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가 ESG를 망치는 방법

7월 10일, explained

모든 의류 기업이 ‘쉬인화’된다. 쉬인의 문제는 쉬인만의 것이 아니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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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순, 미국의 인플루언서들이 중국행 비행기에 탄다. 광저우에 도착한 이들은 로봇이 가득한 넓고 깨끗한 공장을 견학했다. 그들의 소셜 미디어 피드에는 머잖아 해당 공장에 대한 극찬 후기가 올라왔다. 팔로워들은 즉시 반발했다. 그들이 극찬한 곳이 다름 아닌 ‘쉬인(Shein)’의 공장이었기 때문이다. 쉬인은 평균 가격 1만 2000원의 옷을 내놓는 중국의 패스트패션 기업이다. 생산부터 유통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화해 유행에 맞는 의류를 재빠르게 공급한다. 쉬인은 강제 노동 의혹과 환경 오염 문제로 인해 꾸준히 비판받아 왔다. 쉬인은 성명을 통해 “투명성에 전념하고 있으며 이번 인플루언서의 트립은 투명성을 요구하는 피드백을 반영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WHY NOW

쉬인의 문제는 쉬인만의 문제일까? 세계화된 의류 산업은 한쪽에서는 식민지를, 다른 한쪽에서는 앰배서더를 만든다. 그 양극단을 만드는 중심에는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재편된 패션 생태계가 있다. 패스트패션의 속도는 더 이상 패스트패션 기업만의 것이 아니다. 패션 생태계의 전반적인 가속을 직시해야만 우리는 쉬인을 제대로 비판할 수 있다.

비판

쉬인을 비판하는 주된 논지는 강제 노동 의혹과 환경 오염이었다. 스위스의 시민 단체 ‘퍼블릭 아이(Public Eye)’는 2021년 직접 조사관을 파견해 쉬인의 하청 업체 실태를 보고서로 펴냈다. 일부 작업 공간에는 창문과 비상구조차 없었다. 광저우의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75시간을 일한다고 말했다.  빠른 생산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다. 대량 생산으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도 피할 수 없었다. 2021년 쉬인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630만 톤으로, 그중 99퍼센트는 제조와 유통을 포함하는 공급망 단계에서 발생했다.

비결

비윤리적 노동과 환경 오염이라는 비판은 쉬인의 성공 비결과 등을 맞대고 서 있다. 바로 빠른 제작 및 유통 속도, 그리고 엄청난 생산량이다. 쉬인에는 하루에 6000벌이 넘는 옷이 쏟아진다. 대표적인 패스트패션 기업 H&M과 자라(Zara)보다 20배 많은 양이다. 가격 경쟁력도 높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매장 비용이 따로 들지 않으며 글로벌 직배송 시스템을 통해 관세를 최소화했다. 쉬인에서는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자라보다 다섯 배 싸게 살 수 있다. 빠르고 저렴한 옷은 유행에 민감하고 지갑이 얇은 Z세대를 겨냥했다.

공생 관계

쉬인의 성공을 전면에 드러낸 건 Z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였다. 틱톡커와 유튜버는 ‘쉬인 하울(Shein Haul)’ 영상을 올리며 2주마다 새로운 옷을 구독자에게 선보였다. 소셜 미디어의 생명력은 끊임없는 새로 고침이다. 트렌드를 바꿔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콘텐츠 환경에서 패스트패션은 적합한 도구였다. 소셜 미디어와 패스트패션이 공생 관계에 놓인 셈이다. 소셜 미디어의 최전선인 틱톡에는 수많은 트렌드를 걸친 ‘걸(girl)’들이 등장한다. 2000년대 패션 유행이 돌아온 ‘y2k룩’의 유행이 멎기도 전, 발레복을 변형한 ‘발레코어 룩’이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했다. 지금 틱톡을 휩쓰는 유행은 미국의 셀러브리티 켄달 제너가 선보인 ‘올드머니 룩’이다. 올드머니 룩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것 같은, 티 안 나게 사치스러운 착장을 말한다.

