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세대
5화

실리콘밸리, 번아웃 해결에 나서다

번아웃에 대항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 가장 쉽고 빠르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을 위한 멘탈 케어다. 이에 발 빠른 기업들은 구성원의 번아웃을 해소하고 방지하기 위한 멘탈 케어 프로그램 지원책을 늘리고 있다. ‘메타(Meta)’의 CEO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구성원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위한 지원비를 700달러에서 3000달러로 확대했다. 아마존은 2021년, 미국의 모든 직원이 사용할 수 있는 정신 건강 지원 서비스를 개시했고, ‘구글(Google)’ 또한 무료 심리 상담을 35회까지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대화는 연결의 힘


“입사 후 업무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최근에는 내가 속한 조직이 회사 전체에서 소외당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상사와의 관계도 어려워 회사 생활이 견디기 힘들었다. 비슷한 연차인 동료들이 갑작스레 퇴사하면서 더욱 외로워졌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심리 상담 비용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매주 상담을 받으며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을 이겨 내고 있다. 조금은 힘이 생겼고 마음이 든든하다.”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많은 MZ세대는 멘탈 케어를 위해 심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한다. 2021년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MZ세대 응답자 중 74퍼센트는 심리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들 중 43퍼센트는 대면 심리 상담 및 치료를 원했다.[1]

국내 기업의 경우 이러한 니즈를 반영해 직접 사내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2011년부터 ‘마음산책상담소’를 운영하며 구성원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심리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전문 상담사가 기업에 상주하는 형태다. ‘한화시스템’은 임직원뿐 아니라 직계 가족까지 혜택을 확대해 회사가 제공하는 사내 무료 심리 상담 서비스를 연 6회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대면 상담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시간적 여유가 없는 구성원을 위해 비대면 상담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LG화학’은 2021년 비대면 심리 상담 프로그램인 ‘더(the) 좋은 마음그린’을 도입했다. 24시간 어느 때나 활용 가능한 모바일 상담을 제공하고,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텍스트 형태의 상담도 가능하다.

기업이 구성원의 멘탈 케어와 정신적 웰빙에 관심을 가지면서 관련 산업 역시 부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인 ‘CB 인사이츠(CB Insights)’가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멘탈 케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최대치인 55억 달러를 달성했다.[2] 대부분의 멘탈 케어 스타트업이 투자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시장은 앞으로도 해당 분야가 크게 성장할 것이라 추산하고 있다. 미국 대표 명상 앱으로 유명한 ‘헤드스페이스(Headspace)’는 2020년 유료 구독자가 2년 전에 비해 두 배 늘어 200만 명을 넘겼다고 밝히기도 했다.[3]

해외뿐 아니라 국내의 멘탈 케어 스타트업도 급성장 물결을 탔다. 국내 1위 정신 건강 플랫폼 ‘마인드카페’를 운영하는 ‘아토머스’는 2022년 2월, 2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아토머스는 최근 2년간 연 평균 약 400퍼센트 성장하며 2021년 상반기 매출액 역시 전년 대비 100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4] 현재 아토머스는 130여 개 기업에게 심리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토머스의 김규태 대표는 기업 내의 상담 프로그램이 구성원의 생산성 향상, 정신적 어려움 해결에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심리 상담 서비스를 받은 구성원의 업무 생산성은 36퍼센트 증가했고, 업무 시간 손실과 불안 증상은 50퍼센트 줄었다.[5]

물론 누구도 스트레스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같은 스트레스 상황을 경험하더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부정적 영향은 줄거나 늘어날 수 있다. 심리 상담은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을 통제할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을 길러 주는 과정이다.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높이고 대처 능력을 기른다면 스트레스는 위협적인 것이 아닌, 해결할 수 있는 도전적 과제로 다가올 것이다.

 

나의 삶에 집중하기


기업은 심리 상담 지원뿐 아니라 자체적인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구글, ‘인텔(Intel)’, ‘애플(Apple)’, ‘트위터(Twitter)’ 등의 글로벌 기업은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 프로그램’을 도입해 구성원의 멘탈 케어를 도왔다. 마음챙김 명상은 정신없는 현실을 뒤로 하고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훈련이다. 마음챙김 명상을 처음으로 표준화한 존 카밧진(John Kabat-Zinn) 박사의 정의에 따르면 마음챙김은 “판단을 배제한 채 의식적으로 현재의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6] 마음을 열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 자각력(Awareness)을 높이는 마음챙김 명상 프로그램은 특히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각광받고 있다.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은 마음챙김 호흡이다. 먼저, 명상의 목적을 정하고 호흡을 하며 느껴지는 신체적 감각에 주의를 기울인다. 다양한 감정, 느낌, 잡념이 일어나더라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주의가 흩어지더라도 흩어진 것을 알아차리고 호흡을 통해 다시금 명상의 목적을 상기하며 주의력을 회복한다.[7] 명상은 정서 조절 능력을 키워 스트레스와 압박이 심한 환경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한다. 호흡법 이외에도 일상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명상법이 존재한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의 감각에 온전히 집중하는 마음챙김 걷기 명상, 모든 음식을 맛과 향을 최대한 음미하면서 먹는 ‘고급 음식 명상(Expensive Food Meditation)’이 그 사례다.

