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알트먼의 기본소득, 월드코인

6월 13일, explained

샘 알트먼이 방한했다. 인공지능 위협론을 넘어, 그가 제시하는 미래는 무엇인가.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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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알트먼 오픈AI CEO가 지난 6월 9일 방한했다. 그렉 브록먼 오픈AI 회장을 포함, 임원 일곱 명을 대동했다. 1박 2일 방한 일정 동안 크게 세 차례나 업계와 대담을 했고 윤석열 대통령을 접견했다. 기술, 일자리, 규제, 반도체, 스타트업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가 오갔고 그의 발언 하나하나가 단신으로 언론을 도배했다. 알트먼의 방한은 국내 AI 산업 및 제도의 향방을 가늠할 사건이었다.

WHY NOW

‘챗GPT’는 등장과 동시에 일부 사회 규범을 뒤바꿨고 AI 전쟁을 촉발했다. 환호와 긴장 속에서 AI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AI 관련 석학들의 경고와 함께 저울은 점점 ‘위협’으로 기울고 있다. 현지 시간 5월 1일 《뉴욕타임스》는 “AI가 제기하는 위협”을 총 세 가지로 제시했다. 가짜 뉴스, 일자리 대체, 마지막으로 AI가 인간을 넘어서서 인류가 AI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 알트먼은 일련의 질문에 답하고자 한국을 찾았다. 그의 변론이 유효한지 살펴본다.

오픈AI 투어 2023

AI 팝스타는 투어 중이다. 투어 일정은 지난 3월 30일 샘 알트먼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공개됐다. 17개 국가의 주요 도시를 방문해 정책 입안자와 개발자를 만나는 ‘오픈AI 투어 2023’다. 한국도 포함됐다. 보통 세계적 기업의 CEO가 방문하는 목적은 자사 홍보와 투자, 기관 협력 확보 등이지만 이 투어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자사 제품의 기반이 되는 기술을 객관화한 것에서 출발한다. 자신이 기른 맹수를 함께 감당하자며 개발과 규제라는 창과 방패를 논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자사 제품이 불완전 판매임을 시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4월 결자해지의 순례길에 올랐다.

OpenAI, Open mind

다만 순교자의 마음인지는 불투명하다. 울며 겨자 먹기, 혹은 규제의 꼬리 자르기 일지도 모른다. 미국과 유럽, 심지어 데이터 유출에 민감한 권위주의 국가들은 AI 규제에 한마음이 됐다. 알트먼의 투어 일정이 발표된 날 이탈리아는 서방 국가 중 처음으로 챗GPT 사용을 금지했다. 알트먼이 AI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준하는 관리 감독이 필요함을 주장한 이유다. 후발 주자들은 이를 AI 업계 선두의 자리를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한다. 한편 알트먼은 유럽연합(EU)의 강력한 규제안 예고에 대해서는 유럽 철수도 고려할 수 있음을 시사해 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기술 친화적인 한국은 그에게 효과적 홍보처였을 것이다.

알트먼의 청사진

그는 완벽한 계획을 들고 상륙했다. 세 번의 주요 대담에서 알트먼은 각자가 원하는 말을 청산유수로 쏟아냈다. 다양한 분야의 한국 스타트업에는 투자와 협력을 희망했다. 관에는 오픈AI 전용 칩 개발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말을 남겼다. 민간에는 기술이 뺏을 일자리보다 창출할 일자리가 많다며 안심시켰다. 정책 입안자들에겐 국제 협력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규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동석한 브록먼 회장은 규제의 초점을 기술 그 자체보다 활용에 맞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챗봇이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처럼 꾸며 답변하는 ‘환각’ 현상을 개선 중이라 밝히기도 했다. 알트먼 사단은 ‘인공 일반 지능(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시대의 대안으로 코인형 기본소득인 ‘월드코인’을 다시금 강조하며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범용 인공지능 시대의 소득

《뉴욕타임스》가 제시한 세 가지 위협에 대해 알트먼은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많은 이목을 끈 것은 월드코인이다. 그가 말한 인공 일반 지능이란 모든 곳에 사용 가능한 범용 AI로 AI가 인간을 본격적으로 넘어서는 시점의 표상이다. 그에 따르면 AGI 시대로의 이행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디스토피아로 그리진 않는다. AI는 인간의 불필요한 노동을 대체해 인간이 창의적 활동에 매진할 수 있게 돕는다. 노동 시간이 줄어들어 감소한 소득은 기본소득이 대체한다. 그는 이를 코인으로 지급하고자 하는 것이다. 월드코인은 알트먼이 지난 2019년 공동 창업한 블록체인 재단으로 지난 6월 8일엔 이더리움 기반의 ‘월드 앱’을 80개국에 출시했다.

보편적 기본소득의 길

급조한 허울 좋은 구실은 아니다. 샘 알트먼은 보편적 기본소득(UBI·Universal Basic Income)론자로 유명하다. 알트먼은 그가 대표로 있는 ‘와이 콤비네이터(Y Combinator)’에서도 기본소득 실험을 수행할 ‘오픈리서치랩’을 만들어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오픈리서치랩은 일의 속성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고 노동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는데 기존 사회 프로그램은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임금과 안정성 제공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현지 시간 5월 15일 기준, 그들은 기존에 계획한 프로그램이 절반 이상 진행되었다 밝히고 있다. 그들에게 이 실험은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사회 계약을 정의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다.

