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파 세대의 독수리 타법

2023년 9월 19일, explained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익숙한 세대에게도 긴 글을 읽고 써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교육 현장에서 PC 활용 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고령의 교사 얘기가 아니다. 학생들이 기본적인 PC 활용법을 몰라서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이 이메일을 보낼 줄 모르고 PPT를 만들 줄 몰라 애를 먹는다. 실물 키보드 사용에도 익숙지 않아 타자 연습 과외까지 등장했다.

WHY NOW

새로운 세대가 보여 주는 의외의 모습은 좋은 이야깃거리가 된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잘파 세대가 이메일을 보낼 줄 모르고 독수리 타법을 시전한다니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 딱 좋은 소재다. 그러나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잘파 세대가 왜 PC와 멀어졌는지다. 직관적인 UI를 가진, 끊임없이 도파민을 부르는 콘텐츠를 쏟아내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이들에게 훨씬 익숙하기 때문이다. Z세대의 직장 생활을 농담 소재로 삼기에만 골몰해 봤자 오해와 갈등만 깊어질 뿐이다. 이 상황은, 해결해야 할 문제다.

타이핑 못 하는 디지털 네이티브

최근 유튜브 채널 ‘디글’의 콘텐츠, ‘동네 스타 K3’의 한 영상이 입소문을 탔다. 방송인 조나단과 가수 최예나의 한컴 타자 대결 때문이다. 적나라한 독수리 타법을 선보인 끝에 나온 기록은 조나단 128타, 최예나 214타였다.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다. 학생들이 기본적인 컴퓨터 사용에 익숙지 않다는 이야기는 현장에서 이미 새롭지 않은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정보 교육 과정에서 코딩 교육을 중심으로 한 SW 교육이 강화되면서 PC 기본 교육이 빠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교육 과정의 변화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잘파 세대에게는 낯선 기계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25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연령대는 1996년 이후에 태어난, 소위 ‘잘파 세대’다. Z세대와 알파 세대의 합성어다. 이 중 2010년 이후 태어난 알파 세대는 2025년, 전 세계 인구의 25퍼센트를 차지하면서 베이비붐 세대를 뛰어넘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세대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들을 흔히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부른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아도 태블릿PC와 스마트폰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대다. 마인크래프트와 로블록스, 제페토 등도 알아서 잘 사용한다. 이들에게 익숙한 것은 스크린 기기다. 직관적인 UI가 특징이다. 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은 키보드와 프린터다.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복잡한 기계다.

TECH SHAME

그래서 등장한 용어가 ‘기술적 수치심(tech shame)’이다. 이미 경제 활동에 뛰어든 Z세대는 직장에서 각종 디지털 기기와 프로그램을 잘 다룰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기대치는 높은데 간단한 이메일 업무부터 헤맨다. 프린터, 스캐너, 복사기는 물론이고 팩스와 유선 전화까지. 다뤄본 적 없는 이 기계들 앞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Z세대가 기술적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HP의 설문조사 결과는 기술적 수치심이 세대의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기술적인 문제로 자신이 비난받고 있다고 느끼는 비율이 젊은 직원의 경우 20퍼센트에 달했지만, 40세 이상의 직원의 경우에는 4퍼센트에 그쳤다.

스크린과 뇌의 상관관계

배우면 된다. 사무실에서 꼭 필요한 기술이고,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다. 프린터의 토너 교체 방법이나 계정을 만들어 업무용 이메일을 보내는 방법은 빠르고 간단하게 따라잡을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잘파세대가 스마트폰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 자체다. 스크린 기기에 노출되면 될수록 우리 뇌는 영향을 받는다. 미국 신시내티 아동병원 의료센터(CCHMC)의 연구 결과다. 스마트폰, 태블릿PC나 TV 화면을 오랜 시간 본 아이들은 뇌 백질(white matter)의 발달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읽기와 쓰기 등의 언어 능력은 물론이고 정신 조절, 자기 조절 기능 등과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다.

틱톡이 재미있는 이유

그렇다면 스크린 타임을 줄이면 된다. 그런데 쉽지 않다. 지난해 우리나라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은 23.6퍼센트에 달했다. 4명 중 1명꼴이다. 이 중 약 40퍼센트가 청소년이다. 유별난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얘기다. 우리 뇌는 단기적 보상을 좋아한다. 원시 시대부터 인간의 생존을 가능케 했던 본능이다. 그런데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자신만의 스크린’을 손에 넣게 되면서 끊임없이 뇌에 보상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도파민 기계’라는 악명까지 붙은 숏폼 콘텐츠는, 이러한 보상 본능을 가장 지독하게 자극하는 발명품이다.

문해력의 진짜 의미

결과는 데이터로 증명된다. 읽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심심한 사과’와 같은, 세대에 따라 사용 빈도가 다른 단어의 이해도를 묻는 ‘어휘 실력’ 얘기가 아니다. 문장이나 짧은 단락의 의미를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가의 문제다. 스마트폰에서는 다를까. 그렇지 않다. 2018년 기준이지만,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은 디지털 정보의 사실과 의견 여부를 제대로 식별하지 못한다. OECD 평균 식별률 47.4퍼센트의 절반 정도에 그치는 25.6퍼센트가 우리 학생들의 성적표였다. IT 강국의 그림자다.

다시 도래한 구술문화 시대

물론 달라진 시대는 달라진 질문을 품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단어나 문장이 아닌 ‘문단’을 읽어야 하는가. 다음 세대에게도 긴 호흡의 글을 읽으며 숙고할 이유가 있을까. 스마트폰이 아니라 키보드를 두드리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긴 글을 써 내려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소리와 영상이라는 새로운 문법에 익숙한 잘파 세대에게 글이란 이제 거추장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참고서보다 ‘인강’이 더 효율적인 세대라는 점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월터 J.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는 아직도 우리에게 문자문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구술문화에서의 사고와 말하기의 특징이 “장황한 말투”인 것과 비교해, “논리 정연한, 즉 분석적인 사고와 말하기는 인공적인 제품이며 쓰기 기술로 조립된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그렇다. 복잡한 인과 관계와 촘촘한 논리는 시간을 들여 써야 만들 수 있고, 시간을 들여 읽어야 그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IT MATTERS

잘파 세대의 타이핑 속도가 느리다고 큰일은 아니다. 필요할 때 배우면 될 일이다. 그러나 언어 능력이나 자기 조절 능력이 떨어진다면 큰일이다. 잘파 세대가 글보다 영상에 더 익숙하다면 그것대로의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과와 논리, 더 나아가 맥락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면 우리의 미래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독해 능력은 글을 읽어 문제를 푸는 능력이 아니다. 세계를 읽어내는 능력이다. 각국이 문해력을 챙기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공교육 과정에서 읽기 및 작문 수업을 늘리거나 태블릿 등의 디지털 교육 노선을 포기하고 종이로 선회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킬러 문항 너머, 진짜 교육의 화두가 되어야 할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