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스토리지는 왜 트렌드가 됐을까

2023년 6월 28일, explained

셀프 스토리지가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도시에 필요한 공간은 무엇인지 묻는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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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스토리지(self storage)가 새로운 부동산 트렌드가 됐다. 도심 내 자투리 공간으로 만든 개인형 창고를 말한다. 매달 일정 금액으로 공간을 빌려 쓴다고 해서 ‘공간 구독경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에선 이미 보편적인 서비스다. 우리나라에선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1인 가구 증가와 집값 급등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WHY NOW

셀프 스토리지는 공간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다. 하지만 그 열망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유할 수 없음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도시로 모이면 집값이 오르고 내 공간은 점점 줄어든다. 집을 살 수 없는 대신 다른 것들을 사 모은다. 짐을 보관할 또 다른 공간이 필요하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게 셀프 스토리지다. 지금의 도시에 필요한 공간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67조 원

생소하지만 이미 전 세계 67조 원에 달하는 시장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이지만, 성장세가 가파르다. 부동산 조사 업체 존스랑라살르(JLL)에 따르면, 국내 셀프 스토리지 매장은 지난해보다 56.4퍼센트 증가했다. 우리나라 셀프 스토리지 시장은 1인 가구와 함께 성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의 평균 주거 면적은 33.9제곱미터, 약 열 평 정도다. 세 평을 늘리려면 월세 40~50만 원이 더 든다. 셀프 스토리지 월 이용료는 0.3평 기준 4~12만 원에 형성해 있다. 공간이 필요한 1인 가구는 이사보다 셀프 스토리지를 합리적인 선택으로 여긴다.

미국의 창고

미국은 어떻게 셀프 스토리지의 본고장이 됐을까. 흔히 미국을 풍요와 소비의 천국이라고 한다. 셀프 스토리지 산업이 미국에서 시작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스토리지 산업 관련 매체의 조사에 따르면, 약 11.1퍼센트의 가구가 셀프 스토리지를 이용한다.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매달 100달러가 넘는 돈을 지불한다. 셀프 스토리지는 2012년 이후 연간 7.7퍼센트씩 성장해, 현재 미국 전역에 5만 개 이상의 개인용 창고가 있다. 면적으로 따지면 20억 4000만 평방피트가 넘는다. 창고에 들어 있는 물품은 다양하다. 낡은 옷부터 스키 등 취미 용품 등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내 셀프 스토리지 산업의 성장세를 두고 ‘아메리칸 드림의 과잉’으로 진단한다.

소유에 대한 열망

“미국인 집이 붐비는 이유가 부자여서가 아니다. 자신이 너무 가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것에 매달리고 싶은 욕망은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잡지 《리즌(Reason)》의 편집장은 이렇게 말한다. 소유에 대한 열망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유할 수 없음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주택 시장과 연결된다. 2022년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하락했던 주택 가격은 올해 들어 다시 상승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밀레니얼 세대의 생애 첫 주택 마련에 대한 욕구가 상승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재택 근무로 개인적 공간의 중요성이 올라갔는데, 주택 소유자들은 집을 내놓지 않는다.

내 집이 없다

미국 내 중위 주택 가격은 38만 8000달러다. 미국 중산층 연소득은 7만 5000달러다. 이 돈으로 살 수 있는 주택 매물은 23퍼센트에 불과하다. 집값이 급등한 대도시에서는 살 수 있는 주택 매물이 더욱 줄어든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중산층 소득으로 살 수 있는 주택은 단 1퍼센트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통계청의 국내 인구이동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전입신고 기준 이동자 수는 615만 2000명이었다. 전년 대비 14.7퍼센트 줄어든 수치다. 이는 1974년 이후 최저치다. 인구가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택 시장의 침체를 뜻한다. 고금리 시대, 사람들은 이사 가지 않고도 공간을 확보할 방법을 찾았다. 셀프 스토리지가 합리적인 선택이 된 배경이다.

