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 시장으로 나가는 버켄스탁

2023년 9월 18일, explained

이 회사의 행보를 따라가면, 전 세계의 취향과 경제적 고민의 흐름이 보인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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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켄스탁이 상장을 앞두고 있다. 뉴욕 증시에 상장한다. 유럽 증시에는 타격이다. 상장 후 기업 가치는 약 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 5월 프랑스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그룹 계열의 사모펀드에 인수된 지 2년 만에 버켄스탁은 ‘힙스터’의 발끝을 벗어나 ‘투자 시장’의 바다로 뛰어든다. 250년의 역사로 쌓아온 브랜드의 가치를, 자본주의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WHY NOW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는 버켄스탁은, 그러나 패션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의료적 기능을 주요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워 왔다. 가족 경영에서 전문 경영인 체제로, 그리고 주주 자본주의 체제로의 변화는 250년의 전통을 뛰어넘는 변화를 예고한다. 버켄스탁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흥한 회사이며, 환골탈태하여 시대를 주도하는 회사가 되었다. 이 회사의 행보를 따라가면, 전 세계의 취향과 경제적 고민의 흐름이 보인다.

히피들의 시대

지난해 11월, 낡은 샌들 한 켤레가 경매에 올랐다. 딱 봐도 신던 사람이 사랑했던 신발이다. 사용감이 적나라했다. 미드솔과 아웃솔도 슬슬 분리되기 시작한 참이다. 무엇보다 신던 이의 족적이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썩 아름답고 깔끔하다 할 수는 없는 모습의 이 샌들은, 스티브 잡스의 버켄스탁 샌들이다. 21만 9750달러, 한화로 3억 원에 육박하는 가격에 낙찰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실리콘 밸리에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꿨던 히피들이 자손, 테크노 자유주의자다. 그런 그에게 히피들의 공식 샌들, 버켄스탁은 당연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장인의 시대

전쟁이 끝난 후, 1960~1970년대는 과거를 부정하는 ‘anti-’의 시대로 작동했다. 발가락이 훤히 드러나는 디자인에 신을수록 사용자의 발바닥 모양 그대로 자국을 남기며 변하는 버켄스탁 특유의 코르크 ‘풋베드’는 ‘anti-fashion’을 원했던 히피들의 간택을 받았다. 패션 디자이너의 신발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버켄스탁은 장인의 신발이다. 역사는 25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부터 버켄스탁은 사람의 발과 신발에만 천착했다. 그 결과, 20세기를 기점으로 신발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었다. 발의 구조와는 상관없이 단단하고 평평했던 신발 바닥에 굴곡이 생기고 말랑해졌다.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며 버켄스탁의 풋베드는 전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관심 경제의 시대

연세대 김병규 교수는 저서 《호모 아딕투스》에서 소비재 시장을 제품 경제, 관심 경제, 중독 경제의 세 단계로 구분한다. 20세기 초반은 제품을 잘 만들어야 하는 시대였다. 제품 경제의 시대다. 이후 기술의 상향 평준화가 시작되고 소득 수준도 높아지면서 마케팅이 화두로 떠오른다. 관심 경제의 시대다. 이 시대상을 한 발 앞서 포착했던 사람이 바로 5세대 경영자, ‘칼 버켄스탁’이다. 본능적으로 마케팅 감각이 있는 인물이었다. 기업의 강점을 ‘족학(足學)’으로 포장해 적극적으로 팔기 시작한 것이다. 신발 판매원, 제화공은 물론 정형외과 의사 등을 상대로 족학 강의를 선보이는가 하면, 족학 책을 출간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리고 1960년대 말, 버켄스탁은 미국시장으로 진출한다.

케이트 모스의 시대

패션은 변화한다. 그러나 버켄스탁은 변하지 않았다. 버켄스탁의 샌들은 때로 문화였으며 주로 기능이었지만 패션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의 시대정신, ‘그런지’가 버켄스탁을 패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면서다. 1990년, 케이트 모스의 한 잡지 화보가 결정적이었다. 해변가의 자유로운 영혼으로 그려진 수퍼모델의 발에 신겨진 것은 하이힐이 아니라 버켄스탁이었다. 200년 역사의 가족 기업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버켄스탁은 시대의 부름에 따라 등장했다 사라지는, 일종의 ‘문화 코드’에 불과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2013년 가족 기업의 전통을 깨고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접어든 이후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시대를 창조하기 시작한다. 셀린느, 질 샌더, 디올 등 명품 브랜드와 협업을 추진하면서 ‘패션’으로서 입지를 다진 것이다. 2012년 생산량은 1000만 켤레였다. 6년 후, 판매량은 2500만 켤레로 뛰어올랐다.

