면 촌스러운 동물 캐릭터들이 IBK기업은행 캐릭터 개발의 첫걸음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2013년 9월 이 캐릭터들은 ‘IBK 영유아 캐릭터’라는 타이틀로 특허 출원을 마쳤으며, 즉시 유아 마케팅에 활용됐다. 적립식 통장의 표지를 2년 동안 장식한 캐릭터들은 전국에 분포된 700여 개의 영업점 광고 홍보물에도 들어갔다. 어린이들이 이용하는 은행 체험실의 전표나 도장, IBK 등하원 알리미 어플리케이션에도 쓰였다.

2014년 본격적으로 팀원과 함께 IBK기업은행의 브랜드 캐릭터 개발을 진행했다. 노트 스케치로부터 탄생한 캐릭터 이상이 필요했다. 캐릭터 개발 전문 업체와 협력해 6개월 동안 콘셉트 기획, 스케치, 2D·3D 디자인, 각종 상품화 디자인을 진행했다. 본격적인 디자인에 앞서 과연 어떤 존재를 브랜드 캐릭터로 삼을지를 먼저 정해야 했다. 캐릭터를 통해 IBK기업은행이 소비자의 든든한 동반자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데 주안점을 뒀다. 슈퍼히어로와 로봇 캐릭터 중 브랜드의 든든한 이미지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로봇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2015년 1월 2일, IBK기업은행 브랜드 캐릭터를 발표했다. 캐릭터 이름은 직원들의 공모한 이름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희망 로봇 기은센’. 내 집 마련, 학자금 마련과 같은 고객의 소중한 희망을 IBK기업은행이 평생 곁에서 지킨다는 발상으로 탄생한 푸른빛의 로봇이다. 기은센은 TV 광고, 인쇄물, 통장, 카드, 인형, 저금통 등 IBK기업은행을 홍보할 수 있는 모든 수단에 동원됐다. 출시 이후 4년간 기은센은 두 번의 큰 변화를 겪었다. 이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캐릭터 디자인의 표현 유형을 이야기해야 한다.

실제 사람과 가깝게 나타내는 사실형 표현은 4~8등신의 비율 위주로 입체감을 살려 세부 묘사를 하는 반면, 생략에 생략을 더해 최대한 간결하게 나타내는 단순형 표현은 2~3등신 위주의 SD 캐릭터(Super Deformation Character) 기법을 사용한다. 데포르메(deformation)는 사실형과 단순형을 가르는 기준이다. 일반적으로 회화 기법에서 데포르메란 대상을 변형하거나 왜곡하는 표현을 말하는데 캐릭터 디자인에서의 데포르메는 캐릭터를 얼마나 간략하게 표현하는지를 뜻한다. 7등신의 인간 신체 비율을 적용한 초기 기은센에는 최소한의 데포르메가 적용된 것이다.
사실형 기은센 Ⓒ IBK기업은행
기은센은 브랜드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개발된 캐릭터다. IBK기업은행의 이미지를 명확히 드러내고자 로고에 들어간 심볼 마크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도출했다. 로봇 색상도 바로 이 마크에서 나왔다. 그만큼 브랜드를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인식시키기 위해 현실감을 살리는 사실형 표현을 택했고 출시 이후 1년은 응용 동작만 몇 차례 추가해 기본 디자인을 반복적으로 노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은센은 이렇게 커야 하나요?”, “다른 캐릭터들은 작던데 좀 작아질 수는 없나요?” 등 기은센이 작아지길 원하는 소비자의 직접적인 요구가 계속되자 디자인 팀에서는 덩치를 줄인 기은센의 새 버전을 만들기로 했다.
중간형 기은센 Ⓒ IBK기업은행
커다란 몸이 기은센의 정체성이지만 소비자의 요구는 적극 수용해야 했다. 기은센 캐릭터의 소재가 변신 로봇이어서 캐릭터 외형 표현에는 제약이 없었다. 디자인 팀은 기은센이 변신했다는 설정으로 큰 덩치를 비롯한 기은센의 기존 특징을 확 줄였다. 이렇게 변신한 기은센은 사실형 표현보다 디테일한 요소가 많이 생략되었음에도 단순형 표현보다는 복잡한 중간형 표현에 속한다. 전보다 작아진 형태는 다양한 채널에 적용하기에 수월했다.

