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신도시에 있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아랍에미리트(UAE)다. 석유 중심의 경제 구조를 탈피하고자 두바이에 이어 아부다비까지 성공적으로 금융·무역 허브이자 관광지, 산업 단지로 탈바꿈시켰다. 많은 부분을 외국 자본에 의존해 2009년 두바이월드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기도 했지만 두바이의 지리적 이점은 이를 상쇄했다. 중동은 항공기로 4시간 거리에 25억 인구, 8시간 거리에 50억 인구가 있다. 2019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연 이용객이 많은 공항 3위가 두바이였다. 이를 목도한 사우디는 더 큰 구상을 하기에 이른다. 네옴은 두바이와 달리 이집트 시나이반도(Sinai Penninsula)에 근접해 자리를 잡았다. 사우디 동북쪽에는 이라크와 이란, 동쪽에는 UAE가 있는데 서쪽엔 홍해와 아카바만이 있다. 두바이와 경쟁하지 않으면서도 이라크와 이란 등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적성 국가가 없는 홍해로 자리를 잡아 네옴을 구상하게 된 것이다.
KEYPLAYER_ 빈 살만
구심점엔 빈 살만 왕세자가 있다. 더 라인의 비현실성은 빈 살만의 포부이자 절박함이다. 그는 《디 애틀랜틱(The Atlantic)》과의 인터뷰에서 네옴 프로젝트의 독자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미국이나 두바이처럼 되길 원하지 않는다.” 해당 인터뷰에서 사우디 비전 2030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데 그가 이 프로젝트에 매달리는 이유는 정당성 때문으로 보인다.
#인터뷰전문 빈 살만은 초대 국왕이 서거하며 자신의 아버지를 국왕으로 추대하며 왕세자에 올랐다. 2017년에는 대대적으로 왕족을 숙청하기도 했다. 종교적으로 유화책을 펼치고 상징적 사업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독재자 이미지 완화를 위한 것일 수 있다. 게다가 신도시 등 건축 계획을 이용하면 리베이트 등의 방식으로 왕가 재산을 획책할 수 있다. 적극적인 외자 유치를 위해 도시를 친환경·스마트 시티로 기획하고, 외관은 유례없이 환상적으로 만들어 땅값을 불리려는 전략일 수 있다.
INSIGHT_ 저주와 기적
풍부한 자원은 늘 저주를 불렀다. 중앙 아시아와 중동, 서아시아 등 천연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은 자원을 통해 쉽게 돈을 벌 수 있었지만 렌티어리즘으로 대표되는 천수답 경제 양상을 보였고 분배가 불공평했으며 자원을 탐하는 국내외의 세력과 늘 다퉈야 했다. 종교를 제외하면 이것이 중동이 화약고가 된 주된 이유다. 산업 전반의 생산성은 떨어지고 필요 이상의 국방력 유지하려다 안보 딜레마가 발생한다. 두바이는 세계 경제가 거품을 향해 달려갈 때의 수혜를 입어 기적을 이뤘다. 사우디는 UAE보다 부강하지만 지금 사우디가 이루려는 기적엔 난관이 많다. 세력 균형이 불안정하고 경기는 침체 양상을 보이며 빈 살만 왕세자의 진정성과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사우디의 더 라인은 저주와 기적을 가르는 선상에 놓였다.
FORESIGHT_ 기회의 모래성
네옴 프로젝트는 빈 살만 왕세자에겐 정치적 기회, 사우디와 투자국에는 경제·기술적 기회다. UAM(도심항공모빌리티), 그린 수소, 푸드 테크, 우주인터넷 등 온갖 미래 기술의 상용화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사업 규모가 큰 만큼 침체 위기의 세계 경제에도 숨통을 틔울 수 있다. 다만 이것이 마냥 기회일지는 지켜봐야 한다. 낮은 실현 가능성은 건설사에 부담이다. 한화건설은 지난 10월 7일 14조 원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프로젝트에서 미수금 때문에 철수한 바 있다. 미국과 사우디의 미묘한 관계도 변수다. 지난 7월 바이든의 사우디 방문은 OPEC의 증산을 원했던 미국과 비전 2030 투자를 원했던 사우디의 거래로 볼 수 있다. 미국과 사우디는 많은 이해관계가 겹치지만 최근 몇 년간 ‘카슈끄지 암살 사건’과 같이 크고 작은 문제로 다투는 모습이 잦아졌다. 공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완공된 후의 문제도 있다. 두바이는 종교적 색채가 비교적 자유로우나 사우디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의 영향이 크다. 수니파의 맹주인 만큼 음주나 카지노 등 관광 산업에 필요한 규제가 완화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홍보와 달리 이 기회의 장벽은 어쩌면 모래성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