D2C의 시대

버켄스탁이 명품은 아니다. 그래서 특별하다. 명품도 아닌데 250년 된 장인 정신을 여전히 팔고 있다. 생산은 여전히 대부분 독일 공장에서만 이루어진다. “저임금 국가에서의 생산은 버켄스탁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프리미엄 브랜드와의 협업도 브랜드의 정체성과 맞지 않거나 생산 가능 물량을 넘어서면 거절한다. 스트릿 브랜드 ‘수프림(Supreme)’, ‘베트멍(Vetements)’ 등이 대표적으로 퇴짜를 맞은 브랜드다. 유통 과정에서도 고집은 드러난다. 2016년, 버켄스탁은 아마존과 결별을 선언한다. 아마존이 중국발 위조품을 방관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이키, 이케아, 랄프로렌, 반스 등이 ‘탈아마존’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브랜드 가치를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의 D2C(Direct to Consumer) 유통 시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LVMH의 시대

D2C 방식의 유통은 점차 오픈 마켓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영미권에서는 아마존의 대항마로 꼽히는 ‘쇼피파이(Shopify)’가, 국내에서는 쿠팡을 위협하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이 대표적이다. 버켄스탁은 이제 패션은 물론 소비 시장의 판도까지 쥐락펴락하는 기업이 되었다. 시대를 잘 쫓는 브랜드는 제품의 가격이 오르지만, 시대의 흐름을 만드는 브랜드는 회사의 몸값이 오른다. 게다가 운까지 좋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2019년 시작된 코로나19 대유행은 버켄스탁에게 기회가 되었다. ‘재택 근무자들의 공식 신발’로 부상한 것이다. LVMH(Moët Hennessy·Louis Vuitton)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이 가치를 알아봤다. 계열사 사모펀드를 통해 버켄스탁을 약 40억 유로에 인수했다.

가난한 유럽의 시대

다음 달, 예정대로 뉴욕 증시에 상장된다면 버켄스탁은 더 이상 장인의 기업도, 패션 기업도 아닌 주주의 기업으로 거듭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주목받아 시대를 만드는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제는 시대를 상징하는 기업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그러하다. 유럽 증권가에서는 버켄스탁의 인수 후 IPO를 내심 기대해 왔다. 그러나 버켄스탁의 선택은 뉴욕이다. 전쟁의 여파와 강달러의 여파로 유럽 시장이 가난해졌기 때문이다. 매몰찬 선택처럼 보이지만 프라다의 경우를 살펴보면 쉬이 납득이 된다. 프라다는 홍콩 시장에 상장되어 있다. 중국이 명품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던 때의 결정이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최근 브랜드 인기가 상승세를 타고 있음에도 프라다의 주가 성적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IT MATTERS

좋은 신발은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오랜 이야기처럼, 버켄스탁은 주주들을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까. 상황을 생각하면 긍정적인 전망이 가능하다. 환경친화적인 가치를 강조하고 있는 기업으로서 기후 위기 시대에 더욱 주목받을 여지가 있다. 가죽과 합성 피혁 등을 주재료로 하는 여타 제화 브랜드와는 달리, 버켄스탁은 재활용 가능한 코르크와 천연고무 등으로 신발을 만든다. 또, 환경친화적인 기업 이미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이어 오고 있다.

사회적인 상황도 나쁘지 않다. 영화 〈바비〉에서 버켄스탁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는 주인공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사용되었다. 하이힐이 데려다줄 세상과 버켄스탁이 데려다줄 세상은 분명 다르다. 버켄스탁을 신은 바비를 동경하는 소녀들의 시대가 계속될 수 있다면, 버켄스탁의 회사 가치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관건은 버켄스탁의 풋베드가 앞으로도 여전할 것인가이다. 걷는 이들의 발 모양을 존중하는, 실적과 이익보다 브랜드의 탄생을 가능케 했던 장인 정신을 더 중히 여기는 고집이 지속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가족 경영에서 전문 경영인으로, 이제는 주주들로 그 결정의 권한이 넘어간다. 10년 후의 버켄스탁이 궁금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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