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토스뱅크한테 다시 기회가 주어진 겁니다. 홍민택 토스뱅크 대표는 전체 대출에서 씬파일러 대출 비중을 올해 말까지 34.9퍼센트로 맞추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토스뱅크는 이르면 9월에 출범합니다. 4분기 동안에만 카카오뱅크의 씬파일러 대출 비중을 뛰어넘겠단 말입니다. 결과적으론 2023년까지 전체 대출의 절반에 육박하는 44퍼센트를 중저신용자 대출로 채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카카오뱅크가 제시한 2023년 중저신용자 대출 목표는 32퍼센트입니다. 전체 대출의 3분의 1수준이죠. 케이뱅크는 카카오뱅크보다 약간 낮은 수준입니다. 다른 인터넷전문은행과 비교해 봐도 토스뱅크의 공약이 매우 급진적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토스뱅크가 재수생으로서 금융 당국에 무엇을 약조했는지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카카오뱅크보다 더 공격적인 씬파일러 대출 확대가 토스뱅크의 등장 배경인 겁니다.
보통 규제 당국하면 답답한 공무원 조직을 연상시킵니다. 머리카락을 뽑았다가도 그 자리에 다시 꽂을 사람들 같은 인상이죠. 금융 규제 당국은 좀 예외입니다. 기획재정부 중심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죠. 금융은 규제 산업입니다. 규제 당국이 못하게 하는 건 절대 할 수 없습니다. 거꾸로 금융 당국이 하고자 하는 건 절대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핀테크 강국 대한민국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금융과 테크를 결합하는 핀테크 육성에 있어서는 두 기관 모두 다른 나라 금융 규제 당국들과 무한 경쟁하는 입장이죠. 우리나라는 핀테크 산업 육성 경쟁에선 뒤처져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핀테크 전성시대인데도 말이죠. 미국의 기업 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유니콘 610개 가운데 핀테크 기업은 94개에 달합니다. 전체 610개 유니콘 기업의 가치 평가액은 2조 330억 달러입니다. 핀테크 유니콘의 기업 가치는 3770억 달러죠. 전체의 20퍼센트에 육박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유니콘 핀테크는 비바리퍼블리카 그러니까 토스가 유일합니다. 정작 비바리퍼블리카는 토스뱅크 시험에서 재수생 신세가 됐죠. 토스밖엔 없는데 말입니다.
지금 글로벌 핀테크 시장에서 단연 주목받는 기업은 브라질의
누뱅크입니다. CB인사이트 순위에서도, 핀테크 기업 가운데 기업 가치 2위에 올랐죠. 지난 6월 9일엔 워런 버핏이 5억 달러를 투자해서 다시 한 번 화제가
됐습니다. 우연이지만 토스뱅크가 인허가를 받은 날입니다. 누뱅크의 성장 원인이 바로 씬파일러 대출입니다. 브라질은 5대 금융 재벌이 전체 금융 대출의 80퍼센트 이상을 주무르는 나라입니다. 이쯤 되니 금융이 절대적인 공급자 위주 시장일 수밖에 없습니다. 브라질의 신용카드 연체 이자율은 300퍼센트에 달합니다. 이쯤 되면 우산을 빌려줬다가 비가 오면 지붕까지 떼어가는 지경입니다.
데이비드 벨레즈 누뱅크 창업자는 말하자면 브라질의 이승건입니다. 2013년 누뱅크를 창업했습니다. 이승건 대표가 비바리퍼블리카를 창업한 때와 같은 해죠. 이승건 대표가 송금 시장부터 접근했다면 데이비드 벨레즈는 곧바로 씬파일러 시장부터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5000만 명에 달하는 브라질의 씬파일러들을 거꾸로 두터운 잠재 시장으로 본 거죠. 누뱅크는 신용카드의 연회비와 가입비를 없앴습니다. 중저신용자들한테 저금리의 대출을 제공했죠. 누뱅크는 브라질뿐만 아니라 남미 대륙 전체로 시장을 확대했습니다. 누뱅크 가입자수는 4000만 명에 달합니다. 누뱅크는 씬파일러 시장이 금융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일 수 있다는 걸 보여 줍니다. 금융 당국한테도 토스한테도 누뱅크가 벤치마크입니다. 토스뱅크 인가는 그 첫 단추인 셈이죠.
금융 당국의 큰 그림은 또 있습니다. 카카오뱅크가 금융감독기관을 감독하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뭇매를 맞은 건 코로나 탓도 큽니다. 코로나는 보건 위기이면서 금융 위기입니다. 특히 소상공인 자영업자들한테 깊은 내상을 입혔습니다. 코로나가 극심했던 지난해조차 비대면 유통 플랫폼들과 수출 대기업들의 체감 경기는 결코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무실 경제와 길거리 경제의 온도차가 너무 커진 겁니다. 이제까진 정부가 재정을 풀어서 길거리 경제를 구제했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이나 손실보상법이 대표적이죠. 한계가 있었습니다. 정부 재정은 공적 자금입니다. 원칙적으로 납세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야만 합니다. 코로나 피해는 국민 모두의 재난이었습니다. 길거리 경제가 더 아팠던 건 사실이지만 정부 재정을 거리에 집중 투입하려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국민적 합의란 길고 지루한 정쟁을 뜻하죠.
금융은 경제의 혈관입니다. 돈이 필요한 곳으로 빠르게 흐르게 해주죠. 길거리 경제의 주축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대부분 중저신용자들입니다. 2030 취준생들이나 직장 초년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씬파일러들에게 돈이 흐르게 하려면 유능한 인터넷전문은행이 필수적입니다. 한국의 누뱅크가 필요하단 말입니다. 포스크 코로나 시대엔 더 절실합니다. 금리가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연내 기준 금리 인상을 강력하게
시사했죠. 기준 금리가 오르면 시중 대출 금리는 더 빨리 오릅니다. 문제는 1765조 원에 이르는
가계 빚입니다. 서민들 입장에선 자칫 코로나 때보다 포스트 코로나가 더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은행들이 우산 대여료를 훨씬 더 비싸게 받아갈 참이기 때문입니다. 토스뱅크가 대비책이 될 수 있습니다. 토스뱅크가 중저신용자들한테 합리적 이자로 자금을 융통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비율이 무려 44퍼센트에 이른다면 금리 상승기라는 돈 가뭄에 토스가 단비가 될 수 있습니다. 너도나도 토스뱅크 대출로 갈아타거나 신규 대출을 받게 되겠죠. 토스뱅크는 유니콘 이상을 꿈꾸는 비바공화국에도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해야 하는 대한민국에도 필요하단 말입니다.
테크핀 씬파일러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