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면 바이든이 진다

2023년 10월 5일, explained

전미자동차노조 파업이 미국 대선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승자에 따라 우리의 명운도 바뀐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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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세운 것은 월스트리트가 아니다. 중산층이 이 나라를 세웠고 노조가 중산층을 만들었다.” 현지 시간 9월 2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파업 피케팅에서 노동자들을 격려하며 외친 말이다. 현직 대통령이 파업 피케팅 대열에 합류한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이다. 이튿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미시간주의 무노조 공장을 찾았다. 그는 방문 전날 소셜 미디어에 “바이든이 우리 일자리를 뺏어 중국 등 다른 나라에 주려 한다. 난 당신들 일자리를 지키고 당신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WHY NOW

9월 15일부터 포드·GM·스텔란티스 ‘빅3’ 공장 세 곳에서 시작된 전미자동차노조(UAW) 파업이 미국 대선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두 대통령 후보가 노동자 환심 사기에 나선 건 해당 지역과 계층이 대선의 캐스팅보트기 때문이다. UAW 파업에는 미국 자동차 산업에 진출한 해외 기업들, 전기차 산업의 향배, 일자리의 미래, 미국 대선 이후의 국제 정세까지 광범위한 질문이 달려 있다. 이 모든 문제의 교차점은 미국 대선이다. UAW 파업은 누구의 손을 들어 줄 것인가.

강성 노조와 친노조 대통령

4년간 임금 40퍼센트 인상과 주 32시간 근무. UAW는 대선을 1년 앞두고 파격 요구 사항으로 역사상 첫 동시 파업을 단행하며 기업과 정부를 시험대에 올렸다. 숀 페인 UAW 위원장은 스텔란티스측 협상안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노조는 한국에서 통상 부정적인 어감을 지닌다. 한국리서치의 지난 2022년 10월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45퍼센트가 노조 활동에 부정적이었다. 긍정은 13퍼센트에 그쳤다. 한국은 ‘노조 때리기’가 선거 전략이 될 수 있는 나라다. 미국은 다르다. 2022년 8월 갤럽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1퍼센트가 노조에 긍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바이든은 노조 권리를 상향한 ‘단결권보호법(PRO Act)’을 낸 자칭 “친노조 대통령”이다. 강성 노조와 친노조 대통령,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례적인 그림이다.

러스트벨트

파업이 벌어진 미시간주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를 뜻하는 ‘러스트벨트(Rust belt)’의 핵심 지역이다. 270표를 받으면 대통령이 되는데 러스트벨트에만 100표 가까운 선거인단이 있어 정치적 함의가 크다. 오대호를 둘러싸는 러스트벨트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표밭인 ‘블루월(blue wall)’이었다. 러스트벨트의 쇠락이 민주당이 추구한 자유 무역 협정(NAFTA)과 국제 분업 체계에 있다고 믿은 이들은 2016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2020년에는 기대와 달리 임기 내 ‘일할권리법(Right to Work Law)’ 등 반노조 정책을 편 트럼프를 다시금 심판했다. 러스트벨트가 경합 지역이자 캐스팅보트로 탈바꿈한 순간이었다.

선벨트

UAW에게 트럼프와 같은 기득권은 적이다. 그렇다고 바이든이 지지를 얻은 것도 아니다. 전기차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지지율이 폭락한 바이든은 급히 트럼프와 유사한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이 만들어 내려는 고임금 제조업이 러스트벨트엔 부재하다는 점이다. 제조업은 지난 반세기 동안 비싼 땅값, 설비 노후화, 강성 노조, 고임금, 세율 등을 이유로 녹슨(rust) 이 지역을 벗어나 남부의 ‘선벨트(Sun Belt)’로 이동했다. 북위 37도 아래의 따뜻한 지역을 의미하는 선벨트는 각종 첨단 산업의 메카다. 내연 기관을 만드는 자동차 기업들도 전기차나 배터리 공장은 선벨트에 신설한다. 저렴한 법인세 등 친기업적인 정책에 더해 인구도 젊고 많기 때문이다.

E vs. S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짐 팔리 포드 CEO는 전기차 생산으로 40퍼센트의 인력 감축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전기차 시장에선 감원을 넘어 제조 비용을 더 획기적으로 줄이는 게 관건이다. 내연 기관차 공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UAW에겐 생존의 문제다. 미국 정부가 IRA로 전기차 등 친환경 사업 육성에 배정한 돈은 471조 원에 달한다. 환경보호청(EPA)를 통해 내연 기관차도 규제하고 있다. 친노조 대통령의 정책이 노조의 목을 조르는 셈이다. 친노조와 친환경의 딜레마는 ‘정의로운 전환’이 실패할 때 생긴다. 기존 산업 노동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전기차 전환을 늦추면 IRA의 정책 효과가 반감된다. 이처럼 환경, 사회, 거버넌스를 뜻하는 ESG에서 E와 S가 충돌하는 사례는 숱하다.

