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 프로파간다의 시대

2023년 9월 11일, explained

소셜 미디어 시대의 프로파간다는 더 은밀하고 더 노골적이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지난 7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니제르에서 친군 성향의 뮤직비디오가 쏟아지고 있다. 수년 전에 발표된 뮤직비디오는 틱톡 시대에 맞춰 옷을 갈아입었다. 20초 분량의 비디오와 유튜브의 뮤직비디오는 노골적으로 군인과 부강한 국가의 모습을 그린다. 20초에서 4분의 시간만 투자해도 ‘군인이 니제르를 더 좋게 만들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WHY NOW

지금의 프로파간다는 은밀하다. 거리의 포스터나 대중 연설과 같은, 노골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소셜 미디어와 메시지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시민 개인의 피드에 은밀하게 녹아든다. 반면 내용은 더 노골적이다. 20초 안에도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2020년대의 히틀러는 연설대가 아닌 틱톡과 왓츠앱에서 말한다. 프로파간다의 연단, 플랫폼이 바뀌었다.

뮤직비디오

지난 7월 26일, 니제르의 3년 차 대통령이 축출됐다. 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즈음 니제르의 국영 TV 방송국인 텔레 사헬에서는 군대를 찬양하는 뮤직비디오가 잔뜩 방영됐다. 2009년 공개된 노래인 〈SODJA(군인)〉도 그중 하나다. “군인은 국가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말하는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에는 군인 복장을 한 여성과 남성이 등장해 위풍당당한 행진을 펼친다. 소셜 미디어 틱톡도 덩달아 시끄러웠다. 군부 정권의 등장이 담긴 비디오와 친군 성향의 음악이 합쳐진 동영상이 쏟아져 나왔다.

틱톡과 유튜브

〈SODJA(군인)〉가 발매됐던 2009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정치 선전 콘텐츠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국가가 생산한 프로파간다를 공영 방송이 유통했다. 지금은 다르다. 친군 성향의 콘텐츠는 틱톡 시대에 맞춰 20초 분량의 비디오로 리믹스된다. 젊은 힙합 아티스트들은 직접 만든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 업로드한다. 니제르의 전 국회의원 압두라만 우마루는 “젊은이들은 하루 세 끼를 먹기 힘들지만, 틱톡을 보고 뉴스를 따른다”고 진단했다. 니제르의 젊은이들은 “유튜브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음악을 만든다.”

세대

미디어 변화의 중심에는 세대의 변화도 있었다. 니제르의 15세 미만 젊은 세대는 군사 쿠데타 시기를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이번 쿠데타는 2010년 이후 13년 만이다. 니제르인 중 15세 미만이 2500만 명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프로파간다의 생산과 유통을 변화시킨 건 전략적인 선택이다. 젊은 세대는 뉴스와 연설보다는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틱톡의 뮤직비디오를 선호한다. 유사한 일은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도 있었다. 지난 8월 26일 진행된 대선에서 주자들은 젊은 스타와 자메이카 댄스홀 풍의 음악을 사용해 청소년의 표를 확보했다. 짐바브웨 인구의 4분의 3은 34세 미만이다. 달라진 세대에 맞춰 선전의 방식과 미디어가 함께 변하고 있다.

20초 프로파간다

선전은 어떻게 변했을까? 시간이 짧아졌다. 한 시간 분량의 연설, 두 시간 분량의 영화로는 젊은 세대에게 효과적으로 프로파간다를 전달할 수 없다. 주어진 시간 20초 안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선전의 내용은 직선적이고 노골적으로 변했다. 프로파간다 이미지는 우회적인 심볼(symbol)보다는 직관적인 아이콘(icon)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여론전이 수많은 동물과 비유적인 표현을 담은 타이포그래피로 가득했다면, 틱톡 시대의 프로파간다는 그렇지 않다. 2020년대의 틱톡 프로파간다는 군인과 환호하는 관중, 권력의 얼굴과 표정을 그대로 활용한다.

바이럴과 3인칭 효과

무엇보다 소셜 미디어는 바이럴을 가능케 한다. 바이럴은 전염이다. 입에서 입을 타고, 손에서 손을 타고 메시지가 확산한다. 중요한 건 점과 점으로 존재하는 개인이 아닌 선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다. 현대 중국의 프로파간다를 연구한 한 논문은 프로파간다의 3인칭 효과를 짚었다. 즉, 프로파간다는 다른 이의 신념이 영향받았을 것이라는 추측만으로도 작동한다. 현대의 권위주의 정권은 소셜 미디어의 네트워킹과 프로파간다의 관계를 영리하게 활용해 왔다. 일례로 엘살바도르의 대통령 나이브 부클레와 튀르키예의 레제프 에르도안은 열렬한 소셜 미디어 활용자다. 2년 전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한 탈레반은 수십 개의 언어를 사용하며 소셜 미디어 선전을 공격적으로 전개했다. 한 연구는 이러한 소셜 미디어의 활용이 권위주의 정부의 대표적인 포퓰리즘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자기 표현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파시스트 국가에서 프로파간다는 본질적으로 오락과 같다고 지적했다. 즉 “파시즘은 대중에게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주는 것”을 중요시했다. 웹은 이러한 프로파간다의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거리의 포스터, 국영 방송, 시간이 한정된 연설과 달리 웹의 유통은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무한하다. 웹상에 아카이빙된 자료를 무수히 활용할 수 있고, 국경과 지역에 무관하게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다. 틱톡은 단순한 UX를 통해 이러한 시간적, 공간적 자유도를 극단으로 끌어 올린 미디어다. 사용자는 자유로운 리믹스를 통해 2009년의 뮤직비디오와 2023년의 음악을 결합할 수 있다. 복잡한 툴이나 도구가 없어도 쉽게 메시지를 만들고 퍼트릴 수 있다. 프로파간다를 생산하는 주체는 국가가 아닌 시민으로 바뀌었다. 이들은 프로파간다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그를 통해 소통한다. 틱톡 시대의 프로파간다는 오락이자 자기 표현의 도구다.

메시지 선전

은밀하고 직선적인 프로파간다. 이 흐름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암호화된 메시지 어플리케이션이 대표적이다. 텔레그램, 아이메시지와 같은 암호화 메시지 어플리케이션은 한편으로는 정부의 감시 없이 통신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지만 한편으로는 권위주의 정부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이 양가성 때문에 암호화된 메시지는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대기업도, 미국이나 EU와 같은 강대국도 쉽사리 손댈 수 없다. 독재자들은 그 감시의 공백을 노린다. 인도 인민당에서 일한 한 전투원은 인도 인민당이 수백만 개의 왓츠앱 그룹과 봇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확산한 바 있다고 밝혔다. 선전은 개개인의 메시지 함에 쌓인다.

IT MATTERS

벨기에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아른 하이젠은 현대의 프로파간다를 “특정 사회 집단이 이념적 목표를 시행하고, 의견을 관리하며, 대상 집단의 충성도를 체계화하려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라 정의한다. 프로파간다는 하나의 사건을 이데올로기적 언어로 재기술하는 행위다. 새로운 웹의 시대에 이 주체와 주제는 중앙집권적이지 않다.

한국 유튜브에는 남성을 겨냥한 레드필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영화 〈매트리스〉 속 빨간 약을 먹은 것처럼, 성과 관련한 가혹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백인 우월주의를 담은 컨트리 음악이 음원 차트 상위권을 차지한다. 패러다임 전환 없이는 유튜브의 레드필 콘텐츠와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니제르인들의 친군 틱톡 영상을 제대로 독해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프로파간다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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