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아이작슨처럼 쓰려면

2023년 9월 25일, explained

월터 아이작슨이 쓴 일론 머스크 전기가 화제다. 아이작슨의 글쓰기 비결은 뭘까.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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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이 쓴 일론 머스크 전기가 화제다. 아들의 성전환에 충격을 받아 트위터를 인수한 일화부터 인구 감소를 우려해 여성 임원에게 정자를 기증한 일,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를 차단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공격을 막은 일까지 책 내용이 국내외 언론에 연일 보도된다. 팔리기도 잘 팔린다. 9월 12일 32개국에서 동시 출간됐는데, 미국, 중국, 한국 등 주요국에서 벌써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WHY NOW

유명 인사의 전기라고 다 잘 읽히는 건 아니다. 헬레니즘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의 전기 《알렉산드로스 원정기》는 훌륭한 책이지만, 끝까지 읽기 어렵다. 760페이지나 되는 머스크의 전기를 계속해서 다음 장으로 넘기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아이작슨의 스토리텔링이다. 아이작슨은 세계적인 전기 전문 작가다. 신문 기자 출신으로 《타임》 편집장과 CNN 대표를 지냈다. 헨리 키신저, 벤자민 프랭클린,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전기를 썼다. 아이작슨의 글쓰기 원칙을 살펴본다.

아무나 쓰지 않는다

전기 작가라면 누구나 슈퍼 셀럽의 전기 집필을 꿈꾼다. 아이작슨은 어떻게 머스크를 설득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머스크가 먼저 제안했다. 미국 아마존 서점에선 아이작슨이 쓴 전기 네 권이 세트로 묶여 팔리고 있다. 세트 제목은 ‘천재들의 전기(The Genius Biographies)’. 프랭클린, 아인슈타인, 잡스, 다빈치 전기로 구성됐다. 이 대열에 끼고 싶지 않은 천재가 있을까. 아이작슨은 단지 유명한 사람의 전기를 쓰는 게 아니다. 과학과 인문학의 교차점에서 창의성을 폭발시킨 천재에 집중한다. 아무 때나 쓰지도 않는다. 2004년 잡스가 전기 작업을 의뢰했을 때도 처음에는 거절했다. 쓰더라도 잡스가 은퇴한 뒤에 쓸 생각이었다. 그러다 2009년 집필을 결심한다. 잡스가 두 번째 병가를 낸 후였다.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쓴다

비밀주의에다 고집불통이고 완벽주의자인 잡스는 왜 아이작슨에게 전기 집필을 맡겼을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전기는 대개 좋은 말로 가득하다. 특히 생존 인물의 전기는 더 그렇다. 아이작슨은 다르다. 그는 잡지 황금기였던 1990년대에 시사 주간지 《타임》 편집장을 지냈다. 표지에 항상 사람 사진을 넣는 《타임》은 인물 기사에 강했다. 인물을 통해 시대를 들여다봤다. 아이작슨은 《타임》 출신답게 객관주의 저널리즘에 입각해 전기를 쓴다.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다. 수십 번 만나며 관계를 쌓은 머스크에 대해 “셀럽 병에 걸렸다”고 평가한다. 아이작슨은 전기 인물이 책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작업 시작 전에 조건을 붙인다. “집필 과정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해서는 안 되며 사전에 보여 달라고 해서도 안 된다.”

설교하지 않고 이야기한다

솔직한 글이라고 모두 잘 읽히는 건 아니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아이작슨이 지향하는 글쓰기는 “설교자가 아니라 이야기꾼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설교자는 너무 많고 이야기꾼은 너무 적다.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면 사람들은 스스로 메시지를 얻는다. 아이작슨은 저녁 식사 테이블에 둘러앉아 ‘옛날 옛적에’ 하고 옛이야기 들려주듯 글을 쓴다. 이렇게 쓴 글을 다음 날 아침에 소리 내어 읽으며 쉽고 재밌는지 확인한다. 전형적인 연대순 기술 방식이라 도입부가 강렬하진 않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책장을 덮기 어렵다. 일화와 인용문으로 촘촘하게 짜인 내러티브 덕분이다. 이런 내러티브는 성실한 인터뷰, 자료 조사, 관찰에서 나온다.