불안한 자본주의

그럼에도 전기차 전환이 국가 경쟁력이자 세계적 흐름이라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기업 관점에선 전통 산업의 노조를 쉽게 문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강성 노조라는 외형이 가린 현실은 역설적이다. UAW는 1935년 창설 이후 1970년대엔 조합원 수가 150만 명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40만 명이다. 제조업 쇠퇴와 지역 인구 감소 때문이다. 미국의 노조 가입률도 1950년대 35퍼센트에서 2022년 10퍼센트로 떨어졌다. 자동차 산업으로 한정하면 노조 가입률은 16퍼센트다. 문제는 테슬라나 리비안 같은 전기차 업체나 배터리 공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임금이 낮고 비노조원이라는 점이다. UAW 파업이 수포가 되면 노조의 입지는 더 좁아진다. 《월스트리트저널》에는 벌써 노조 가입 저조의 이유로 노조의 부패와 정치화를 이유로 삼는 칼럼이 나오고 있다.

전기차 롤백

높은 노조 지지율과 낮은 노조 가입률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신음하는 미국 정치의 현주소다. 민주당은 노조 친화적 이미지를 구가했음에도 결국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를 챙기지 못했고 공화당은 그들을 대변하는 듯 표를 가져와 사실상 친기업적 정책을 폈다. 문제는 파업 장기화가 결국 집권 정부의 오점이라는 점이다. 바이든은 증세과 지출에 불만이 큰 재계와도 심리전을 벌여야 한다. 반면 화석 연료 기업과 관계가 좋은 공화당은 러스트벨트에서의 전략 수립이 수월하다. 트럼프의 주장처럼 전기차 산업을 후퇴시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IRA가 사실상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에 호소하지 못한 반면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전방위적인 무역 보복을 단행했다. 트럼프와 공화당의 프로파간다는 아직 유효한 셈이다.

포드와 CATL

트럼프의 주장은 현지 시간 9월 25일 포드 측이 CATL과의 합작 공장 설립 중단을 발표하며 힘을 얻는다. CATL은 중국 배터리 1위 업체다. IRA에 따라 CATL은 미국 내 배터리 사업을 할 수 없지만 포드는 기술 라이선스 방식으로 이를 우회해 사업을 전개해 비판을 받았다. 갑작스런 중단 배경에 대해 UAW 측은 공장을 설립하기도 전에 일자리를 줄이려는 것이라 일갈했지만 여기엔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압박이 있었다는 후문도 있다. 양당의 공통 의제인 중국 견제에서 공화당이 포인트를 얻은 셈이다. 이해를 같이할 수 있는 노동권 보호도, 중국 견제도 서로의 견제 위에서 이뤄지니 본안이 제대로 다뤄질 리 없다. 타결이 요원해 보이는 UAW와 3사의 싸움도 결국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이대로면 바이든이 진다.

IT MATTERS

지난 9월 30일 미국 정부는 예산안 결렬 시 연방 정부 운영이 중단되는 셧다운 위기에 놓였다가 극적 타결을 이뤘다.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이 공화당 강경파를 겨우 설득해 얻은 성과다. 그러나 지난 10월 3일 그는 의회에서 해임됐다. 타결된 45일짜리 임시 예산안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등에 대한 이면 합의를 의심한 공화당 강경파 일부가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 해임에 가결표를 던진 것이다. 1.6 의회 폭동 등 일부 극성 지지층에 호소하던 양당의 강경파가 의회 내에서 힘을 얻는 상황은 작금의 한국 정치에서도 기시감이 드는 장면이다. UAW의 높은 요구 조건은 중산층의 회복과 양극화 완화를 정치권에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의 자구책으로 보인다.

전기차 정책을 롤백한다거나 ESG를 공격하는 공화당의 선거 전략은 일견 무모해 보인다. 그러나 여론은 이미 미국의 민주주의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보여 준다. 여러 외신의 여론 조사에서 바이든과 트럼프의 지지율은 비슷했지만 《워싱턴포스트》와 ABC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양자 대결 시 네 번이나 형사 기소된 트럼프의 지지율이 9퍼센트포인트나 높았다. UAW 파업에서 친노조, 친환경, 재계 설득, 반중을 모두 균형 있게 잡아야 하는 바이든 정부의 입장을 고려하면 2024의 러스트벨트는 다시 붉게 물들 가능성이 있다. 신흥 제조업이 많은 선벨트의 주들은 공화당 우세 지역이 많다.

이 같은 폭풍 전야가 한국에 미칠 영향도 만만치 않다. UAW의 협의안에 가깝게 타결될 경우 앞선 3사와 합작 형태로 미국에 진출한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한국 배터리 기업과 현대차·기아차는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 노조의 파업이 실패로 끝나도 자국 기업과 해외 기업에 대한 규제에 온도 차가 발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커질수록 가치 중심의 동맹으로 미국과 연대를 추구해 온 윤석열 정부의 외교 노선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한미일 동맹, 오커스, 쿼드, 나토 등 미국이 추구해 온 외교 전략이 일방주의로 변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미일 동맹 강화로 북한과 러시아가 연대를 강화한 입장에서 트럼프 정부의 등장은 경제와 안보의 위협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공화당 경선은 내년 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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