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이 멈추면 보이는 것

2023년 10월 18일, explained

서울 지하철이 총파업을 준비한다. 지하철이 멈추면 보이는 게 있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서울 지하철이 멈춘다. 오늘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은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1월 9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총파업이 시작되면 서울 지하철은 출퇴근 시간에는 정상 운행하지만, 나머지 시간대 열차 운행률은 80~85퍼센트로 축소하게 된다. 서울교통공사 사측과 노조는 왜 갈등하고 있을까. 서울 시민의 발, 지하철의 안전을 해칠 구조 조정 때문이다.

WHY NOW

딱 1년 만이다. 지난해 11월에도 서울교통공사는 총파업에 나섰다. 단 하루의 파업으로 퇴근길이 혼란하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쟁점은 지금과 같이 구조 조정이었다. 서울 지하철의 일평균 탑승 건수는 516만 건, 수많은 시민이 매일 지하철을 이용한다. 대중교통 정책과 서울교통공사 경영은 우리가 내는 지하철 요금을 결정하고, 매일의 출퇴근 경험을 만든다. 그런데 시민들이 매일 겪는 이 교통의 문제가 왜 1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을까? 지금 교통 정책에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다.

파업의 이유

서울교통공사 사측은 대규모 구조 조정을 계획 중이다. 전체 정원의 무려 13.5퍼센트로, 2212명이다. 이 거대한 숫자가 노조로 하여금 파업을 선택하게 했다. 그런데 이런 구도가 낯설지 않다. 작년에도 사측은 2026년까지 1539명을 구조 조정하겠다고 했었다. 올해는 작년에 발표한 구조 조정 규모에 비해 700명가량이 늘어난 셈이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사측과 노조는 ‘강제적 구조 조정이 없도록 한다’라는 합의를 통해 파업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사측이 1년 만에 더 큰 사이즈의 구조 조정안을 들고 왔다. 노조 측은 대규모 인력 감축은 안전과 시민 서비스, 즉 우리의 교통 경험 품질이 저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적자 구조 속 몇 없는 선택지

사측에게도 이유는 있다. 서울교통공사의 누적 적자는 지난해 기준 17조 6808억 원에 달한다. 시 지원금을 제외하면 사실상 3년 연속 1조 원대 적자를 보고 있다. 승객 한 명이 지하철을 낼 때 내는 돈은 1400원인데, 한 명을 태우기 위한 수송 원가는 1904원이다. 단순하게만 계산해 봐도 한 명을 태울 때마다 504원 손해다. 여기에 무임 승차, 환승 할인 등을 반영하면 적자 폭은 인당 858원으로 올라간다. 상가 임대, 광고 등 비운임 수입 비중도 있지만, 전체의 25퍼센트가량에 불과한다.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영업하는 서비스가 아닌 지하철이 효율을 내려면 비용의 50퍼센트가량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구조 조정이 불러올 나비 효과

그러나 사람을 줄이면 안전은 담보할 수 없다. 지난해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하철 순찰 2인 1조 기준을 매뉴얼화하겠다고 했다. 구의역 사고가 있은 지 7년, 신당역 사고가 있은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홀로 근무하는 역무원이 대부분이다. 근무자 안전은 탑승객 안전과도 연결된다. 작년 한 해에만 수도권 지하철은 고장으로 인해 19번이나 운행이 지연·중단됐다. 3호선 무악재 역에서는 선로에 화재가 났고, 7호선 열차는 중곡역에서 뚝섬유원지역까지 출입문이 활짝 열린 채 운행됐다. 노동자가 서로를 보호하고, 또 그럼으로써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노조는 인력 감축을 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요금 인상이 답일까

건드릴 수 있는 건 요금뿐일까. 서울교통공사의 수익 항목 중에는 시 보조금 등을 말하는 ‘영업 외 수익’이 있다. 노조 측은 적자를 시민들의 요금 인상으로 전가할 게 아니라, 서울시와 중앙 정부가 나누어 책임지라고 말한다. 영업 외 수익을 늘리라는 말이다. 보조금을 줘야 할 서울시와 중앙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적자의 원인인 ‘배려 수송’ 때문이다. 65세 이상, 장애인, 국가 유공자에게 요금을 받지 않는 공익 서비스(PSO)는 노인복지법 등 법률안에 기재되어 있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중앙 정부의 일인 것이다. 반면 기재부는 지자체가 스스로 무임 승차 대상을 조정하면 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중앙 정치와 지방 정치가 아웅다웅하는 사이, 결국 요금 부담은 시민에게 오고 말았다. 열흘 전, 수도권 지하철 요금은 150원 인상됐다.