마음챙김 명상 훈련을 받은 구성원은 직무 스트레스에 더 잘 대응하고 업무에 몰입할 수 있었다. 실제 실험에서도 마음챙김 명상의 효과가 증명된 바 있다. 2주간 마음챙김 명상을 수행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은 직무 만족도를 보였으며 개인의 정신적 소진 역시 줄었다.[8]

구글은 감성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을 강화하기 위해 ‘내면 검색(Search Inside Yourself)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감성 지능이 높은 이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어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내면 검색 프로그램은 그 효과를 인정받아 현재 ‘SAP’, ‘UN’, ‘넷플릭스(Netflix)’ 등 다양한 기업에서 활용 중이다. 특히 IT 기업인 SAP는 내면 검색 프로그램을 통해 실질적인 효과를 경험했다. 내면 검색 훈련 이후 구성원의 집중력은 14퍼센트 늘었고 스트레스는 8퍼센트 감소했다. 반면 업무 몰입도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7퍼센트 증가했다.[9]

구글의 내면 검색 교육 프로그램은 총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1단계는 주의력 훈련, 2단계는 자기 이해와 자기 통제, 마지막 3단계는 유용한 정신 습관 창조다. 일단, 온갖 잡념에서 벗어나 생각을 가다듬고 주의력을 높인다. 차드 멩 탄(Chade-Meng Tan)은 자신의 저서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에서 마음의 주의력을 회복하는 과정을 물 항아리에 비유했다.[10] 침전물이 가득한 물 항아리를 깨끗하게 하려면 항아리를 휘젓지 않고 놔둬야 한다는 것이다. 고요해진 항아리는 얼마 뒤, 모든 침전물이 가라앉아 맑은 물만 걸러낼 수 있다. 명상을 통해 마음 휘젓기를 잠시 중단하고 고요하고 청명한 마음 상태를 회복한다. 이러한 주의력은 운동으로 근육을 단련시키듯 훈련을 통해 더 강해질 수 있다.

명상으로 주의력을 훈련했다면, 다음 단계는 자기 자신의 감정과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이해다. 자신의 내면을 고해상도로 바라본다면, 언제 자기 자신이 취약해지고 예민해지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의 내면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감정을 직접 통제할 수 있고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 ‘나는 화가 난다’는, 자신과 밀착한 경험에서 ‘나는 분노를 경험하고 있다’는 식의 객관적 서술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감정은 자신의 본질이 아닌 생리적 현상이 된다.[11] 이러한 내면 검색 훈련은 궁극적으로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차드 멩 탄은 “친절은 지속 가능한 행복의 원천이며 이는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통찰”이라고 말했다.[12]

 

혼자서 이겨낼 수 있을까


많은 기업들이 심리 상담 지원, 명상 프로그램 이외에도 휴게실과 운동 시설, 안마 의자 등의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이들이 구성원의 번아웃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개인의 정신적 힘을 기르는 것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번아웃의 책임 소재를 개인에게서 찾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기업이 개인의 스트레스 대응 능력을 키우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번아웃의 구조적 요인을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번아웃은 혼자서 이겨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조직으로 인해 발생한 번아웃을 사후적으로 해결하는 개인적 차원의 움직임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1]
대학내일20대연구소, 〈멘탈 관리 원하는 MZ세대, 전문 케어는 아직 부족〉, 2021.
[2]
CB Insights, 〈State of mental health tech 2021 report〉, 2022.
[3]
김윤화, 〈“호흡에 집중합니다”…국내 명상앱 마보·코끼리 각축전〉, 녹색경제신문, 2021. 10. 25.
[4]
이덕주, 〈마인드카페, 200억원 시리즈B 투자 유치〉, 《매일경제》, 2022. 2. 7.
[5]
최운정, 〈“회원 약 95만, 대한민국 최고의 멘탈 헬스케어 기업, 해외 진출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의 치유를 돕겠습니다”〉, 《종합시사매거진》, 2021. 11. 30.
[6]
차드 멩 탄(권오열 譯),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 알키, 2012, 54쪽.
[7]
차드 멩 탄(권오열 譯),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 알키, 2012, 75-76쪽.
[8]
Ute R. Hülsheger et al., 〈Benefits of mindfulness at work: The role of mindfulness in emotion regulation, emotional exhaustion, and job satisfaction〉,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98(2), 2013, pp. 310-325.
[9]
Rich Fernandez, 〈Search Inside Yourself, A profound, practical & accessible approach to mindfulness & emotional intelligence〉, Garrison Institute, 2019. 12. 11.
[10]
차드 멩 탄(권오열 譯),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 알키, 2012, 61-62쪽.
[11]
차드 멩 탄(권오열 譯),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 알키, 2012, 145-146쪽.
[12]
차드 멩 탄(권오열 譯),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 알키, 2012, 230쪽.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