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과 번아웃 사이

9월 15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근로 시간 외 카톡과 조용한 퇴직이 이슈다. 업무와 삶을 분리할 수 없는 지금, 직장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나?

  • 노웅래 의원이 근로 시간 외 통신 수단을 이용한 업무 지시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 한편 미국에서는 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 조용한 퇴직을 택한 이들은 더 소극적으로 일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번아웃에 시달린다. 이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무엇일까?

BACKGROUND_ 카카오톡

2022년 4월 와이즈앱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은 카카오톡이다. 업무용 툴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픈서베이의 2021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 과반수가 업무용 메신저로 카카오톡을 사용하며, 회사 자체 메신저가 그 뒤를 이었다. 회사 규모가 크지 않을수록 자체 메신저를 개발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카카오톡 등의 무료 메신저가 업무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카카오톡이 업무와 삶 모두의 공간이 된 셈이다. 개인용 메신저의 업무용 사용에 대한 스트레스 관련 조사에서 카카오톡을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의견은 연령대가 낮을수록 높아졌다. 공적인 회사의 일과 사적인 삶이 하나의 인터페이스에 담기자 피로감이 높아진 게 큰 이유였다.
DEFINITION_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

정치계는 이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노웅래 의원 등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제6조2항, 근로자의 사생활 보장 항목 신설을 주장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용자는 이 법에서 정하는 근로시간 이외의 시간에 전화, 전자 문서, 문자 메시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 각종 통신 수단을 이용하여 업무에 관한 지시를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하는 등 근로자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를 어길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비슷한 법안은 반복적으로 발의됐다. 2016년 신경민 의원은 퇴근 후 문자나 SNS로 업무 지시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2016년 JTBC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해당 법안에 78퍼센트가 찬성, 17퍼센트가 반대했다.
EFFECT_ 공적인 일과 사적인 삶

공적인 일과 사적인 삶 사이의 장벽이 사라지는 것은 비단 카카오톡만의 현상이 아니다. 디지털의 일상화는 업무의 영역을 개인화했다. 근로자는 주머니 속 스마트폰으로, 가방 속 태블릿 PC로, 방 안 데스크톱으로 대부분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어디든, 언제든 항상 업무와 연결됐다. 팬데믹으로 가속화된 원격 근무로 인해 공간의 의미도 바뀐 지 오래다. 일의 공간과 생활의 공간은 분리하기 어렵게 뒤섞였다. 무조건적 연결은 일의 효율성을 높이지도 않는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레슬리 펄로(Leslie A. Perlow) 교수는 과도한 연결과 상시 작동하는 업무 문화가 직원의 정신적 자원을 분산시킨다고 분석했다. 몰아치는 연락 속에서 근로자는 자신의 업무 주도권과 우선순위를 정하기 쉽지 않다.
REFERENCE_ 연결되지 않을 권리

프랑스의 경우 노동법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최초로 법제화돼 2017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프랑스는 ‘호출 대기’라는 개념을 도입해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와 감독 아래 있는 시간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규정했다.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근로시간법을 통해 근로 대기, 대기 업무, 호출 대기 모두를 규율하고 있다. 개별 기업도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의 ‘도이치 텔레콤’은 퇴근 후에도 일을 해야 하는 경우 미리 시간과 장소를 지정해 업무를 진행하며, 이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는 협약을 도입했다.
CONFLICT_ 번아웃

버즈피드의 기자 앤 헬렌 피터슨(Anne Helen Petersen)은 밀레니얼 세대를 관통하는 특징으로 번아웃을 지적했다. 경쟁에 내몰리고, 빠른 시간 내에 결과물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업무에 대한 열정과 효능감은 쉽게 해진다. 개인의 삶도 적잖은 영향을 받는다. 사람인의 조직 건강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2.6퍼센트는 조직 문화와 건강도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소통 없는 일방적 업무 지시와 비효율적 회의 등 다양한 조직 문화로 인해 업무 동기 부여가 약화된다는 답변은 56퍼센트를 차지했고 스트레스로 인해 신체적 질병을 앓고 있다는 답변은 52퍼센트에 달했다. 자아실현과 성장이라는 목적과는 멀어진 업무 환경과 조직 문화, 뒤처지면 안 된다는 압박, 갓생이라는 FOMO가 공존하는 시대에서 일과 휴식, 삶과 메신저의 유연한 공존은 힘들어졌다.
RISK_ 조용한 퇴직

2021년 노동 시장의 키워드가 대퇴직(Great Resignation)이었다면 2022년의 키워드는 조용한 퇴직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조명한 틱톡 영상은 1989년 이후 출생한 직원 중 69퍼센트가 택한 조용한 퇴직을 수면 위로 올렸다. 조용한 퇴직은 직원이 직장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보류하고 피하는 현상을 말한다. 10분 일찍 출근해 이메일을 확인했던 입사 초기와는 달리 공식적 업무 시간이 시작된 이후에 컴퓨터를 켠다거나, 일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퇴근 시간이 되면 노트북을 덮는 일이 그 사례다. 대퇴직의 시대를 넘어 인플레이션에 직면한 지금, 직원들은 적극적으로 그만두기보다 소극적으로 기피하기를 택했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은 더 쉽게 번아웃에 빠지고 기업은 문제를 인식하기조차 쉽지 않다.
INSIGHT_ 악순환

퇴근 후 카톡에 대한 법적 제재는 조용한 퇴직에 대한 궁극적 대처일 수 있을까? 미국의 저널리스트 마이크 엘건(Mike Elgan)은 조용한 퇴직이 “관리자와 회사 경영진에게 알리지 않은 직원의 자체적이고 일방적인 의사 결정”이라는 점에서 대퇴직보다 위험한 현상임을 지적한다. 생산성은 업무 시간과 정비례하지도, 반비례하지도 않는다. 인텔의 CEO였던 앤디 그로브(Andy Grove)가 생산성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실시한 ‘기본으로 돌아가기(Back to Basics)’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은 바 있다. 업무 시간을 줄이자 외려 직원들은 일에 대한 주도권과 효능감을 잃었다. 직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내가 하는 일이 가져다줄 수 있는 가치다.
FORESIGHT_ Z세대와 일

캐나다의 조직 심리학자인 마이클 리터(Michael P. Leiter)는 번아웃과 탈진의 차이점을 설명하며 하나의 예시를 언급했다. “의사들은 한밤중에도 출산을 돕고 완전히 탈진한 상태가 된다. 하지만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데려오고,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일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탈진한 상태는 맞지만 번아웃은 아니다.” 번아웃과 조용한 퇴직이 악순환을 반복하며 몸집을 불리기 전에 질문해야 할 것이 있다. 사람들은 왜 일할까? 대학내일의 조사에 따르면 Z세대가 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아실현이었다. 27.1퍼센트가 업무를 통한 자신의 능력 발휘와 보람을 꼽았다. 지금의 일은 노동과 생산을 넘어선다. 일과 삶이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다면 둘을 조화롭게 섞을 머들러가 필요하다. 어쩌면 그 머들러는 Back to Basics, 기본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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