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의 성골과 진골

2023년 9월 7일, explained

〈뉴스타파〉의 보도가 스캔들이 되었다. POST NAVER 시대를 알리는 알람이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인터넷 신문 〈뉴스타파〉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사흘 앞둔 2022년 3월 6일 자 보도 때문이다.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 씨의 육성이 담긴 인터뷰다.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후보에게는 불리한 내용이었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유리한 내용이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뉴스타파〉가 최초 보도한 이 인터뷰를 인용한 방송사 보도를 긴급 심의한다. 또, MBC 제3노조는 〈뉴스타파〉를 네이버 CP사에서 당장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WHY NOW

허위 보도와 금전 거래, 대선 개입이라는 피곤한 언어 너머에는 〈뉴스타파〉라는 인터넷신문의 존재가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해직 기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매체다. 때문에 여타 인터넷 매체와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영향력을 얻게 된 방법은 다른 언론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네이버라는 강력한 플랫폼의 힘이다. 그래서 〈뉴스타파〉를 향한 비난의 끝에는 언론사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가 아니라 ‘네이버 CP사 퇴출’이라는 요구가 따라붙는다. 대체 CP사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상황을 이해해야 한국 언론 지형도가 제대로 보인다.

사건의 표면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이번 사건을 간단히 톺아보자. 〈뉴스타파〉의 보도에는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가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 주요 피의자를 봐줬다는 취지의 발언이 담겼다. 〈뉴스타파〉의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던 신학림 씨가 김만배 씨를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이다. 김 씨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이 인터뷰가 허위라는 입장이다. 의혹은 깊다. 김 씨가 신 씨에게 1억 6500만 원을 건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사과문을 냈다. 취재원과의 금전거래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해당 보도가 완전한 허위라거나 의도적인 대선 개입이라는 지적에는 단호히 맞서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긴급심의, 〈뉴스타파〉 말고 MBC와 KBS

스캔들이다. 그것도 덩치가 꽤 큰 스캔들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대통령이 있고, 돈과 언론과 권력이 한데 얽혀 있다. 말이 쌓이면서 일이 더 커지는 모양새다.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은 해당 보도가 국기문란 행위라고 규정했고, 대통령실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 “희대의 대선 공작 사건”이라고 못 박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나섰다. 해당 보도와 관련한 민원을 긴급 심의 안건으로 상정한다. 그런데 심의 대상이 된 언론사는 〈뉴스타파〉가 아니다. 김 씨의 발언을 인용 보도한 MBC와 KBS가 그 대상이 되었다. 이유는 〈뉴스타파〉의 정체성에 있다. ‘인터넷신문’으로 등록되어 있어 방심위의 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3만 7000 vs. 106만 5000

인터넷신문 〈뉴스타파〉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해당 보도가 가지는 파괴력에 의문을 품게 된다. 2021년 기준, 《조선일보》의 발행 부수는 106만 5090부, 유료 부수는 100만 546부였다. 등가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광고와 협찬을 받지 않는 〈뉴스타파〉의 후원회원은 3만 7000여 명이다. 그런데 숫자가 가리키는 영향력의 계급을 뒤트는 구조가, 한국 언론에는 존재한다. 바로 ‘네이버’라는 존재다. 〈뉴스타파〉는 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인터넷 매체지만, 네이버라는 플랫폼 안에서는 《조선일보》와 동등한 계급이다. ‘CP사’라는 이름의 최상위 계급 말이다.