적까지 인터뷰한다

성경부터 오디세이, 허클베리 핀까지 모든 위대한 글은 일화로 이뤄져 있다. 인터뷰가 깊을수록 일화가 풍성해지고, 일화가 다채로울수록 인물이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아이작슨은 잡스 전기를 쓰기 위해 18개월 동안 잡스를 40여 차례 인터뷰했다. 집에서 인터뷰하고, 산책이나 드라이브를 하며 대화했다. 전화와 문자도 수시로 했다. 잡스가 들려준 이야기를 확인하고 더 구체화하기 위해 100명이 넘는 잡스의 친구, 친척, 동료를 인터뷰했다. 잡스가 버렸거나 잡스에게 분노한 사람까지 만났다. 잡스와 대립했고 급기야 잡스를 애플에서 내쫓은 앙숙 존 스컬리 전 애플 CEO, 애플을 공동 창업했지만 관계가 틀어진 워즈니악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솔직한 심정을 끌어내 잡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렸다.

학자처럼 조사한다

취재가 전부가 아니다. 취재와 조사의 교차점에서 아이작슨의 글이 나온다. 전기 작업에는 두 가지 유형의 글쓰기가 있다. 정보를 잘 파헤치는 기자 유형이 있고, 기록물 보관소를 뒤져 문서를 찾는 데 능숙한 학자 유형이 있다. 두 유형에 걸쳐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아이작슨은 말한다. “나는 몇몇 사람들만큼 좋은 학자가 아닐 수 있고 몇몇 사람들만큼 좋은 기자가 아닐 수 있지만,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었다.” 그가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전기를 잘 쓸 수 있었던 이유다. 다빈치 전기를 쓸 때 아이작슨은 그가 남긴 7200페이지에 달하는 노트의 원본을 한 장 한 장 살폈다. 키신저와 프랭클린 전기를 쓸 때도 수많은 노트와 메모, 정부 기록물을 뒤졌다.

말하지 않고 보여 준다

아이작슨은 취재와 조사로 글의 뼈대를 만들고, 관찰로 살을 채워 넣는다. 그의 글은 중립적이다. 뚜렷한 방향성이 없다. 인물의 일상을 관찰하고, 관찰한 대로 기술한다. 설교하지 않고 이야기를 ‘보여’ 준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자 유전자 편집 기술의 선구자인 제니퍼 다우드나의 전기를 쓸 때는 다우드나의 연구실에서 그가 하는 일을 옆에 붙어 가만히 지켜봤다. 머스크와도 2년간 매달 한 번씩 함께 시간을 보냈다. 스페이스X 공장에서, 테슬라 공장에서, 회의실에서 그를 따라다니며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을 관찰했다. 여기서 생생한 스토리텔링이 나온다. 트위터를 인수한 이유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인수 전날 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여 주는 것. 이게 아이작슨의 방식이다. 판단은 독자가 내린다.

오후 7시부터 오전 1시까지 쓴다

키신저 전기를 쓸 때 아이작슨은 《타임》 기자였다. 프랭클린 전기를 쓸 때는 CNN 대표였다. 아인슈타인, 잡스, 다빈치 전기는 아스펜연구소 회장 재임 시절에 나왔다. 다우드나, 머스크 전기는 툴레인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썼다. 그의 책은 사이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부업으로 열 권의 책을 썼고, 게다가 평단과 대중이 호평하는 책을 썼고, 심지어 1000페이지에 가까운 벽돌 책을 썼다. 놀라운 저작 활동은 평범한 저녁 시간에 이뤄졌다. 아이작슨은 TV를 보지 않는다. “TV를 포기하면 오후 7시부터 오전 1시 사이에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울 정도”라고 말한다. 또 언제 어디서나 메모한다. 71세의 나이에도 공항에서 비행기가 연착되면 핸드폰을 꺼내 글을 쓴다.

IT MATTERS

아이작슨의 글쓰기 원칙을 정리하면 이렇다. 좋은 주제를 선정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취재하고, 학자처럼 꼼꼼하게 조사하고, 주의 깊게 관찰하고, 이야기하듯 들려주고, 솔직한 문장을 꾸준히 쓰는 것. 이 원칙만 지켜도 좋은 글이 된다. 그러나 훌륭한 글을 원한다면 기술적 방법 외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글을 쓰게 하는 마음, 즉 호기심이다. 아이작슨은 천재들의 삶이 우리 모두의 삶과 얼마나 똑같았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이 호기심이 그의 글을 특별하게 만든다. 아인슈타인이 전 세계를 뒤흔들 위대한 과학 이론에 몰두하는 동안, 그는 초과 근무와 박봉을 불평했고 이혼과 자녀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아이작슨은 천재를 별종이 아니라 우리처럼 결점 있는 한 인간으로 그린다. 많은 사람이 그의 다음 책을 벌써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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