빠른 명품

명품 시장 역시 패스트패션의 구조를 답습하기 시작했다. 근 10년간 명품 브랜드는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마이크로트렌드(Micro-trend)’를 판매 전략으로 삼았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함께 팔아야 하는 명품 시장은 그들만의 인플루언서로 유명 셀럽을 기용했다. 2023년 1분기, 명품 브랜드의 앰배서더로 선정된 한국 셀럽은 20명에 달한다. 그중 17명이 아이돌이었다. 대중의 우상이 자신의 소셜 미디어 피드를 통해 유행을 만들고 제품을 홍보한다. 젊은 세대는 명품을 걸친 인플루언서를 선망한다. 똑같은 제품을 살 수 없다면 유사한 디자인의 저렴한 옷을 소비한다. 어제 산 옷이 미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새로운 트렌드가 싹을 틔운다. 피드를 새로 고치면 또 다른 유행이 시작된다.

라이브 방송

‘메타’의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87퍼센트가 소셜 미디어에서 광고되는 제품을 본 후 브랜드를 팔로우하거나 구매했다. 소셜 미디어 기업은 이 흐름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유튜브는 지난 6월 30일, 첫 공식 쇼핑 채널을 한국에 개설했다. 유튜브 쇼핑은 인플루언서에 대한 선망과 콘텐츠 소비, 쇼핑 행위를 심리스하게 연결한다. 배달앱 역시 인플루언서를 내세운 라이브 커머스 기능을 확대했다. 라이브 커머스로 주문한 제품은 한 시간 안에 집 앞에 도착한다.

식민지

판판한 액정 위에서 유행이 피고 지는 동안, 노동의 식민지, 탄소의 식민지, 재고의 식민지가 그 동력을 떠받친다. 생산과 소비가 세계화된 지금, 옷은 하청, 하청의 하청을 거쳐 만들어진다. 갑작스러운 생산 요청이 들어오기 때문에 하청 공장은 모든 생산 라인을 가동하지 못한다. 한정된 상황에서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더 오래 일해야 한다. 노동자의 신체와 시간은 식민화된다. 탄소 역시 몇몇 식민지에 모인다. 글로벌 기업의 의류 공장 대부분은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에 모여 있다. 상대적으로 저개발된 국가는 선진국의 소비와 그로 인한 탄소를 온전히 감당한다. 재고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고 처리로 골머리를 앓는 기업은 반품된 상품과 팔리지 않은 재고를 아프리카 시장으로 재유통하거나 폐기한다. 그게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인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반발

쉬인을 향한 반발은 예리하고 날카롭다. 사람들은 더 이상 비윤리적으로 생산된 옷을 기꺼운 마음으로 입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비즈니스 모델은 사람들의 요구와 욕망에서 탄생한다. 틱톡에 쌓이는 해시태그, 유튜브에 쌓이는 하울 영상, 인플루언서가 돼 버린 나의 우상 아이돌까지. 구조가 쉬인을 탄생시켰다. 쉬인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5퍼센트까지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생산에 사용되는 전력의 100퍼센트를 재생 에너지로 대체하겠다고도 약속했다. 대중의 반발을 마주한 쉬인이 ESG 기업이 된다면, 패스트패션의 악몽은 사라질까? 유행 속도를 향한 열망, 트렌드의 범람과 폐기를 직시하지 못한다면 쉬인은 이름만 바꾼 채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

IT MATTERS

2023년 소셜 미디어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의 82퍼센트가 기업이 이윤보다 사람과 지구를 먼저 생각하기를 원했다. 비판의 날을 벼려 가속의 도구였던 소셜 미디어를 감속의 단서로 삼아 보는 것은 어떨까? 틱톡에 등장한 ‘디인플루언서(deinfluencer)’는 물질주의와 고가 물품의 반짝 유행을 경계하며 바이럴의 과장 광고를 지적한다.

글로벌 공급망 위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옷의 생산·유통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법도 유의미하다. 비영리 재단 ‘패션 레볼루션(Fashion Revolution)’은 매년 패션 투명성 지수를 공개한다. #WhoMadeMyClothes 캠페인을 통해 실제로 옷을 만든 이들을 직접 조명하기도 한다. 기업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투명성 지수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언제나 패션은 빨랐지만, 사람들의 옷장이 이만큼 빠른 때는 없었다. 새로 고침에 약간의 공백을 둔다면, 바이럴에 약간의 백신을 주입한다면, 모두의 옷장은 지금보다 느려질 수 있다. 우리는 손가락에서도 슬로우패션을 지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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