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_ 지금 쿠세권을 읽어야 하는 이유
쿠세권은 쿠팡의 문제가 아니다. 2021년 말 기준 쿠팡 유료 회원 수는 900만 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20퍼센트가 사용하는 서비스다. 광주를 제외한 전라도 전 지역은 비쿠세권이다. 전라는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출이 심한 지역이다. 대도시로 인구가 몰리며 해당 지역의 결혼율과 출생률 감소까지 연쇄 효과가 발생한다. 사람들이 쿠세권을 비롯한 상권 밀집 지역으로 몰리는 심리를 파악할 때 사회문제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DEFINITION_ 편리함
과거엔 인구가 많은 곳에 상권이 생기는 것이 당연했다. 이제는 상권이 있는 곳으로 인구가 몰린다. 쿠팡 로켓배송이 주거지 결정의 유일한 요소가 되지는 않지만 쿠팡을 비롯한 각종 생활의 편의는 분명한 고려 요소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아닌 오직 한국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바로 극도의 편리함이다. 물품 배송, 음식 배달 등 생활 밀착형 플랫폼이 특히 발달했다. 모두가 누리는 서비스를 나만 놓칠 수는 없다는 심리가 한국에선 더욱 크게 다가온다.
CONFLICT_ 지역격차
시설과 주변 인프라가 집값을 정하던 과거와 달리 무형 서비스의 존재가 커지고 있다. 단순히 쿠팡, B마트, 쓱배송 등 퀵커머스만의 얘기가 아니다. 배달의 민족 앱에 들어가도 주문할 곳이 없다는 뜻의 ‘텅세권’이란 말이 나왔다. 런드리고와 같이 용역이 필요한 대부분의 비대면 서비스는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에서 운영 중이다. 문토, 트레바리 등 커뮤니티 플랫폼도 수도권 중심으로 모임이 이루어진다. 보이지 않는 차이가 지역의 특권을 형성한다.
RISK_ 밸런스 게임
삶의 여유가 있는 대신 기회가 제한적인 지방 vs. 인프라는 탄탄하지만 집값은 터무니없이 비싼 서울. 많은 청년이 밸런스 게임의 기로에 섰다. 서울은 기회의 땅이라는 인식과 함께 주거의 선택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뉘고 중간 선택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면서 2030 사이에선 지방 한 달 살기가 유행하는 것이 아이러니다.
NUMBER_ 50조
도시 재생 뉴딜 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였다. 5년간 50조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역사·문화 복원, 역세권 청년 주택,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 ‘특색 있는 지역 사업’으로 변화를 도모했지만 성과에 대한 아픈 지적은 피할 수 없다. 행정적, 재정적 지원은 충분했으나 정작 거창한 이름의 사업들을 이끌어 갈 주민의 참여와 역량은 부족했다. 공모 사업으로 진행하는 우리나라 도시 재생 사업 특성상, 일정 기간 안에 성과를 내려면 장시간이 소요되는 주민 참여는 형식적인 절차에만 그치기 때문이다.
INSIGHT_ 바이브
괜찮은 일자리와 교통 수단을 증식하더라도 타 지방이 인프라 면에서 서울과 경쟁하는 것은 모순이다. 모든 지역을 서울화하려는 것이 도시 재생 사업의 맹점이다. 제2의 서울, 더 넓은 서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1의 강원, 제1의 충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역을 이탈하는 청년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요소는 편리함이 아닌 지역만의 감성과 재미다. ‘서울이 아니어도 살 만한’ 곳이 아닌, ‘꼭 여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REFERENCE_ 청년몰
어설픈 감성은 독이 된다. 2010년대 중반 불어 온 국내 청년몰 열풍은 중기청의 지원이 지속하지 못하자 이후 줄줄이 폐업했다. 청년, 창업, 지역 문화 등의 키워드에 매몰되어 특색 없는 공간을 만들면 예산만 낭비다. 관광 상품으로서의 가능성에 몰두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주민들의 실생활과 떨어져 우두커니 위치한 관광지의 수명은 길기 어렵다.
RECIPE_ 로컬
지역 네트워크는 정부 주도 사업에서 기대하긴 어려운 부분이다. 소규모 민간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간 협업이 활발해지고 있다. 로모(ROMOR)는 전문가나 행정가가 아닌, 주민 개인들이 모여서 만드는 주거 환경을 추구한다. 블랭크(BLANK)는 지방에 사는 삶을 콘텐츠로 생산하고 빈집 주거를 신청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국적으로 탄탄한 유통망보다 매력적인 것은 자생하는 로컬 문화다.
FORESIGHT_ 상권
소비 행태의 변화에 따라 상권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엔 백화점이나 대학 캠퍼스 등 큰 랜드마크를 기준으로 상권이 형성됐다. 그다음엔 역세권, 스세권, 맥세권 등 특정 프랜차이즈나 교통 인프라를 기반한 상권 개념이 생겼다. 이제는 쿠팡권, 마켓컬리권 등 물류가 닿는 곳으로서의 상권이 탄생했다. 상권의 다양화는 특정 장소에 가지 않아도 필요한 물건과 서비스를 구할 수 있는 소비의 탈중앙화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물건을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 이면엔, 공간과 경험이 사라지고 극단의 효율만 남은 소비의 어둠이 있다. 퀵커머스가 사회를 장악할수록 공동 경험으로서의 상권 문화는 결국 사라질 것이다. 쿠세권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