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필요 없는 세상

2024년 1월 23일, explained

G 대리가 점점 똑똑해진다. 김 대리의 자리는 무사할까.

이미지 생성: DALL-E, 프롬프트 입력: 신아람
NOW THIS

구글이 임직원들을 해고하고 있다. 빅테크의 해고 칼바람은 2022년부터 시작되었으니 새로울 것은 없다. 새로운 것은 해고 이유다. ‘생성형 AI’가 드디어 사람을 내보내는 직접적인 이유로 부상한 것이다. 구글뿐만이 아니다. 아마존, 트위치, 디스코드, 듀오링고 등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된 IT 기업들이 연초부터 감원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가 현실로 다가왔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WHY NOW

AI로 인한 해고는 일시적인 경향이나, 몇몇 기업의 결정이 아니다. 클릭을 유도하는 헤드라인으로 소비되고 말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상상은 한 때 망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현실이다. 우리는 새로운 경쟁자의 정체에 관해, 그리고 지금 불어닥치고 있는 AI발 해고에 관해 명확히 알 필요가 있다. 인간이란 결국, 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2024년, 당신의 태양은 새롭게, 경이롭게”
- 롯데그룹 (2024)

얼마 전 공개된 롯데그룹의 신년 이미지 광고 카피다. 30초 길이의 TV CF로 선보였는데, 광고 영상 자체는 평범하다 싶을 정도로 특이점이 없다. 그러나 화면 하단에 깔린 자막에 특이점이 있다. 이 광고에 사용된 영상과 음악 모두 생성형 AI로 제작한 것이다. 최초는 아니다. 삼성생명도 이미 지난해 생성형 AI를 이용한 광고를 제작해 집행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롯데그룹과 삼성생명 모두 광고의 주된 메시지는 ‘희망’이다.

“극도로 비인격적이다.”
- 구글 전 임직원 (2024)

하지만, 이 한마디에 담긴 것은 희망이 아니라 모멸감이다. 올해 초, 구글에서 해고된 한 엔지니어가 동료에게 보낸 메모다. 2023년 초, 구글은 1만 2000명을 해고했다. 전체 인력의 약 6퍼센트에 달하는 인원이었다. 올해는 작년보다 낫다. 현재까지 1000여 명 정도가 짐을 쌌다. 다만, 올해의 해고 이유는 명확하다. “회사의 가장 큰 우선순위”, 바로 생성형 AI 때문이다. 구글 직원들이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다니, 매력적인 헤드라인이다. 매체들이 특히 주목한 것은 광고 부문이었다.

“전 세계 컴퓨터 수요는 기껏해야 5대 정도에 불과하다.”
- 토마스 왓슨, 전 IBM 회장 (1943)

생성형 AI가 광고를 척척 만들어내니 사람이 필요 없어졌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졌다. 당장 롯데그룹과 삼성생명의 광고만 봐도 그럴 법 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상은 좀 다르다. 보도에서 언급된 AI 툴은 퍼포먼스 맥스(performance MAX)다. 광고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어디에 얼마만큼 노출할 것인지를 자동으로 결정한다. 원래 광고 소재를 바탕으로 확장 소재를 만드는 기능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직 베타 버전이다. 그렇다면 누가 왜 해고 되었나. 광고 영업 직군이 감원 대상이었다. 구글이 광고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땐 모든 것이 낯설었다. 질문이 많았다. 이후 구글의 서비스는 정교해졌고, 고객은 적응했다. FAQ와 매뉴얼로 충분하다. 혁신이 일상이 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980년대엔 PC의 전원을 켜는 방법도 A/S 센터에서 안내해 줬다. 2024년은 다르다.

“올해 최고 우선순위에 투자할 것이다.”
-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2024)

더 이상 구글, 메타, 아마존의 모든 상품 중에 ‘혁신’은 없다. 그들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 ‘혁신이었던 것’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혁신이 20여 년 묵으면 일상이 된다. 결국, 이들은 명확히 보이는 새로운 혁신, 생성형 AI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AI 개발에는 돈이 많이 든다. 사용되는 반도체가 비싸다. 개발 인력의 몸값도 비싸다. 때마침 코로나19 이후 고금리 시대로 접어들면서 선택지가 줄어들었다. 혁신하려면 투자를 받으면 되었던 시대가 끝났단 얘기다. 이제 투자하려면 비용을 줄여야 한다. 이것이 2024 빅테크의 해고 칼바람의 진짜 정체다.