한국 언론의 계급 생태계

네이버 뉴스제휴 시스템에는 크게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콘텐츠제휴와 뉴스스탠드, 검색제휴가 그것이다. 이 중 최고 계급인 콘텐츠제휴에 해당하는 언론사를 Contents Provider, CP사라고 부른다. 현재 약 80곳으로, CP사에 네이버는 콘텐츠 사용료를 지불한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많게는 연간 100억 원이 넘는 금액이다. 이렇게 돈 주고 사 온 기사들로 네이버는 뉴스 서비스를 운영한다. 즉, 우리는 네이버 뉴스 서비스를 통해 CP사의 뉴스만 읽게 된다. 한때는 발간 부수가 곧 매체의 권위와 영향력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 매체의 계급을 가르는 기준은 네이버 CP사냐 아니냐다. 몇 년 전부터 언론사 지망생도 CP사인지를 기준으로 응시 우선순위를 매기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네이버의 권한

이렇다 보니 네이버는 언론사의 계급을 정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존재처럼 비춰진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CP사와 뉴스스탠드, 검색제휴사라는 계급을 결정하는 주체는 ‘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라는 이름의 공적 기구다. 관련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뉴스 서비스에 걸릴 기사를 결정하는 것은 알고리즘이다. 독자의 체류 시간과 키워드 언급량을 기반으로 한다. 네이버는 뉴스를 구입해서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업에 네이버의 의지는 형식적으로 전혀 반영되지 않는 구조다. 자본주의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어렵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업

기형적이다. 그러나 네이버가 겪어온 궤적을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정권이 바뀌고 선거철이 돌아올 때마다 네이버의 뉴스 서비스는 뭇매를 맞았다. 불공정과 편파가 그 이유였다. CP사 선정과 큐레이션에서 손을 뗐지만, 비난은 멈추지 않는다. 이번에는 제평위 구성이 치우쳤다고, 알고리즘이 잘못되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런 상황이 매년 반복되면 기업 입장에서 이 사업은 리스크다. 정확한 수치는 공개되어 있지 않지만, 네이버 전체 트래픽에서 뉴스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도 40퍼센트대에서 6퍼센트대로 내려앉은 지 오래다. 기업의 의사 결정 구조는 단순하다. 이익보다 손해가 크면 사업을 접는다. 네이버와 함께 양대 포털로 불렸던 카카오는 이미 그 길을 가고 있다. 네이버에도 뉴스 콘텐츠는 더 이상 계륵이 아니다. 목에 걸린 가시다.

POST NAVER

네이버의 언론사 분류에 따르면 〈뉴스타파〉는 전문지다. 구체적으로는 탐사보도 전문성이 〈뉴스타파〉의 간판이다. 실제로 이번 논란과 관계없이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꾸준히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ICIJ가 주도한 글로벌 프로젝트 ‘파나마 페이퍼스’의 한국 파트너다. 이 작고 영세한 온라인 매체의 영향력은 후원금에서도 나왔지만, 네이버라는 플랫폼에서도 비롯되었다. 〈뉴스타파〉를 네이버 CP사에서 퇴출하라는 목소리는 역설적으로, 네이버라는 존재가 우리 언론 생태계에 얼마나 거대한 부분을 떠받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네이버는 목에 걸린 가시, 뉴스 서비스에서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네이버와 카카오는 제평위 활동을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다.

IT MATTERS

아이폰 모멘트 이후 전 세계의 언론은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수많은 혁신을 시도했다. 일부는 성공하여 진짜 혁신으로 남았고, 일부는 실패하여 그저 초라한 시도로 남았다. 한국 언론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네이버가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 도매상 역할을 하며 언론사에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뉴스타파〉가 있으되 그 이상은 없었다. 독자 입장에서도 그 이상에 대한 필요가 크지 않았다. 결국 〈Vox〉도, 〈BuzzFeed〉도, 〈POLITICO〉도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로 남았다.

신임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공영방송에 이은 언론개혁의 대상으로 포털을 겨냥하고 있다. 네이버로서는 뉴스 서비스 지속에 리스크가 더해지는 셈이다. 한국의 언론사들이 POST NAVER 시대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코 앞으로 닥쳐왔다는 의미다. 《뉴욕타임스》가 혁신보고서를 내놓았던 것이 2014년이다. 우리 언론은 9년쯤 지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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