생체 여권의 시대

그런데 왜 기본소득이 굳이 코인으로 지급되어야 할까? 알트먼은 6월 10일 ‘월드코인 밋업 서울’에서 “블록체인이 아직 특이점에 도달하지 못했을 뿐, 향후 AGI 시대의 인류에게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 말했다. AGI 시대엔 디지털상에서 AI와 인간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가짜 이미지나 뉴스를 넘어 가짜 자아도 복제, 확산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알트먼은 미래에 인간이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봤다. 월드코인은 여기에 ‘눈’을 이용한다. ‘오브(Orb)’라는 홍채 인식 기기를 사용해 홍채 정보를 인식하면 이용자에겐 ‘월드 ID’라는 개인 ID가 생성된다. 이를 바탕으로 월드 앱을 만들어 코인을 보관할 수 있게 된다. 국경을 넘어 기본소득 지급이 가능하다. 월드코인 측은 이를 ‘인터넷 여권’이라 부른다. 이 여권을 발급받은 세계인은 벌써 180만 명이 넘는다.

데이터의 비대칭적 착취

현지 시간 4월 6일 《MIT테크놀로지리뷰》는 월드코인에 관한 심층 보도를 냈다. 14개 개발 도상국을 포함해 총 24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초기 온보딩 프로세스 참가자 50만 명 중 수십 명을 인터뷰한 것이다. 조사 결과 월드코인 측은 가입 당시 말한 것보다 더 많은 개인 정보를 수집했다. 이에 관한 동의도 제대로 구하지 않고 정보의 처리 과정도 불투명해 EU의 개인정보보호법(GDPR)의 위반 소지가 있었다. 작년 3월 아프리카 수단에서 지원자를 모집할 땐 디지털 화폐의 개념을 이해시키기 어려워 에어팟을 경품으로 내거는 등 의심스러운 유인책을 썼다. 기사는 월드코인이 새로운 암호 화폐로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게 목적이라면서 암호 화폐 커뮤니티가 아닌 개도국의 저소득층을 타깃으로 삼았다고 지적한다.

IT MATTERS

샘 알트먼의 청사진은 기술이 촉발한 문제를 기술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기술 기업들의 데이터 수집이 문제시된 것은 오래됐고 이제 기술은 그것이 가져다줄 편의보다 그 안정성과 사회적 가치를 먼저 증명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그 지점에서 많은 기술이 일종의 ‘워싱(washing)’을 거친다. 가령 알트먼은 이번 방한에서 사업 초기 인재 확보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오픈 소스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규모 인공지능에 있어 개방성은 중요한 가치다. 다만 오픈AI의 공동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2018년 오픈AI 이사회 자리를 박차고 나오며 오픈AI가 오픈 소스의 의도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020년에 공개된 오픈AI의 언어 모델 GPT-3는 유료 API로 제공됐고 소스 코드의 접근 권한은 1조 원을 투자한 마이크로소프트에 독점적으로 부여됐다.

인공지능 다음의 기술로 제시한 블록체인도 다소 이율배반적이다. 상술한 《MIT테크놀로지리뷰》는 월드코인이 ‘공상적 박애주의’의 의도를 가졌을 뿐 아니라 웹 3.0의 중요한 기술적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 말한다며 꼬집었다. 월드코인이 생체 인증을 사용하는 건 출생 등록 누락 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함도 있지만, 탈중앙화 기술의 근본적 문제점인 ‘시빌 공격(Sybil Attack)’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들은 사기(fraud)를 감지하기 위한 AI 신경망 학습에 45만 명의 생체 정보를 이용했다. 그러나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내부 고발자는 “생체 정보는 어떤 용도로도 사용하지 말라”며, “인간의 몸은 검표 기계(ticket-punch)”가 아니라 일갈한다. AI 기술을 완성하기 위한 AI 데이터 라벨링에도, 블록체인 기술을 위한 신경망 구축에도, 결국 착취당하는 것은 그들이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저소득층’이다.

보편적 기본소득 역시 개인 정보를 팔아 배당금을 받는 아이디어가 아니다. 선후 관계가 잘못됐다. 빅데이터 인클로저(enclosure)에 대항해 기본소득의 재원 확보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때문에 월드코인은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게다가 보편적 기본소득의 다섯 원칙 중 하나는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월드코인이 현금에 준하는 화폐성을 가질 수 없다면 보편적 기본소득이라 부르기도 어렵다. AGI 시대를 상정한 미래 구상임에도 강한 비판을 제기해야 하는 이유는, 그 미래가 생각보다 가까울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 3월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에는 오픈AI의 GPT-4가 AGI에서 기대되는 능력을 현상적으로나마 보여준다는 논문이 게재됐다. 알트먼 본인의 주장처럼 기술의 발전의 속도는 전례 없이 빠르다. 인류의 진보는 인류를 담보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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