“IBM의 백오피스 인력 중 30퍼센트는 5년 안에 AI와 자동화로 대체 가능하다.”
-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CEO (2023)

그렇다고 AI가 아직은 우리 일자리와 멀리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밑바닥부터 변화는 감지된다. 최근 KB국민은행은 콜센터 협력업체 6곳 중 2곳과 계약을 해지했다. 인공지능 상담이 늘었다는 것이 이유로 꼽혔다. 기술이 생겨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변화가 아니다. KB국민은행은 한글과컴퓨터 CTO 출신의 임원을 영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AI 시대를 테스트하고 있다. 금융뿐만이 아니다. 시멘트, 철강 등 전통적인 제조업 섹터에서도 AI 도입에 나섰다. 이유는 간단하다. 혁신보다 효율이 중요한 분야기 때문이다. AI의 연관 검색어는 생산성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CEO의 4분의 1가량은 올해 AI 도입으로 최소 5퍼센트의 감원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동화 대체 가능성 가장 낮은 직업 회계사, 변호사, 전문의 등”
- 한국고용정보원 (2016)

그렇다면 그 변화는 어디부터 닥쳐올까. IBM CEO의 발언처럼, KB국민은행의 사례처럼 정말 백오피스가 주요한 타깃이 될까.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분석에 따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의사, 회계사, 자산운용가, 변호사 등이 위험 직군으로 꼽혔다. 대용량 데이터를 활용하여 업무를 효율화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즉, 열심히 공부해서 지식을 축적한 뒤 이를 활용해 가치를 생산하는 직업이 AI로부터 쉽게 영향받는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곧 돈과 권력이 되는 현재의 패러다임이 뒤집힐 수 있다는 얘기다.

“AI가 창의적인 일도 생각보다 더 쉽게 해내고 있다.”
- 샘 올트먼 오픈AI CEO (2023)

지식 기반의 직업뿐만이 아니다. 창작의 영역도 이미 AI의 영향권에 들어왔다. 디자인이나 웹툰 등, 이미지 분야에서는 이미 AI가 최대 화두다. 최근에는 문학계도 발칵 뒤집혔다. 일본 굴지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의 올해 수상자, 구단 리에 작가가 “작품의 5퍼센트 정도는 AI가 생성한 문장”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작년 할리우드를 멈춰 세웠던 작가 파업의 주제도 AI였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이미 지난 2018년, 저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통해 예술 창작이 AI에 의해 쉽게 대체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은 바 있다. 예술 작품을 입력, 그에 따른 인간의 감정을 산출이라 할 때, 이에 관한 빅데이터를 통해 AI가 효과적인 ‘입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창작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가능하다는 발상이다.

IT MATTERS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본격적으로 빼앗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과장이다. 하지만 AI가 우리의 일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사실이다. 우리가 대비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변화다. 고용 시장이 변화하면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누군가는 낙오된다. IMF의 최근 보고서는 AI가 불평등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술을 가진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간의 불평등, AI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불평등이다. 보고서는 특히 AI 발전에 의한 소득 불평등에 주목했다. 노동 소득의 경우, AI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따라 불평등이 증가할 수도, 감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항상 증가한다. 즉, 돈이 돈을 버는 경향이 더 커진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2031년까지 모든 미국인이 매년 1750만 원가량의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술 낙관론자들의 해법이다. AI가 생산성을 향상시키면, 그 이득을 기본소득이라는 방법으로 나누어 가진다는 것이다. 노동은 노예가 하고 시민은 ‘인간다운 일’에 몰두했던 로마 귀족이 연상된다. 그러나 샘 올트먼의 시나리오대로 되란 법은 없다. AI가 생각보다 창의적인 것처럼, 인간은 생각보다 탐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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