대중교통 요금은 사회를 바꾼다
 
지하철 요금은 쉽게 건드릴 수 없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환경이다. 자동차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대중교통 확대가 필요한데 요금을 올리면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탈 이유가 줄어든다. 룩셈부르크와 독일 등 세계 각국이 대중교통 가격을 내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둘째, 가계 소비에서 교통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10퍼센트 이상이다. 소득분위가 낮아질수록 교통비 중 연료비의 지출은 급격히 줄어든다. 즉, 서민일수록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그런데 뒤집어 말해 보자. 대중교통 요금을 잡으면 정치인으로선 환경과 가계 경제 문제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단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서울시는 지난 9월, 6만 5000원으로 서울시 내 버스와 지하철, 자전거, 심지어 리버 버스와 도심 항공 교통, 전동 킥보드 등 PM까지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후동행카드’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기본 요금 인상분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명분이었다.
 
기후동행카드의 이면
 
기후동행카드는 경기도, 인천과 함께하는 게 아니라 오직 서울에서만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여기에 실질적인 탄소 저감 효과가 적다는 문제는 차치하고, 재정적인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벌써 이루어진다. 기후동행카드 운영 비용 절반은 운송 기관이 부담하기 때문에 지하철 기본 요금을 올렸음에도 서울교통공사의 적자가 더 커질 우려가 있다. 이를 교차 보전하려면 대중교통의 적인 자동차의 혼잡통행료, 주차료, 교통유발부담금 등을 강화하는 방안이 따라야 한다. 교통·철학 연구자 전현우는 북저널리즘과의 인터뷰에서 “대중교통에 보조금을 붓는 것은 재정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 혼잡통행료와 주행세 등 자동차 부분의 세금을 기본으로 하되, 적어도 수도권 같은 거대 도시(megacity)에서는 대중교통 운임을 자급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가 택한 것은 ‘적자를 끌어안기’일 뿐이다.
 
대중교통에 대한 이중 잣대

서울시는 효율을 위해 2200명에 달하는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했다. 서울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부산 지하철 노사도 10월 초, 직무성과급제와 인원 감축 구조 조정에 반대를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했다. 최종 협상에서 극적으로 타결되어 파업을 철회하게 됐지만, 효율을 위한 인원 감축과 공공성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서울교통공사의 사례와 궤를 같이한다. 이런 흐름은 공기업 부채와 매각을 통한 자산 건전화를 핵심으로 하는 행정안전부의 ‘새 정부 지방 공공 기관 혁신 지침’ 이행 과정으로 풀이된다. 대중교통의 핵심 가치는 지금 공공성이 아니라, 재정 건전성과 효율이다.

IT MATTERS

안전과 효율은 교환될 수 없는 가치다. 그러나 제도는 때때로 그 둘을 간단히 교환해버린다. 한국의 전동차 내구연한이 그 예시다. 철도안전법이 제정될 당시 15년이었던 전동차 내구연한은 1996년 25년, 2000년 30년, 2009년 40년으로 늘어났다가 2014년에는 중앙 정부의 규제 완화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 결과 2022년 기준 서울교통공사가 보유한 3563대 전동차 중 25년 이상 노후한 전동차는 2330대로 65퍼센트에 달한다. ‘비용 절감’이라는 명분이 오늘도 우리를 안전하지 않은 지하철로 밀어넣고 있다.

오늘 서울교통공사는 파업을 예고하지만 2021년처럼 파업 직전에 협상이 타결될 수도, 2022년처럼 단 하루의 파업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서울교통공사의 파업 결정은 서울 지하철을 타는 시민 모두, 혹은 서울을 넘어 전국의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시민 모두를 강타한다. 안전과 공공성이 대중교통의 핵심 가치에서 멀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지하철 적자를 얘기할 때 자동차 관련 세금,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간의 눈치 싸움 등이 걸려 있는 것처럼, 교통의 문제는 교통 수단 하나만 봐서는 풀리지 않는다. 주변 지자체와 협의를 거치지 않을 정도로 빨랐던 기후동행카드 도입에 의심의 눈초리가 가는 이유다. 전망이 불투명한 민간 위주의 사업인 UAM, PM까지 공공의 영역에 들어오며 서울시의 새로운 교통 정책은 거칠게 형성되고 있다. 지금 서울시 교통 정책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이동이 변화하기 전,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합의다. 안전, 속도, 운임 모두 시민을 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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