도시화와 인구 밀도

집만 꽉 찬 게 아니다. 도시도 붐빈다. 셀프 스토리지 지점 수는 인구 밀도와 연결된다. 셀프 스토리지는 거주 지역에서 가까워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이 많은 도심에 위치한다. 국내 300여 개의 지점 중 53퍼센트가 서울에 있다. 그리고 30.4퍼센트가 경기도에 있다. 직장인 밀집 지역인 서울 광화문과 강남역, 1인 가구 밀집 지역인 서울 불광동과 왕십리 등에 모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도시화율은 2019년 이미 91퍼센트를 넘었고, 수도권의 인구밀집도는 전 세계 5위 수준이다. 공간은 한정돼 있다. 많은 사람과 나눌수록 내 공간은 줄어든다.

집 대신 취미

대신 다른 방법으로 삶의 질을 높인다. 전문가들은 셀프 스토리지 시장의 성장은 사람들이 부동산을 포기하고 취미 생활을 택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또타스토리지의 조사에 따르면, 이용객이 주로 보관하는 물품 1위는 옷, 2위는 취미 용품이었다. 스키, 서핑 보드, 캠핑 용품 등이다. JLL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셀프 스토리지 점유율은 80퍼센트다.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이다. 모두 인구 밀도가 높은 국가다. 그리고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셀프 스토리지 시장이 빠르게 형성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부동산을 살 수는 없지만, 작은 공간을 임대할 정도의 소비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은 2017년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창고의 발전

글로벌 리서치 기관 스태티스타는 2026년까지 전 세계 셀프 스토리지 시장이 90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용자를 확보하기 위해 셀프 스토리지 서비스도 진화한다. 세컨신드롬이 운영하는 ‘다락’은 냉난방 시설을 통해 적정한 온습도를 유지한다. ‘엑스트라스페이스’는 택배를 이용한 픽업 서비스를 운영한다.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한 출입 시스템으로 24시간 운영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고급 의류, 와인, 미술품 등 수집품을 쾌적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려는 새로운 수요도 발생한다. 셀프 스토리지가 공간이 없어도 수집이란 취미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IT MATTERS

여유 있는 공간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비단 취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앤 마이어스 레비 교수는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천장 높이가 인간의 창의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었다. 참가자들을 천장 높이가 각각 2.4미터, 2.7미터, 3미터인 건물에 앉히고, 창의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문제를 풀게 했다. 문제를 가장 많이 푼 건 천장 높이가 3미터인 건물에 있던 참가자였다. 나아가 조앤 교수는 천장이 30센티미터 높아질 때마다 창의력이 두 배 올라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천장을 가진 연구소로 통하는 솔트연구소에서는 다섯 명의 노벨수상자가 나왔다.

혁신을 만드는 건 약간의 여유 공간인지 모른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의 탄생에서도 알 수 있다. 애플 컴퓨터는 스티브 잡스의 차고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 위치한 차고에서 탄생했다. 이후 미국에는 차고 창업(Garage Startup)이라는 말이 생겼고, 차고는 아메리칸 드림의 요람이라 불린다. 차고는 임대료를 들이지 않으면서도 여러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2023년 6월 23일, 서울 창업정책 2030이 발표됐다. 2030년까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세계 최대 규모의 창업 지원 시설 ‘서울 유니콘 창업 허브’가 들어선다. 서울시는 총 1조 6717억 원을 투입해 2030년까지 글로벌 유니콘 기업 50개를 탄생시키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5월 기준, 성동구는 서울에서 3.3제곱미터당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다섯 번째로 비싼 곳이었다. 유니콘 허브를 품게 된 성동구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정책을 확대해 임대료 안정을 도모할 방침이다. 셀프 스토리지의 인기는 공간을 향한 도시인의 열망 중 일부분일 뿐이다. 지금의 도시에 필요한 공간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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