소비자의 긍정적인 반응은 곧바로 체감할 수 있었다. 단순화한 기은센을 이모티콘으로 만들어 카카오톡에 배포하자 40만 명이 다운로드받았다. IBK기업은행 홈페이지에 올려 둔 기은센 이모티콘과 배경 화면은 한 달 사이 5000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하지만 중간형 기은센의 귀여움도 2년 정도 노출되니 초기의 신선함을 잃었다. 무엇보다 젊은 소비자들의 관심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귀여움을 한층 강조한 중간형 기은센을 공개했을 당시 젊은 소비자의 선호도가 굉장히 높았던 경험에 기반해 그들의 호응을 다시 이끌어 낼 방법을 모색했다.
단순형 기은센 Ⓒ IBK기업은행
소비자가 캐릭터에 계속 흥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그들의 성향, 즉 자아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신선한 변화가 필요했다. 2017년 아이콘 디자인 업체와 함께 다시 한번 기은센 디자인을 수정했다. 조사 결과 젊은 연령대의 소비자는 중간형의 기은센도 복잡한 요소가 많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이 대체로 귀엽고 깔끔한 이미지를 선호하는 점에 집중하여 얼굴형 라인, 가슴의 심볼 마크, 최소한의 주요 색상만 살리고 군더더기를 없애 단순형 기은센을 만들었다. 젊은 소비자를 타깃으로 리뉴얼된 만큼 그들에게 익숙한 IBK기업은행 스마트 뱅킹 어플리케이션에 집중적으로 적용됐다. 단순형 기은센은 특히 고객 사은품에 최적이었다. 립밤, 안마봉, 핸드 크림, 휴지통 등 단순형 기은센을 활용한 고객 사은품을 제작해 각 영업점에 배포했다. 인스타그램에 사은품 후기 글이 올라오더니 아예 기은센 사은품을 얻고자 영업점을 찾는 고객들이 생겼다. 3만 개의 립밤을 비롯한 고객 사은품은 단기간에 모두 소진됐다.
단순형 기은센 활용 굿즈 Ⓒ IBK기업은행
IBK기업은행은 브랜드 캐릭터 개발 초기 브랜드 이미지에만 집중했지만, 점차 소비자의 자아 이미지에 중점을 두고 단일 캐릭터를 두 번이나 리뉴얼했다. 직접 개발한 캐릭터를 마케팅에 적용하고 활용 범위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소비자의 자아 이미지의 중요성을 터득한 셈이다. 앞서 밝혔듯 기은센은 로봇이라는 정체성 덕에 외형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덕분에 현재 IBK기업은행은 사실형, 중간형, 단순형 기은센을 적절한 상황과 특정 소비자에 맞춰 함께 전략적으로 활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이 자체 캐릭터 개발에 매진하기 시작한 게 불과 5년 전이다. 스마트 뱅킹 도입으로 홍보나 마케팅 전략에 본격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브랜드 이미지를 친밀하게 내세울 전략으로 캐릭터 개발이 전격 대두됐다. 2015년 IBK기업은행 기은센을 시작으로 우리은행은 ‘위비 프렌즈’, NH농협은행은 ‘올리·원이’, 신한은행이 ‘쏠’을 선보였다. 카카오프렌즈 캐릭터의 인기를 기반으로 2016년부터 지속 성장 중인 카카오뱅크를 포함해, 국내 은행들은 여전히 캐릭터를 활용한 마케팅으로 금융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멀티 소스 멀티 유즈의 시대


2000년대 초반, 캐릭터 산업이 부흥하자 국내에도 여러 캐릭터 개발 업체가 생겼다.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한 데 비해 성공한 캐릭터는 많지 않다. 디지털 시대에는 시시각각 변하는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유기적으로 변할 수 있는 캐릭터가 필요했는데 고정 이미지 하나만 잘 만들면 캐릭터 개발은 끝이라고 생각한 안일함이 화근이었다.

캐릭터 개발은 단순히 브랜드 마스코트를 만드는 것 이상이다. 잘 만든 캐릭터는 그 자체로 브랜드가 돼 거대한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캐릭터에 대한 호감이 기업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소비자는 캐릭터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교감하며 긍정적 관계를 형성한다. 이 관계는 고스란히 소비자와 브랜드의 관계로 연장되며 이는 그 어떤 마케팅 전략에서도 기대하기 힘든 결과다. 소비자의 특성은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변한다. 타깃 소비자의 자아 이미지를 캐릭터에 담는 데 성공했다면 캐릭터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디자인의 수정 범위를 최대치로 넓혀야 한다.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OSMU)를 넘어 다양한 캐릭터 표현을 활용해 리뉴얼을 거치는 멀티 소스 멀티 유즈(Multi Source Multi Use, MSMU)가 필요하다.

성공하는 캐릭터들은 소비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소비자의 요구와 성향을 반영해 끊임없이 진화한다. 캐릭터를 살피면 지금 가장 영향력 있는 소비자의 특징이, 나아가 트렌드가 보이는 이유다. 인형부터 문구류, 이모티콘, 체크카드, 식료품, 플래그십 스토어까지 이 시대의 트렌드를 보여 주는 캐릭터는 도처에 있다.
[1]
오동일, 디즈니 스튜디오,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17쪽.
[2]
캐릭터 산업 백서, 《한국콘텐츠진흥원》, 2016, 130쪽.
     캐릭터 산업 백서, 《한국콘텐츠진흥원》, 2017, 308쪽.
[3]
박민선, 미국 만화 캐릭터 수출 때 ‘성형 수술’, 《조선일보》, 2007. 10. 18.
[5]
[6]
황선길, 애니메이션 영화사, 범우사, 1998, 58쪽.
[9]
안무정,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6가지 코드, 나비의활주로, 2018, 58-60, 64-67쪽.
[10]
[11]
캐릭터 산업 백서, 《한국콘텐츠진흥원》, 2017, 194쪽.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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